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6
EP.6 재회했다 – 1
날 위해 마련된 방은 꽤나 좋았다. 방이라고 하지만 차라리 집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카페트 뿐만 아니라 장식하는 모든 것들이 화려한 방에 들어가 앉은 나는 순간이동 반지를 들어올렸다.
검은색 반지의 중앙에 있는 붉은 보석은 은은하게 빛을 내뿜으며 마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업적을 달성하여 얻은 것이라 그런지 마법 방해가 걸려 있는 왕궁 내부에서도 사용이 가능해보였다.
난 반지의 빛을 확인한 후에 바로 남은 업적들을 살폈다.
현재 진행중인 ‘이제부터 나도 S급 모험가’를 달성하기 위한 퀘스트는 아직 꽤 많이 남아 있었다.
게임에서는 그냥 마우스 클릭 몇번이면 될 일이지만 이게 현실이 되어버리니 시간낭비가 장난이 아니다.
대기시간부터 이동시간까지 치면 진짜…
끔찍하네.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다른 업적들과 동선을 겹치게 해야 할텐데…
“그리고…”
일정표를 펼쳤다.
각 마을의 축제나 행사에 참가해야만 얻을 수 있는 업적들 중에 한가지 업적이 눈에 들어왔다.
[왕도 여름 물길 축제 2연패]
[1연패 동참자 – 클레어 레이필드]
그 글귀가 내 눈 앞에 과거를 불러왔다.
=====
“축제?”
마왕의 세번째 수하를 쓰러트렸다.
도플갱어 킹이라는 강력한 존재로 왕국의 귀족의 몸을 빌린 채 사람들을 언데드로 만드는 꽤나 강한 녀석이었지만.
몽마의 동굴에서 얻은 진실의 거울로 놈의 정체를 밝혀내 쓰러트릴 수 있었다.
이후 마왕의 수하가 나타날 조짐은 보이지 않았기에 용사파티는 오래간만에 수도에서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그 틈을 노려 난 업적작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으음… 우리가 지금 축제에 참가해도 되려나…?”
난감해하던 클레어는 날 힐끔힐끔 보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티아랑 에바는 어떻게 한데?”
“레벤티아는 기사단에 복귀해서 정식 여름 훈련에 다녀와야 한다고 하고 에반젤린은 인간이 많은 곳은 싫다더라.”
“그래? 그럼 우리 둘만 가면 되는건가?”
“그렇지.”
“크, 크흠. 넌 괜찮아? 피곤할텐데. 아니면 다른 일은 없어?”
나?
나야 당연히 괜찮지.
아무리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고 있는 도중이라지만 깰 수 있는 업적은 최대한 빨리 깨야하니까.
특히 왕도의 여름, 겨울 축제 같은 경우는 딸 수 있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어 할 수 있을 때 반드시 해둬야 한다.
태양을 닮은 눈이 곱게 휘었다. 클레어는 팔짱을 끼고 살랑살랑 고개를 젓다가 배시시 웃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아아~ 근데 나도 피곤해서 자고 싶기도 하고…”
“그래? 그럼 쉬어.”
적당히 아무나 잡고 데리고 가야지. 축제 파트너로 꼭 얘들을 데리고 갈 필요는 없으니까.
싫다는 사람 억지로 데리고 갈 필요는 없잖은가.
“아앗! 자, 잠깐만! 미안! 미안! 나랑 같이 가! 응?!”
방금 전까지 체셔고양이처럼 히죽거리던 클레어는 내 로브의 자락을 꽉 잡았다.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그녀를 보며 난 어깨를 으쓱였다.
갈거면서 튕기기는.
왕도에서는 매년 여름과 겨울에 축제를 연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더운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서 왕도의 중심을 관통하는 강을 이용한 여름 물길 축제다.
게임에서는 동료, 혹은 여성캐릭터들의 수영복 차림을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 정도지만.
이 이벤트에 두번 참가해서 두번 다 제대로 즐기는 것 역시 업적에 속하니 해둬야 한다.
강가의 축제장 입구에서 멍하니 메인 스토리 진행 중에 할 만한 업적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 치는 것을 느꼈다.
“많이 기다렸어?”
주변 사람들이 수근거리거나, 혹은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만도 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반짝이는 금색 머리칼.
희고 갸름한 미형의 얼굴에 담긴 태양같은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이 자리의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으니까.
무릎 위를 살짝 넘는 민소매 원피스에, 신발은 늘 신는 부츠가 아닌 새하얀 피부와 잘 어울리는 하얀 샌들로 맨발을 그대로 드러낸 미녀.
클레어 레이필드는 게임에서처럼 화사하고 활기찬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헤헤.”
“좀 과한 거 아냐?”
