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내가 페탱에게 기대하는 역할. 페탱이 내게 기대하는 역할.
과연 이게 어찌 될지는 나중에 확인해보고 난 오랜 시간에 걸쳐 새로운 여정을 떠났다.
아시아의 남과 동. 그 어딘가에 위치한 잔장 말고 또 다른 곳에 발령받을 일이 있을까 싶지만 일단 지낼 곳이 그곳이라니 난 갔다.
내가 가는 잔장에는 지겹도록 함께했던 그놈의 연합국이 있다.
유럽에서는 아메리카의 숭고한 의무가 어쩌고 식민지가 어쩌고 하면서 우리와 자신들의 도덕성 갭을 드러내려고 발작하던 새끼들이 대놓고 식민지놀이 하는 필리핀이 바로 아래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감히 지구의 바선생이라고 불리워도 될 우리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식민지가 아시아에 범벅으로 퍼져있다.
조차지로 말할 것 같으면 홍콩을 필두로 한두 곳이 아니고 식민지로 따지면 두툼한 놈들이 아시아 대륙 안에 있다.
만약 10년 전, 그러니까 대전쟁 이전에 육군 장성급이 청나라로 향했다면 우리 바선생님들이 배를 발라당 뒤집고 알을 부들부들 떨면서 발작했을지 모른다.
‘아마 청나라를 제2의 인도로 만들 수 있을 줄 알았겠지. 그도 아니면 파워 게임이라 여기거나.’
현실성 없는 계획이지만, 언제나 우리 영국 바신사님들의 망상은 공산주의자보다 뛰어난 것 같으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1924년. 올해에 내가 몇 달 전부터 아시아로 향할 거라고 홍보를 해댔지만 아직까지 따로 연락 온 것은 없어 보인다.
안부 인사에 가까운 ‘혹시 밀려난 거 아니지?’라는 연락이 대전쟁 당시 지인들로부터 몇 번 오긴 했는데 어차피 자기들도 알 건 다 안다.
독일이란 나라가 존재하는 한, 나는 절대 밀려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무튼, 5년의 전쟁은 아시아의 판도조차 바꿔버렸다고 한다.
청나라는 망했고. 식민지는 더욱 활성화되었으나.
그 최대수혜자는 대전쟁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일본 제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들의 기세가 얼마나 강했으면 작년, 끝없이 갱신할 것 같던 영국과의 동맹도 끊어냈다고 들었다.
바다의 섬나라가, 영국을 쳐냈다는 말은 하나.
적어도 자기들 나와바리 앞에서는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의미다.
더는 갈라먹기도 싫고, 온갖 이권이니 최혜국대우니 다 해주기도 싫고 아무튼 판을 엎어버리고 싶다는 의지의 첫걸음이라고 본다.
그럼 이런 모든 구도가 과연 우리 프랑스, 그것도 어쩌다 날라온 나와 무슨 관계인가?
“없지. 내가 이곳에서 무슨 정치질 잘해서 뭐 하나 들고 본국으로 귀환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물론 한 국민으로 조국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할 의무가 있긴 한데… 굳이 내가 해야 하나? 아니, 정확히는 할 수 있는 게 있겠냐고.
어차피 페탱도 사고만 치지 말고 조용히 지내다가 적당히 시간 흐르면 복귀하라고 할 텐데 내가 막 군사를 일으켜서 싸울 일이 있겠나.
비록 분노와 우울증에 하루 담배 한 갑씩 태우는 나날들이 있었지만 긍정적인 부분을 부각해보자면 이건 휴가다.
편하지 않을 휴식, 바라지 않았던 휴가이긴 하다만 어쨌든 해외여행. 적당히 놀고, 먹고, 마시다가 돌아가면 된다.
진정 나의 업무는 바로 본토로 돌아가고 나서 시작될 거다.
오랜 여정을 거쳐서 나와 몇몇 이들은 군함을 타고 잔장에 도착했다.
