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본토에서 내 귀로 꼭 들어와야만 하는 소식들을 확인하고 아시아 현지 일처리까지 하면 나의 하루에 개인적인 시간은 점점 사라져만 갔다.
유럽에서와는 달리 나 혼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경우는 극단적으로 줄었다.
최소한 미국, 혹은 다른 연합국들과 의견을 맞춰야만 하니 확실히 전쟁이 끝나기 전임에도 프랑스의 독주가 아시아에서는 허용되지 않을 것만 같다.
온갖 이권, 영역, 군통 정부 수립과 현지 세력 선별 작업.
수많은 일감 속에서 판단 한 번에 신중을 가하는 와중, 미뤄두었던 또 다른 일이 날 찾아왔다.
“내가 최근에 바빠서 신경을 못 쓴 것 같네.”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옆이 자네가 말한 그 친구인가? 나랑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지?”
“그렇습니다.”
꽤나 잔류하게 될 프랑스군과 달리 전쟁이 끝나자마자 대부분 아시아로 돌아가게 될 독일국방군.
‘독일의 전후처리는 온전히 우리 프랑스의 몫이지.’
여기에 거수기 정도로 저지대 연합, 덴마크, 그리고 폴란드 정도가 끼게 될 거다.
“만슈타인 중장이 이리 진지하게 나올만한 일은… 역시 독일의 전후처리인가?”
“지난 2년간 독일국방군의 장병들은 나치의 잔재를 씻어내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 값을 얼마나 쳐줄 것인가, 알려달라?”
“…독일로 돌아가기 전에 약간이나마 듣고 싶습니다.”
과거 적이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만큼 함께 싸워온 시간이 꽤 되긴 했나 보다.
만슈타인의 말대로 2년간 독일국방군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적의 아래로 들어가니 차라리 안 싸울 수도 있었을 텐데, 이 게르만 장병들은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독일은, 지금 전쟁터에서 희생하는 이들 덕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수고했네. 먼저 이것 하나는 약속하지. 나치가 독일에 채운 족쇄는 자네들이 직접 끊은 거야.”
“그 말은….”
“전범국 취급은 없을 거네. 현 독일 연방공화국은 당당한 연합국의 일원으로 승전국의 지위를 얻을 거야. 즉, 배상금, 영토 배상 따위 없을 것이고 독자적 정부를 세울 것이네. 독일로 돌아가거든 거리로 나가 당당히 말하게. 그 자격을 누가 되찾아왔는지. 그러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인정해야만 한다. 나치 독일이 프랑스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처럼 현 독일은 그만큼 우리의 앞길을 터주었다.
‘영원토록 짓누르거나 멸망시킬 게 아니라면, 품는 게 옳다.’
내 확언이 떨어지자, 만슈타인은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듯 잠시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떨구었다.
시종일관 침묵하던 에르빈 롬멜조차 떨리는 미소를 짓는 것이 그들이 이 순간을 기다려 왔음을 말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지. 루르와 라인란트 관련 역사적 의견이 분분한 것은 둘째 치고 이미 프랑스의 영토로 편입되었네. 현재 재건위원회가 도시 위주로 재건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정당한 독일 정부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진 않지. 쉽게 말해, 이대로면 경제 회복은 10년이 지나도 어림도 없단 뜻이야.”
“방법이 있으십니까?”
“아예 프랑스의 자본을 전부 끌어다가 독일 국토 전역에 때려박으면 살아나지 않겠나.”
“그건….”
“아아, 나도 무슨 말을 할지 아네. 경제적 식민지 아니냐, 이 말이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만슈타인의 말에 난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전쟁이 끝나면 실업률이 얼마나 될 것 같나? 20퍼센트? 30퍼센트? 최소 35. 어쩌면 40을 넘어갈 거야.”
“전역하는 군인들 때문입니까.”
“솔직히 말해 독일 장병들 월급도 프랑스가 거의 내주고 있는 실정이지 않나.”
일단 재건위원회 중심으로 가정당 한 명은 재건사업에 끼워 넣으려고 하고 있긴 한데, 여기에 전역한 군인들이 대거 쏟아지면…. 분명 그 혼란은 사회 전체로 퍼진다.
“반면 루르를 떠올려보게. 과거 동부권에 살던 사람은 서쪽에 이사만 가도 일터가 보장되다시피 했지.”
“루르는 이미 프랑스 영토입니다.”
