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김구가 다시 모헬을 만날 기회를 얻은 건 이 주가량 시간이 지나고서였다.
매일같이 찾아갔음에도 전과 같은 행운이 없자, 어쩔 수 없이 김구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찾아오고 다시 총사령부로 향하던 길.
“모헬 원수님을 뵙게 해주시오! 우리 타이는 일본과 동맹을 맺지 않았소!”
“자, 손님 나가신다!”
“강압적 동맹이었어! 강제 선전포고였다고! 송크람의 독재 타도! 자유 타이 만세에에!”
옆으로 질질 끌려나가는 이름 모를 자의 모습이 참으로 처량해 보였으나 김구는 자신도 누군갈 동정할 처지는 아님을 깨달았다.
저자가 끌려나온 입구로 들어가는 입장. 자신 또한 자칫 저리 끌려나올지도 모른다.
그리 오랜만에 보는 얼굴도 아니건만, 정체를 알고 만난 모헬 원수는 전보다 훨씬 날카로워 보였다.
“젠장, 다 처음 보는 새끼들인데 뭐 요구하는 게 그리 많은지. 나도 모르는 채무가 그리 많았나?”
“투자, 투자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빨리 끝내셔야 다음 달에라도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자신이 뽑는 대통령 얼굴은 보고 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라디오 없는 집 없잖아. 그걸로 여기서 뽑아달라고 말하면 안 되나? 그래도 뽑아줄 것 같은데?”
“지구 반대편에서 라디오로 선거라, 각하께서는 오늘도 신박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모욕하십니다.”
어쩌면 저 쌓여있는 서류와 악몽에라도 시달린 듯한 수심 깊은 얼굴 때문일까.
처음 만난 날 본인이 어떻게 저자와 대담을 나눴는지 기억도 안 날 지경이었다.
“내가 손님을 모셔놓고 일만 하고 있었군. 그래서, 오늘은 뭐가 궁금해서 오셨나?”
“베르게르 모헬 원수 각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음? 저번이랑 태도가 조금 다르네?”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각하의 대답도, 제 질문도.”
“하하, 그렇지.”
여전한 여유로움. 그러나 그 안에 잠재된 무언가에 김구는 두려움을 느꼈다.
‘저자가 그토록 악명 높은 학살자라니….’
미국과 손잡고 모든 식민지를 해방하겠다 선언한 그 진심은 모르겠지만, 과거 그의 행적이 가리키는 건 명확하다.
보통 식민지를 통치의 대상, 교화의 대상으로 낮게 바라보는 백인들 특유의 사고와는 달리 모헬 원수는 죽여야 할 적으로 인식했다.
이자는 힘없는 식민지조차 전쟁해야 할 상대로 본다는 것이다.
“일제가 미군정으로 확정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연합국의 감시가 붙겠지만, 딱히 의미 없는 요식 행위지. 미군정이 맞소. 군정청이 설치될 것이고 헌법부터 전후 재판까지 전부 그들의 손안에서 움직일 거요.”
“조선에도 군정청이 설치됩니까?”
“당연하지.”
“그 군정청 사령관은 누구입니까?”
“아직 정해지지 않았네.”
“모헬 원수께서 정하실 수 있습니까?”
“가능은 하지? 다만 굳이 내가 손대고 싶진 않군.”
김구는 누구보다 백인스러워 보이는 자가 베푸는 친절이 왜 어색한지 대화하면서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무관심. 혹은 약간의 호의. 마치 길 가다 어린아이가 넘어진 것을 보곤 일으켜 주지 않고 말로만 위로해주는 느낌이다.
“왜, 프랑스가 조선 군정청을 이끌었으면 좋겠나?”
“미군과 대육군, 어디가 나은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최대한 빨리 군정청을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어딜지 생각해봤습니다.”
“오, 두 나라 중 어디가 더 정상화 빨리 해주고 자주권을 돌려주는지? 그래서 어디가 빠를 것 같나?”
“프랑스. 제 생각에 프랑스가 더 빠릅니다.”
“이유는?”
처음으로 무심함을 벗고 흥미를 보인 모헬은 김구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한때 적국으로 전쟁까지 하던 이탈리아와 독일이 지금 살아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보게, 두 나라가 자신들의 실수를 쉽게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수십만이 과거를 지우기 위해 전쟁터에서 죽어나갔고, 국가의 운명을 걸고 마지막 코인을 하늘 위로 던졌을 뿐이니.”
물론 김구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당당히 연합군 총사령부의 한 곳을 차지하는 독일국방군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분명 전 세계가 손가락질하던 나치의 국가가, 아시아에서는 당당한 승자로 일어섰다.
그 과정과 뒷이야기가 무엇이든 간에 결국 프랑스가 일으켜 세운 것 아닌가?
‘우리 조선도. 역할만 찾는다면 가능하다.’
지금 자주권만 찾고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다. 저 일제가 다시 미국의 지도 아래에 성장할 때 수십 년간 고통만 받아온 조선은? 두 눈 뜨고 피해자의 위치에서 절망만 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미국과 프랑스.