부두에는 군복 입은 이들의 도열과 양복 입은 자들의 환영 인사가 보였다.
갑판에서 본 잔장은 확실히 해안에 위치한 지리답게 온갖 선박 발달된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딱 거기, 파리에서 느꼈던 ’현대‘의 감성은 찾아보기 힘든, 아주 난잡하고 더러운 항구 도시로밖에 안 보였다.
함선에서 내려 코트에 손을 넣은 채 걸어가니 내가 자신들 앞을 지나갈 때마다 군관들이 정확하게 몸을 돌리며 날 마주한다.
‘이런 거 준비하지 말라니까.’
약간 더 걸어가니 총독과 외교관 혹은 관리로 보이는 이들이 날 기다린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곳 모두가 준장님의 위명에 이루어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고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로-”
“환영 고맙네. 내가 피곤해서 그런데 안내인만 붙여줄 수 있나.”
어차피 몇 번 마주치고 끝날 이들. 저들이야 여전히 나 같은 인간이 여기 왜 왔을까로 머리가 복잡하겠지만 난 진심으로 관심이 없다.
그래도 지나갈 때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마디 붙여줬다.
“자네들의 환영에 진심으로 감사하를 표하네. 정말 고마울 따름이야.”
“가, 감사합니다!”
괜히 또 안절부절못하다가 본토에 연락해서 나한테까지 돌아오는 것보다 이 자리에서 칭찬 한마디로 안심시키는 게 더 낫다.
안내자를 따라 차를 타고 간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주택이었다.
나름 장군이라고 주위 경계를 하는 병력까지 다수 보인다만, 정작 주택은 르네상스의 향기만 겉에 입힌듯한 저택이었다.
넓지만, 그만큼 빈 곳이 더 드러나 보이는 그런 건물이다.
‘벌써부터 우리집이 그립네.’
그래도 1년밖에 안 지낼 숙소치고는 훌륭하다고 여기며 난 내부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침대가 있는 방에 온몸을 파묻었다. 포근한 베개에 얼굴을 박은 채 난 뒤에 서 있을 파비앵에게 물었다.
“파비앵, 오늘 일정이 더 있나?”
“오후 지휘권 이양식과 환영회가 있습-”
“취소.”
“…. 그러나 모헬 준장님의 건강상의 문제로 취소되었습니다. 저녁에는 총독부에서 만찬이 준비되어-”
“취소.”
“-있었지만 이 또한 건강상의 문제로 연기되었습니다.”
“끝?”
“오늘 일정은 더 없으십니다.”
그래도 눈치볼 사람 하나 없는 것은 괜찮은 것 같다. 벌써부터 나의 게으른 삶이 훤히 보인다.
“그래, 나 좀 쉬자. 앞으로도 일정 잡지 마.”
“사유는요?”
“알아서 둘러대. 높은 사람이면 아프리카에서 부상 입었다고 하든가.”
“앞으로 손님이 오실 텐데 전부 돌려보냅니까?”
“너가 볼 때 내 아래면 돌려보내.”
어차피 이 잔장에서 총독이나 해군 쪽 사람 한둘 제외하면 다 내 밑인데 뭘. 그쪽이야 안면만 트고 끝내야지.
그렇게 오늘부터 베르게르 모헬의 반백수 여정이 아시아에서 펼쳐질-
“모헬 준장님, 중요한 연락이 왔습니다.”
“내 아래면 그냥 무시하라고.”
“마침 맥아더 장군께서 필리핀에 계셨는데 준장님의 소식을 들으신 것 같습니다.”
“장군?”
“맥아더 ‘준장’님이십니다.”
그래도 시발 준장따리잖아. 어디 원수도 아니고 타국군이면 그냥 길거리 아저씨랑 뭐가 달라.
“홍콩 총독 레지날드 스텁스(Reginald Edward Stubbs) 씨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나 아프다고 해! 나 사실 총상이야!”
