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한때는 쑨원의 의지를 잇는 사람으로 취급되었던 장제스는 과연 지금 어떤 상태일까.
먼저 가장 큰 내부의 적이었던 중국 공산당이 폭삭 망해버린 것은 그에게 있어 매우 호재였다.
이후 아예 친일 공산으로 열차를 갈아타 세를 잡은 자들이 없진 않았으나 그들은 잠깐 사상을 불태운 대가로 빛나는 하루살이가 되었으니. 절대 중화 대륙을 뒤덮는 세력이 될 수 없었다.
그럼 장제스가 연합국들의 유일한 선택지로 약간의 손해만 감수하면 안정적으로 이 나라를 통치할 수 있게 되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일단 중일 전쟁의 기간이 꽤 길었고 소련도, 일본도 장제스를 잡아 처넣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대륙을 뒤졌기에 장제스는 수년을 도망자로 살아왔다.
소련과 일본의 동맹. 그러니까 국공격렬 이후 장제스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수천 킬로를 오직 도보와 우마에 의지한 채 도망 다니며 겨우 목숨을 연명했단 소리다.
더 깊숙한 내륙으로, 본인의 영향력이 아예 사라지다 못해 국민들에게 잊혀질지언정 장제스는 끝까지 도망쳤다.
그럼 국가를 포기하고 도망간 겁쟁이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지금 중화민국 꼴을 보고 그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당원도 도망 다니다 굶어 죽을 정도로 힘들었다니 말 다 했지.’
이후는 원역사 공산당이 했던 행보와 똑같다.
일제 치하가 비교적 덜 된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지하투쟁과 독립운동. 장제스가 본인의 존재를 국민들에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알리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악으로 버티고, 드디어 보상받을 시간이 왔다.
부정하진 않겠다. 우린 해방자임과 동시에 전쟁비용 그 이상을 이 대륙에서 충당하려는 사채꾼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가 장제스인 것처럼, 그 또한 다른 대출 상품을 알아보긴 어려울 거다.
“내가 볼 때는 말이오, 지금 총통께서는 다시 하나부터 시작해야 하오. 과거 군벌 시기에 진저리 치던 국민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것부터 말이지.”
“어떻게 말입니까?”
“공산 척결. 아직 빨간물이 안 빠진 일부 중국인들에게는 너무 가혹한가? 그럼 친일 척결로 가는 건 어떻소?”
이건 절대 사상 검증 같은 유치한 일을 벌이는 게 아니다.
비록 소련이 발작하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난 지금 장제스에게 화려한 복귀 무대를 만들어주겠다 제안한 거다.
“그 과정에, 군대도 다시 재건해야 하지 않겠소?”
“군대 재건….”
지금 중화민국군이 어딨어. 밥도 못 먹으면서 도망쳤는데 탄통 들면서 도망 다녔겠나. 제 총 한 자루에 군복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내가 예상할 때 그것조차 없는 이들이 넘쳐난다.
“중화민국이 자립하려면 가장 먼저 만주에 병력 주둔부터 해야 하오. 그것도 아주 강력하고, 많은 숫자의 병력이. 그게 힘들다면 내가 직접 수복한 만주는…. 다른 이에게 넘겨야겠지.”
“절대 그럴 순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정부와 군대를 일으켜 세워보시오. 나 또한 장제스 총통이 반공 포위에 힘 써준다면 아시아가 든든해질 것 같소.”
과연 몇 년이 걸릴까. 건강한 방식으로 행정력과 인재를 키워내고 최소한 자립 가능한 국방력, 그리고 치안까지 키우려면.
‘일, 이 년으로는 어림도 없지.’
그 기간 사이 연합국은 원하는 바를 충분히 이뤄낼 자신이 있으니 장제스가 나한테 찾아와 혜택을 베푸는 것처럼 말하는 건 옳지 않다.
“총통께서 잘 아시겠지만, 난 정부 조직도 이끌어 보았고 군대도 바닥부터 다시 만들어 보았습니다.”
도움이라면 내가 너한테 주는 게 맞지 않을까.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장제스도 최소한의 자립 조건이 무엇인지는 이해했을 거다.
이후로는 별다른 소득 없는 대화만이 이어지고, 우리의 첫 대면은 그렇게 끝났다.
당연히 장제스 이후 아이젠하워와의 만남이 자동으로 잡혔고, 바람피우다 걸린 것도 아닌데 난 아이젠하워에게 상황을 설명해줘야만 했다.
“삐졌나?”
