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각하? 저희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됩니까? 선거가 석 달 남았는데요?”
“그럼. 자네가 남아서 내 몫까지 해줄 건가?”
“어우, 그건 절대 아니죠.”
“그럼 닥치고 일이나 하게.”
결국 또 왔다. 지옥 같은 전후 처리 기간. 모든 직업이 바쁜 순간이 각자 있다지만 이 군인이라는 직업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전쟁을 겪고 나면 진짜 고난이 시작되는 것 같다.
마치 군대에서 훈련이 끝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물자 정리하는 게 가장 힘들 듯, 나조차도 이 빌어먹을 전후 처리의 수마에서 빠져나올 순 없었다.
“후우, 중요한 것부터 말해봐.”
“헐 국무장관이 현재 상하이로 왔습니다. 저와 회담 날짜를 정하자고 하는데 언제로 하시겠습니까?”
“날은 상관없고, 선거 전에는 유럽으로 돌아가야 하긴 하니 이왕이면 아시아에서 하자고 해보게. 다음.”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무작정 찾아와서 기다릴 정도로요.”
내게 친일파와 공산당을 처죽이겠다고, 그러니 힘을 실어달라고 찾아오는 이들은 아시아에 넘쳐난다.
내가 공산주의를 누구보다 혐오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리고 과거 유럽에서 그러했듯 손발만 맞으면 독재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생각해 무작정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 속에서 어떻게든 잘 골라봐야지.’
아예 반프랑스 코인을 제대로 탔다가 확장했던 국토 전부 반납하고 밤낮으로 본관 건물 앞에서 서성이는 인도차이나의 시암.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친프랑스 외치는 일제 황도파.
곳곳을 돌아다니며 충성 서약서를 차곡차곡 모은 뒤, 군대 재건과 공산당 척결에 들어간 장제스 파벌.
붕 떠버린 만주와 관심도 못 받고 있는 조선.
그리고 한때 열강들이 나눠 먹었던 남태평양 식민지들까지.
인정해야 한다. 연합국이 일일이 신경 쓰며 아시아를 가꾸긴 힘들다.
곧 시작될 군통 시대 또한 이 문제들을 잠시 미루는 것일 뿐,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즉,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을 고르는 능력. 더 정확히는 사람을 뽑을 권력과 자격을 갖춘 인간이 지금 연합군 총사령부에 필요하다.
‘문제는 그게 나밖에 없다는 거지.’
아프리카 넘겨 받은 처칠은 이젠 아시아에 오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니, 처칠은 그렇다 치고. 루스벨트는 왜 아시아에 안 오고 있는 거야?”
“…몰라서 그러십니까?”
“왜.”
“미국도 올해 선거입니다.”
“아.”
44년, 미국이 선거할 때가 되긴 했네.
‘근데 나도 선거할 때인데? 난 뭐 선출직 대통령 아냐? 왜 나만 일하냐고!’
그래 놓고 또 내가 마음대로 결정하려 하면 아이젠하워부터 찾아와서 드러눕잖아.
혼자만 일하는 느낌이라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와중.
“모헬! 필리핀의 대원수께서 돌아왔다네!”
“아, 꺼져.”
내 불만을 캐치했는지 미국이 다 끝난 전쟁에 맥아더를 보냈다. 그래도 이 새끼라도 있으니 최소한 진행은 되겠다 싶었으나.
“…뭐? 다시 말해보게.”
“내 다음 선거에 나갈까 해. 정확히는 4년 뒤지.”
“FDR이 그리 시키든? 민주당 소속으로 나가라고?”
“아니? 공화당 소속으로 나갈 건데?”
“…….”
더글러스는 일하러 온 게 아니었다. 독재자 모헬에게 차기 선거 컨설팅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
“빨갱이 쉑.”
“아, 된다니까 그러네.”
공화당, 그 시뻘건 놈들은 말이 보수지 당장 FDR과 경선 중인 토머스 듀이만 봐도 살짝 빨간맛이 묻어 있다.
“왜, 그딴 발상을 했나? 누가 자넬 뽑아 준데?”
“물론 지금 FDR을 상대로 이기긴 힘들지. 그러나 4년 뒤에는 다르다네. 여전히 프랑스와의 긴장감이 국내 여론에는 팽배해. 반공 노선에 프랑스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아시아의 발전을 시킬 사람? 나밖에 더 있나?”
“장담하지. 지금 바닥에 등을 붙이는 아이젠하워가 자네보다 나아.”
대충 더글러스가 설명한 정치테크는 알겠다.
군사통치 기간을 아시아에서 지내고 4년 뒤에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심산.
미국 내에서 유럽 전문가로 인정받으며 군인 커리어 또한 끝을 찍어봤으니 이력 자체는 흠잡을 데 없긴 하다.
“미국은 이미 민주당의 오랜 집권에 질렸다네. 다만 전시 분위기가 여전히 이어지니 FDR 개인에게 표를 던지는 것일 뿐.”
“설마 나 때문은 아니지?”