“무슨 상관인가. 출입을 쉽게 하면 되는 거지. 거주 지역을 마련해줄 수도, 나중에는 공장 이전과 합작을 쉽게 할 수도 있지. 뭐가 되었든 양국의 왕래가 쉬워진다면 재건도 빨라진다는 거야. 어쩌면 그 이상의 발전도 가능하겠지.”
이게 내가 내놓은 최고의 방법이다. 과거 우리가 유일하게 협력하던 시절처럼.
그 추억과 기억을 조금 크게 되살려 보겠다.
“뭐, 이건 아직까지 내 계획일 뿐이고. 만슈타인 중장, 진짜 자네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다음이야.”
“개인적으로 말씀이십니까?”
“난 이 계획을 함께 실행할 사람이 필요하네. 아무리 내가 이런 구상을 하고 있다 말해도, 이름을 걸고 약속해도 독일인들이 안 믿으면 시작도 못 하지. 그러니까, 자네가 필요해.”
이쯤 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 또한 알았을 거다.
작금의 독일에게 두 번째 기회. 면죄부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자격을 가져온 인간.
“난 차기 독일에 자네가 있었으면 하네. 무조건적으로 친프랑스 기조를 유지하라는 게 아냐. 그건 매국이지. 다만 날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반프랑스를 외치며 정권을 잡는 극우 집단이 아닌, 진짜 서로를 신뢰하며 손발을 맞춰 유럽을 이끌만한 사람이어야만 해. 그래야만 독일이 살아날 수 있네.”
이건 진심이다. 전쟁이 끝나며 망가진 국가의 정치 루트가 둘인데 하나는 적에게 굴복하며 배를 발라당 깐 개처럼 행동하는 부류와, 아예 악으로 깡으로 반발하며 국민들의 반발심을 받아먹는 부류다.
난 둘 다 원치 않는다. 진짜 독일의 재건에 올라타고 싶다면. 그래서 두 나라의 경제를 하나로 뭉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고 싶다면.
첫 단추부터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잘 꿰매야 한다.
“그 말은…”
“전역해야지. 아니라면 나처럼 군부 숙청을 끝도 없이 해야 할 거야.”
다른 이였다면 힘들었겠지만.
연합국도, 독일 국민들도 전장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정치인을 원치 않았겠지만.
만슈타인은 다르다. 이자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 본인 스스로가 지난 2년간 증명해온 자격이.
“어때, 이 정도면 롬멜 중장도 조금은 내 말을 믿을 수 있나?”
프랑스가 자본적 우위에서 시작하는 것도 맞고, 우리가 초기 투자자로 가장 큰 파이를 먹는 것도 맞다.
‘그래서 뭐. 어쨌든 난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거라고.’
아마 두 사람도 느꼈겠지만, 이 관계가 굳어지는 순간 안보적 위험은 사라진다.
서로가 전쟁을 일으켜 봐야 손해보는 입장이 되니 전쟁 위협 자체가 사라진단 의미다.
이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진심이다. 다들 날 미친놈이라 취급하고. 지금 독일인들은 내가 유럽에 돌아오기만 하면 독일 멱살 잡고 바닥에 언제 내리 꽂을 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적어도 전쟁은 없다, 이렇게 들립니다.”
“롬멜 장군, 그게 맞아. 난 진심으로 전쟁을 원하지 않으니까.”
“프랑스는 과격한 여론이 강한 걸로 압니다. 분명 반발이 있지 않습니까?”
“이 내게 말인가? 우리 걱정은 하지 말게. 내 살면서 국내 통제를 못 했단 소리는 못 들어봤으니.”
여전히 프랑스인들은 민족적으로 독일인들을 싫어하고 깔보며 나아가 반쯤 독일이 식민지화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멍청이들도 다수 존재한다만.
그딴 심보 전부 불태워 버릴 정도로 내 지지여론은 끝도 없는 신화적인 영역에 올랐다.
이런 나의 의지가 프랑스 국민의 의지처럼 보이는 게 하는 작업은 참으로 간단하다.
‘그냥 미뤄뒀던 선거 한번 해주면 되겠지.’
숫자로 보여주면 된다. 대충 길거리 아무나 붙잡고 ‘모헬 정부의 뜻에 동의하나요?’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동의한다는 것을.
그것이 개개인의 본심은 아닐지언정, 프랑스의 본심으로 포장되리라.
그것이 민주주의, 공화정이니까.
“어떤가. 난 힌덴부르크와도, 히틀러랑도 힘들었지만 자네라면 가능해 보이는데.”
