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2번의 휴가를 더 연장한 베르게르, 그가 군을 떠난 지 4개월이 지났다.
1월, 전시에 이전 어느 대통령보다 국민들에게 익숙했던 레몽 푸엥카레 대통령의 임기가 끝났고 2월. 클레망소가 조금 씁쓸하게 의장직을 내려놓았다.
한때 프랑스를 호령하던 전시 총리 대신 푸엥카레 내각의 전쟁부 장관으로 일하던 알렉산드르 밀랑이 총리직과 외무부 장관직을 겸직하며 신내각 구성에 들어갔다.
허나 평시에 걸맞은 총리가 들어왔다고 당장 프랑스 내부의 혼란이 끝나진 않았다.
종전은 곧 다시 한번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성장의 기대감이다.
어차피 아직 금본위도 아니고 국민들이 채권에도 익숙하겠다, 이 기대감에 추진력을 더하기 위해 밀랑 내각은 프랑스 운전대를 잡자마자 새로운 대출 상품을 하나 내놨다.
일명 회복 대출(Recovery Loan).
집권 2주도 안 되어 나온 이 상품은 5%의 금리로 나름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문제는 규모였다.
15,700,000,000 프랑.
정확히 157억 프랑이다.
이는 오직 정부 주체의 대출이었고 원래 없던 은행 규제를 집권하자마자 삭제시켜 버리다시피 하니 은행은 무제한적으로 돈을 빨아들이고, 대출을 남발했다.
시중에 돈을 푸는 것은 어느 정부나 하고자 하는 짓이지만 문제는 이 시대의 정부는 통제력도 없을뿐더러 정책의 여파를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저지르는 놈들이었다.
돈이 풀리니, 물가와 함께 온갖 것들의 가격이 미쳐 날뛸 조짐이 보이는데 밀랑은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돈을 가진 고용주들에게 밀랑의 선언은 이리 들렸다.
‘국민들은 더 이상 노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18년도 휴전을 기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다시 늘어난 파업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프랑스에게 적절한 조치는 아니었다.
대전쟁 5년간 프랑스인들이 누구보다 많은 피를 흘렸다면 지금은 그만큼 죽은 이들의 몫까지 땀을 흘려야 할 때였다.
지켜지기 어려운 법령과 정책들이 난발하기 시작한다. 하나하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적용해도 내각의 원동력을 깎아 먹을진대 2월 한 달 만에 내각은 30개가 넘는 혁신적인 상품을 국민들에게 인기를 받아먹으며 팔았다.
잘 팔렸다. 그것도 아주 잘 팔렸다. 다만 상품에 하자가 있다는 것을 본인들도 몰랐을 뿐이다.
이 모양 이 꼴의 프랑스를 보니 페탱은 수그러들었던 정계진출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것만 같았다.
“어허, 포기하시게. 자넨 의원들에게 인기도 없지 않나?”
“그럼 의장님이 하시지?”
“쯧, 예전처럼 상급자 대하듯 해주면 안 되겠나? 같은 원수여도 말이야.”
“계급으로도 같은 중장 아닙니까. 모헬 말로는 이게 설레게 하는 반존대라던데…”
두 원수의 길은 어찌 보면 같으면서도 달랐다.
페탱이야 워낙 대전쟁 내내 망나니처럼 칼을 휘둘렀기에 의원들의 지지를 얻긴 힘들었지만 포슈는 달랐다.
그는 최고전쟁위원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충분히 능력을 증명했고 만약 군부 인사들의 지지까지 더해졌다면 어쩌면 내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최소한 현 프랑스군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군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네.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라고 여긴 거 아닌가?”
“원수가 둘이나 남으면 쉽게 건들지는 못하겠지요.”
“원래 칼은 휘두르는 게 아니야. 날카로운 날만 보여주는 용도지.”
“거 참, 그걸 이번 전쟁 전에 모두가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비록 원수직은 종신이나 현역으로 직접 활동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그럼에도 지금 프랑스 육군은 축소될지언정 어느 정도 지켜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소한 저 미친짓을 서슴지 않는 밀랑 내각으로부터는 말이지.’
‘전쟁부 장관이었다는 놈이지만… 역시 못 믿어.’
믿을 놈이 없다 믿을 놈이. 때론 자신들도 선택의 기로에 서서 힘든데 다른 놈에게 편히 믿고 맡길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럼 언제까지 하십니까.”
“길어봐야 3~4년이지. 그 이상은 나라도 무리야. 자네야 믿기지 않게 정정하지만 난 아니네. 얼마 전에 의사들이 요양이라도 가라고 그러더군.”
“후유증?”
“겹쳤지. 아무튼, 이대로 계속 갈 것 같네. 얼굴마담으로 외부 활동 하다가 종종 정계에 한 번씩 선 그어주는 것. 그게 내게 주어진 마지막 업무가 아니겠나.”
