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39
EP.39 공사 구분은 철저히 – 1
예전에 28일 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좀비 영화와 같은 재난 영화로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이 세계를 씹창내놓는 영화였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역병 이벤트때 발발하는 언데드화 역시 그 분노 바이러스처럼 완전히 죽은 상태가 아닌, 살아 있는 상태로 죽음에 가까워져가며 감염자로 변하게 된다.
뭐, 이건 그저 설정이고 게임 속에서는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 외에는 그냥 언데드와는 다를 바가 없었지만.
아무튼 설정상 역병이 진행되어 언데드화 되었을 때의 특징은 총 셋.
첫번째는 감염성.
언데드화가 된 자의 체액이 다른 이의 체액에 들어가게 되면 역병을 옮긴다.
두번째는 공격성.
언데드화 되면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게 적의를 느끼며 역병을 옮기려 하고 공격성이 증가한다.
세번째는 강화.
역병의 변화로 언데드화되며 신체의 한계가 사라지기 때문인지 그 NPC의 원래 상태보다 훨씬 강해진다.
물론 강해진다고 해봤자 일반 언데드와 비교해서 큰 차이는 없지만.
플레이어 중에서는 이렇게 변한 NPC들도 경험치의 제물로 삼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NPC를 살리겠다며 언데드화를 푼 사람들도 있었다.
둘 다 일장일단이 있었다.
NPC들을 가차없이 죽일 경우 훗날 지원받기 힘든 일이 있었다.
특히 중요 NPC의 경우 대체자가 없어서 아예 그와 관련된 이벤트나 퀘스트를 못 받는 일도 있다.
물론 경험치는 일반 언데드 잡는 것보다 훨씬 많이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당연히 살릴 경우는 그 반대고.
자. 그럼 에반젤린의 동생인 루드히가 어떤 류의 NPC일까.
내가 알기로 그녀와는 딱히 관련된 퀘스트나 업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를 이 자리에서 죽인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겠지.
-콰아아앙!!
“저, 저거…”
벽면이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엘프 사제 두어명이 튕겨져 날아왔다. 안쪽을 대충 보니 치유의 나무 부족과 관련된 성물들이 놓여져 있었다.
-크르르르…
그 성물 중 하나를 기분나쁘다는 듯 짓밟으며 걸어나오는 백의의 단발 엘프가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터지고, 눈에는 핏발이 섰다.
열병으로 터진 상처가 곪아 썩어가며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시체가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거기에 육체의 한계를 넘는 힘을 쓰기 때문인지 그녀의 몸은 금방이라도 문제가 발생할 것처럼 삐그덕거리고 있다.
아까 공격을 할 때 잘못한 것일까? 오른손에 살이 터져 있고 하얀 뼈가 드러났다.
그럼에도 고통을 느끼는 대신, 그녀는 죽음의 기운에 감싸진 채 산자에 대한 증오를 터트리고 있을 뿐 이었다.
“이, 이런!!”
“루드히!! 정신차려!!”
뛰어난 연금술사이기에 정신력이 강한 루드히지만 이미 언데드화가 진행되기 때문일까?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외침마저도 무시한 채 분노만을 터트리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
마치 짐승처럼 포효한 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제에게 달려든다. 그것을 본 나는 바로 월광을 겨눴다.
-퉁!!
배리어에 막힌 그녀가 튕겨져 나가며 이를 드러낸다. 내가 마법을 쓴 것을 눈치챈 것인지 그녀의 분노가 나에게 쏟아졌지만.
“와봐.”
월광을 봉으로 바꾼 후 핏발 선 눈을 날 노려보는 그녀에게 겨눴다.
“현자! 돕겠…”
“괜히 나대다가 감염되지 말고.”
“하지만 너도 위험하잖아!”
물론 나도 감염의 위험이 있긴 했다.
언데드화가 진행중인 자와 교전할 때는 조금의 상처만으로도 역병에 감염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사람들 얘기고, 배리어를 계속 쓸 수 있는 나에게는 별 문제 없는 일이다.
쟤 공격력이 강한 것도 아닌데 뭐.
-크르르르르!!
마물과 같은 속도로 루드히가 달려들었다. 난 그녀의 팔이 닿기 전 봉을 휘둘렀다.
거기에 무장도 길죽한 봉과 맨손.
리치에서 차이가 나는데 맞겠냐.
한대 맞고 나가 떨어진 루드히는 바로 자세를 잡고 날 치기 위해 뛰어올랐다.
하지만 제대로 된 스킬도 아닌 그냥 공격 따위에 맞기에는…
“내가 지금까지 치룬 전투가 너무 많아!!”
-빠아아악!!
