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오셨습니까.”
연합군 총사령관 막심 베이강이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인사하는 사람.
필리프 페탱이 또 한 번 야전에 뼈를 묻기로 했다는 소식은 진작에 연합군에 퍼졌었다.
그 어느 곳보다 치열했던 발칸에서 기어코 오합지졸들을 규합해 전선을 뚫고 올라온 노장.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문구들이 필요 없는 페탱은 한평생을 대단위 군을 통제하는 삶을 살아왔다.
다들 일어서 있는 와중 페탱이 가장 먼저 자리에 앉자, 그제야 베이강도 자기 자리에 착석했다.
“시작하지.”
전선에 퍼져있던 수많은 대육군의 장성들이 파리로 집결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철군 과정을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남아있는 모리스 가믈랭을 제외하면 대육군의 핵심 인사들은 모두 이 자리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먼저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혹시 총사령관직을 미군에게 내줄 생각이십니까?”
“그래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 전쟁의 주인공은 미군이지 우리가 아니네. 우리가 직접적으로 모든 일을 책임질 필요가 없단 말이지.”
“허나 주도권을 굳이 내줄 필요가 있습니까?”
“베이강, 자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잘 아네.”
총사령관직. 그러니까 최종결정권과 함께 주도권을 내준다는 의미는 전후에 있을 지분 싸움에서도 불리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어디 총사령관직뿐이겠나. 유럽에서는 세 전역의 최고사령관이 전부 프랑스인이었으나 이제는 미군에게도 야전사령관직을 내줘야 한다.
당연히 참모부의 다양한 직책들도.
그 직책들만큼 권한과 방향성도 미군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페탱은 미군과 주도권 경쟁을 할 생각이 없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아시아 또한 전부 폐허가 되어 있을 터인데…. 이미 우리는 유럽만으로도 벅차다.’
가장 큰 이유. 그건 바로 부족한 소화력 때문이다.
독일-폴란드 재건만 장장 프랑스가 다음 10년을 쏟아부어야 한다.
식민지 독립에도 막대한 재정과 행정력, 정치적 자산이 투입될 터이고 유럽 수많은 국가들의 조율 과정에서도 힘이 투사되어야 한다.
즉, 힘이 딸린다.
고작 인구 5천만밖에 안 되는 나라가 이미 배터지게 먹을거리를 쌓아놨는데 지구 반대편에 맛난 게 있다고 감히 손댈 수가 없는 거다.
“모헬도 동의했네. 아시아는 주인은 미국이야.”
“으음….”
물론 모두가 이리 느끼는 바는 아니었다.
어디 대영제국이 하나하나 소화하면서 식민 제국을 건설했던가. 무식하게 총구를 들이밀고 닥치는 대로 깃발을 꽂지 않았던가.
굳이, 프랑스가 지금 상황에 만족할 이유가 있는가. 아니, 어쩌면 대육군에서 별단 장군들 대다수가 그리 여기고 있을 거다.
‘라인란트와 루르 지대. 그 외로 우리가 얻은 영토가 뭐가 있지?’
‘과연 이대로라면 우리의 패권이 얼마나 갈 것인가?
친프랑스 정부의 동맹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보다는 조금 더 실질적인 무언가.
예를 들면….
‘수에즈! 수에즈! 수에즈!’
‘국가병합을 시도해도 되지 않나? 소극적으로 잡아서 프랑스, 벨기에,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정도만?’
‘거기에 폴란드는 영원한 우방으로 남게 되는 거지.’
그리되면 주변국에 영향력 투사도 좀 더 쉽고 즉각적이며 다시는 섬나라 놈들이 감히 같은 테이블에서 식기를 들지 못하리라.
물론 그 생각을 이 자리에서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인간은 몇 없었다.
자기주장을 마음껏 펼칠 놈이었다면 애당초 페탱과 베이강이 지금 위치까지 올라오도록 용납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근데 이탈리아는 왜 살려둡니까? 전 솔직히 전쟁 끝나면 우리가 이탈리아부터 잡아먹을 줄 알았는데….”
“파비앵, 자넨 정세 파악 좀 하고 말하지. 아니, 그냥 말을 하지 말게. 거기 앉아서 듣기만 해.”
“…. 씨이, 매일 나만 몰라.”
파비앵이 대놓고 의자에 늘어져 팔짱을 낀 채 입만 내놨지만 달래주는 이는 없었다.
상황을 알아도 말하지 못하는 것과 그냥 모르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지만 여하튼.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지만, 모헬 그 친구가 좀 소극적이라고 느껴집니다. 독일의 전후처리가 어찌 되든, 저희 프랑스는 지금이 힘을 투사할 최고의 적기 아닙니까.”
