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여전히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오트클로크의 모습에 파비앵은 어깨에 손을 올려 힘을 꽉 주었다.
“아아악! 아픕니다!”
“정신 차려라. 오늘 본 건 어디 떠벌리지 말고.”
“안 합니다.”
“그럼 왜 이렇게 울상이야.”
조수석 의자에 다리만 차 밖으로 내놓은 채 힘 없이 앉아 있던 오트클로크는 마치 산타의 진실에 관해 알아버린 아이처럼 허망해 보였다.
“그냥, 아까의 모헬 원수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해서 그렇습니다.”
“야전 뛰다 보면 자주 보지. 자기 동료가 죽어서 눈이 돌아간 놈. 전쟁 범죄를 목도하고 똑같이 되갚아 주겠다는 놈.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야.”
“예, 그렇긴 한데…. 제가 생각한 베르게르 모헬 원수님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프랑스의 영웅의 추악함과 더러운 면모를 봐 버린 느낌. 알고 싶지 않던 진실에 실망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지금 오트클로크는 배신감에 가까울 만큼 실망한 상태였다. 수백 km 전선을 통솔하던 위대한 원수가, 두 번의 세계 대전에 놓인 프랑스에게 끝없는 믿음을 주던 원수가.
저리 처절하게 무너지는 광경은 충격임과 동시에 실망스럽다.
오트클로크에게 등을 돌린 채 운전석에 앉은 파비앵도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러게 말이다. 분명 내가 알던 양반은 안 저랬는데….”
“원래 어떠셨습니까?”
“어땠냐고? 예전의 원수님이라…. 으음, 딱 대령 기준. 대령 이전까지는 참 사람이 불평불만이 많았어. 어디 훌쩍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당장이라도 미국 이민이라도 갈 것 같은 느낌이었지.”
“그거 그냥 전역하고 싶은 거 아닙니까?”
“어, 전역 노래를 매일같이 불러댔지.”
부사관 시절. 처음 부임하던 초급 장교를 중사 때부터 봐 온 파비앵은 아까 두 원수님의 대화를 떠올리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모헬 원수님이 원하는 게 있긴 했던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언제나 가득 차 있었지만 정작 목적 자체는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병사들이랑 어울리는 거 좋아하고. 사람이 정이 많아서 쉽게 흔들리고. 거 참 말하고 보니 원수감은 아니네.”
“근데 어떻게 원수가 되었답니까.”
“자네도 잘 알잖아. 저 양반이 전쟁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해. 준비도, 지휘도, 전후처리도.”
정말 그거 하나였다. 전쟁. 그걸 한 인간의 능력이라기엔 지나치게 잘했다.
“아까 대화를 들어 보니 이전 두 원수님께서 후계자로 모헬 원수님을 지정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랬지. 사실 베르게르 모헬 외엔 대안도 없었으니까.”
프랑스 공화국을 무너트리지 않고 정권을 잡아 독일을 무찌르고 패권을 완성하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친 짓이다 싶지만 어쨌든 모헬 원수님은 그걸 해냈다.
‘그럼 다 끝났으니 이제 편할 일만 남아야 하는데….’
되려 전쟁의 승패가 결정된 지금에서야 아득바득 발버둥 치는 모습은 파비앵의 마음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한평생 전쟁만 해온 양반이 새로운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해결책으로 폭력을 제시하는 광경은 어찌 보면 이상하지 않은 것 같다.
그게 감정과 경험에서 우러나왔다면 더더욱.
“내가 볼 때 죽은 사람들은 문제가 아니야. 나도 개인적으로 골수 나치판이었던 베를린 시민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거든.”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일단 분열.”
만약에. 정말 만약에. 이제 와서 페탱 원수님이 대체제를 찾으려 한다면.
그러니까 모헬 원수님과 페탱 원수님이 완전히 갈라지게 된다면.
‘그 결과를 떠나 서로 내상만 엄청나게 입을 텐데….’
개인의 상처를 떠나 대육군이란 거대 단일 집단이 둘로 쪼개질 수도 있다.
아주 높은 확률로 모헬 원수님이 이기겠으나 중요한 건 프랑스의 분열 씨앗이 심어진다는 거다.
