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저기 민간 지역 아닌가?”
“자네 눈으로 봤나?”
“뭘 봐. 연기밖에 안 보이는구먼.”
“그럼 아직 민간 지역이 아닌 것 같네만.”
지휘관들 사이에서도 소외당하던 패튼은 자기의 지능이 떨어져서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건가 처음으로 의심할 뻔했다.
“딱히 뭐라 하는 것은 아니네만.”
“난 궁금하지도 않네. 그리고 내가 알기로 일본에는 민간 구역이 없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 뭐냐, 총력전 비슷한 거. 아무튼 전 국민이 마지막 한 명까지 우리와 싸운다고 했다더군. 즉, 전부 적군이란 소리지.”
“무식하기는. 우리 나라에서는 그런 걸 어쩔 수 없는 희생, 부수적인 민간 피해라고 한다네.”
“더러운 합리화지.”
“너흰 합리화도 안 하잖아.”
“할 이유가 없으니까.”
두 사람은 갑판 난간에 기대어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먹으며 저 멀리 다가오는 한 무리를 보았다.
“데이이치라 했나. 저자도 대단한 것 같아. 나였으면 바로 권총 들고 죽여버렸을 텐데.”
“그리고 아이젠하워 총사령관이 널 죽였겠지. 아님 무인도에 유기하거나.”
“우린 좋게 대화를 이어갈 수 없는 건가?”
“사람 죽이겠단 대화를 시작한 건 자네야.”
두 사람이 동갑내기였다는 점은 이후 친해지는 데에 더욱 큰 영향을 미쳤지만 마냥 죽마고우처럼 속을 다 터놓는 건 아니었다.
‘무식한 새끼.’
‘미친 새끼.’
벌써 칠 일째. 두 사람에게 주어진 역할은 정해진 문구를 반복해서 읽어주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오늘은 항복할 마음이 있소? 들어보니 연합군이 상륙도 성공한 모양이던데.”
“…막아주십시오. 영토 독립 약속과 천황제 유지만 가능하다면 그 어떤 조건이라도 수용하겠습니다.”
“오 발전했는데?”
“허나 아직 부족하지.”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다 필요 없다. 두 사람이 받은 명령은 오직 무조건 항복.
“그리고 당신들 섬나라인데 왜 식민지를 자기네 영토라는 거야?”
“민족합병으로 한 나라의 동등한 신민입니다.”
“오케이, 그럼 이제부터 일본을 미합중국의 마흔아홉 번째 주로 인정-”
“하하! 말은 그렇지만 우리 눈에는 보호령이랑 다를 바가 없소. 특히나 조선인들도 원하지 않는 것 같으니 말이오.”
이를 악물며 정말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포기한 조건마저 거부당한 데이이치는 두 사람을 이젠 대놓고 노려봤다.
“이 나라를 너무 쉽게 보지 마십시오. 힘으로 모든 걸 빼앗을지언정 우리의 결기까지 빼앗을 순 없을 겁니다. 모든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할 순 없는 법이란 말입니다!”
“어이쿠, 난 들어가겠네. 알아서 대화 마치고 와서 보드게임이나 하지. 지금부터는 그 어떤 일도 비공식, 난 모르는 일이야.”
잽싸게 함선 안으로 모습을 감춘 패튼.
20cm는 더 큰 파비앵은 안면 사이의 거리를 좁히며 진지하게 말했다.
“참, 당신 같은 사람을 보면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느껴. 예전 같았으면 매일 포로를 처형하면서 카운트다운을 했을 텐데 말이지.”
순간 얼어버린 일본 측 통역이 파비앵을 쳐다보자, 파비앵은 고개를 까딱이며 본인의 일을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한 박자 늦게 얼굴이 빨개지는 데이이치. 그런 표정변화에 파비앵은 되려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기분을 느꼈다.
“폭력으로 해결하려 한다고 쉽게 말하지 말게. 당신들처럼 우린 비인간적인 범죄는 이제 안 하거든. 연합국은 지금 쉬운 방법을 두고 돌아가고 있다고.”
포로를 팔아치우지도, 실험하지도, 노예로 만들거나 치욕적인 상태로 만들지도 않는다.
이제는 파비앵도 늙어버린 것일까. 요즘 세상에는 포로 대우에 대한 국제적 약속도 정해져 있어 예전처럼 쉽게 죽여선 안 된다.
‘옛날 시절 손에 막대한 숫자의 포로가 들려있다면? 그냥 바로 등에 총구 겨누고 적 참호로 돌진시켰지.’
그에 비하면 만주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은 어떠하던가. 오히려 수용시설에서 더 잘 먹고 건강을 회복하며 전보다 훨씬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협상은 결렬입니다.”
“그럼 난 돌아가면 되나? 아, 근데 그건 알아야 할 거요. 만약 내가 우리 원수님께 원하는 답을 못 들고 간다? 그럼 그때는 항복해도 안 받아줄 거요. 당신들은 아마 운이 매우 좋으면 재판받을 기회를 얻고, 아니면 전부 전사처리 되겠지.”
