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내가 공개적으로 펼친 처형식은 그 파장에 비해 역사에 큰 작용을 한 것 같진 않다.
그저 알음알음 사람들 사이에서 알려질지언정 군은 이번 사건을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대했다.
되려 각국을 사로잡은 새로운 소식은 바로 나와 페탱의 불화설이었다.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갈등인가.”
“어쩌면 우리 예상보다 강한 의견 대립이 있었을지도 몰라.”
“중우냐, 극우냐, 그 차인가.”
이미 전쟁이 끝났으니 우리 두 사람의 불화설은 매우 좋은 가십거리이자 흥미로운 주제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데? 그래서 누가 굽히는 건데?
허나 페탱이 결과적으로 한 일이라곤 며칠간의 구금이라는 아주 가벼운 조치였고 나 또한 여기서 잠시 멈추기로 했다.
이후 사건은 그저 ‘모헬의 기행’이라고 치부되며 일단락되었고, 어느새 사람들 뇌리에서 조금씩 잊혀져 가는 것 같다.
“와아아아!”
“모헬 대령님, 저 독일인들을 전부 죽여주세요!”
“정의의 길로틴, 베르게르 모헬!”
으음, 구금된 채 파비앵이 던져주는 정보만 받아먹다 보니 체감이 안 되었는데 정정하자면, 국내 여론은 조금 달랐나 보다.
아무래도 나의 ‘젊음’이라는 특징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치 순수하고 정의로운 변명처럼 표현되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전범 귀환은 프랑스로서는 아주 뼈아픈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이대로 전쟁을 끝내려면 분명 살려서 돌려보내야 하는데 이놈들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주자니 이게 또 찝찝한 거다.
그러니까 일단은 국민들에게 굳이 알리지 않는 방향으로 갔던 건데….
“이상하지 않나, 파비앵. 난 분명 군법을 어겼는데 사람들은 환호하고 있어.”
“무지라고 치부하고 싶지만…. 솔직히 저 또한 사로잡은 포로들을 재판조차 하지 않고 돌려보내는 게 불편하긴 합니다.”
매번 느끼는 바이다. 저들은 내가 준 짧은 정신적 쾌락에 환호하는 걸까, 아니면 앞으로 내가 그들에게 제공할 무언가를 기대하기에 지지하는 걸까.
둘 다일 수도 있지만, 난 저들의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려는 게 아니다.
“그래도 페탱 원수님께서 곱게 이번 회의에 참석시켜 주셨네요.”
“내일 자리에 내가 빠지면 그때는 진짜 내분 이야기까지 나올 테니까. 나름 이번 일로 얻은 것도 있고.”
“그, 말도 안 되는 휴가 말씀이시죠?”
“흔히 말출이라고 하지.”
휴직에 가까운 휴가. 기간은 일단 두 달로 했는데 얼마든지 연장은 가능할 것 같다.
잠깐 쉬고 돌아오라는 수작이 너무 뻔해서 거절하고 싶었지만 물에 빠진 내게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제안은 너무 달콤했다.
독일은 두 번이나 휴전 협정을 연장하고서야 완벽히 패배를 인정했다.
정확히는 그 기간 동안 어디까지 내줄 것인가를 정했다고 본다.
‘그쪽도 국가 내장이 다 뒤틀려서 정신없는 것 같던데.’
미래의 승리를 담보로 온갖 것들을 전쟁터에 끌어다 쓴 독일은 그 리바운드가 시작되고 있다.
끝이 없는 시위와 파업. 군탈과 항명. 기업의 파산과 국민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쓰러진 시체 위로는 온갖 벌레들이 득실거리기 마련.
신문과 분석 보고서를 비교해보면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어우, 세상에 우리 프랑스 정치를 보는 것 같네. 요즘은 창당이 유행인가 봐.”
“분열하고 떨어진 부스러기들과 이 기회에 싹을 튼 놈들이지요.”
옆 나라가 뻔히 공산화되어 내전의 길을 걷는 꼴을 봤으면서도 공공연히 공산당이 주요지지 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은 애교다.
카이저 지지 여부.
자본 친화 여부.
종전 동의 여부.
이 세 가지 질문만으로도 난 저 독일을 팔등분 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전통 소스인 이념 넣고 지역 넣고 민족까지 넣어서 삭삭 흔들면?
캬아, 빌헬름 1세가 군대로 꼼꼼히 꿰맨 독일이 ‘5호 16국’ 요리로 재탄생하는 결과 완성이구나!
맛이 아주 다양해서 어느 걸 대표 메뉴로 밀지 정하는 것만 한 10년은 고민해야 할 거다.
“우리라고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르겠냐만.”
아직까지는, 클레망소다. 적어도 아직은.