“일본 귀족회의 일원인 무쓰 무네미쓰라는 자가 스스로를 외교관이라고 소개하며 왔습니다. 허나 일본 제국 측 연락만 다섯 곳에서 따로 와서…”
“미친 새끼들.”
파비앵에게 미안하지만 그의 일과가 어느새 비서가 되어버렸다. 그래, 우리 맥아더 씨야 나랑 몇 분 만난 적이 있으니 그렇다 쳐.
근데 굳이 구라파의 피부 허연 놈을 왜 만나려는 건데? 내가 외교관이야? 정치인이야? 나랑 만나서 콩고물은커녕 좁쌀 하나 안 떨어지는 거 자기들이 더 잘 알면서 왜 이래.
“이번에도 전부 거절하십니까?”
“젠장, 이러다가 내 사망설까지 돌겠네.”
“거절한 게 이 정도입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온갖 사업가들의 투자 요청부터 들어본 적도 없는 단체의 대표들이 찾아옵니다.”
잔장에 와서 유일하게 좋은 점이 각양각색의 음식들이었는데 그거 먹으러 돌아다니는 것도 점점 쉽지 않아 보인다.
“만나. 일단 만나. 아무나 잡아.”
“그럼 임의로 제가 정하겠습니다.”
“그러든가. 대신 알지? 짧고, 가볍게. 그리고 꼭 중요한 놈만.”
무슨 성대한 파티나 이딴 거 하지 말고 적당히 차나 한잔 마시다 떠나든지 아니면 점심 식사나 한번 하는 걸로 끝내자는 거다.
내 소년 시절이 끝날 때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이후부터 평시-전시-평시-전시의 반복이었다. 그런 나한테 이 나이 먹고 사교의 바람이 불기라도 한 걸까.
아시아 전역 편지지 소모량이 소폭 상승한 듯했지만 난 여전히 잔장을 떠날 생각이 없다.
‘본인들이 직접 찾아오시든가요.’
총독은 고맙게도 내게 온갖 배려에 더해 편하고 안전하게 만날 수 있도록 내 전담 관리들까지 배치해줬다. 덕분에 파비앵은 비서직에서 겨우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사이, 나의 첫 만남이 잡혔다.
“에… 그러니까 고무라 긴이치 씨께서는 일본 제국 척무성 차관이시라고요?”
“그렇습니다. 프랑스로 치면 식민지 부서에 해당하겠습니다.”
“저기, 그런 곳에서 저를 왜?”
“직접 본국으로 초대하여 식민지와 전쟁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장군을 흠모하는 수많은 이들의 만남이….”
난 우리나라 식민지부 차관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너희는 뭘까.
‘혹시… 흥미롭게 만들어서 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략인가?’
너무 고도의 전술에 어디까지가 의도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일단 예의상 답은 했다.
“저 또한 일정이 된다면 꼭 방문해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자세한 일정을…”
“그 부분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긴 여정에 피곤하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대충 잘한다고 박수 쳐주면서 ‘와우, 너희가 소문으로만 들었던 니뽄? 쓰바라시!’를 외쳐주니 한껏 들뜬 긴이치 차관은 얼굴에 온갖 희망을 품은 채 돌아갔다.
그가 떠나고 나니 저절로 입에 담배가 간다.
“하아, 내가 군인인데 지금 비위까지 맞춰야 하냐. 누가 누구를 접대하는 거야.”
“누가 봐도 저들이 아닙니까?”
“파비앵, 틀렸어. 마음 같아선 상을 다 엎어버리고 싶었는데 참았잖아. 그럼 내가 비위를 맞춘 거지.”
“혹시 지구가 준장님을 중심을 돌고 있다고 착각하십니까?”
“짐이 곧 지구이니라.”
이 모헬 14세가 말씀하시길, 그냥 다 꺼지고 집에 갔으면 좋겠다 하였으나…
“총독, 이게 뭔지 설명이 가능하겠나.”