“허허, 저 혼자 남은 놈들 데리고 육군 꾸리라고 들리는군요.”
“그게 맞아. 그럼 내가 이 나이 먹고 할 순 없지 않나?”
“저희 차이 얼마 안 납니다.”
어쩌면 서로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쌍두마차가 아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군을 쪼갤까 봐 저러는 것임을 페탱은 알았다.
그리고 이는 포슈가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신뢰임도 말이다.
‘언제는 누구도 믿지 않을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그가 이리 나온다면, 좋다. 그럼 자신도 마지막 과업으로 이 육군을 재건하고 떠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 가지 빠질 수 없는 이가 있다.
“충분히 쉬게 두었잖아. 그 친구는 언제 데려올 건가.”
“허! 누가 헛바람만 넣지 않았으면 이리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죠.”
“그러니까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어쭙잖게 나쁜 상관 짓은 그만 하라고.”
“그럼 어떻게 합니까? 그냥 두 눈 뜨고 집구석에 처박히겠다는 놈을 가만히 둡니까? 아니면, 뭐 제2의 조프르라도 되어 볼까요?”
“흐음, 어려운 질문이군.”
포슈 역시 고작 대령 한 놈 없어도 프랑스군 잘만 돌아갈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서로 마구잡이로 충돌하는 프랑스 내부를 보면 누군가는 확고한 방향성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것도 단순히 몇 년 내로 은퇴할 자신들이 아닌 아주 오랫동안 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인간이.
“내가 만약 자네였다면… 일단 다 엎어버릴 걸세. 어차피 자네가 야전 지휘하는 일은 더는 없을 테니 다음 놈들에게 넘겨야지. 그러니까 싹 바닥에 엎어버리고 그들에게 전권을 쥐여 줄 거야. 그럼 본인들 입맛에 맞게 치우지 않겠나?”
“…. 혹시 조프르의 사주를 받으셨습니까?”
“하하, 차라리 받고 싶군. 누가 제발 나한테 명령이라도 내려줬으면 좋겠어.”
포슈의 조언은 언뜻 간단하게 보이지만 페탱은 쉽게 그럴 수 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업을 엎으라니. 도저히 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3월 1일. 모헬이 야전을 떠난 지도 5개월을 바라보는 시기. 어김없이 달에 한 번 유일하게 오는 휴가 연장 서류가 도착했다.
‘후우…. 이번에도 연장을 해줘야 하나.’
모르겠다. 정말 이대로 계속 쉬게 둘 순 없는데. 허나 5개월 전, 유럽 전역에 ‘집행’을 하고 다닌 모헬의 정신은 정상인의 것이 아니었다.
당장 승인하진 못하고 집무실 책상 한쪽으로 치워둔 뒤 페탱은 오늘도 육군을 어찌할지 궁리에 빠졌다.
3월 3일. 연금 장관의 보직이 변경되었다.
한때 펜싱 선수이자 청년 하원 의원이었고 대전쟁 베르됭 전투에 참전해 다리를 다친 그는 유망한 인사였기에 내각에서 각별히 아끼는 인사였다.
여기까지는 딱히 페탱의 관심사가 아니었으나 문제는 그다음 보직이었다.
“연금 장관 이전에는 전쟁 기간 내내 해외 장관(Minister of Overseas France)이었던 이 어린놈을 내가 상대해야 한다고?”
페탱으로서는 내각에서 가장 많이 얼굴을 마주하게 될 자리.
그의 이름은 앙드레 마지노(André Maginot), 새로운 전쟁부 장관이었다.
***
솔직히 이번에는 안 될 줄 알았다. 여름 더위가 꺾이고 나서부터 쉬었으니 참 오래도 쉬었지.
“정말 괜찮아? 돌아가도 좋은 거 맞지?”
“어, 이젠 괜찮다고. 여기서 더 쉬었다간 원수님이 나 납치해갈지도 몰라.”
“당신 전쟁 영웅인데 그게 가능해?”
“그 양반도 전쟁 영웅이라서 가능해.”
길어봐야 두 달이라 생각했던 내 휴가는 예상보다 길었다. 여전히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렇다고 유종의 미는 거두고 와야지.
‘포슈 원수님 말대로 딱 내 빈자리를 메꾸고 나오는 거야.’
그간 신경 못 쓰고 있었는데 나름 나 파리에서도 손꼽히는 자본가더라고. 대충 코카콜라 뭐 이런 주식 가지고 장투하면서 살면 되지 않겠나.
이리 길게 쉬어본 적은 내 인생 처음이기에 이대로 돌아가도 적응이 될지는 모르겠다.