“아닙니다. 단지 중화민국의 행보가 조금 아쉬울 뿐입니다. 아직 전쟁이 한창인데 중화민국은 정권 잡을 생각만 가득해 보이니 말이죠.”
“장제스는 아직 군벌이랑 다를 바가 없네. 민주주의는 독재하기 좋은 명분일 뿐이지. 미국은 그 부분을 인정하면 참으로 좋으련만.”
미국과 내가 아시아를 대하는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이게 아닐까.
나야 아직 미성숙한 아시아는 독재여도 적대하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지만 저 친구들은 아니다.
식민지 해방에 완벽히 동참한 뒤로는 아예 본인들의 이념을 반쯤 신성의 경지에 올려놓고 전파하기 시작한 미국은 자국 특유의 형태를 남한테도 강요하고 싶어 한다.
‘거 참, 이해할 수 없다니까.’
오래전부터 키워놓은 친미주의자들도 꽤 있으면서 굳이 격동기에 어울리지도 않는 순수한 민주주의 집착이라니.
반면 장제스와 내가 잘 맞는 부분이 이런 분야다. 어쨌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법. 그리고 군부 출신으로 권력을 잡은 장제스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안다.
당연히 군대 재건에 프랑스가 힘을 실어준다면 이보다 친프랑스 기조로 끌어들일 확실한 패는 없다.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이지만, 지금 중국이 국방력을 키울 때는 아니지 않습니까?”
“미리미리 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우리가 병력을 뺄 수 있어.”
“소련 때문입니까?”
“그게 제일 크지.”
서쪽은 어찌저찌 내가 틀어막고, 동쪽 바다로 튀어나오는 건 미국이 막는다 치자.
그럼 결국 소련이 후에 힘을 투사할 곳은 남쪽밖에 없다.
“난 그렇게 생각하네. 아시아가 소련을 영원히 동토에 가둘 마지막 열쇠라고.”
“그래도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너무 후하게 주면 배만 불러 다른 생각을 품게 됩니다.”
“모르는 소리. 지금 중국만큼 빨갱이에 취약한 나라가 어딨나. 강력한 친일파 처단과 군국주의로 막아도 될까 말까야. 내 장담하지. 소련은 10년 안에 다시 외부로 눈을 돌릴 걸세.”
“모헬 원수님의 장담이라…. 이거 조금 무섭군요.”
저 만주 지역에 그때도 연합군이 수십만 대군을 주둔시키며 소련을 막을 수는 없다.
방 빼고 편안히 지켜보고 싶다면, 무조건 아시아의 군사력을 키워서 써먹어야 한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겁니다만, 지금과 같은 전쟁이 또 일어납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나? FDR이 영원한 평화를 만들겠다 했잖아?”
“더글러스 장군이 그러더군요. 모헬 원수께서 떠들 때는 반박하지 말고 동의해라. 그럼 알아서 정보를 토해낸다.”
“……”
더글러스 이 새끼는 날 어떻게 떠들고 다닌 거야? 내가 뭐 정보 토해내는 기계야?
“전쟁의 위기는 있을 거야. 아마 꽤 오랫동안 지속되겠지. 그러나 실질적으로 일어날 확률은 낮네. 적절한 준비만 이뤄진다면 으음…. 자네 죽을 때 즈음엔 끝나겠지?”
“그럼 프랑스가 일으키는 전쟁은 아니란 말이군요. 말이라도 다행입니다.”
“뭐?”
우리 지금 소련 이야기 하는 중 아니었냐. 아니, 미국은 그럼 그다음 전쟁은 프랑스가 일으킨다고 생각했단 말이잖아.
“왜 그런 망상을 하는 겐가. 난 전쟁을 좋아하지 않아.”
“솔직히 지금 세계 대전도 프랑스가 먼저 시작한 전쟁이…. 음, 아닌 것 같습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험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는 발언에 아이젠하워는 시선을 슬쩍 피했다.
“군사적 행동은 나치가 먼저 했지. 난 조약의 의거한 정당한 대응을 했을 뿐이고.”
“그래도 이탈리아 국경 넘으면서 선전포고하신 건, 마치 그 순간만을 기다리신 게 아닌지…. ”
“이야기가 잠시 샜군.”
비록 그때 조약 취급이 베를린 길거리 개도 무시하는 조약이었지만 여하튼, 난 단 한 차례도 명분 없이 움직이진 않았다.
“어차피 전쟁물자 다수는 챙겨서 못 돌아가니, 아예 장제스에게 넘겨. 그리고 그 대가로 다른 것을 받으면 되네.”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까?”