“활발하신 모헬 준장님의 활동이 본국을 감동시킨 모양입니다! 비단 잔장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에서 식견과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보고 집에 박혀 있지 말고 돌아다녀라?”
“준외교관에 가까운 권한입니다. 정말 이례적이지요.”
“아니, 식민지 군인들이 전부 반쯤 외교관인 건 알지. 근데 굳이 이런 걸 왜?”
“저희야 알지만 혹시 타국에서는 모르는 이들도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공식화를 해준 것 같습니다.”
“애미…”
하하, 우리 원수께서 내가 쉬는 꼴이 보기 싫었나? 굳이 저 ‘외교 사절’이라는 명칭을 내 이름 앞에 붙인 이유가 뭐겠나.
아니, 그전에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은?
“페탱 원수님이…. 정말 내게 많은 선물을 준비 중이신 게야… 분명 그래야 할 거야.”
보통 사람이라면 손에 용돈을 쥐여 주면서 ‘나가서 맛난 거 먹으면서 놀아!’라고 보내주지만 우리 페탱 원수님은 카운터에 앉혀놓고 ‘돈세는 놀이 할래?’라고 말씀하신다.
내 아주 잘 안다. 저런 직책을 준 이유가 무언가를 바라서가 아닌, 그냥 잔장에 박혀 있지 말라는 압박이란 것을.
“그렇다고 정해진 의무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타국과의 교류를 쉽게 할 수 있다는 정도?”
“알지, 파비앵. 외국과 내통하고 있다는 개소리를 초기부터 차단하기 위한 것임을. 허나 그게 걱정되셨으면 처음부터 그냥 외국인과 만나지 말라고 명령하셨으면 되는 것을.”
그래 좋다. 어차피 일할 것도 아니고 안면만 트고 돌아다니다가 끝날 거 아닌가.
이제 조국 이미지 따위 신경쓰지도 않을 거다. 선물? 초면부터 바리바리 들고 오던데 이젠 주는 대로 다 받아먹을 테다.
문제가 되면?
‘난 페탱 원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고.’
아, 꼽으면 외교라는 단어를 애초에 나한테 들이밀지 말았어야지. 난 군바리라서 시즌마다 나오는 떡값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파비앵, 다음 누구야?”
“누구를 만나시겠습니까?”
“두 손 가득한 인간으로 불러.”
“오, 알겠습니다.”
누구든 찾아와라. 어차피 얼마를 받아처먹든 1년 뒤면 난 떠날 거니까.
파비앵은 내 지시대로 아주 적합한 만남을 주선해줬다.
“안녕하십니까. 전에 파리 회의에서 뵈었는데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이온지 킨모지입니다.”
“어…그 일본 대표단장이시던 후작 아니십니까.”
“기억해주시니 영광입니다.”
느긋한 목소리와 연륜이 묻어난 태도가 매우 정중하지만 그래서 더 불안하다. 이 인간 말고도 일본 쪽만 세 곳을 더 만나야 하니까.
“그,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육군과 친하십니까?”
“흐음, 육군과 연이 있으나 아마 준장님께서 말씀하시는 그쪽 사람은 아닐 겁니다.”
“그럼 해군?”
“허허, 거기도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전 둘 다 아닌 쪽이라고 해두지요.”
“아하… 전에 오신 분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어느 국가가 안 그렇겠습니까만 그 친구가 저와는 아무래도 세대나 생각의 차이가 조금 있습니다.”
왜지. 정말 이게 뭐지.
왜 너희한테서 익숙한 양파 스프 냄새가 나는 것 같지.
“흠흠, 아무튼 저희와 함께 일본 제국으로 한번 오시는 게-”
원래 시대가 그런 건가. 일본 제국이 아니라 사실 이 시대에는 아직 일본 연방이었던 걸까.
나라 꼴이 개판이라고 욕해주고 싶지만 프랑스 공화국 상황이 나를 강제로 킨모지 후작의 말에 공감하게 만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