군인이 정치하는 시대는 고점이 조금 지났는데 말이야. 뻔히 나랑 루스벨트가 평화의 시대가 온다고 소리쳐댔는데 ‘역시 군바리의 끝은 정치!’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빨리 고쳐먹길 바란다.
곧 화끈한 군축과 뜨거운 문민통제의 맛이 세상에 도래할 터이니.
“그래도 4년 뒤라니 지금은 일하러 온 건가?”
“일본 군통 사령관이 나라네.”
저 미군 놈들 선거 한창이라고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쭈그려서 눈과 귀를 닫은 채 올 스탑해버리는 꼴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는데 드디어, 대화를 나눌 놈이 생겼다.
“후우, 그래. 그 정도라도 되니 다행이야. 일단 내가 제일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네. 미군은 아시아에 병력을 얼마나 남길 것인가?”
“…나도 모르지?”
“대충 알 거 아닌가.”
“어, 그래도 십만은 되지 않겠나?”
“응?”
백만을 십만이라고 잘못 말한 거겠지?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대륙을 오직 군사통치로 운영해야 하는데 십만일 리가 없잖아.
“그래, 백만 명이라면 충분히-”
“아니. 제대로 들었네. 십만. 일본에 가장 많이 배치될 거야.”
“…혹시 자네 스탈린이랑 여기서 다시 회담하고 싶나?”
“왜, 그 정도인가?”
이, 이 미친 작자들이 군통을 뭐로 아는 거야. 아무리 많은 군사도 흩뿌리면 별로 많지도 않다.
프랑스 본토, 아프리카 식민지, 독일, 발트 삼국, 우크라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폴란드, 그리고 이곳 아시아까지.
한때 질적으로도 수적으로도 최고최대라던 대육군도 곳곳에 뿌려보니까 별로 크지 않았다. 본토에서는 아시아 전쟁 때문에 소련 억제력 떨어진다고 난리도 아니더만.
근데 십만? 이걸 주둔군이라고 놔두겠다고?
“우린 프랑스가 아니야. 지금도 말이 징집이지 대부분 자원병이었다니까? 아시아에 백만씩 주둔할 수 없네. 저 장병들도 각자 가정이 있고 돌아갈 집이 있어.”
“그럼 우린? 돌아갈 집은커녕 돌아가자마자 집부터 지어야 할 독일국방군은? 몇 년 키워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이 아시아 국가들의 국방은?”
“대신 해군은 충분히 놔둘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하나?”
지금 해군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느 때보다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며 현지 반란 일어날 엄두도 못나게 만들어야 할 놈들이, 지금 나한테 집 가고 싶다고 징징거린다고?
“진정 좀 하게. 바로 십만으로 줄인다는 것은 아니고! 최종적으로 그렇다고!”
“하아, 정확히 언제.”
“1년.”
“장난까는 소리하지 말고. 3년. 주둔군 최소 30만.”
“우리 본래 육군 병력이 50만이 안 되었는데 불가능한 소리야!”
“그럼 군축하지 마.”
이래 놓고 마셜이 군축한다? 나 진짜 아시아 어떻게 뒤엎을지 몰라.
“일단 하나는 서로 확실해졌군.”
“뭐.”
“장제스, 그리고 조선. 군대 재건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네.”
“미리 말하지만 일본은 어림도 없네. 거긴 전범국이야.”
“그러니까, 중화민국을 더 키워야 한다고.”
벌써 방 뺄 생각부터 한 미국. 난 절대 두고 볼 생각이 없다. 왜냐면 이 새끼들이 여기 남아야 우리 유럽 연합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이다.
프랑코의 군대도 돌려주고 독일국방군도 진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대육군도 돌아오지.’
그래 놓고 일본은 절대 군사력을 못 키우게 만들 거라고? 그럼 남은 선택지가 없네. 장제스와 조선이 만주 틀어막게 만드는 수밖에.
“곧 회의 시간이라 난 가야 해.”
“무슨 회의?”
“우리 프랑스 쪽이지. 아무튼, 새로 부임하신 일본 군통 사령관. 괜히 미군이 발 빼서 아시아 통제력 상실하면 내가 다시 돌아올 줄 알게. 무슨 말인지 알지?”
“자넨 그 협박 좀 하지 마. 농담인지 구분이 안 가니까.”
“농담 아니야.”
겉옷을 걸치고 나갈 준비를 하며 난 나지막하게 못 박아뒀다.
너희가 주창한 아시아의 평화가 이제 도래했잖아.
그럼 그걸 지키는 것도 미국의 몫이지.
붉은 군대가 동토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남하하는 순간 미국은 자격이 없다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
맨 처음 아시아 전후를 예상했을 때.
그러니까 약 2년 전즈음에 우린 특정 지역, 또는 국가를 중심으로 프랑스의 이권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투사해야 할 곳이 분산된 프랑스와 달리 미국은 남미를 제외하면 아시아에 국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상황. 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철저히 지역 중심으로 방어적 경영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 거다.