클레망소가 푸엥카레의 거국적 내각 위에 홀로 앉아서 프랑스를 호령하는 것은 결국 전시, 그러니까 승리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근데 전쟁은 이제 끝났잖아.
그럼 다시 그 또한 다른 이들과 동일하게 끌어내려져 싸워야 한다는 말인데 문제는 클레망소 총리는 자신의 약점을 가릴 만큼 큰 임펙트가 없었다는 점이다.
“시위하면 입대시켜버리고. 반대파는 찍어 누르고. 언론인 주제에 언론도 탄압하고.”
아주 공격당하기 딱 좋은 것들투성이다.
거국적 내각, 그러니까 프랑스 정계의 신성 연합이 끝나면 장담컨대 우리 꼴도 저 독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5년의 전쟁 동안 곪아 왔던 문제들이 터질 거고 정치인들은 쓰라린 상처를 소독하는 대신 그 위에 보기 좋은 옷을 입히려고 노력할 거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당장 나는 파리로 돌아왔다.
1월 18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리는 파리 평화 회의.
27개국 초청에 5개의 단체가 추가 참석하고,
공식적 항복이자 종전의 날이 될 것이며,
국제 연맹 창립이 예정되어 있다.
근데 그건 내가 볼 때 다 들러리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1월 18일.”
“독일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제국을 선포한 날이죠.”
“프랑스인들이 단체로 뽕에 미쳤어. 아주 다들 마약에 중독되었다고.”
이 날짜 맞추려고 그간 해온 미친짓을 되짚어 보자면, 자꾸만 휴전을 연장하려는 독일을 압박. 동맹들에게 준비 강요.
그리고 총리, 장관, 군부 할 거 없이 무려 2달간 이어진 미친 준비가 있었다.
날 가둬두고 난 뒤 페탱과 포슈 원수가 단 한 주도 같은 지역에 머무른 적이 없다고 하니 그 노동력이 참으로 고상하고도 대견했다.
“대령님은 심심하면 훈련이나 하셨지요.”
“명령을 받고 군사적 압박을 가한 거지.”
이건 진짜다. 이 모헬의 역할은 돌아다니면서 훈련 참관하고 사진 찍어서 보고서 올리는 거였다.
페탱 원수님이 읽었을랑가 몰라.
“예예, 궁금하다면서 A7V 전차를 생샤몽 전차로 박살내고 폭격 작전 가능성 확인한다면서 대규모 항공 작전을 펼치시고 심지어 적국 주민들이 사는 곳까지 순찰 핑계로 돌아다니셨지요. 꼭 암살 시도라도 바라는 것처럼.”
“에헤이, 암살이라도 일어났다? 그럼 내 장례식은 베를린궁에서 치러졌을걸? 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효과는 좋았잖아. 그럼 된 거 아닌가.
하여튼 처형식 이후로 왠지 사이는 서먹해졌지만 페탱은 나름대로의 배려를 보여준다.
딱 적당한 일만 시키고 평소라면 시시콜콜 해댈 잔소리도 안 한다.
이번 강화 회담에서의 내 역할도 비슷하다.
일단 1월 18일 시작은 사진도 찍고 연회도 하고 온갖 기념의 끝판왕을 달리더니 이후에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자.
“자, 국제 항공법은 이대로 좋은데 문제는 항공기의 기준입니다. 저희 전문가들이 독일 델라스 사 항공기를 분석한 결과 언제든지 민간 항공기는 전쟁용으로 변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럼 항공기를 다 파괴하면 되는 건가.”
“…..”
“아, 죄송합니다. 혼잣말이었습니다. 계속 발언하시지요.”
“크흠, 감사합니다.”
어디 헛소리 뱉어봐라, 바로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페탱의 항의식 인사조치. 그게 내가 맡은 배역이다.
뭐든 좋다. 큰 틀은 어차피 비슷하다. 꽉 조인 나사는 누구도 정비할 생각을 하지 않아 점점 풀어질 테고 종국에는 나사가 있었다는 기억만으로 모두 안정감에 젖을 거다.
그러니까.
“배상금은 이천 오백억 마르크여야 하오!”
“그건 현실성이 없지 않소. 아무리 높게 쳐줘도 5백억 마르크 이상은 저들의 징수금으로 감당이 불가능하오.”
“그럼 현물, 현물이 없다면 무엇이든 다 팔아야지. 특허권? 식민지? 아무튼 다 받아내야 하오!”
나를 제외한 51명의 대표 위원들과 그 외 전문가들.
“아, 민족으로 나누느냐, 역사적 영토로 나누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자결주의! 자결주의! 자결주의!”
“그냥 딱 둘로 갈라! 폴란드와 독일!”
“반갈주의! 반갈주의! 반갈주의!”
그리고 각국 협상가들이 자신들의 이득을 얹어서 떠들어대는 이야기는.
