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도와주세요
[송우식품 엄현주 사장, 대국민 사과 발표]
찰칵. 찰칵. 찰칵.
송우식품에 마련된 발표장에 엄현주가 들어서자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공공기관장의 협조 아래 조직적으로 은폐된 집단 식중독 사건으로 엄현주는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침통한 기색에 맞는 검정색 정장차림으로 발표장에 선 엄현주는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있어서는 안 될 집단 식중독이 은폐되었던 일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송우식품은 안전하고 건강한 식품을 공급한다는 원칙을 최우선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칙을 지키고자 지금껏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하지만 담당 직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많은 학생에게 피해를 주었으며 국민 여러분에게도 심려를 끼쳤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피해 학생들에게는 적절한 보상을 약속드리고 다시 한번 시스템을 점검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고, 안전하고 건강한 식품 공급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우스갯소리로 ‘매를 번다’는 말이 있다.
엄현주의 대국민 사과 발표가 딱 그랬다.
그녀의 사과로 인해 국민의 분노는 가라앉기는커녕 불에 기름 부은 듯 더 크게 타올랐다.
[안전하고 건강한 식품 공급이라고? 그딴 거 너나 드세요.]
[곧 죽어도 자기 잘못이라는 말은 안 하네.]
[왜 맨날 직원 잘못이야?]
[이제는 검찰총장하고 입 맞췄어? 직원 잘못으로 하기로?]
[송우식품 자체가 불량식품이야.]
[송우그룹 엄상현 회장은 뭐 하나? 회장이 사과해야지.]
[엄상현 회장, 당신이 이렇게 하라고 가르쳤나?]
집단 식중독 은폐 사건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엄현주가 담당 직원에게 책임을 돌린 게 사람들을 더욱 화나게 했다.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엄현주의 사과는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이 사건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쇼라는 것을.
사람들이 표출하는 분노의 크기만큼 송우식품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 이어졌다.
[검찰, 송우식품 압수수색]
[멈출 기미가 없는 송우식품 주가 하락]
[교육부, 집단 식중독 피해 학교장의 요청으로, 송우식품에 급식 중단 명령]
[송우식품도시락 급식 공급받는 초중고, 계약해지 통보]
“사장님, 자회사 주가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비서가 침울한 표정으로 엄현주에게 얘기했다.
“하아…….”
그녀는 골치가 아픈 듯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부정적인 일들에 대해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피할 수 없는 소나기를 맞고 있지만, 그녀는 내심 기대하는 게 있다.
‘태규 씨가 큰 이슈가 될 법한 사건을 찾아보겠다고 했으니.’
이슈는 이슈로 덮는 법이다.
새로 터진 사건 때문에 집단 식중독 은폐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며칠만 견디면 돼.’
그렇게 혼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였다.
디리리리.
엄현주의 휴대폰이 울리는데, 남편 유태규의 전화였다.
‘찾았구나!’
집단 식중독 은폐 사건을 덮을 만한 연예인 사건을 알아보겠다고 했었다.
엄현주는 얼른 그의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태규 씨, 연예인 사건 찾았어요?”
[현주 씨, 그것 때문에 전화한 게 아니에요.]
유태규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게 아니면, 뭐예요?”
[검찰이 찾은 거 같아요.]
“뭘 찾아요?”
[집단 식중독 은폐에 현주 씨가 관련됐다는 증거를 찾은 거 같아요.]
“뭐, 뭐라고요?”
화들짝 놀란 엄현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문서도 완벽하게 정리하고, 이사와 교육감과 식약청장과도 말을 다 맞췄는데 무슨 증거를 어떻게 찾았다는 거예요?”
[집단 식중독을 이사에게 보고했던 직원이 이사가 현주 씨에게 보고하는 내용을 업무수첩에 적어 놨어요.]
“아……!”
엄현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은 사건에서 빠질 수 있게 관련 문서와 상황을 완벽하게 조작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업무수첩 때문에 발목이 잡히게 생겼다.
“태규 씨, 어떻게 하면 좋아요?”
[현주 씨, 책임지지 않을 방법이 하나 있어요.]
“방법이 있어요? 뭔데요?”
순간 밝아진 기색으로 엄현주가 물었다.
왜 아니겠는가.
업무수첩 때문에 자신의 관련성이 확인되면 법적 처벌을 받게 될 것이며, 집행유예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남편 유태규가 방법이 있다고 하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아버님께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거예요.]
“아…….”
밝아졌던 엄현주의 기색이 순식간에 다시 어두워졌다.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하지만 아버님이라며 가능해요.]
“태규 씨, 하지만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잖아요.”
최덕일 변호사는 그녀에게 분명히 얘기했다.
엄상현 회장의 지시에 따라 그녀가 도와 달라고 요청하면, 그룹 차원에서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도 있을 거라도 했다.
‘그 대가가 문제야.’
자신은 아버지 엄상현 회장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고, 부회장 지명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런 사실을 유태규도 모르지 않는다.
[알아요. 하지만 현주 씨가 교도소에 가는 것보다는 나아요.]
“……!”
[현주 씨, 시간이 별로 없어요. 만약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게 되면 아버님도 손을 쓸 수 없을 거예요.]
“…….”
그녀가 망설이는 듯 대답이 없자 유태규의 초조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현주 씨, 다른 기회가 있을 거예요.]
“…….”
엄현주는 그 말의 의미가 뭔지 안다.
아버지 엄상현 회장의 도움을 받은 결과로 부회장 지명에서 멀어지겠지만, 다른 기회를 노려 보자는 것이다.
