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빈에서 파리로 돌아오고 다시 베를린에 도착하기까지.
가스파르는 본인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헤엄치다 겨우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그저 울적한 느낌. 약간 부족한 느낌.
근래에 조금 이상한 느낌 정도로 치부하던 기분은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단번에 흥분이란 감정으로 급변하였다.
이제는 알만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가스파르의 얼굴은 베를린에서도 알아보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베를린 재건위원회에 들르기도 전 가스파르는 먼저 향한 곳이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를 내고 한 발 떨어져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자.
“누구세요?”
조심스레 문이 열리며 익숙한 그녀가 문 뒤에 반쯤 가려진 채 나타난다.
“안녕-”
쾅.
“…….”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 프리아도 반가워할 거란 확신이 산산조각 나며 순간 가스파르는 할 말을 잃었다.
겨우 꺼낸 말은 혹여나 그사이 문제라도 있었나 걱정하는 말이었다.
“어, 무슨 일 있었니?”
“왜 오셨어요?”
감동적인 두 사람의 재회는 문 하나를 두고 이어졌다.
“재건위원회 일원으로 발탁되어 이쪽으로 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러시군요, 가스파르 리 모헬 씨.”
“…….”
분명 방금 몽포르가 아닌 리 모헬이고 불렀다. 그녀의 싸늘한 목소리가 이름만 불렀음에도 상황을 단번에 인지시켜 준다.
“언제부터 알았어?”
“베를린에 오고 나서요. 그전부터 의심하긴 했지만요. 군인도 아니면서 빈에서 군정 사령관님이랑 편하게 만났잖아요.”
“그거야 뭐.”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 사람 입장에선 베를린 봉쇄 후속작, 빈 봉쇄 찍고 싶지 않으면 철저히 대비할 수밖에 없지 않나.
본인의 잘못이 없다 할 순 없으니 가스파르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를 달랬다.
“일단 문 좀 열어봐.”
“싫어요.”
“왜.”
“그냥요.”
“열어.”
“싫다니까요.”
반가운 마음과 별개로 순간적으로 울컥하고 올라오는 빡침에 가스파르는 프리아의 나이를 되새겼다.
‘어린아이다. 아직 미성숙한 소녀야.’
그러나 생각을 바꾸니 분노 대신 이름 모를 죄책감이 마음을 대신할 뿐, 전혀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베를린으로 보내서 화났던 거냐.”
“아니요. 화 안 났는데요?”
“화났네.”
저 문짝을 뜯고 얼굴을 마주한 채 대화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모헬이란 이름으로 떨어진 신뢰가 더 나빠질 뿐이다.
아예 문 앞에 등을 대고 앉은 가스파르는 떠날 생각이 없음을 표현했다.
“이름을 숨긴 것은 딱히 나쁜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야. 독일인에게 모헬이란 이름이 좋은 인식이 있는 건 아니니까 나중에 알려줄 생각이었지.”
“근데 안 알려줬잖아요. 켕기는 게 있단 뜻이죠.”
“이제와서 없다고는 못하지. 당장 루르 사태만 해도 우리 아버지가 직접 전차를 이끌고…. 에휴, 아니다. 어쨌든 이제부턴 다를 거야. 난 독일을 재건하기 위해 왔으니까.”
등 뒤로 대답이 곧장 이어지진 않아도 뒤척거리는 소음으로 그녀가 떠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사과하러 왔다. 네 의사도 안 물어보고 베를린으로 보내버린 것을. 시간도 안 주고 바로 떠난 점도 미안하다.”
“…늦었어요.”
“그땐 보호자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도 안 했다. 너도 이젠 알겠지만, 난 모헬이니까.”
“치이, 모헬 가문도 별거 없네.”
변명 아닌 변명에 여전히 토라진 프리아. 가스파르는 웃음만 나왔다.
‘별거 없다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군.’
아버지는 위대할지언정, 본인은 진짜 별거 없는 인간이 맞다. 한없이 부족하고, 비교하자면 결점투성이뿐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 와있는 거 아니겠나.
그녀가 독일인임에도. 그녀의 오빠가 히틀러유켄트 출신임에도. 부족한 인간이라 그런 부분조차 결점으로 안 보이니.
“위원회에서 일해야 하니 베를린에 오래 있을 거야. 이젠 떠나지 않는다는 소리지.”
“그리고 또 다른 데로 가겠죠. 그래야 하니까.”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모헬 가문은 자기 원하는 대로 해도 돼.”
약간 아버지의 뒤틀린 신념을 인용하자면, 모헬 가문은 약간 멋대로 행동할 자격이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두 사람의 대화가 한참을 이어지고.
끼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그래서, 왜 왔어요?”
“너 보려고.”
“이제 진짜 어디 안 가요?”
“그래.”
팔을 벌리자 프리아는 담담히 가스파르의 허리를 껴안았다,
“용서하는 거 아니에요. 착각하지 마요.”