“그리고 아까 봤듯, 앞으로의 방향성.”
사실 이게 파비앵에게 가장 두려운 부분이었다.
과거 일개 대령 시절 베르게르 모헬이 틀어져 봐야 윗분들 손바닥 안이었지만….
‘아까 보니 페탱 원수님도 막기 쉽지 않아.’
당장 내일이라도 베를린을 봉쇄한 채 민간 군부 가리지 않고 친나치 척결에 들어간다면.
과연 누가 위대한 원수의 지엄하신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을까.
장담컨대 그 어떤 장군도 거부감을 쉬이 표현하지 못하리라.
파비앵 본인도 고작 원수의 총탄 몇 발 막는데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빅터도 눈을 감은 채 우두커니 서 있어야만 했고 이제야 도착해 상황을 파악한 다를랑, 드골도 감히 모헬 원수님을 찾아가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한다.
“하아….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군.”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온 페탱 원수님. 코트에 손을 넣은 채 청사 건물에 기대어 조용히 혼자만의 생각이 잠겨 계신다.
오늘따라 그의 어깨가 작아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왜인지 씁쓸함이 입안에 맴도는 밤이었다.
***
“내가 이래서 독재를 싫어한다니까.”
후계자의 소식에 분노한 독재자가 베를린에서 미쳐 날뛰었단 소문은 다음 날이 밝기 전 워싱턴에 도달했다.
“우리나라 봐 봐. 에이브러햄 링컨 뒤통수에 탄이 박혀도. 매킨리 전 대통령이 무정부주의의 탄에 맞고 죽어도 나라는 잘만 돌아갔다고.”
국가원수의 죽음이 전미를 떠들썩하게 할지언정 잘만 다음 투표는 잘만 진행되었고 국가는 여태껏 정상적으로 기능해 오지 않았나.
반면 저 프랑스는. 기어코 독재의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한 인간에게 의존적이었던 결과를 동맹들에게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거다.
“그래서 이 시간에 메릴랜드로는 왜 가십니까?”
“….애 데리러.”
가스파르 리 모헬이 누워서 분노했다면 어서 달랠 사람을 보내야 하지 않겠나.
‘이 미친 인간이 진짜로 베를린을 봉쇄했어.’
연합군 총사령관 베이강 원수가 금방 풀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독일이 느낀 공포는 진짜였다.
기존 연합군이 독일 군사정부와 쌓아온 모든 신뢰를 쓰레기통에 처박는 행위나 다름없는 짓.
다행히 그 뒤로는 조용하지만 언제 다시 가스파르가 악화되어 모헬이 날뛸지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어라, 아저씨 여기서 뭐 하세요?”
마셜은 직접 차를 몰고 엘리나를 픽업하러 메를랜드 대학으로 왔다. 이 나라의 참모총장이, 고작 20살 먹은 소녀를 데리러 말이다.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닿는 몇 안 되는 D.C 근처의 대학.
그곳에 특례 입학한 엘리나는 제 애비가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해맑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드 차량 창문만 내린 마셜은 창문에 팔을 걸친 채 엘리나에게 대화를 걸었다.
“애야, 짐 챙겨라. 너희 아버지가 찾으신다.”
“아빠가 저보고 오라고 했다고요? 그런 말 없었는데.”
“없었는데, 필요해 보이더라.”
“에이, 그럴 리 없어요.”
고개를 저으며 떠나길 거부하는 소녀의 대답에 마셜은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도, 긴 배경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그런 줄 알어.”
“싫어요. 아직 방학 아닌데요.”
“애야, 어른들의 사정이란 게 있어.”
“전 어른 아닌데요.”
“스무 살이잖니.”
“저희 아빠가 학생은 어른 아니라고 했는데요.”
“…….”
이래서 엘리나 모헬을 만나기 싫다. 제 아빠처럼 말은 더럽게 안 통하는데 단호하다 못해 천진난만한 저 대답들이 숨을 턱 막히게 만든다.
‘내가 손녀가 있으면 딱 너 나이다.’
세대 차이를 넘어서 정신의 벽을 느껴버린 마셜은 자신의 명령이 전혀 먹히지 않는 이 소녀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순간 말이 끊겼다.