“…이미 결정이라도 하신 것 같습니다만.”
“흐흐, 그런가?”
사실 오래전부터 후보를 물색해 왔고, 맨 위에 만슈타인이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가 정치를 잘할 필요는 없다. 더는 군인으로 전쟁을 잘할 필요도 없고.
그냥 가만히 자리만 지켜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럼 알아서 두 나라는 서로의 모양에 맞춰 변할 테니까.
만슈타인 본인도 예상을 했을 법한 제안임에도 당장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난 확신이 있었다.
그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애국심에는 끝까지 베르게르 모헬이 약속을 이행하는지 지켜볼 의무가 있어 보였으니까.
그뿐만 아니라, 그 옆의 에르빈 롬멜도. 현 독일국방군에서 복무하는 모든 군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애당초 이 집단 자체가 진짜 국가를 위하기에.
그들은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는 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만 한다.
진짜 평화가 찾아오기는 하는지.
정말 더는 비극적인 전쟁이 없는지.
다시 독일이란 국가가 재기할 수 있는지.
내 입장에서 이들은 날 의심해도 좋고, 불신해도 상관없었다. 그럼 더더욱 진짜 독일을 위하는 인간들이 떠나지 못하고 남아서 제 위치를 지킬 테니까.
자신의 역할을 다 끝냈다고 방심하고 있던 만슈타인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한 다음 날.
“일본이 무조건 항복 의사를 밝혀왔답니다.”
“…끝까지 가서야 멈추는군.”
도쿄 진입이 시작된 지 하루 만에 일본이 항복 의사를 밝혀왔다.
***
도시마무라 섬으로 향한 미 해군 아이오와급 전함 USS 미주리 선박 갑판에서 이뤄진 양측의 만남.
선상에 일본 대표 시게미씨 마모루 외무대신이 직접 나왔으며 반대편에는 연합군의 두 선봉 장군, 조지 패튼과 자키 파비앵이 나와 있었다.
전날 본인들의 발표처럼 비무장으로 나온 일본 측은 신사복을 입었으며 협상 내내 군복을 고수해온 패튼과 파비앵은 책상 하나를 두고 그들을 기다렸다.
밀고 당기는 협상도.
조약 하나하나에 날을 세우며 말장난하는 시간도 없었다.
수많은 선원들과 종군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짧은 인사가 끝나자 서로의 서명을 담긴 한 장의 종이가 완성되었고.
“9월 6일, 12시를 기점으로 모든 전투는 중지되며-”
선언문이 수많은 이들 앞에서 낭독되며 그 효력을 세상에 알렸다.
종이의 내용을 낭독하는 목소리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종전 소식을 전했다.
티모르 섬 끝에서 미군에게 끝까지 항복하지 않은 채 싸우던 카이다 타츠지 장군은 본인이 앞장서서 미군 앞으로 걸어나와 항복했다.
작은 체구로 뉴기니의 지옥을 보여줬던 아다치 하타조 18군 사령관은 처음으로 패배를 인정했다.
인도차이나 반도 깊숙이 숨어들어 패배를 인정하지 않던 황군들이 본인의 군도를 반납하러 찾아왔으며 누군가는 그 군도로 할복을 시도했다.
뉴욕 거리에 나온 시민들이 남녀 가릴 것 없이 서로 기쁨을 나누며 거리 어디에서나 흩날리는 꽃잎이 보였다.
종전을 나타내는 문구, 이 큼지막하게 적힌 종이가 유럽 전역으로 뿌려졌으며 모두가 그 종이를 들며 환호한다.
아직 직접 수복하지 못했던 남태평양 섬들, 제도들, 내륙 지방들이 자연스레 연합국의 손에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해산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모든 신문의 헤드라인부터 마지막 뒷장까지 장식한다.
“오늘부로, 일본 해군은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장비는 연합국이 관리합니다.”
아시아 곳곳에 퍼져 있는 잽스들을 잡아다가 해산시키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도주 우려가 있는 전범들을 체포하고 총포와 도검류까지 연합군은 일일이 찾아내며 압수했다.
4년을 이어져온 전쟁 시대의 끝.
최후의 전쟁이 막을 내렸다.
그 여운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와중, 에두아르 총리는 새로운 발표를 했다.
“전시가 공식적으로 끝났으니, 16대 대통령 선거를 올해 내로 실시하겠습니다.”
프랑스는 일단 민주주의 국가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