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기간을 알 수 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작년에 전쟁을 치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순식간에 친밀해져갔다.
모든 것을 독일 탓으로 두고 극적인 합의에 이른 두 나라는 함께 발칸 확장이라는 목적을 아래에 뭉칠 수 있었다.
이탈리아 4주.
이 키워드 하나만으로 난 압도적 찬성을 받으며 개헌에 성공했다.
역대 모두가 그러진 않았지만 평균 6~7년 정도 지나면 사고 친 다음 자진 사임하거나 적당히 임기 채우고 퇴임하는 것에 비하면, 난 대통령직을 3선까지 출마할 수 있게 바꾸었다.
‘앞으로 두 번 더 하고 나면 내 나이가 은퇴할 때쯤 되겠지.’
솔직히 임기를 다 채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제와서 권력을 쪼개느니 내려놓느니 했다간 혼란만 가중될 것을 알기에 난 겸허히 주어진 운명에 순응했다.
“아빠, 학교에서 친구들이 나보고 공주님이래.”
“공주님 맞지!”
“그럼 아빠보고 왕이라고 말하는 거잖아!”
“…….”
그래, 인정한다. 어쩌다 보니. 아니, 어느 정도 계획되고 예견된 미래이긴 했다만. 난 본디 민주 국가 대통령 이상의 권력을 쥐고 있다.
전쟁으로 떠오른 군부 출신 대통령. 이 나라에서 그런 전적을 가진 인간은 오직 보나파르트뿐이다.
흔히 말해 왕당파. 그러니까 지금은 보나파르트주의자들을 포함한 왕정복고주의자들까지 이미 내게 대제 이상의 평가를 붙이고 있다.
총통, 두체, 서기장, 대통령. 그 명칭만 다를 뿐 공화국이나 왕정이나 이 시대에는 크게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유일하게 천주교의 영향력이 크게 남아있는 프랑스에서 천주교인들에게 난 투표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이었고 자본가들을 포함한 보수주의자들에게 난 국력과 경제를 모두 챙긴 대통령이었다.
보통 군부 정권과 경제 지표는 역방향으로 그래프를 그리기 마련이다만…. 프랑스 내각은 소련이 아니다.
군과 정권의 분리는 확실하게 되고 있단 말씀.
‘몇몇 야망 넘치는 후배들 길을 내가 막은 것 같긴 하다만 내 알 바는 아니지.’
일부 극단적 자유주의자들과 좌파 세력은 날 그리 좋아하지 않을지언정 날 비판할 순 없다.
절대 권력.
이탈리아전 이후 이 나라의 권력이 온전히 내 손에 들어왔음을 다시 한번 체감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필요할까. 과연 나라는 인간한테 이 나라가 온전히 맡겨져도 괜찮은 것인가 싶은 생각이 종종 들긴 하는데…. 그때마다 과거 대전쟁 이후 프랑스 정계 꼬라지가 떠오른다.
‘어휴, 그놈들한테 돌아가느니 내가 쥐고 있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1939년. 올해로 딱 대전쟁이 끝나고 20년이 흘렀다.
“아니 포슈 원수님은 나보고 20년 뒤 전쟁 일어난다매? 근데 올해 아무 일도 안 일어나게 생겼는데?”
이걸 죽은 양반 멱살 잡고 따질 수도 없고. 분명 그땐 담배 한 대 딱 물면서 나보고 ‘그래서 다음 전쟁은 언제인가?’ 이랬는데 어라?
‘다음 전쟁이 안 일어나게 생겼네?’
독일이… 올해 내로 프랑스를 침공한다고? 되려 우리가 쳐들어갈까 봐 괴상한 폰지 채권 발행하며 유사 마지노선 짓고 있던데?
“흐음….”
다음 일어날 일은. 혹은 다음 전장은 어디인가.
“모르겠군.”
그래서 당장 발칸에서 소련과의 일기토가 예정되어 있는가?
루마니아 농민당이 선거에서 쉽게 이길 것으로 보이니 예상보다 소련의 발칸 확장은 쉽지 않을 거다. 아직은 시간이 있단 말씀.
폴란드가 위험한가?
위험할 운명이긴 한데 솔직히 당장 무언가 손쓸 도리는 없다. 어쨌든 독일은 아직 ‘가상’ 적국에 불과하니까.
대영제국이 또 개짓거리를 할 조짐이 보이는가?
아, 그거야 언제나 그랬지. 무슨 위기감이라도 느꼈는지 식민지 잡도리가 살벌하더라고. 요즘 유행은 그거 아닌데 말이지. 지중해 국가들 근처에도 기웃거리는 꼴이 조만간 사고라도 칠 것 같다.
예전에는 뻔히 보이는 결말과 손쓸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꼈다면.
지금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답답함을 느낀다.
“아, 분명 뭔가 있는데.”
“각하, 플랑댕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어.”
플랑댕 외무장관은 내각에 몇 안 되는 진보주의자로 여성참정권을 주장한 사람이자 예산에 특히 빡빡했고 육군부 산하 항공부장으로 일한 전적이 있다.