그땐 막 본격적인 아시아 전장이 열리기도 전이라 우린 인도차이나 반도 중심으로 중국 대륙 진출을 목표로 했다.
적당히 인도차이나를 거점 삼아 대륙에 빨대를 꽂는 구조.
그러나 전쟁이 지속될수록. 그리고 정치에 정치를 거쳐 그림이 구체화될수록 우린 계획을 바꿔야만 함을 느꼈다.
일단 영국이 자진사퇴했고.
미국의 전공이 예상보다 적었으며.
아시아에서 우리 프랑스의 입김이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
“미국은 그 중심을 일본으로 잡았네. 일본을 거점으로, 중국에 진출할 생각이야.”
“페탱 원수님, 그럼 저희도 인도차이나를 중심으로 밀고 나가면 되지 않습니까?”
“안 될 겁니다. 자칫 아시아가 둘로 나눠져 지역 경쟁으로 심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바엔 아예 섞어버리는 게 낫습니다.”
“섞다니? 어떻게?”
우리 셋은 전쟁이 끝나고서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비록 한평생 군인으로 살았다지만 페탱과 베이강 두 사람의 식견은 나조차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모여 우린 전후 구도를 하나씩 뜯어보았다.
“인도차이나, 일단 거점 역할로는 좋습니다. 다만 미국이 필리핀을 못 버리고 남태평양에 미련이 남아있듯, 우리도 동아시아에 거점을 두어야 합니다. 특히나 만주에 군사력을 일부라도 주둔시킬 생각이람면 말이죠.”
“그러니까, 정확히 어떻게?”
“음, 조선 어떻습니까.”
내가 조선의 쓸모에 대해 수없이 생각해봤을 때 내린 결론은 이게 최선이었다.
결국 지리학적인 쓸모. 만주 바로 아래, 소련 방패막이. 일본과 중화 사이에 있다는 장점 하나. 그리고 반도라 어느 바다로든 진출이 쉽다는 점.
그거 외에 다른 것을 원한다면… 차라리 장제스를 이용하는 게 낫다. 편리함도, 인구도, 경제 규모도, 발전도도. 장제스 쪽이 비교할 바가 안 되게 크니까.
“흠흠, 그건 그렇고. 모헬, 나와 베이강은 곧 은퇴할 나이라네. 아니, 어쩌면 전후 처리가 끝나기 전에 떠날지도 모르지.”
“알고 있습니다.”
베이강 원수도 올해 일흔일곱이다. 프랑스 남성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진작에 군생활 접고 노년기에 접어들었어야 할 나이.
다만 두 거장이 한꺼번에 대육군에서 사라진다면 그 타격은 꽤나 클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대육군은 그 송곳니가 날카로움을 드러내고 살아야만 해. 그래야만 하는 시기니까.”
“전후가 그렇지요.”
“다만 그 전후 시기마저 끝난다면. 그리고 진정 전쟁 없는 시대가 돌아온다면, 대육군은 변해야만 하네. 아마 새로운 개혁이 되겠지. 다행히 그 일은 내가 죽고 나서일 테니 난 신경 끌 수 있겠구먼.”
“…예, 예.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십니까?”
“전후 대육군, 아시아에 파비앵을 두는 건 어떤가?”
“자키 파비앵? 그 자식을요?”
아니, 오히려 나보고 꽉 쥐고 있으라 할 줄 알았는데 파비앵을 아시아에 두라고?
“자네의 기둥이 하나 사라지는 기분이겠지만, 난 이게 대육군이란 조직이 건강하게 남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네. 절대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아시아의 이권을 지키며. 마지막으로 자네 아들한테 부담도 안 가지.”
“나도 비슷하게 생각해. 가믈랭 그자는 원수직 달아주고 갈리에니 장군처럼 파리 총독직만 줘도 좋아할걸?”
“아니, 잠깐만요. 지금 두 원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게 뭡니까?”
“알면서 묻나. 전후 처리에 가장 손대기 어려운 부분. 그건 바로 제 살을 도려내는 것이지.”
“군축. 슬슬 준비해야 하지 않겠나?”
나도 인지는 하고 있다. 워싱턴 군축 조약 같은 제재도 없어 수십 년간 무한 성장만 해온 대육군.
그 집단을 다루기 편하게 썰어내야 할 때는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을 거다.
그 어떤 정책이나 작업보다 정교해야 하며 분명 그 작업은 군 내부에서 하는 게 좋은데 정작 군인은 시행하는 것만으로도 자기 기반을 버리는 행위이자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다만, 여기 두 인간 빼고.
“…제가 너무 떠넘기는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7년을 더 해야 할 텐데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게.”
“나와 페탱 원수님은 어차피 은퇴할 몸이야. 누가 감히 우릴 욕하겠나?”
“…….”
생각지도 못한. 그러나 너무 미안한 선물.
두 사람의 마지막 업무가 정해졌다. 내가 전후 처리 과정에서 프랑스의 이름을 드높일 때.
여기 두 원수는 스스로의 인망과 평판을 망칠 작업을 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