파비앵 본인이 이곳에 있는 것은 협박을 위한 것도 있지만, 동시에 언제나 기회를 열어놓는 행위다.
작금의 전쟁은 잽스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끝낼 수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냥 저 윗대가리들이 ‘다 포기하겠다.’ 한마디만 하면 전쟁은 끝난다.
“어찌, 떠나면 되겠소?”
“…….”
“여전히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군. 더 생각하다 오시오.”
일주일이나 흘렀지만 아직 더 고민해야 하나 보다.
그대로 데이이치를 돌려보낸 파비앵은 끝날 듯하면서도 아직 안 끝나는 전쟁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8일 즈음 맞았으면 적당히 항복을 받아줄 거란 착각도 지울 법한데….”
진짜 도시 몇 개 더 사라져 봐야 정신 차리려나.
본토 진입이란 소리는 지난 며칠간의 공습처럼 민간인들이 군 병력과 구분 없이 죽어나갈 거란 소리다.
그 뜻을 알법한 자가 지체하니 파비앵은 저치들이 곱게 보이려야 보일 수가 없었다.
***
아무리 연합군이 기세등등하다고 해도 도쿄만 안으로 직행했다간 뜨거운 지옥불이 360도로 쏟아진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렇기에 도쿄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상륙 지점들을 정했는데.
“이거 내가 못 가다니. 아쉽구먼.”
“정 할 일 없으시면 페탱 원수님 계신 만주로 가시지요.”
“아니, 그건 아냐.”
아무리 그래도 내가 전장 정리나 하러 다닐 계급은 아니잖아? 우리 원수님이야 노년에 적적하지 말라고 내가 소일거리 준 거고. 늙어도 일해야 치매 예방과 자아실현이 가능한 법 아니겠나.
“협상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는 모양입니다.”
“쉽지 않겠지.”
나도 아이젠하워가 패튼을 협상단에 넣을 줄은 몰랐다만 둘이 꽤 잘 맞는 것 같으니 막진 않았다.
나이도 같고, 성향도 비슷하고, 겉멋 잔뜩 들고 전쟁 좋아하는 게 둘이 잘 맞는 것 같다.
이제는 특정 작전이라기 칭하기도 애매할 만큼 쉬지 않고 이착륙을 반복하는 항공기들.
베이강 원수님과 오마 브레들리가 상륙전을 도맡았으며 아이젠하워는 현재 급속도로 늘어난 점령지와 그에 따라 쏟아지는 현지 정보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난 만주에서 한탕 뛰고 왔으니 남들이 일할 때 연합군 사령부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맞다. 그 친구는 만나봤나?”
“정신적 장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책임’이란 단어가 나오면 머리를 감싸며 패전은 전부 무능한 부하들 탓이라고 반복적으로 외칩니다. 셸 쇼크 증상의 일부 보입니다.”
“그거 셸 쇼크인 거 확실해?”
“아닐 수도 있지만 높은 확률로 셸 쇼크입니다. 태도는 매우 협조적입니다. 진술도 일부 기피하는 부분이 있지만 일관되고 작전 과정과 대본영의 정보에 대해 다 토해내고 있습니다.”
나의 반대편에서 지휘봉을 잡은 인간들 중 어느 누구도 평범했다 말할 수 없지만 만주군을 실질적으로 통솔했던 렌야만 한 사람이 있을까.
나조차도 속을 만큼 그의 군은 존재부터가 기만이었다.
‘군이라고도 할 수도 없지. 굶주린 도적떼? 오히려 집단 난민에 가까운가?’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은 독단 결행. 당연히 본토 지휘소인 대본영도 만주 사정을 정확히 아는 인간은 없어 보이고 보급, 전술, 목적. 그 모든 과정과 정답을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머릿속 망상에서 렌야는 끝냈다.
마치 배부르다고 생각하면 정말 배가 불러진다고 믿는 것처럼 군을 지휘했단 의미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과연 이 새끼를 전범 기소 하는 게 가능한지다.
‘보급을 망상으로 했지 진짜로 제대로 한 적이 없는데? 공격 명령을 내렸지만 실제로 아군이 제대로 된 공격을 받은 적도 없고?’
여색을 즐긴 적은 있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돈을 왕창 뿌려댔으니 일단 이것도 전범은 아니고.
오직 황군만이 위대하다며 식민지에서 강제 징용한 군은 쓰지 않겠다 고집부려 이것도 무죄고.
학연, 인맥 하나는 대본영 핵심에 들만하지만 방관죄를 제외하면 직접적으로 전범 명령을 내린 기록도 아직 찾지 못했다.
“빅터, 내 이제와서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게. 혹시 렌야가 패전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노린 건 아닐까?”
“그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보급도 결국 적에게서 얻어야 한다고 굳게 믿어 부실하게 했을 뿐입니다.”
거 참. 듣기론 우리 프랑스를 꽤나 좋아하는 것 같던데 왜 저런 짓을?