군부 대통령과 보수 내각에 잘 어울리는 살짝 톡 튀는 감초 같은 인간이랄까.
“무슨 일인가.”
“일본 제국에서 특이한 제한을 해왔습니다. 저희 프랑스보고 석유 수출을 해달라는 제안입니다.”’
“석유 수출?”
기름, 기름이라. 중일 전쟁이 한 창인 와중 기름 수출이라니.
세계 기름의 절반은 미국에서 나온다. 그다음이 러시아. 최근 영국 식민지에서 유전이 꽤 많이 발견되어 그쪽도 많다고 들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안타깝게도 사우디-쿠웨이트 같은 대형 유전은 없다.
‘식민지나 동맹국에서 개발 중인 곳은 많은데…. 아직은 딱히?’
그래도 꼴에 맺어온 동맹은 많아서 석유 끌어모으고자 하면 얼마든지 모을 수 있긴 하지만 그것도 하루아침에 일본 제국의 필요 분을 전부 충당해줄 정도는 아닐 거다.
“정확히 상황이 어떤가?”
“미합중국에서 고철을 시작으로 수출 중단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특히나 석유 수출이 곧 막힐 것으로 보이는데 일본 제국은 본디 미합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국가입니다. 타격이 클 것이란 이야기지요.”
“그래서 날 찾아왔군.”
프랑스와 일본의 관계. 내 개인적인 추억 빼면 관계랄 것도 없다.
우리가 보는 일본은 돈 좀 있는 옐로 몽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그쪽은 우릴 그나마 말 통하는 귀축영미로 보겠지.
“루마니아에 유전이 있긴 합니다만, 아직 저희 쪽으로 완전히 돌아선 곳이 아닙니다.”
“지금 건들었다간 벌집이야.”
이란-이라크 그쪽도 영국 영향권이고. 남미는 우린 손도 못 뻗는 곳이다.
‘정말 기름 나올 곳이 없구먼.’
역시 미합중국 이 방장 사기맵 새끼들. 석유 생산국 2위부터 10위까지 합쳐도 미합중국보다 적다는 게 말이 되나.
“우리도 수입국인데 무슨 수출을 해달라는 건가.”
“아무래도 저희가 그들의 몫을 확보해주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에라이. 도박하기 전 보험인가.”
미국하고 틀어지면 좆 되는 건 확실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우리 프랑스를 보험으로 들겠다고? 그게 무슨 나치가 삼권분립하는 소리야.
“대가는 뭐. 인도차이나라도 놔둬준다 그러던가?”
“그런 노골적인 말은 없었습니다만, 아마 협상만 하면 아시아 시장 전체가 유리하게 변할 겁니다. 허나 약속을 지키는 것 이전에 일본 제국의 끝 자체가 미지수입니다. 내각은 각하의 뜻을 따라도 의회에서는 반대하는 이들이 꽤 많을 테니까요.”
“흐음, 나도 당기는 제안은 아니군.”
소련과 척을 졌는데 미합중국하고도 척을 져도 되는가? 솔직히 저 집구석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놈들과 척져서 당장 큰일 나는 건 없지만 좋을 건 없다.
반대로 일본 제국? 난 독일과 손을 안 잡은 것만으로도 이미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그래도 열강 모두가 사이좋게 나눠먹는 중화를 홀로 독식하려 하다니. 너무 과욕이잖아.
“아, 생각해보니 기름 나올 곳이 한 곳 있네. 심지어 위치도 완벽하지.”
“어디 말씀이십니까?”
“네덜란드 식민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는 중립국이지 않습니까.”
“동시에 독일의 위협을 받은 적 있는 친프랑스 국가이지.”
심지어 프랑스와 운명을 함께하는 벨기에와 국경을 맞닿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세계 5위 원유 생산지 인도네시아. 일본과 거리도 그리 멀지 않으며 공급만 해주면 일본 제국이 진짜 미친 전쟁 지속 능력을 얻게 될 곳.
‘그림이 그려질 거 같은데….’
어차피 누구 눈치도 안 보는 중립국 네덜란드이니 일본에 파는 것도 거리낌 없지 않을까.
“설마…. 파실 생각입니까?”
“미쳤다고 그러겠나. 아무리 우리 프랑스의 기세가 좋다 한들 소련, 영국, 미국을 다 적으로 돌리면 힘들어지네.”
“그래도 혹시 각하라면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게 핵심이야.”
지금 베르게르 모헬은 반공 투사다. 그리고 반공 투사는, 공산 박멸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우린 중매쟁이가 되는 거네. 주식 대리 매수 같은 느낌이지. 실제로 사게 두진 않겠지만 말이야.”
“일본 제국에게 원유 공급을 가지고 미합중국과 협상하실 생각이십니까.”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본래 반공은 미합중국의 운명인데 내가 그 일 대신해주고 있잖아. 심지어 나치도 내가 대신 싸우고 있고. 이게 좀 억울해?