클레어는 남녀 누구라도 한번쯤은 돌아볼만한 멋진 몸매에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지만 아직 속은 여전히 시골 소녀다.
노출이 조금 심한 갑옷만 봐도 얼굴을 붉히는 그녀가 입기엔 팔과 겨드랑이가, 그리고 살랑살랑 흔들릴 때마다 하얀 허벅지가 드러나는 이 차림은 그녀로서는 꽤나 과격한 차림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묻자 그녀는 살짝 볼을 붉혔다.
“요, 용사인걸.”
“뭔 상관이야.”
“용기를 낸 거라고!”
“그래? 그나저나 잘 어울린다.”
대놓고 칭찬을 바라듯 눈치를 살피길래 그냥 칭찬해줬다.
이 업적 달성을 위해서는 축제기간 안에 모든 미니게임과 상점을 들러야 한다.
그런만큼 괜히 쓸데없는 실랑이로 시간 날릴 이유는 없지.
“오, 오오~. 현우. 너 볼 줄 안다? 오늘은 특별히 입어준거야. 영광인 줄 알아.”
내 칭찬에 어쩔 줄 몰라하며 호들갑을 떨던 그녀는 우쭐해하며 내 등을 팡팡 두들기더니 히죽거렸다.
“가자. 할 거 많아.”
“응!”
클레어는 웃었다.
너무나도 즐겁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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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달성을 위해서였긴 했지만 솔직히 그때는 꽤 재밌었지.
지금은 지난 일이지만.
그나저나 올해는 누구랑 가야하나.
여름 축제 2회 재패 업적 외에 다른 업적들도 확인해가며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재점검했다. 계획에서 특별하게 어긋난 것은 없었다.
예상보다 더 한 것도 있고, 덜 한 것도 있지만 이정도는 오차범위다.
큰 문제가 없는 이상 일, 이년 안에 모든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큰 문제만 없다면.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자 시녀장이 공손히 문을 열었다. 들어올때와 마찬가지로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그렇습니까?”
찾는다는데 가줘야지.
난 시녀장과 함께 밖으로 나갔고, 바깥이 꽤나 소란스러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뭡니까?”
“레오덴 장군께서 왕도로 잠시 복귀하셨습니다.”
레오덴 장군은 게임 내에서도 네임드 NPC다. 마물과의 전쟁을 이끄는 명장이며,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훌륭한 장군.
물론 고지식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수행할 줄 아는 남자다.
메인 스토리 진행 중일 때도 몇번 만났었던 그가 왔다는 말은…
“어? 설마 클레어나 레벤티아, 에반젤린도 온겁니까?”
“오늘은 용사님만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예상은 했지만 걔들을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말에 조금도 속이 쓰리지는 않았다. 그냥 그런가보다 라는 생각만 들 뿐.
하지만 나와 용사파티의 관계를 알고 있는 모양인지 시녀장의 표정은 어두워보였다. 혹시라도 내가 그들을 피해 도망이라도 칠 것이라 생각한 걸까?
내가 뭔 죄를 지었다고 도망가?
“갑시다.”
“예.”
알현실로 가는 길은 그리 번잡하지 않았다. 레오덴 장군과 용사를 맞이하기 위해 인력들이 대부분 그쪽으로 갔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점검만을 마치고 알현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철컹! 철컹!
묵직한 중갑옷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 쪽으로 눈을 돌린 나는 발견했다.
하얗게 질린.
눈이 크게 떠진.
손과 발을 덜덜 떨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금발의 미녀를.
“…현…우야?”
과거의 아름다웠던 목소리 대신, 꽤나 잠겨 있는 목소리로 날 부른 클레어는 한걸음 나섰다.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듯한 그녀가 내게 다가오려 하자 덥수룩한 수염에 거구의 노장이 팔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
“이제 곧 알현 시간이오.”
“겨, 겨우 만났어! 겨우 만났다고요! 현우!! 하지만! 하지만 현우인데!! 현우가 저기 있는데에에!!!”
“나중에 하시오. 지금 중요한 것은…”
-끄드득
“…방해하지마. 나, 난 그에게…”
“여왕 폐하께서 납셨습니다!! 모두 입장하십시오!”
“그런 거 상관없…!!”
“쉿.”
내가 손가락을 내 입술에 가져가자 당장이라도 무기를 뽑아 막는 이들을 때려눕힐 것 같던 클레어가 굳었다. 그녀는 날 멍하니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숙였고 레오덴 장군은 내게 눈짓으로 말했다.
고맙다고.
고맙긴 뭘.
서로 돕고 사는거지.
예전에 도움도 꽤 받았고 말야.