현주는 안다.
다른 기회를 노린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구속되면…….’
다른 기회조차 없을 수 있다.
[현주 씨.]
유태규가 부르는 소리에 엄현주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태규 씨, 그렇게 할게요.”
통화를 끊은 엄현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 * *
“회장님, 다른 계열사 주가도 송우식품 문제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후우.”
최덕일 변호사의 보고에 엄상현 회장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쉰 후 물었다.
“검찰 쪽에 알아봤어?”
“예, 회장님.”
“현주가 마련한 대응이 잘 통하고 있어?”
엄상현 회장은 엄현주로부터 이번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지는 않았지만, 검찰 내 정보원으로부터 수사 진행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뭐, 문제?”
놀란 엄상현 회장이 눈을 부릅떴다.
“엄현주 사장이 개입된 증거를 검찰이 확보했습니다.”
“뭐어?”
엄상현 회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현주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거야?”
“유태규 검사가 알려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찌 일을 그리 처리해.”
엄상현 회장이 못마땅한 투로 내뱉었을 때였다.
똑똑.
서재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와.”
엄상현 회장이 얘기하자 문이 열리며 엄현주가 들어왔다.
“현주, 네가 웬일이냐?”
엄상현 회장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무슨 용건으로 왔는지 알았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엄현주는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하듯 굳은 표정으로 얘기했다.
“검찰이 저와 관련된 증거를 가지고 있어요.”
“…….”
“제 선에서 해결하기 어려워요.”
대답 없이 엄현주를 가만히 응시하던 엄상현 회장이 입을 열었다.
“내가 도와주면 대가가 따른다는 건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어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엄상현 회장이 최덕일 변호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최 변.”
“예, 회장님.”
“현주를 도와줘.”
“알겠습니다.”
“계약 문서 남기는 거 잊지 말고.”
“……!”
순간 최덕일은 엄상현 회장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번지는 걸 포착했다.
그리고 그 미소가 무슨 의미인지도 안다.
‘엄현주에게 이겼다고 생각하겠지.’
엄상현 회장이 두려워하는 것은 가족과 그룹 내에서 그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이다.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부회장 지명을 예상보다 일찍 시작했다.
엄 회장의 권위에 도전하던 자식들이 부회장이 되기 위해 그의 눈치를 보고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을 테니.
‘방금, 엄현주는 엄상현 회장에게 백기를 들었어.’
엄상현 회장은 엄현주를 도와주는 대신 그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게끔 만들 것이다.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최덕일은 그의 기분을 맞춰 주듯 대꾸했다.
“계약서 원본은 회장님께 가져오겠습니다.”
* * *
며칠 후.
검찰은 집단 식중독 은폐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언론사들은 그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인터넷에 기사를 올렸다.
그 기사 중 엄현주가 기다리던 소식도 있었다.
[송우식품 엄현주 사장, 집단 식중독 은폐 개입 없었다.]
“여보, 아가씨 소식 들었어요?”
다급한 표정으로 채연희가 엄현식의 사무실로 들어오며 물었다.
그 물음에 엄현식은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 알고 있어.”
“이렇게 되면 우리 계획이 실패한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 우리 계획은 성공했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채연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건 현주 실력이 아니야.”
“그럼, 누구예요? 여상길 팀장도 아가씨 곁에 없는데.”
집단 식중독 은폐 사건이 터진 직후 엄현식은 여상길 팀장이 송우식품을 떠났다는 것을 최덕일 변호사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엄현주와의 관계가 틀어졌다는 정도만 알뿐 최덕일 변호사의 계략이 있었다는 건 알지 못한다.
“아버지야.”
“어머! 정말이에요?”
채연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엄현식이 대답했다.
“박 과장이 알려 줬어. 며칠 전 현주가 아버지를 찾아왔었다고.”
“그럼, 아버님이 도와주신 게 맞겠네요.”
엄현식은 그녀의 대답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버님이 이런 식으로 개입하시면 우리가 어떤 전략을 써도 소용이 없잖아요.”
“이번에는 다를 거 같아.”
“예……?”
“박 과장이 그러는데, 아버지를 찾아온 현주가 최덕일 변호사와 함께 나갈 때 표정이 무척 어두웠데.”
“……?”
“해결책이 마련됐으면 안색이 밝거나, 안심하는 기색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무거워서 말도 걸기가 어려웠다는 거야.”
“그 분위기가 무슨 의미일까요?”
“아버지는 도와주는 대신 현주에게 뭔가를 요구하신 것 같아. 현주는 그게 탐탁지 않았겠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테고.”
“어머! 그렇다면, 우리에게 나쁜 소식은 아니네요?”
순식간에 안색이 밝아진 채연희가 묻자 엄현식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경국 과장이 본 그 광경이 그들에게는 좋은 징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 식사 때, 엄상현 회장이 입을 열었다.
“모두 검찰 발표를 들었겠지만, 현주가 관련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모두 적극적 알려서 실추된 그룹의 명예가 회복되도록 만들어.”
“예, 아버지.”
“그렇게 할게요.”
“당연히 그래야죠.”
엄상현 회장의 말에 각자 한마디씩 대답하자 그가 다음 말을 이었다.
“현주는 내일 송우식품 사장 자리에서 물러날 거다.”
“예……?”
그의 통보에 엄현식과 엄현태는 놀라 눈이 커졌다.
하지만 현호의 머릿속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다음은 현태 형 차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