몸을 돌리며 봉의 끝으로 루드히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우득,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루드히가 바닥을 나뒹군 순간 난 손을 들어 땅에 가져갔다.
-쿠구구구궁!!
주술사의 스킬 중 하나인 대지의 족쇄. 땅에서 치솟은 흙의 밧줄이 뱀처럼 움직이며 루드히의 양 다리를 잡았다.
자신의 움직임이 봉쇄된 루드히가 힘을 써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 정도로 풀리기에는 내 주술이 너무 강했다.
-빠아악! 빠아악!!
얼굴에 한대, 옆구리에 한대.
다리가 잡힌 탓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방어조차 할 수 없는 루드히는 그저 분노만 터트리며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시전했다.
근데 그게 맞겠나. 난 그녀를 향해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봉을 휘둘렀다.
이거 허수아비 치는 것 같네.
하긴, 게임에서 이런 식으로 따로 모아 잡아두고 경험치를 쉽게 올려 레벨업한 적도 있었지.
난 과거를 추억하며 그녀를 신나게 두들겼고, 한참 맞던 그녀는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 것인지 포효를 터트렸다.
“아아아아아악!!”
“루, 루드히!!”
그 모습에 그녀를 걱정하는 엘프들이 외쳤다. 그리고 가차없이 두들겨 패는 날 막기 위해 몇몇 엘프들이 무기를 들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로텔로! 내게 접근하는 엘프들 다 막아!”
“어? 어어?!”
당황한 로텔로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엘프들을 막기 위해 양 손을 벌렸다. 그리고 연화 역시도 마찬가지.
“그렇게 때려서 뭘 어쩌겠다고!”
살이 터져나갈 정도로 두들겨 맞는 루드히를 보면서 한 엘프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렇게 때려서 뭘 어쩌겠냐고?
모르는 소리하고 있네.
“원래 분노조절장애는 맞으면 나아!”
강자 앞에서는 분노조절잘해가 되기 마련이다.
한참을 두들겨 맞던 루드히가 결국 피를 토하고 정신을 잃었다. 그녀가 침묵하자 엘프들은 경악하다가 휙 날 노려보았다.
“뭐. 왜. 뭐. 물리치료 처음보나?”
“혀, 현자. 그거 괜찮은거야?”
“물론.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팼으니까.”
“…저정도면 죽은 거 아냐?”
“에이~ 뭐 이정도로 죽겠냐?”
딱 죽기 직전까지 맞아 완전히 피투성이가 된 그녀를 내려다보던 나는 그녀에게 힐을 사용했다. 치유의 나무 부족의 사제들 몇몇이 내 힐을 보고 이를 가는 것이 보였지만, 알바냐.
그렇게 어느정도 회복 된 것을 확인한 나는 그녀에게서 넘쳐흐르는 피를 채취한 후 말했다.
“침대에 잘 눕혀두고 팔 다리 묶어놔. 이정도로 힘 뺐으면 당분간은 못움직이겠지만 만약이란게 있으니까. 그리고 접근은 하지 말고.”
“…감히 엘프의 숲에서 엘프를 그렇게 공격하다니. 인간!! 미쳤구나!!”
에헤이. 치료의 일환인데.
난 분노하는 그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 또한 치료법 중 하나야. 원래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지.”
“뭐?!”
“생각해보라고. 언데드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그냥 잡아뒀다간 피해만 커질 뿐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그럼 여기 있는 엘프들이 다 저렇게 미쳐서 날뛰길 바란건가? 우와. 당신 이름 뭐지?”
“그건 왜?”
“엘프들이 멸망하는데 한 손 거든 엘프로 역사서에 이름 남겨주려고.”
내 말에 분노하던 엘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뭐, 더 할 말 있는 사람 있나?”
몇몇 엘프들이 그래도 치료법이 과한 것 아니냐며 떠들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간단하게 논파해주고 나니 적대감은 있지만 방해할 자는 없어보였다.
“자. 그럼 수고들 하쇼. 그리고 쟤가 또 발광하면 바로 불러주고.”
힘 쓰긴 했지만 샘플을 쉽게 얻었으니 보람이 있네.
난 콧노래를 부르며 연금술 장비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루드히의 피를 기반으로 치료제를 만들었을 때는 어느새 해가 지고 달이 뜰 때였다.
“현자. 정말 괜찮은건가?”
“당신의 치료를 거부할 엘프들이 나타날지도 모르겠어.”
아까 일로 엘프들에게 적대감을 산 것이 걱정이었나보다. 로텔로와 연화는 떨떠름해하며 말했고, 난 만들어진 치료제를 누워 있는 사제에게 투여한 후 상태를 보다가 대꾸했다.
“그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텐데.”