이미 미국은 일본을 택했다.
그럼 조선은 프랑스가 들어와도 되지 않을까.
“전례 없는 빠른 성장을 한 국가. 그리고 용서할 배포를 가진 국가.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나아가 남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갖춘 국가. 그 나라의 군정이라면 배울 만하지 않겠습니까?”
“쯧, 아부가 심하군.”
“해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프랑스는 조선이 북쪽에 군사를 배치하고 일본과 중화 사이를 잇는 역할을 바란다. 동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한 반도가 있으면 극동의 영향력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즉, 조선은 자주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조선이 미국에도, 중국에도, 일본에도, 소련에도 흔들리지 않길 유럽이 바랄 테니.”
“…이거, 준비를 꽤 많이 해오셨구먼.”
이젠 단순 흥미를 지나 진지함을 보인 모헬은 잠시 책상을 두드리다가 부관을 불렀다.
“빅터, 다음 일정이 뭐지?”
“헐 국무장관과 식사 자리가 잡혀있습니다.”
“오늘은 저녁을 좀 늦게 먹고 싶군.”
모헬은 약간의 시간을 더 할애하기로 마음먹었다.
***
텅 빈 가을 하늘에서 산타의 선물이라도 투척한 듯 처음으로 제3자의 시선에서 벗어난 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대화에 임했다.
“우리 백범 선생 말에 따르면 조선이 자주적인 국가로 살아남기 위해선 프랑스를 절대 내칠 수 없다, 이렇게 들리는데.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지리학적으로 조선과 프랑스의 친분이 절대 무너질 수 없단 이야깁니다.”
“그 외에는 다른 혜택은 없나?”
“왜 영국이 대만과 홍콩에 집착했겠습니까? 본토와 먼 거리. 그렇기에 거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지금 조선이 그렇습니다. 일본으로도, 만주로도, 중국으로도.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조선의 성장은 곧 프랑스의 잠재적 영향력입니다.”
“내가 알기로 선생은 문화적 강국을 표방한 것으로 아는데? 이런 경제, 군사적 강력함은 반쯤 포기하지 않으셨나?”
절대 아는 척하지 않으려 했으나 상대가 너무 세일즈를 잘하지 않나. 아마 미군정이 일본에 들어온다는 생각 때문일까. 절박하게 후원자를 찾는 게 느껴진다.
“문화강국이란 의미는 군사적으로 타국을 침략하지 않음을 말하지, 절대 약소국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만주의 억제력에 조선이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그래봤자 난 자네들에게 외세 아닌가.”
조선이 되살아나서 내가 원하는 수준의 역할을 한다라. 얼마나 걸릴까. 최소 10년은 꾸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20년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
‘이 정도 기간이면 대육군을 다시 키우겠는데?’
이런 얄팍한 관계만으론 조선을 키워줄 이유가 없다.
특히나 눈앞의 한 사람, 그리고 중국에서 활동했다는 임시정부만 믿고 들어가기엔 위험도도 너무 크고.
“다른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백범 선생, 얼마 전에 또 한 번 그쪽에서 이승만이란 자가 찾아왔네.”
“…그렇습니까.”
“이번에는 미국 전략사무국의 도노번 소장을 만나고 가더군. 아마 아시아 향후 구도에 관해 궁금했던 모양이야.”
그래봤자 도노번이 딱히 해준 이야기는 없다. 그쪽은 일단 선거가 끝나야 군인들이 입을 열겠더라고.
“난 그에게서 새로운 독재자의 가능성을 봤네. 나는 수많은 독재자들을 봐왔지. 이 독재, 그러니까 권력의 집중에는 양면성이 있어 시기에 따라 장단점이 존재하는데… 난 지금 조선이 분열하기 최적기라고 생각하네. 즉, 권력의 집중이 필요하단 의미지.”
“…조선은 독재국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분열해서 국가가 갈가리 찢기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 뭉쳐있을 수단이 이것뿐인데. 권력에는 중력이 있다네. 사람을 끌어모아 한곳으로 뭉쳐주지.”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자넨 어디까지 가능한가?”
진짜 묻고 싶은 질문을 뱉었다.
조선과 프랑스의 관계? 그딴 게 있지도 않은데 뭘 믿고 저길 들어가. 내가 바라는 방패막이 이상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계산이 틀리지.
“임정이란 단체가 국가를 위했다는 것, 내 잘 알겠네. 그럼 이후에도 분열하지 않고 계속 그럴 수 있나? 내부의 적이 생기면 도려내고 분열하려는 놈이 있으면 철저히 짓밟을 수 있냐, 이 말이야.”
“그게 중요합니까?”
“이게 내가 군정청 사령관을 우리 사람으로 만드는 첫 조건이야. 난 모든 조선인을 믿진 못하네. 그러나 자네들은 다르지. 그래도 보여준 게 있잖아?”