유일하게 베이강만이 페탱에게 반발을 표했다.
“진짜 평화를 바라는 건 아닐 테고, 이게 진정 최선이라고 보십니까?”
“그러니까 자네는. 지금 유럽에서 더 얻는 게 없다면 아시아에서라도 따야 한다?”
“그렇습니다.”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 베이강은 지난 21년의 준비와 3년의 전쟁의 대가를 떠올려봤다.
‘약간의 영토. 그리고 영향력. 그게 전부다.’
동맹이 과연 영원히 친프랑스로 남을까? 분명 누군가는 시간이 흐르면 이탈하려 할 테고 겁 없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프랑스는, 지금과 같은 통제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페탱 원수님, 저희는 지금 둘도 없을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영국이 쇠약해지고, 미국이 불안정하며 주변 강국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베이강, 자네 지금 정복 전쟁이라도 하자 그 말인가?”
“제가 설마 그러겠습니까. 다만 지금 군에서 제기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누군가 말할 겁니다. 크게 얻지 못한 전쟁이었다고. 프랑스가 기회를 놓쳤다고.”
조용히 제 위치를 지키는 베이강이 저 나이에 욕심이 나서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아닐 거다.
‘애국심이 지나치군.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페탱 본인도 한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바로 대전쟁이 끝난 직후.
지금보다 여건이 더 안 좋던 그때 당장이라도 군을 이끌고 독일을 침공해 무엇이라도 더 얻어내고 싶었다.
정말 그럴 힘이 있다 여겼고,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아마 베이강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자들이 여기에 꽤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의 인생 전부가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존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군인들이다.
페탱이 철저히 제거했던 의지와 의식이 되살아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혹시 자네들 자기가 잘 싸워서 이겼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지?”
그런 그들에게.
페탱은 현실을 알려줄 필요성을 느꼈다.
“설마 진짜인가? 프랑스인이 특출나게 위대한 민족이라 전쟁에서 이겼고 우리 프랑스 육군만으로 전 유럽을 상대로 이길 수 있어 보이던가?”
“…….”
모두를 비웃다시피 한 원수의 발언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허허, 내가 없는 사이 아주 군기가 다 빠졌구먼.”
“아닙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서슬퍼런 페탱의 눈빛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짓누른다.
“우리 아시아로 향하기 전에 폐에 들어찬 그 쓸데없는 자만심은 버리고 가도록 하지. 다들 똑똑히 듣게. 우리가 잘 싸운 건 맞지만, 그건 지난 21년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준비한 전력은 이미 지난 3년간 꽤나 소모되었다.
“양질의 병력과 압도적인 전력차 덕에 이겼을 뿐, 절대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가 강대했기 때문이 아니야.”
군이 수십 년간 국가의 우수한 인재를 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시민들의 세금으로 무장에 무장을 더했기 때문에 이겼다.
정말 그 이유 하나뿐이다.
‘여기에 예외적인 인간 하나가 더해졌지만.’
결국 프랑스는 여전하다. 갉아먹는 독일이 사라지고 영국이 과거만큼 대단하지 않다 뿐,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가 단숨에 몇 배씩 성장한 게 아니란 말이다.
“미국이나 소련처럼 거대한 영토도, 인구도, 자원도 우리에겐 없네. 뭐, 병합? 식민지나 배상금? 혹시나 아시아에서 돌아올 때도 그딴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있다면 그냥 돌아오지 말게. 베이강, 이건 자네도 마찬가지야. 군을 이끄는 자네부터가 이리 착각하면 되겠나.”
“…. 죄송합니다.”
평화와 패권이 양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건 동맹을 키워서 발을 걸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페탱 또한 사실 지금 프랑스가 택하고 있는 방식에 적응하기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천하의 모헬이 독일을 용서한다라….’
베르게르 모헬의 입에서 독일에게 배상금 받을 생각 없다는 말이 나오다니. 그 말만큼 충격적인 발언이 이 세상에 존재는 할까.
어찌 되었든 그게 최선이라면, 페탱은 기꺼이 조금이라도 도우리라 다짐했다.
“다들 정신 차리게. 내 말년에 괜히 일 만들지 말자고.”
“알겠습니다!”
자신들의 선배나 동기가 페탱의 눈 밖에 나서 어찌 되었는지 잘 아는 이들은, 다시 한번 머리를 비우길 택했다.
“좋아, 그럼 인도차이나부터 설명 듣지.”
짧은 경고가 끝나고 다시 회의가 재개되었다.