“그래, 그래.”
그녀의 울먹이는 소리가 가스파르의 다짐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이거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작업 좀 쳐놔야겠군.’
적당히 그녀의 사정과 배경을 조작하는 수준이 아닌, 아예 세상의 인식을 뒤집어 놓을 정도는 되어야 할 거다.
공직에 있는 자가 사적인 일에 힘을 써선 안 되지만.
‘일단 어머니부터 움직여야겠지. 그럼 아버지는 따라올 테고.’
모헬은 그래도 된다. 적어도 작금의 프랑스에서는 그렇다. 최소한 오늘만큼 이 비틀어진 신념이 옳다고 믿고 싶었다.
어느덧 셔츠가 축축해질 만큼 얼굴을 파묻고 울던 그녀는 살짝 떨어져 가스파르를 올려다봤다.
“뭘 봐요.”
“…….”
먼저 쳐다봐 놓고 뭘 보냐니. 이런 대우에 익숙해진 스스로도 참 이상하다.
‘모헬에게 뭘 보냐니. 이거 참.’
이상한 점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투정 부릴수록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언제까지 그녀의 존재를 숨길 수 있을까. 아마 파요레 국장의 힘까지 끌어와도 그리 길지 않을 거다.
재건위원회.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왔지만 생각보다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을 것만 같았다.
“또 미래에 어쩌구저쩌구 망상하고 있죠?”
“…아닌데?”
“맞네. 그것도 자의식과잉, 병이에요.”
“…….”
일단 프리아를 어떻게 어머니께 설명해야 할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
한때 아시아 최대 항구였던 톈진에 상륙해 베이징을 기점으로 아래로 내려오는 적을 막아야 했던 페탱 원수님은 역시 노장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셨다.
“진짜 전쟁 끝나고 현역으로 남으실 생각 없어요? 그냥 보내드리긴 너무 아까운데.”
“자네 봄에 퍼싱 만났다 하지 않았나?”
“그랬죠.”
“그 휠체어에 앉아 있는 퍼싱이 나보다 네 살 어리다네. 그러니까 입 좀 다물지.”
“넵.”
중국 해안을 결국 다 먹은 연합군. 적의 집결이 만주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니 피할 이유 없는 연합군은 곧장 북쪽에 집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넘어오는 병력이 늘어날 거야. 그러니 빠르게 끝내거나, 아니면 굳이 맞서주지 않거나. 아이젠하워는 피하길 원하더군.”
“이해는 됩니다.”
적이 만주에 몰리는 만큼 조선과 일본 본토는 취약해져 있을 터. 당연히 제해권을 쥔 입장에서 굳이 싸워줄 이유는 없긴 하다.
‘다만 이대로 본토로 간다고 쉽게 도쿄가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것도 아냐.’
제일 귀찮은 시나리오가 본토에서 일억총옥쇄니 신민저항이니 하면서 일제가 나치 국민돌격대처럼 나오는 경우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손속은 잔인해지고. 당연히 전후 현지 통치에 반발이 생길 것이며 무엇보다 전쟁 자체가 지저분해진다.
‘그럴 바엔 만주에서 부수고, 본토로 가서 항복 받아내는 게 좋지.’
듣기론 진짜 죽창 깎고 고을마다 구덩이 파서 우리랑 싸울 준비 하고 있다던데. 효과는 둘째치고 본토결전을 해주는 것 자체가 우리 연합국에게는 큰 손해다.
여기에 이유를 하나 살짝 더 가져다 붙이자면.
“한 번에 모여 있으니 전 고마운데요. 여기서 이기면 오히려 전쟁 쉬워지지 않습니까?”
“자네부터 그딴 발상을 진지하게 하니 프랑스가 약탈 경제로 돌아간다는 소리 듣는 거라네.”
아니 맞잖아.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얼마나 오래 걸리겠어? 북중국, 만주, 조선까지 육전으로 전부 끝장낼 만큼 내가 육전에 미치진 않았다고.
“그래서 모헬, 여기까지는 왜 온 건가.”
“원수님하고 같은 전장에 설 기회가 얼마나 더 있겠습니까? 한 번 추억도 살릴 겸, 다들 바쁘니 저라도 나서서 일할 겸 해서 왔지요.”
“무슨 일.”
“말씀드렸잖습니까. 여기서 적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잽스가 빨리 항복합니다.”
“…미친놈.”
“저의 수고와 노고를 미쳤다고 말씀하시다니. 이 베르게르는 오늘도 억울해 죽겠습니다.”
장난스럽게 말을 던지지만 반쯤 진심이긴 하다.
‘진짜 수백, 수천 개의 섬을 일일이 점령하고 싶진 않다.’
만주에 얼마나 대단한 준비를 해왔는지는 몰라도 내가 볼 땐 별거 없어 보인다.
특히나 지연전이면 몰라도 딱 보니 적은 물러날 기미가 없다.
