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57
EP.57 내 차례 – 2
조금만 방심하면 게임오버 당하기 일수인 이 악랄한 게임의 몇 안되는 서비스 신이 나오는 곳 중 하나가 바로 레이드닌의 수영장이다.
우리가 머무는 특실 앞에 있는 수영장이나, 혹은 다른 고객들도 즐기는 대형수영장.
둘 중 어딜 가도 상관없지만 가야 한다면 특실 수영장이겠지?
물론 시설은 대형수영장이 더 좋긴 하지만 어쨌든 프라이빗한 곳이 나을테니까.
“공주님 예선 끝나면 가자고.”
“흐응. 그래. 뭐 상관없겠지.”
“그런데 너 수영복은 있냐?”
“오늘을 위해서 사가지고 왔단다. 기뻐하렴. 교회의 추기경이 수영복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아주 드무니까.”
서비스신 업적도 없는 주제에 잘난척 하기는.
난 대륙에서 단 한명 밖에 없는 용사의 수영복 차림도 봤다고 하려다가 그냥 입 다물고 있었다.
“기대되지 않아? 응? 응?”
능글맞게 웃으며 베로니카는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고, 난 그녀의 손가락을 잡아채고 깍지껴 손을 잡은 채 치유사의 스킬인 ‘진정’을 사용했다.
“조용히 좀 해봐. 집중하고 있으니까.”
“히, 히익!!”
스킬 덕분인지 베로니카는 이리저리 눈길을 흘리다 입을 꾹 다물었다.
조용하니 한결 낫네.
그렇게 조용해진 상태에서 난 루실의 듀얼을 바라보았고, 전체적인 주도권을 루실이 잡는 것을 확인했다.
이야. 여기서 윌커스가 도움이 될 줄이야.
“으하하! 이것이 울프덱의 힘이다!”
“크윽! 이딴 수다쟁이에게 지다니!”
그때 한쪽의 테이블에서 윌커스의 의기양양한 외침이 터져나왔다. 이겼나보다. 듀얼에 패배한 거구에 대머리 듀얼리스트는 이를 빠득빠득 갈며 두고보자 따위의, 패배자들이 남기는 전형적인 대사를 날리고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앗! 현자님! 거기 계셨어요? 오~ 휘익. 휘익. 뭐야. 뭐야? 왜 두 분이 손 잡고 계세요?”
나와 베로니카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윌커스는 휘파람을 불며 놀렸다. 늑대인간 아니랄까봐 음흉하기는.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 온 윌커스를 향해 베로니카는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그, 그런 거 아닌데?”
“그런게 뭔데요?”
“…너 지금 놀리는거지?”
베로니카의 눈이 가늘어지자 윌커스는 히죽거리며 물러났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전 라크랑 만나러 가야하니까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근데 너희 무슨 의뢰 때문에 온거냐?”
“흠. 뭐. 현자님에게라면 말씀드려도 되겠죠? 사실 별 건 아니구요. 조사 의뢰에요. 조사 의뢰.”
“무슨 조사?”
“검은 반역자라는 조직에 대한 조사요. 모험가 길드에 들어 온 정본데 요즘 여기저기서 검은 반역자라는 조직의 잡것들이 사고치고 다닌다고 하더라구요. 걔들 중 하나가 이곳에 있다는 정보를 얻었어요.”
“오호.”
“걔들의 목적이 뭔지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의뢰 내용이에요.”
“의뢰자는?”
“그건 말씀드릴 수 없고.”
“왕국 마법사 라켈인거 다 아니까 그냥 말해.”
“예. 그래요. 저기 그, 뭐시냐. 왕국의 라켈 마법사님이에요. 아니 진짜 현자님은 모르는게 없네.”
검은 반역자와 관련된 업적은 없지만 이벤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시작이 왕국 마법사 라켈이라는 것 쯤은 이 게임의 엔딩을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 조사를 위해서 저희가 온거에요. 아. 혹시 현자님. 뭐 아시는 거 있으세요?”
“검은 반역자의 구성원은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걔들 목적은 알아.”
“오오~ 역시 현자님! 뭔데요? 뭔데요?”
“그건 말해 줄 수 없고.”
“쳇. 저는 말씀드렸잖아요.”
난 궁시렁거리는 녀석에게 웃어보인 후 고개를 돌렸다. 베로니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거 심각한 일 아냐?”
“음…”
검은 반역자 이벤트가 시작되는 것이 심각한 일이냐라.
“별 것 아냐.”
내게 있어서는 말이지.