회의가 지속되는 내내 페탱은 약간의 고민을 홀로 해봤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모헬이라면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
늙은이의 욕심일 수도 있지만 분명 모헬이라면 ‘소화 못 하면 먹지 않는다’보다 더 나은 방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스파르에게 넘길 생각에 적당히 만족한 것이지 모헬이 지금 자신의 나이까지만 국가지도자로 앉아 있는다면 진짜로 무너지지 않는 제국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페탱은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
그것이 의심인지 아니면 막연한 기대인지 본인도 알 수 없었으나….
‘그래도 최소 20년은 더 하겠지.’
그래봤자 일흔 몇밖에 안 된다.
왜인지 페탱은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
“그러니까 오빠가 소년병으로 전쟁에 끌려갔을 때 적 지휘관을 죽여서 훈장을 받았다?”
“전공포장(Wa merit medal)을 받은 기록 때문에 재판을 받았는데, 2년 형을 받았어요.”
전쟁터에서 적을 죽였다는 것만으로는 재판에 서지 않는다. 특히나 그때 당시의 나이가 18살이었단 점을 생각하면 절대 그것만은 아닐 거다.
“간 크게 조작했을 리는 없고…. 필요에 의한 재판이었군. 메달까지 받았으니 딱 써먹기 좋았겠지.”
소년병치고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니 곧장 최전선으로 차출되었던 프리아의 오빠는 적어도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크게 걸릴만한 것은 없다.
‘히틀러유켄트를 골수 나치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히틀러유켄트 자체가 청소년 세뇌를 위한 것인지 국가전력을 위한 군사집단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군복도 안 입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말 듣는 걸 보니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왜 도와주신 거예요?”
“나치가 나쁜 거지 독일인이 나쁜 건 아니야.”
“하지만 독일인은 전부 나치를 지지했잖아요.”
“이젠 아니잖아.”
“지지한 과거가 사라지진 않잖아요.”
“잊으면 그만이잖아?”
“프랑스는 안 잊을 거잖아요.”
“어우, 왜 이렇게 자꾸 따지는 거니?”
알게 된 지 며칠 되었다고 천진난만함을 넘어 당돌한 프리아의 태도에 가스파르는 정보부에서 심문이라도 받는 죄수가 된 기분이었다.
“기분 나빴다면 죄송해요. 얼마 전까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인생이었어가지고-”
“그만! 그 이야기 좀 그만해! 애가 무슨 말만 하면 죽을 위기 때문이래. 무서워서 대화를 하겠니?”
“근데 지금 잘하고 있잖아요.”
“아.”
마냥 단순했던 여동생 엘리나와는 다른 느낌의 스트레스를 가스파르는 체험할 수 있었다.
“근데 너희 집은 어디야?”
“피난민이라서 그런 거 없는데요.”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
“오빠는 너 걱정 안 해?”
“오빠 지금 아프다니까요?”
“그럼 너희 오빠 옆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아침에 보니까 거의 다 나은 거 같아서 찾아왔는데요.”
“…….”
사건 처리가 진행되는 과정만 살짝 지켜보다가 떠날 생각이었던 가스파르는 어째서 본인이 폴란드까지 찾아와 이런 상황에 놓여있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나 여기서 뭐 하냐.’
불쌍한 여자애랑 말씨름이나 하고 있다니. 참으로 한심한 꼴이다.
“아무튼, 나 없으니까 내일부터 찾아오지 마라.”
“우와, 이렇게 또 버려지네요.”
“야!”
“아니에요. 안녕히 가세요. 전 또 오빠 아프면 지뢰 제거나 하러 갈게요. 그럼 돈이라도 주겠죠 뭐. 괜찮아요. 익숙하니까.”
“와아….”
저 귀여운 외모에 속으면 안 된다.
이미 저 소녀는 차가운 현실을 아주 잘 알았으며 지뢰 제거까지 할 줄 아는 강인한 사람이다.
아는데, 아주 잘 아는데.
“하아, 난 어차피 폴란드를 떠나야 하니 너희 가족을 돌봐줄 곳을 찾아주마.”
“요즘같이 고아원도 길거리에 내몰리는 시국에는 후원이 언제 끊길지 모르는데….”
“아니, 그럼 네가 나 따라다니면서 확인할 것도 아니잖니?”
“와아. 아저씨 따라다녀도 되나요?”
“야.”
어지럽다. 진짜 다음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감도 안 잡히고 진심과 거짓을 구분하는 건 진작에 포기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나 아저씨 아니니까 오빠라고 해라.”
“같이 가게 해주면요.”
오웬 대령의 말이 맞았다.
해변으로 가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