‘힘 대 힘. 단판 겨루기에 자신 있나 보네.’
정확한 의도는 몰라도 피할 이유는 없다.
“캬아, 이게 얼마만의 공세사령관이야. 매일 뒷짐 지고 총참에서 전쟁만 했더니 이젠 기억도 잘 안 나네.”
마지막으로 전선에 섰던 게 언제였지? 리프 전투나 루르 사건 같은 경우 다 빼고 진짜 최전선에서 말이다. 아마 별 달고는 최전선에서 활동한 적이 없던 것 같다.
“가서 눈먼 폭격에라도 뒤지면 누가 책임지나.”
“적은 폭격할 폭격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서 죽으면? 어우, 프랑스 지분이 얼마나 올라가는 거야? 이 한 몸 불태워 국가의 미래를-”
“마음에도 없는 소린 그만두고. 미국 때문인가?”
“…언제나 그렇죠.”
말은 제해권, 그까이 꺼 별거 없다며 미국한테 해전을 다 떠넘겼지만 사실 내막을 잘 따져보면 미국이 마음대로 해도 우리 프랑스가 아시아에서는 손쓸 수 없단 소리와 마찬가지다.
“여전히 부족한가?”
“어중간한 승리로는 부족합니다. 아예 반발 자체가 안 나올 만큼. 우리 프랑스를 인정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미국이 프랑스와 기싸움 안 하고 좋게 좋게 전후처리 하려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한 딴마음 먹지 못하도록 하려면 내가 나서는 게 최선이다.’
파비앵을 보낼 수도 있지. 아마 만슈타인만 보내도 만주를 갈라버리는 데는 충분할 거다.
페탱 원수님만 해도 집단군급 전쟁에서 누가 따라올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가야 한다. 왜냐면 내가 곧 프랑스의 힘을 상징하니까.
‘내가 곧 대육군이라는 인식이 박힐 정도가 되어야 해.’
그 정도 되면, 그래서 내가 죽지 않는 한 프랑스의 전력이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그럼 군축해도 되지 않을까.’
너무 나간 생각일진 모르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내가 나서는 건 무조건 좋다고 본다.
“준비한 작전은 따로 있나?”
“적이 계속 남하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장이 고정되지 않고 난잡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저 넝쿨 같은 산맥들이 문제야. 한 나라 머리 위에 저런 극단적인 지형이 라인란트 넓이로 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더군.”
“전 해안 따라갑니다. 산맥 안으로 가서 싸워줄 생각 없어요.”
“만약 적이 저 스위스 같은 지형에서 안 나오면?”
“그럼 후방 끊기고 고립당하겠죠.”
“즉,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들 자신이 있다? 해안 따라 점령하면?”
“그렇습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다롄 쪽에 상륙하는 게 낫지 않나 싶겠지만 아서라. 저긴 러일 전쟁 때도 특출나게 방어력이 높던 곳. 당연히 대비를 해놨을뿐더러 해군의 피해가 커지면 미군 목소리만 커진다.
제공권까지 우리 손에 있는 지금, 어딜 봐도 변수는 없다.
“당연히 이기는 전투를 주워먹을 생각에 신났군.”
“에헤이, 또 절 까내리시네. 이기는 전투, 이 모헬이 나서서 더 크게 이겼다! 뭐 이런 긍정적인 부분을 말씀하셔야죠.”
“나보고는 본대나 지키고 있으라 하면서 자긴 공세사령관? 모헬, 그냥 솔직히 말하게. 오랜만에 야전 나와서 전차 타고 잽스 머리통 날려버리고 싶다고.”
“어허! 절 뭘로 보시고!”
“뭐긴, 자네가 방금 말했잖은가. 미국에게 전쟁광으로 보이고 싶다며.”
해석이 그렇게 되나. 비록 나의 본질은 절대 그런 인간이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다.
‘악역은 익숙하니까.’
내가 정상이라고 외쳐도 언제는 정상인 취급 해줬나. 평생을 악귀 소리 들으면서 자라왔는데 은퇴 앞두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쯧,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혀를 차며 내 계획을 지지하지 않는 페탱을 난 물끄러미 바라봤다.
“…고개 돌려. 난 그렇게 가르친 적 없으니.”
내가 페탱이 아니면 누구한테 배워. 인도차이나 전투 기록만 봐도 참호전 저리가라 죽었던데.
`
아마 내 인생의 마지막 전투. 커리어의 종점이 될 전투다.
‘기갑, 포병, 정예 사단까지.’
화려하게 장식할 준비는 진작에 끝냈다.
초심으로 돌아가, 베르됭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바로잡는다.
아르덴, 마른, 아라스, 베르됭, 벨기에…. 베를린까지.
이제는 기억을 되살릴수록 마음은 편해진다.
마치 야전지휘과 내 본래 업이었던 것처럼.
부디 이번이 마지막 전투가 되길 바라며, 난 지휘막사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