예상했던대로 루실은 화려한 마법콤보를 무기로 훌륭하게 예선에서 통과했다. 어제 따로 공부를 못한 것에 불안해하더니 예선 통과 때문에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스승님! 이겼어요! 통과했… 왜 두 분이 손 잡고 계세요?”
“어머? 친구끼리 잡으면 안되나?”
“안될 건 없는데. 그럼 스승님과 제자가 손을 잡는 것도 상관없겠죠?”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루실은 내 손을 살짝 잡았다. 그러더니 배시시 웃는 것이 귀여워 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안될 거야 없지.
“스승님. 저 예선 통과했는데 상으로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안되나요?”
“들어보지요.”
“…저한테도 말 편하게 해주시면 안되나요?”
내가 루실에게 존대하는 이유는 단 하나 뿐. 그녀가 공주, 즉 내 고용주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루실은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머뭇거리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신다면 그정도는 해드릴 수 있죠.”
“정말요? 매번 스승님께서 저한테 존대하셔서 절 어려워하시나 했는데…”
최소한 이 세계에서 내가 어려워할 사람은 없다만. 어쨌든 그녀는 만족했는지 활짝 웃었고, 내 다른 손을 잡고 있던 베로니카는 꾹 손을 잡아 당겼다.
“아무튼 끝났으면 가자.”
“어디 가시는데요?”
“수영장에. 아. 그러고보니 공주님은 함부로 몸을 내놓기 힘들겠네? 후후. 그럼 그냥 있어.”
도발하는 듯. 아니, 이정도면 대놓고 도발이지. 베로니카가 웃으며 말하자 루실은 살짝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응시했다. 그리고 베로니카 역시 뭐 어쩌라는 듯 그 시선을 응시했고.
“괜찮아요. 스승님의 앞인데요. 뭐. 저희가 남인가요?”
“…오호.”
“그러는 추기경님은 괜찮으신가봐요?”
“괜찮아. 친구 앞인데 뭐.”
“…아. 그렇죠. 친구시죠.”
생긋, 루실은 베로니카를 향해 웃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가장 친한, 영원한 친구.”
“…공주님. 혹시 이런 말 알아? 군사부일체라고. 주군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다… 라고 말야.”
“…..”
“….”
이대로 냅두면 진짜 멱살잡고 싸우겠군. 난 둘의 손을 잡아 끌었다.
“가자. 수영장.”
“네.”
“네에.”
근데 손은 놔주지 않을래? 걷기 불편하잖냐. 세명이서 나란히 걷는 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둘 다 손을 놓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렇게 가마까지 도착하고 나서도 손을 놓기는 커녕 오히려 내 팔을 꽉 끌어안는다.
“으으… 무, 무서워요.”
“나도 무서워…”
“…..”
넓은 가마가 어째 참 좁다.
특실로 돌아온 나는 둘이 수영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들어간 사이 수영장을 이용할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물을 부터 정화하는게 우선이다. 사제의 성법인 클리어나, 혹은 성수 제작을 쓴다면 금방 이 물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겠지.
그렇게 신성술을 준비하려는 찰나.
조인족 직원들이 허둥거리며 다가와 날 말렸다.
“현자님!”
“저희가 하겠습니다!”
“아니… 난 괜찮은데?”
“하지만 베르문드님께서 현자님께 폐를 끼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까지 현자님께서 하시면 저희가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조인족 직원들은 필사적으로 굽신거리며 날 막았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나. 내가 받아들이자 조인족들은 안도하며 정화가 아닌, 아예 물을 새로 퍼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 뭐하는거야?”
“레이드닌 산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영천의 물로 옮겨드리려는 것입니다.”
오.
영천의 물은 레이드닌 산의 이벤트를 클리어 했을 때 입장 가능한 곳이다.
조인족의 성지이며, 끊이지 않고 정화된 물이 솟아오르는 샘물로 한모금 마시면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고 이것으로 목욕을 하면 매력이 상승한다.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은 베르문드와 일정 이상의 친분과 더불어 레이드닌 산의 이벤트 클리어.
나는 조건이 채워진 만큼 수영장의 물을 그것으로 바꿔주려는 모양이다.
근데 쉽지 않은 일을 하고 있네.
이 수영장 물을 영천의 물로 채우려면 시간이 꽤 걸릴텐데.
“30분 정도면 준비가 됩니다.”
“괜히 고생만 시키는 것 아냐?”
“괜찮습니다!”