“우리도 현지 세력 뽑아서 손에 총을 쥐여 줘야지. 잘 골라야겠지만.”
직접 통치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복잡함이지만 이게 맞다고 본다.
“이거 독재자들이 마구잡이로 양산될까 무섭습니다.”
“왜, 내가 독재자라 독재자에 관대하다 생각하나?”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습니다만.”
“FDR 임기가 33년부터였지. 나랑 크게 차이 안 나는구먼.”
너희는 조지 워싱턴의 정신은 이미 개박살 났잖아. 자꾸 고결함을 강조하면 결국 우리 둘 다 곤란하다고.
“그럼 군정은 결국 그 후보를 고르고 키우는 시간입니까?”
“그럼 뭐라고 생각했나. 단순히 민주주의에 익숙해지는 과정? 현지 국민들에게 자신들을 해방시켜준 자들이 누구인지 인지시키는 행위?”
지금 중화민국도 그렇지만, 아시아에서 완전히 자립할 만한 국가는 없다시피 하다.
아직 그 어떤 아시아 국가도 온전한 독립을 해도 괜찮음을 증명하지 못했다.
그걸 왜 연합국에 증명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럼 알아서 일제 치하 벗어났어야지.’
일단 해방은 시켜줬지만, 세상에 무료는 없는 법.
“총사령관, 결국 우리도 이곳에서는 외세일 뿐이네. 그걸 잘 알아야만 해.”
“이거 참, 마냥 인종 문제 같진 않습니다.”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가 백인이어서일까, 아니면 과거 우리의 업보일까.
이유가 뭐가 되었든 확실한 건,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선택지가 없다는 점이다.
***
중국 공산당이 본인들의 의지와 관계 없이 전부 친일파 취급을 받은 것처럼, 아시아 동쪽의 작은 반도, 조선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분명 조선 독립을 위해 한평생을 힘썼는데. 가산을 팔고 제 한 몸 독립운동에 투신해 가족마저 외면한 채 조국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는데.
그들에게 돌아온 시선은 ‘매국노’라는 차가운 눈길뿐이었다.
“백범! 어째서 우릴 모른 척하는 건가! 이봉창 선생의 의거처럼 우리 의열단 역시 일제 암살하면 누구보다 선봉에 서지 않았나!”
“의열단의 활동은 최근 3년간 멈추지 않았소!”
“그, 그건 어디든 마찬가지였잖아! 중국까지 손 뻗은 일제의 손길을 피하기 급급했으니까! 우리 모두 제 살길 찾느라 바빴으니까!”
“아니다. 우리 한인애국단은 단 하루도 활동을 멈춘 적이 없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다시는 찾아오지 마시오.”
중국 공산당의 열렬한 지원을 받던 동북항일연군이 해체되었고.
중도좌익으로 오직 모든 이념이 항일과 조선의 미래에 초점을 맞췄던 조선민족혁명당은 7년에 걸쳐 결성했던 조직을 해체했다. 당연히 산하 군사조직이었던 조선의용대 또한 유명무실해졌다.
이름부터가 원하는 바를 드러내는 조선독립동맹은 상하이에 위치한 임시정부 소속으로 활동까지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심상치 않은 임정 분위기에 의장 김두봉은 자진 사임해 버렸다.
모두 똑같이 나라를 위해 힘썼을 뿐인데. 그들이 노래하는 모든 노랫가락이, 눈을 뜨고 생활하는 모든 시간이 조국의 해방만을 간절히 바라며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내다버리다시피 했는데 돌아오는 것이 멸시의 눈길이라니.
그 어떤 단체보다 일본군과 많은 교전을 했던 화북지대 조선의용군은 한때 2만 6천 명의 군사력을 보유할 만큼 세를 키웠었으나 지금은 조금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모두 방식과 생각만 다를 뿐,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같았다.
그러나 정작 그 목적이 이뤄지고 나서는, 서로 상반된 입장과 상황이 펼쳐졌다.
운명의 장난인지 임시정부가 위치한 상하이에 들어선 연합군의 총사령부.
이대로 임정의 분열을 두고 볼 수 없던 백범은 문전박대 당할지 모름에도 무작정 연합군 총사령부의 대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시각에.
“다들 프린스 리라고 부르길래 궁금하긴 했습니다.”
“하하, 이 씨 왕가의 먼 친척이기도 하지요. 이제는 중요하지 않지만요.”
친미의 끝판왕이 먼저 움직인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