“아아악! 우리 대양 함대 못 먹었잖아! 전차라도 내놔!”
“네이노옴! 감히 우리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전차를 언급하느냐!”
“저것들 무기 다 빼앗았는데 그럼 우리가 다시 팔아도 되지 않을까요?”
내가 어쩔 수 없는 현실.
난 그저 정해진 역사가 흐르는 대로.
“이히히, 이제 샴페인은 상파뉴 지방에서 나는 것만 샴페인이야!”
이놈들이 최선이라고 내놓은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옳은 거다.
“응? 로잔 조약? 알바니아? 튀르크 분할? 달마티아? 아프리카 식민지 배분? 그게 뭔데? 새로운 생선 파이 이름이야?”
그게 맞다….
“이익! 5천만 파운드의 차관 약속, 그리고 배상금의 15%를 배분해주시오!”
“죄송합니다. 그때 제가 술을 마셔서 기억이 안 나는데… 5%와 고리의 차관 말씀이시죠?”
시발. 누구가 좀 막아봐. 딱 봐도 파멸적인 개판 그 자체인데 제발 어떻게든 역사가 뒤틀려서 바뀌라고. 아니면 이게 나아진 역사라고 내게 말해줘.
이 개같은 판 속에 던져서 홀로 속이 타들어가서 미칠 것 같은데.
“선조들이여! 알자스-로렌을 저희가 더 크게 되찾았나이다!”
“크윽, 태양신과 용왕의 힘이 되돌아왔다! 이제 우린 영원히 해가 지지 않을 것이야!”
“히잉, 다들 이상해. 왜 집 밖으로 나온 거지? 나 기억이 안 나. 우리의 적이… 독일이었나? 아, 이민은 여전히 받아요! 기술자, 자본가 환영!”
아, 아냐. 틀려먹었어. 마라톤도 2시간 남짓이면 결과가 나오는데 무려 145번의 회의의 결과가 이거라면.
‘이 새끼들아, 이러고 무슨 평화를 바란다는 건데.’
진짜 세상이 미친 거다. 다들 대전쟁을 기점으로 차후의 결과라는 생각을 뇌에서 뽑은 게 확실하다.
충격과 공포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파리에서 만났다.
“다들 미쳤습니다. 이 새끼들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후우, 동의하네. 차라리 우리 군인들이 나서서 협상을 진행하고 싶을 정도야.”
“그래봐야 정치인들 나팔 역할밖에 더 되겠습니까. 여전히 존 프렌치 경이랑 의견이 안 맞으시다고…”
“개전부터 지금까지 그 인간과 나는 상성이 달라.”
이해는 된다. 언제나 초장기적인 미래까지 내다보는 포슈와 당장의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존 프렌치 경은 사사건건 대립할 수밖에 없을 거다.
“자네도 느꼈겠지만 이대로면 죽도 밥도 아니게 될 거야. 관리도 안 될 것을 관리하려 들질 않나 절대 풀어줘선 안 될 바를 풀어주려고 하고 있어.”
과연 우리가 독일군을 통제하에 둘 수 있는가? 차라리 라인강이 역류하는 게 빠를 거다. 이건 재정과 인력을 낭비하는 문제를 떠나 타국 군대를 상하관계로 두려는 발상 자체가 미친 거다. 아예 식민지처럼 시도할 거라면 힘이라도 좀 쎄던가.
그럼에도 국제 연맹 아래에 독일군을 두려는 무리수는 여전하다. 그럼 아예 말살시켜서 말려 죽이든가.
헌데 그럼 고질적인 문제가 터질 텐데.
‘아예 독일 국방을 국제 연맹에서 대리해줘야 할 수도 있지. 만약 국방에 문제가 생긴다? 바로 연맹 탓으로 돌리면서 재무장하면 그만. 명분으로 얼마나 좋아.’
독일과 폴란드의 문제도 그렇다. 동족상잔으로 최소 150만은 죽은 폴란드가 과연 독일을 곱게 놔둘까? 저거 그냥 뚝 떼어내서 가만히 놔두는 게 맞냐고.
러시아와 독일. 두 제국 사이에 섞여 있던 폴란드인들을 갑자기 독립시켜주면 ‘예, 결과적으로 독립했으니 과거는 다 잊었습니다.’ 하겠나.
제발, 누가 나서서 막아줬으면 좋겠다.
언론에 파이브 담배 덕에 독일을 이겼다고 주장하시는 분답게 포슈는 독한 향을 풍기며 연기를 연거푸 뿜어냈다.
그리고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질문.
“그래서 모헬 대령, 다음 전쟁은 언제인가?”
“…….”
여전히 앞만 바라본 채 뻐끔거리는 포슈 장군.
난 차마 답을 하지 못하고 던힐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