“자네가 가서 협상 좀 해보게. 인도네시아 원유를 우리가 사보자고. 우리 친일 여부는 그 이후에 정해도 안 늦네.”
“…. 알겠습니다.”
부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신대륙 놈들이 알아듣길 바라며 난 플랑댕을 네덜란드로 보냈다.
***
한 개인이 대단해 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래 봤자 일개 인간에 불과한데-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흔히 바닥에 깔고 가는 상식과도 같은 생각이다.
왕이라고 높은 자리에 있는 놈이 사실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은 제정에서 민주정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반대로 한 국가가 민주정에서 제정으로 회귀하려 한다면.
“그 자식이 더럽게 능력은 좋다는 의미지.”
산업 혁명 이래, 끊임없는 식민지 정복으로 제국이 된 영국 왕실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면 프랑스의 새로운 왕조의 기조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정복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대전쟁 이래 프랑스는 어떻게 성장하였는가?
“전쟁. 결국 저 나라는 전쟁으로 성장한 나라입니다.”
미합중국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인적 자원과 비옥한 대륙의 조합으로 성장했다면 프랑스는 아주 간단하게, 전쟁으로 성장했다.
“정말 우스운 점은, 프랑스는 수십 년간 반복지속 된 국가방향으로 전 세계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지요.”
“장군, 도대체 무엇을 설득했단 말인가?”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 프랑스는 그 선 앞에서 칼을 들고 지난 20년을 서 있었습니다. 과연 이탈리아가 한 달만에 프랑스의 개가 된 지금 그 선을 시험할 유럽 국가가 있겠습니까?”
현 미군 장성들 중 유럽 대륙에서 참전하지 않은 자들은 드물다. 그런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다시피 박혀있는 인간, 바로 베르게르 모헬.
‘지금에서야 위대한 대통령 소리 듣지, 그때만 해도 그냥 미친 새끼였지.’
같은 동맹들도 피할 만큼 모헬이 이끄는 북부군의 방식은 잔인함 그 이상을 보여줬다.
적이 한 명이라도 민가에 숨어 있다면 민가를 통째로 날려버리고,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해 일부러 추적하는 와중에도 멀리서 처형의 총성을 낸다.
“오를레앙 체제도 충분히 포용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이제는 더한 체제가 나타날 겁니다. 그리고 그 체제는 유럽 대륙을 전부 집어삼키겠지요.”
프랑스는 패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패권이 겉으로 보기엔 내정 간섭 같은 일이 없기에 부드러워 보일 뿐, 맥아더는 그 속내를 아주 잘 알았다.
자신과 함께 잔에 위스키를 채워 마시던 모헬은 사실 아주 단순하고 무서운 자다.
정상인 척. 전쟁 따위 좋아하지 않는 척. 영토 확장에 관심 없는 척. 현 프랑스이 만족하는 척할지 모르지만.
‘어디 독일이 라인란트 한 번 더 점령해봐라. 유대인들이 들어가는 수용소에 게르만인이 들어가게 되겠지.’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아는 독일이기에 주데테란트를 포기 한 거다.
“그래서 장군이 생각대로라면 프랑스는 결국 아시아에 개입하게 될 거다?”
“인도차이나 또한 일본 제국의 목표 중 하나 아닙니까. 심지어 해군까지 키우기 시작한 프랑스, 이들만 아시아에 나타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 거치고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던데….”
“아직은 그 위협을 체감하지 못해서겠지요.”
은퇴한 지금도 더글러스는 예전 베르게르와 나눴던 대화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필리핀? 아아, 그 예비 일본령?’
‘이 개색-’
뭐가 되었든 그는 일본의 팽창이 어디까지 갈지 오래전부터 눈치챈 사람이니 미합중국과 손을 잡을 여지가 크다.
맥아더는 확신이 있었다. 인도차이나에 일본군이 한 발자국이라도 내딛는 순간 프랑스는 궐기할 것이다.
한참 은퇴하고 자문 활동만 하는 맥아더와 대화하던 루스벨트에게 급히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상황을 인지한 듯 고개를 끄덕이던 루스벨트는 다시 맥아더를 바라봤다.
“장군.”
“예.”
“네덜란드 대사 쪽에서 들어온 소식인데 프랑스가 인도네시아산 석유를 모을 예정이라는군.”
“…?”
“딱 우리가 일본 제국에 석유 수출을 제한한 지 1달도 안 되어서 말이지.”
인도네시아산 석유. 프랑스…. 일본?
“아?”
“만약 저게 일본 제국 손에 들어간다면 아주 볼만할 것 같은데…. 어찌 그래서. 프랑스가 아시아에 우리 미합중국과 공조 가능성이 뭐 어쨌다고?”
한층 살벌해진 대통령의 말투에 맥아더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자네 모헬 대통령과 친분도 꽤 두터운 것 같던데.”
“…….”
다음 날.
맥아더는 프랑스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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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전역 따윈 없다-18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