난 그들에게 향해져 있던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담담히 안으로 들어갔고 레오덴 장군과 클레어 역시도 안으로 들어갔다.
클레어가 계속 쳐다보고 있는지 뒷통수가 따끔거린다.
“고생이 많았다. 레오덴 장군.”
“송구합니다.”
“아니. 그대가 송구할 일은 없지.”
알현실의 옥좌에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던 여왕은 차가운 시선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옆에 딸인 루실 에르메이어 공주가 자신의 기에 눌려 있는데도, 여왕은 그녀 특유의 오만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용사. 보고에 따르면 나의 검이며 방패인 레벤티아 슈마 단장이 전장에서 꽤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어? 그런가?
이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과할 정도로 잔혹한 마물 살육, 회복을 거부, 강제로 회복시켜주려던 사제를 밀어내는 것이 다반사에… 그 외에 지시 불이행도 몇건 있고…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않고.”
“그… 그건.”
“그녀가 원하기에 기사단으로 복귀시키지 않고 용사파티에 소속되게 해주었거늘… 용사. 파티원들의 통제가 불가능한 것인가?”
클레어는 입술을 꽉 깨물다가 힐끔 날 보았다. 뭐 어쩌라고.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그래? 과거에 그대들에게서는 결코 찾아 볼 수 없던 일이 마왕 처치 이후 자꾸만 발생하고 있군. 엘프 궁수 에반젤린 루트바이체는… 모든 소통을 거부하고 전투가 끝나면 막사에 틀어박힌 채 나오지도 않는다고 하던데.”
“……”
“거기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없는 사람이 옆에 있다 중얼거리기도 한다고 하고.”
“…그것은…”
“치료를 해주고자 다가가면 위협하려고도 하고. 가끔씩은 멋대로 전장에 들어가 뭔가를 찾듯 홀로 헤메이기도 하고. 아직까지 문제는 없다만…”
여왕은 무덤덤하게 보고서를 읽은 후 물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인가?”
클레어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초췌해진 얼굴에 힘이 빠진다.
“현자. 과거 그대는 용사 파티원이었지.
“정식 파티원은 아니었고 그냥 제가 따라다닌 정도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대가 지원할 때와 지금 용사파티원들이 다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난 대답했다.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제가 보기엔 폐하께서도 알고 계신 듯 한데…”
“대충은 알지.”
“아시면서 왜 물어보십니까? 폐하께서 신경쓰셔야 할 일은 그 외에도 많습니다.”
남 일에 신경 끄고 선넘지 말라는 경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주변에 있던 신료들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불쾌한 질문을 먼저 꺼낸 건 그녀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답변했다고 저들이 뭘 어쩔건가.
난 여왕의 신하도 아닌, 그냥 계약직 직원일 뿐인데.
꼬우면 자르시든가.
내 대답에 긴 손가락으로 옥좌의 팔걸이 부분을 톡톡 두들기던 그녀는 피식 웃고 고개를 끄덕인 후 한결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그녀 나름의 사과의 제스쳐였다.
“…흠. 하긴 그것도 그렇군. 사생활에 대한 질문은 사과하지. 그렇다면 과거, 그대가 지원했을 때는 멀쩡했던 용사파티가 이렇게 되었고, 지금은 아니라면… 그대가 그들을 다시 지원해 줄 수 있겠는가?”
클레어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 하지만 다시 시무룩. 그러다가 눈이 반짝이고 한숨을 내쉰다.
꽤나 복잡해보이는 그녀를 힐끔 본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왜?”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내 대답에 용사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처럼 미모를 일그러트렸다.
이후로 몇가지 질문과 대답이 이어진 후에 알현이 끝났다. 자꾸만 내게 오려는 듯한 클레어를 잡고 있던 레오덴 장군은 한숨을 쉬다가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클레어는 쭈뼛거렸다.
겁먹은 고양이가 어쩔 줄 몰라하는 것처럼.
주인에게 혼난 강아지가 꼬리내리고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둘이 남게 되자 그녀는 아까 그리도 열정적이던 것과 다르게 내게 말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난 그녀를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클레어는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웃었다.
어찌 할 바를 몰라짓는 듯한 그 어색한 미소는 과거 내가 레벤티아와 에반젤린의 매도를 당하고 난 후, 내게 다가와 뭐라 말해야할지 몰라 지어주던 미소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클레어는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 머, 멋대로 웃어서…”
나 아직 아무말도 안했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물고기인간님 후원 감사합니다.
현자의 궁극기가 궁금하다고 질문 주셨는데…
당연히 있습니다. 뭔지는 스포라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ㅎ
재밌게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오탈자 지적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이게 고친다고 고치는데 놓치는게 꼭 있네요;;
내일 뵙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