나폴레옹도 군대는 잘 먹어야 진격한다고 말했는데.
여기에 우린 알 수 없는 수호신까지 자주 언급하는 걸로 보아 살짝 사이비 향기도 난다.
이렇게 남들이 열심히 일할 때 쓸모없는 고민이나 계속하던 차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날 찾아왔다.
“여기서 만나고 싶진 않았는데….”
“중화민국의 총통, 장제스라고 합니다.”
장제스가 상하이까지 찾아왔다.
그것도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가 아닌 나를.
***
중화민국과 프랑스의 사전 조율에 관한 내용은 진작 워싱턴 D.C.에서 털어놨으니 딱히 숨길 것도 아니다만, 그래도 장제즈와 직접 상하이에서 대면한 것은 나도 썩 반갑진 않은 일이었다.
당연히 옆에서 매의 눈으로 우리 두 사람을 지켜보는 미군 측 인간들도 신경 쓰이지만.
‘아직 전쟁도 안 끝났는데 우리끼리 쑥덕이면 이게 무슨 꼴이냐.’
심지어 남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조용히 박혀서 구경이나 하는 게 옳다.
이쯤 되면 일부러 장제스가 날 지금 타이밍에 찾아왔다고 본다.
일단 날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에 딱 묶어놓고 만나려 한 똑똑함에 박수를.
그리고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한 멍청함에도 박수를 보낸다.
“이거 총통께서 순식간에 달려오셨나 보오.”
“저희는 피를 함께한 사이 아닙니까?”
피를 함께하다니. 중화민국군이 딱히 쓸모 있던 적은 없었다. 우리도 아예 배제하고 전쟁하다시피 했고.
우리의 사이는 동맹이라기엔 너무 과하고, 딱 우방국 정도.
‘아니, 우방국도 아직은 과하지.’
프랑스한테 동맹의 첫 번째 조건은 과연 컨트롤할 수 있느냐인데 이 거대한 대륙을 컨트롤? 이건 나도 미국도 힘든 일이다.
“먼저 프랑스 장병들이 이곳 중화에서 흘린 피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에, 뭐.”
“그 감사함 때문이라도 지금 중화민국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직접 물어보려고 찾아왔습니다.”
“필요한 것이라.”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없다. 정확히는 중화민국이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럼에도 프랑스를 콕 집어 도와주고 싶다는 의미는 뻔하지.
‘너희부터 챙겨주겠다. 어서 원하는 것을 말해봐라?’
말이 정부지 세금도 못 걷는 깡통 정부가 우릴 어떻게 도와. 당연히 미래에 정상화될 것을 가정하고 지금 약속을 남발하겠단 거다.
그 약속이 성사되면, 우리 프랑스 측의 초기 투자도 받을 수 있을 테고.
거기에 동맹까지 얹으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이른 이야기 아니겠소?”
“미리 씨앗을 심어야 나중에 열매를 일찍 보지 않겠습니까?”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음, 그러니까 지금 중화민국 정부는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소만.”
워싱턴 D.C.에서도,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미국과 프랑스 사이의 대화를 모르는 장제스가 내 눈에는 세상의 더러움을 모르는 시골 소년으로 보인다.
“우린 영국이 아시아에 다시 돌아올 자격이 없다고 판단, 배제하기로 했소. 아마 여기까지는 우리 총통께서도 아시겠지.”
“무언가 더 있었습니까?”
“일단 중화민국은 인정하되 총통은 선거를 해야 할 거요. 당연히 그 선거는 몇 년 뒤가 되겠지. 우린 그사이의 시간을 비워둘 수 없소. 왜 내가 만주를 직접 점령했는데. 바로 언제 남하할지 모르는 저 소련 때문이지. 어디 그것뿐이오? 아예 다른 역사와 민족을 가진 지역을 중립 지대로 독립 시키게 될 거요.”
“…….”
벌써부터 그런 표정이면 내가 미안해서 다음 말을 어떻게 하겠니.
그래도 이왕 충격받은 거, 한 번에 받는 게 나으니 나의 배려는 멈추지 않았다.
“미리 말하지만 난 선거에는 크게 관심 없소. 근데 저 미국 친구들은 아닌 것 같더라고. 과연 만주를 지키고 몽골과 위구르족의 독립 이후에도 완벽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소?”
마치 지금 영국에게 식민지 놔주고 다음 선거 이길 수 있냐고 묻는 꼴.
난 여전히 그를 응원하고 믿는다만…. 어쨌든 완전무결해야 할 총통에게 약점이 생기는 일이다.
“자, 그럼 장제스 총통.”
우리의 대화가 미국 측에 흘러가도 딱히 변하는 게 없다고 본다. 이미 미국과 프랑스는 당분간 틀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거든.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소?”
반일, 반공을 내세워 싸워왔다는 역사 빼면 군벌과 크게 다르지 않고 친일과 공산 척결을 해야 하나 당장 군대를 재건할 자금도 없는 너에게.
내가 뭘 해주면 될까. 한번 이야기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