우리 둘 사이에 신뢰가 부족한 걸 알지만. 그보다 더 신뢰가 없는 게 바로 프랑스와 조선 사이의 관계다.
그나마 마지막 관계를 떠올려보면….
‘쓰읍, 조불 통상 조약? 이건가?’
대충 우리 프랑스가 식민지에 미쳐있던 시절 조선도 식민지 만들어 볼까 고민한 흔적이 드러나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음, 신뢰가 있을 린 없군.
더 떠올리려고 해봤자 게렝 제독의 병인양요가 떠올라 난 깔끔히 새로 판을 까는 게 맞다고 느꼈다.
“자네도 이쯤 되면 알 거야. 어차피 독재자는 나온다. 그러나 자네가 깔끔히 임기 동안 기반을 만들고 물러난다면?”
“전례는 사례를 만들기 마련입니다.”
“아니지. 전후 특수성. 군정청에서 막 독립한 시기임을 생각하면 충분히 인정될만해. 아무튼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네.”
과연 백범 선생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나라를 사랑한다던 그가 자기 손에 오물을 묻히며 조선의 기반을 닦을만한 사람인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난 철저히 조선을 이용하는 강대국 입장으로 돌아설 것이다.
‘그게 아니면 프린스 리에게 같은 제안을 해봐야 하나.’
그쪽은 신대륙 냄새 너무 묻어서 좀 별로긴 한데, 어쩔 수 없겠지.
부디 그가 고고하게 하늘을 떠다니는 대신 진흙 바닥에 구르길 바라며 난 자리를 옮겼다.
***
미 국무부 장관 코델 헐.
내가 저 양반 국무장관으로 근 10년을 마주한 것 같은데 꽤나 일을 잘하는 편인가 보다.
루스벨트 후계자라기엔 아쉽지만 여하튼 리틀FDR로 헐은 마냥 프랑스의 작은 행동에 크게 발작하지도, 프랑스가 약탈경제로 돌아간다고 믿는 음모론자와도 거리가 있다.
즉, 미국 측 인간들 중 나랑 말 통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뭐라고?”
“프랑스가 생각하는 최후의 전쟁은 소련과의 전쟁인지 루스벨트 대통령께서 궁금해하십니다.”
“전쟁은 끝났네만.”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는 법이니 또 다른 전쟁을 프랑스에서-”
“워, 워. 잠깐만. 내가? 지금 아시아에서 당신들이 질질 끌던 전쟁 끝내고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 이 내가, 아시아에서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고?”
“꼭 그런 건 아니고, 혹시 그러한 가능성 자체를 여쭈고 싶어 하십니다.”
근데 사람은 오래 봐도 알 수 없다고, 헐 또한 신대륙에 돌아다니는 흔한 망상증에 걸렸을 줄은 몰랐다.
“아니, 헐 국무장관. 자네가 보기엔 내가 또 전쟁할 인간으로 보이나?”
“저희에게도 정보가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중국, 조선, 일본. 이 삼국의 최근 분위기를 보면 한 가지 전례가 떠오릅니다.”
“난 안 나는데?”
“저지대 연합, 이탈리아, 나치.”
“그게 연상이 된다고?”
시발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그럼 몸속에 빨간색 피가 흐른다고 빨갱이냐?
“자네 상상력은 나도 감당이 어렵군.”
“무솔리니의 파시즘 전도사들이 남미에 퍼지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이를 방관, 혹은 도운 정황도 포착되고 있고요.”
“유럽 애들이… 남미에 있다고?”
“황도파에서는 자신들의 패전 죗값을 소련과의 전쟁을 통해 용서받겠다고 합니다. 그 뜻이 프랑스의 뜻이라고 공공연히 외치고 있습니다.”
“잽스가 독일국방군은 아니잖아.”
“최근 잦아지신 조선과의 접촉도, 장제스의 군사독재 기반이 생겨가는 것도-”
“그게 전부 소련과의 전쟁을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각하께서는 동토에 가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전후 처리 과정이 또 하나의 전쟁 준비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이게 모스크바 코앞에 놔두고 돌아온 사람한테 할 말인가? 우리 프랑스가 소련을 놔둘 리 없으니 분명 다시 전쟁할지도 모른다?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무감정하게 쳐다보니, 무안해진 헐이 슬쩍 고개를 돌리며 변명을 이었다.
“물론 이건 그냥 일부 우려일 뿐입니다만, 믿는 자들이 꽤나 있습니다.”
“그래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소련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어떠십니까? 수교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대화가 가능한 수준만 되어도 이런 염려는 다 사라질 것입니다.”
이거 루스벨트가 노년에 섬망 증세라도 생겼나. 자꾸 말 같지도 않은 가능성 따위로 날 움직이려 하시네.
그러나 웃을 수 없는 것은.
“헐 장관, 자네 지금 진지하게 하는 이야기지?”
“…그렇습니다.”
저 국가 자체가 음모론 신봉자라는 것이다.
나와 소련의 차가운 전쟁이.
저것들 눈에는 아주 뜨겁게 타오를 것처럼 보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