애써 생각해 낸 다음 문장의 시작이 ‘강제 국외 추방’이었지만 독재자의 딸이 그딴 말에 겁먹을 것 같지도 않았다.
“….후우. 너희 아버지가 말이다. 많이 아파. 그래서 아버지 친구들이 너 좀 불러달래.”
“아저씨 거짓말 좀 하지 마요. 살면서 우리 아빠 감기 한 번 걸린 걸 못 봤는데요.”
“아니 몸 말고. 정신이.”
모헬 원수의 성격상 곱게 자란 딸아이에게 본인 이야기를 했을 것 같지 않지만 마셜은 그냥 꺼내기로 했다.
“아무튼, 내일 아침 비행기로 갈 준비를 하렴.”
“….나 이제 친구들이랑 친해졌는데.”
토라진 채 엘리나가 울상을 짓지만 마셜은 되레 창문을 올려 버렸다.
“아저씨는 그런 거 안 먹힌다.”
“에라이.”
“뭐?”
“아니요. 안녕히 가세요.”
다시 창문을 내리려던 마셜을 무시한 채 제 갈 길 걸어가는 엘리나.
“…….”
진짜 저게 악귀 모헬의 딸이 맞단 말인가. 로맨스와 불륜의 나라 프랑스라면 혹시 친자식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엘리나의 생김새는 제 아비를 너무 닮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혼자 당당히 캠퍼스를 걸어가는 엘리나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던 마셜은 진짜 여대생과는 안 맞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
베를린이 시끌벅적한 것과는 별개로, 전쟁은 계속되어야만 했다.
더 징집할 게 남아 있나 싶었던 리투아니군은 기어코 새로운 집단군을 조직해 왔고 벨라루스 이상으로는 절대 밀리기 않기 위해 소련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발트해의 주도권이 연합군에 있으니 상륙 가능한 모든 소련 측 항구가 비상에 걸렸으며 이는 흑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양측의 숨 고르기가 길어지면 집 생각과 함께 자연스레 ‘휴전’이란 희망이 떠오르기 마련.
피가 끝없이 흐르던 41년 전반과 달리 후반기는 이미 결정 난 전쟁의 승패와 함께 모두의 마음속에 종전의 희망 불을 지피는 시기였다.
물론 모두가 그리 희망에 가득 차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었다.
일단 누구보다 행복과 불안 사이 그 어딘가에서 헤엄치는 국가가 바로 인도차이나 진출에 성공한 일본 제국이었다.
“…너무 쉬운데?”
“딱히 막을 생각이 없어. 그냥 걸어가서 깃발만 꽂으면 끝이라니까?”
그나마 일어나는 교전은 주로 현지인들과의 마찰에서 비롯된 것이지 절대 정규군과의 대규모 교전이 아니다.
본토보다 5.5배나 거대한 크기의 땅덩어리.
분명 매일매일이 축제이고 말도 안 되는 승전보의 연속이긴 한데….
“…기어코 프랑스가 아시아 전역에 진심으로 나오기 시작했군.”
“천만 동맹을 이끌고 올 게야. 이리 순순히 내줬다면 그만큼 돌아올 자신이 있는 거지.”
현실적으로 무찔러 이겼다기보다는 적이 내줬다는 표현이 맞다. 즉, 언제라도 다시 돌아오면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말씀.
물론 이건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소수의 객관적인 시선이었고.
“프, 프랑스가 겁먹고 꼬리를 말며 도망쳤다!”
“대육군 위에 대황군이 있다!”
프랑스의 진심을 느껴본 적 없는 일본은 ‘에이 설마 미쳤다고 천만 동맹군을 이끌고 아시아로 올까?’라는 극단적으로 긍정적인 미래를 놓을 수 없었다.
다음으로는 유럽에 붙어 있어 소식통이 조금 더 활발한 소련이었다.
폴란드-우크라이나-루마니아까지 동유럽에 선을 그어 놓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한 전쟁이 폴란드 루마니아는 고사하고 우크라이나까지 빼앗기게 되니 누구보다 발등에 불 떨어진 게 소련의 입장이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스탈린의 생각은 아주 확고했다.