괜찮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난 고개를 끄덕인 후 그들이 물을 채우는 것을 보았다. 레이드닌 산까지 간 조인족들이 커다란 물통을 들고 와 물을 채우는 것이 보인다. 진짜 사서 고생을…
“어? 거기 현자님! 그쪽은 뭐하는거야?”
이쪽에서 바쁘게 조인족 직원들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 세실이 외쳤다. 궁금할만 하겠지.
난 건물의 끝으로 걸어간 후 의아해하는 세실에게 답해주었다.
“영천의 물? 와. 그 귀한 것을?”
“훗. 이게 다 인덕의 결과지.”
“그거 부럽네. 난 특실도 목숨 걸고 들어 왔는데 말야.”
“앞으로 정진하도록.”
세실은 히죽 웃었다. 그 고양이 같은 표정에 난 그녀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눈치챘다.
“안돼.”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
“나 혼자라면 상관없지만 일행이 있으니까.”
이번 휴가는 루실과 베로니카를 위한 선물이다. 그런만큼 주도권은 둘에게 있어야 하는 법. 내가 마음대로 누굴 껴주니 마니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쩝. 아쉽네. 그나저나… 당신도 들었지? 베르문드에게서.”
검은 반역자에 대한 얘긴가?
“들었지.”
“걔들. 마왕 부활을 꿈꾸는 놈들이라면서. 이거 괜찮은 거 맞아?”
레벤티아의 어깨가 떨린다.
마왕이라는 이름이 그녀에게는 트라우마라도 되는 것일까? 하긴, 그 압도적인 힘과 더러운 방어력을 생각하면 전위로서 마왕을 정면상대했던 그녀에게 충분히 그럴만도 하지.
“맞아.”
“…굉장한 놈들이네. 아니, 그보다 날 죽이는게 마왕 부활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지?”
“댁도 알지? 엘프의 숲에서 시작된 역병.”
“어.”
역병이 발생한 이유는 생명을 수확하여 죽음의 기운을 얻기 위해서다.
즉, 비슷한 방식을 이용한다면 마왕조차도 부활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검은 반역자들이 그런 식으로 역병을 일으킬 수도 없고, 또 내가 메인 스토리 끝나자마자 위협이 될 만한 싹을 대부분 잘라놓거나, 혹은 정리해놔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원래는 여왕 암살이 가장 괜찮은데 창백의 달 이벤트때 여왕은 암살시도를 한번 당했다.
그게 막힌 이후로 호위가 강해진데다가 여왕보단 모자라지만 혼란을 일으키기 충분한 루실에게는 거의 내가 붙어 있어 시도조차 못하니 차선책인 세실을 공격한 거다.
“그러니까. 날 죽임으로서 공왕 계승권 전쟁이 터지고, 그 과정에서 생길 죽음의 기운을 얻어 마왕 부활을 꾀하려는 거네?”
“비슷하지.”
“…흐응. 이거 재밌네. 그런데 현자. 그럼 당신 입장에서는 내가 죽으면 안되는 것 아냐?”
“그렇지.”
“그럼 당신이 날 보호해줘야 하는 건가?”
“그렇긴 하지.”
물론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작정하고 초반부터 검은 반역자 놈들을 쳐죽이는거지.
이제 막 검은 반역자 이벤트가 시작되는 것이라면 초반에 아예 싹을 밟아 이벤트를 조기에 끝낼 수 있다.
이걸 ‘스킵’ 이라고 하는데 타임어택하는 작자들이 자주 쓰는 방법이다.
나도 업적 안주는 이벤트들은 이런 식으로 많이 스킵했고.
보상을 얻기 힘들지만 이벤트 하나를 끝내는데 가장 쉽고, 빠르며 편한 방법인 만큼 이 이벤트는 스킵할 생각이다.
쓸데없이 방해만 되는 놈들인데 빨리 치워버리는게 낫지.
마왕 두번 잡아봤자 얻을 수 있는 건 마왕 코스츔과 몇가지 밖에 없고 말야.
“흐으으으으음…”
세실의 표정에 얄궂은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레벤티아는 어딘지 모르게 안절부절하며 나와 세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응. 알겠어.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여유롭게 웃은 세실은 가볍게 손을 휘저어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레벤티아는 내게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고.
“현우야!”
“스승님!”
둘의 외침에 난 고개를 돌렸고,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었다.
와. 이거 굉장하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말물말물입니다! 드디어 추석이네요! 다들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연참은… 제가 아직 준비가 안되서ㅠㅠ
준비되는대로 함 하겠습니당
그럼 내일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