“으음. 나도 치유의 나무 부족이지만… 엘프들 중엔 엘프의 치료 외에는 받지 않으려는 자들도 있어서… 특히나 치유의 나무 부족이나 그들과 친한 부족에는 그런 이들이 더 그래.”
연금술사들이 제조한 약이 아닌, 기도와 성법으로만 치료를 받고자 하는 이들이 많단다.
그 외에도 전통방식의 치료만 고집하는 엘프들도 많고.
참나. 이시국에 진짜 가지가지 하네.
게임에서는 그렇게 치료를 거부할 경우 역병이 발병되면 바로 죽여버렸는데…
음… 나도 그렇게 해야하나?
어차피 목적은 역병을 잠재우는 거니까…
그래. 그렇게 하자. 굳이 쉬운 길 내버려두고 어렵게 갈 필요는 없겠지.
할 수 있다면 최대한 구하고, 못 구하면 어쩔 수 없지.
“일단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려고.”
“하아. 그래서? 그 치료제가 역병 치료제야??”
“아니. 이건 언데드화를 푸는거야. 그냥 역병을 완화시키는 정도라 역병 자체를 치료하는 건 좀 더 연구를 해야 해.”
그래도 대충 베이스는 만들었으니 상태 봐가면서 하면 될거다.
나머지는 엘프 연금술사들과 좀 더 테스트 해보고, 그리고 왕국과 교회의 지원이 오면 대량생산하도록 하자.
난 치료제가 담긴 앰플을 올려 놓은 후 주사를 챙겼다.
“어디 가려고?”
“언데드화 풀러 가야지. 자자. 가자.”
연화와 로텔로를 데리고 난 바로 아까 루드히를 두들겨 팬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적대감과 의문, 경계가 잔뜩 섞인 시선이 내게 꽂히고 있었다.
루드히와 친한 엘프 중에는 아예 칼까지 들고 있는 것들이 있을 정도다.
아까 그렇게 루드히를 줘 팼는데 치료가 안되면 날 찌르기라도 하려는 듯 보인다.
하하. 짜식들.
이래서 내가 엘프를 별로 안좋아한다니까.
“살기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벌써 몇번이나 죽었겠네.”
내가 웃으며 말하자 연화는 무안해했다. 아무리 엘프라도 자기들 도우러 온 사람을 이렇게 대접하는 것이 켕기지 않을 수 없는 듯 싶었다.
특히나 로텔로는 더 그랬던 모양인지 아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 내가 대신 사과할테니…”
“자신의 잘못은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법. 이 빚은 결코 잊지 않겠다.”
“윽… 그래도 역병 치료를 멈추려는 건…”
“그건 아니고.”
역병은 치료해야 한다.
내가 어떤 취급을 당하든.
난 그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걸어 안으로 향했다.
안에는 양 팔과 양 다리가 고정된 채 타액을 질질 흘리며 적의와 분노에 감싸진 루드히가 날 노려보고 있었다.
“어쭈? 눈 그따위로 뜨지?”
-크르르르…
아까 그렇게 맞았는데도 저렇게 눈을 뜨다니. 분노조절잘해가 아니라 진짜 장애인걸까?
아무튼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금치산자상태니까 이해해야지.
하지만 정신 차리고도 그따위면…
난 주사를 들어 그녀의 혈관에 꽂았고, 그것을 본 몇몇 엘프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
약이 투여되자 루드히의 눈에 담겨 있던 살의와 분노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던 것도 줄어들고, 거칠게 뛰던 숨도 멈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움찔거리던 루드히가 축 늘어지자 난 옆에 있던 엘프들을 불렀다.
“내가 힐해주고 싶은데 거슬리겠지? 얘 치료 좀 해줘.”
“…인간. 루드히는 괜찮은건가?”
“와서 보지 그래?”
난 루드히의 턱을 잡아 올렸다. 에반젤린과 비슷해보이지만 좀 더 앳되보이는 아름다운 소녀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꿈틀거리며 감겨진 눈이 떠졌을 때.
“아. 아야야야… 여긴… 콜록! 콜록! 어디…? 으? 다, 당신. 누구…”
아까까지 언데드화 되어 말조차 하지 못하던 그녀가 힘겨워하며 말을 꺼내고 있었다.
아직 역병은 남아 있어 체온이 뜨끈하긴 하지만.
그녀의 의식이 원래대로 돌아온데다가 죽음의 기운이 상당부분 사라졌다는 것에 엘프들은 경악하며 날 보았다.
“…마, 맙소사.”
“주, 죽음의 기운이 사라졌다고?! 주사 한번에?!”
뭐 이정도가지고 그리 놀라?
역병치료는 이제 시작일 뿐인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크로우님 후원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말물말물입니다~
오늘도 재밌게 봐주셨길 빕니다~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