소련이 파리를 먹을 수 없는 것처럼.
프랑스도 모스크바를 점령할 수 없다.
그러니 이 전쟁의 끝은 협상일 수밖에 없고, 그 사이 모든 과정은 결국 마지막에 있을 협상장에서의 고지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
수백, 수천만이 마지막 테이블에 앉아 꺼낼 몇 마디를 위해 목숨 거는 상황이란 거다.
그러니 절대 밀려서도, 패배를 인정해서도 안 된다.
어차피 적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스크바에 못 오니까.
‘….못 오나?’
분명 그렇게 생각해 오긴 했는데…. 요즘 따라 분위기가 약간 이상해진 것 같다.
“독일국방군에서 내부적으로 친나치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이런 무리한 짓을 한다는 게 조금 이상합니다.”
“다양한 첩보가 지금 적의 진격이 멈춘 것이 무언가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뭐랄까, 진짜 나폴레옹 귀신이라도 씌어서 모스크바를 ‘이탈리아’해 버리려는 것 같은 분위기랄까.
“서기장 동지, 차라리 저희가 선제공격을 감행하는 것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집어치우게. 적이 동토에 대해 확실한 공포를 가지고 돌아가야만 지금과 같은 전쟁이 반복되지 않는 것이지 육전 자체로는 프랑스가 피할 리가 없어.”
대규모 병력 이동이 포착되고.
발트해로 적 해군이 조금씩 집결하는 게 보인다.
분명 집단군급을 넘어선 새로운 전역을 열려고 준비하는 게 확실하며 그 중심에는 있을 한 인간.
‘베르게르 모헬, 뭐냐. 도대체 네놈이 지금 하려는 것이.’
프랑스 공화국이. 저 전쟁귀가 있다.
베를린에서 무슨 작당 모의를 꾸미는지.
어째서 연합군의 휴식기가 이렇게 늘어지고 있는지.
왜 날이 갈수록 아시아에서 활개 치는 일본을 연합군이 방관하고만 있는지.
모든 답을 안고 있을 만한 자는 여전히 어떠한 단서도 주지 않고 있다.
애써 초조함을 감춘 채 연합군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어느 날.
“서기장 동지! 기뻐하십시오! 적 수괴의 아들이 위대한 적색혁명 활동에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입니다!”
“…음?”
분명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는데? 아니, 애초에 극비일 게 분명한 내용을 어찌 알아내서 테러에 성공했단 말인가.
“최소 중상. 혹은 이미 사망했으나 내부적으로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게 확실합니다!”
“어, 어?”
순간적으로 말도 안 되는 거짓 정보라고 여겼으나 지도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연합군들의 표시 말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떨리는 동공을 감출 수 없던 스탈린은 왜인지 지도 위의 말들이, 최근 들어 특히나 변함없는 연합군이 이해되기 시작해 버렸다.
“이제 적괴 베르게르 모헬만 제거하면 분명 프랑스에도 위대한 지상락원이 강림-”
“아, 아니야.”
이건 아니다. 협상장에 불러들이랬지 언제 협상장으로 쳐들어오게 만들라고 했던가.
“다, 다시 알아보게! 분명 그럴 리 없어”
“예? 허나 꽤 다양한 증거가 보이고 있습니다. 당장 베를린 봉쇄 사건만 해도-”
“아니라고! 그, 그래. 우리 짓이 아니라 분명 나치 잔당의 짓이야. 그러니까 독일국방군이 조사니 척결이니 외치고 있지!”
오해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사회주의 복면을 쓴 위장이다. 어쨌든 사고란 말이다.
‘거, 거짓말이다. 아들이 최전방에 말단으로 스며들었고 하필 우리 측 어떤 놈이 우연히 포착해서 테러에 성공했다고? 상부에 보고할 틈도 없었고? 다 거짓이야!’
모두를 쫓아내고 홀로 남은 이오시프 스탈린은 다시 한번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모스크바(Москва́).
구시대적 지배의 잔재물이 남아 있는 러시아 제국의 수도를 버리고 선정된 소비에트 연방의 수도.
왜인지 오늘따라 모스크바가 참으로 서쪽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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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전역 따윈 없다-23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