예전에는 아라스로 향했다면 현재 내가 향하는 곳은 과거 최강 북군이 가장 많이 배치된 곳.
바로 옛… 은 아니고 현재도 애매하게 독일 땅인 라인란트다.
룩셈부르크 바로 아래의 라인란트 지역. 과거 페탱 공세 당시 점령하고자 했던 룩셈부르크와 딱 붙어 있으며 룩셈부르크보다 약 7.6배 정도 큰 거대한 땅덩이다.
독일 서부 주요 산업과 도시가 전부 라인란트에서 멀지 않은 위치인 이곳은, 현재 우리 연합군이 점령 중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우리 원수님은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시는 것 같다.
“벌써 철도까지 연결했네. 아주 제대로 뽑아 먹을 생각이야.”
“그럼, 이 지역을 어떻게 가만히 놔둡니까? 합법적으로 저희가 해먹어도 되는 지역인데.”
“…. 파비앵?”
“이거 얼굴도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얼마나 집에만 계셨으면 희다 못해 핏줄이 다 보입니까?”
“이 새끼가?”
내가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다고 하면 하극상 일어나려나. 어째 내가 알던 부사관 파비앵이 아닌 느낌이다.
“북부에 있던 애들이 다 이쪽으로 왔다고.”
“벨기에 쪽 국경보단 이쪽으로 더 많이 배치되는 게 당연하지요.”
“쩝… 나중에 아라스 연대 재건되면 소식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런 거 있지 않나. 내가 복무했던 부대 소식이 궁금한 그런 거. 그렇다고 직접 가보고 싶진 않지만.
“6사단 친구들 다 흩어져서 없습니다.”
“엥? 기껏 열심히 정예만 모아놨는데 그걸 왜 흩어?”
릴 전선 때부터 우리가 제일 먼저 보충병 걸러서 받고 그랬더니 어느새 6사단은 정예 그 자체라고 표현해도 되는 곳으로 변모했었다.
그럼 잘 만든 거 전통처럼 잘 유지하면 되지 왜?
기차에 내리니 이미 차가 대기하고 있다. 나와 파비앵은 자연스레 뒷자석에 타서 대화를 이어갔다.
“떠난 지 오래셔서 모르는데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게 언제적인데 당연히 부대도 바뀌었지요. 애들이 막 서명운동 비슷하게 해가지고 편지도 보냈는데 모르셨습니까?”
“…. 아무래도 우체국의 배달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야. 흔하잖아, 그런 거.”
“그러시겠죠.”
으쓱대는 태도가 어째 거슬리지만 일단은 참아준다. 이미 내가 떠날 사람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아주 막 대하는 것 같은데 모르는 소리. 이 친구가 말년 페탱의 모습을 못 봐서 저러는 거다.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아, 맞다. 지금 예산 군축이 아니어도 징집병 돌려보내면서 군축이 되고 있잖습니까?”
“그렇지?”
“헌데 우리 프랑스가 마냥 다 집에 보내줄 수 있는 상황은 또 아니지 않습니까?”
징집병 집 돌려보내 주기. 작년 연합국의 최대 과제가 아니었나 싶다.
“그게 많이 힘든 일이었나?”
“말도 마십시오. 반란과 폭동의 연속이었습니다. 프랑스 주둔 미군, 포크스톤 영국군 캠프, 릴의 캐나다군. 심지어 저희 프랑스군까지 병사들 폭동 안 겪은 곳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 작업이 아직도 안 끝났다는 점이죠. 게다가 우리 프랑스군은 전부 돌려보내지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쟁 전 우리 프랑스의 평시 전력은 약 60만. 최소한 그 이상의 숫자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정부와 군부 입장은 난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청년들만 남겨두자니… 전부 죽어버렸지.’
원래 복무하던 애들만으로는 60만은커녕 10만도 겨우 채울 거다.
끼이이익. 덜컹.
마차와 크게 다르지 않은 승차감은 도로 문제일까, 차량 문제일까. 내가 볼 땐 차도, 깔끔한 독일인들의 도로도 문제가 없다.
둘 다 아니라면 저 운전병이 문제겠지.
“그래서 윌리암. 넌 언제까지 거기서 엿듣고 있을 거냐.”
“저런, 티 났습니까?”
“차에서 쇠와 기름 냄새가 진동하더군.”
“내리십쇼. 기다리는 사람이 하나 더 있으니까요.”
창문 밖을 보니 검은색 전봇대 비스무리한 게 보인다.
내려 확인할 필요도 없다.
“에휴, 아주 납치라도 하겠어. 넌 또 뭐야.”
“뭐긴, 자네가 온다는 소식에 자발적으로 마중 나온 동기지.”
복귀하자마자 보는 조합이 자키 파비앵, 윌리암 페르, 샤를 드골의 조합이라.
뭔가 조금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