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6
006화
그간 몸 건강히 지내셨는지요. 더위가 물러가고 곧 추위가 도래할…
이전에 언급하신 전역자들 고용에는 차질없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여전히 오를레앙 외곽에 왜 거대 와인 저장고가 필요하신지에 대해 말씀이 없으시지만 부디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
아직 토지 처분이나 가산 정리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자칫 법적으로 문제가 될 여지가 크기에 급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기술자 및 제작에 관한 것입니다. 확실치는 않으나 근시일 내로 유의미한 결과물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지속적인 개발, 생산 및 유통이나 도입은 저희 모헬 가문의 역량을 벗어나는 일이니 다시 한번 재고해주시길 바랍니다.
-관리인, 프레드릭 다비드 올림-]
일의 경과와 우려가 섞인 편지. 공손하고 유려한 문체지만 그 속에서 프레드릭의 걱정을 느낄 수 있었다.
프레드릭 다비드.
그는 스스로를 일개 관리인이라 소개하지만 실은 모헬 가의 중추와도 같은 자다.
유일한 모헬인 내가 이리 군복무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것도 그의 도움이 컸다.
내 기억 속의 프레드릭은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릴 때부터 등장한다.
때론 친구로. 때론 선생이자 조력자로 베르게르 모헬이란 사람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는 후원자.
“선대 모헬에게 구명 받자, 이를 되갚으려는 착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이기에, 난 그에게 여러 가지 일을 맡겼다.
가장 먼저 최대한 전역자들을 모헬의 이름 아래에 집결시켜 놓는 것.
물론 곧 전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는 안 했기에 프레드릭이 의문을 품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기꺼이 어린 가주의 뜻에 따라주었다.
전군 간부화 작업과 동시 최대한 빨리해야 하는 작업이 있다.
바로 ‘전군 현대화.’
지금 우리 부대가 쓰는 총은 르벨 M1886. 일명 르벨 총이다.
솔직히 르벨 총이 나쁘진 않다. 정확도, 사거리, 신뢰성, 내구성, 운용성 등. 강력한 8mm 총알까지 전부 무난하게 괜찮은 총이다.
다만 지금 내게 필요한 딱 한 가지를 만족하지 못했는데.
‘가장 중요한 화력이 안 나오지.’
이 총이 우리 부대 주력 무기라면, 장담하는데 지금부터 전원 저격수로 키우는 게 낫다.
그리 키운 다음 돌격하는 도중 적 머리를 느긋하게 조준해서 맞추도록 시키는 게 나을 거다.
당연히 몇 발 쏘기도 전에 전부 뒤지겠지만.
그 정도로 지금 보병은 화력이 안 나온다.
“아오, 총 한 자루 쥐여주고 모아 놓으면 다 보병 부대냐.”
척탄병들이 쓰는 수류탄도 약간 보급되었지만 안정성, 비거리, 그리고 기술적인 문제로 화력으로 치긴 어렵다.
결국 전장에서 적과 싸워 살아남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
병사들의 손에서 르벨 총을 뺏고 다른 것을 쥐여줘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내가 파비앵에게 ‘자, 우린 이제부터 르벨 총을 폐기하고 다른 무기로 교체한다!’고 소리치면?
“바로 군사재판 끌려가겠지.”
지금 당장이라도 페탱한테 달려가서 ‘빼애액! 소형 박격포는 보병 화기다아아!’라고 외치고 싶다.
어디 박격포뿐인가. 보병에 맞게 병사들 머릿속 교리부터 개인화기까지 마누라와 아내 빼고 다 바꿔버리고 싶다.
근데 그랬다간 대전쟁이 터지는 즉시 상부에서 가장 먼저 나를 참호 돌격시켜 버리겠지.
결국 돌고 돌아 나에겐 페탱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가 꼴리는 대로 날뛰는 것을 뒤에서 박수 치면서 부채질해줄 페탱이.
톡 톡.
책상을 손가락으로 무의미하게 두드리며 내게 필요한 것을 상기하기를 잠시, 난 다시 고민에 빠졌다. 정확히는 기다림이었다.
“세 번째 보고도 어제 받았을 텐데.”
슬슬 페탱의 신호가 올 때가 되었다.
아무리 만사 귀찮을 말년 대령이라지만 더는 그간 보내온 ‘무시’만으로 내게 답이 되지 않음을 알 것이다.
“아니면 예언서라도 써야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달려오려나.”
내 목적은 전쟁 영웅이 되는 것도, 역사서에 ‘베르게르 모헬’이란 이름을 새기는 것도 아니다.
그건 바로.
똑똑
“들어와.”
벌컥 문이 열리고 정갈하면서도 여전히 안 익숙한 19세기 제복에 둥근 천 모자를 쓴 사람이 들어왔다.
“충성!”
“그래, 기분이 어떠한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습니다!”
그래, 바로 저거.
눈앞의 윌리암이 하는 저거란 말이다.
“보내줄 사람은 보내줘야지. 해보게.”
“충, 성! 신고합니다! 병장, 윌리암 페르는 1913년 9월 29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 성!”
“충성.”
내 앞에서 당당히 서 있는 윌리암의 모습에 절로 눈물이 날 거 같다. 난 나도 모르게 눈가로 손을 가져갔다. 고개를 푹 숙이며 손으로 눈을 가리자, 윌리암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중대장님….”
“이만 가라.”
난 윌리암을 쳐다보지도 않고 가라 명했다. 지금 그를 직시했다간 서러워서 눈물 흘릴 것 같다.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가라고.”
가라는 말에도 윌리암은 머뭇거리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 장난하나. 자기는 전역했다 이거지. 난 아직 며칠 남았더라. 1000일은 깨졌던가…
“비록 쉽지 않았지만, 저에겐 정말 다시 없을 상관님이셨습니다… 언제나 저를 위해…”
혼자서 뭐라고 자꾸 흐느끼며 말하는데 귀에 안 들어온다. 울고 싶은 건 난데 왜 지가 처울어? 뒤질라고.
“다시 뵙는 그 날까지, 부디 몸성히 계십시오!”
순간 칠 뻔했다. 이건 농락이다. 농락.
‘다시 뵙는 그 날? 그날이 무슨 날인지는 너가 알긴 해?’
빠드득.
병장 새끼를 갈아 마셔도 부족할 판에 할 수 있는 게 내 치아 건강이나 망치는 일이란 게 더 처참하다.
“그만… 가라.”
“흐윽, 흐윽…감사합니다.”
‘살려서 보내줄 때…’
겨우 토해낸 게 저 한마디다. 차마 뒷말은 뱉지 못했다.
내가 여기서 뭐라고 하든지 그는 전역한 승리자고, 난 내일도 06시 기상해야 하는 패배자이니.
초인적인 인내로 윌리암을 보내고, 난 무너질 거 같은 정신을 최대한 가다듬으려고 했다.
“하아… 나도 전역하고 싶다.”
정말, 정말로 간단한 건데. 수백만을 징집할 프랑스가 딱 나 하나 빼주는 게 어려울까.
그럼 난 진심으로 두 눈 꼭 감고, 귀 막은 다음 원 역사대로 흘러가게 놔둘 자신 있다.
포슈 장군이 힌덴부르크랑 북 치고 장구 치든, 공산국가가 설립되든 말든 솔직히 나랑 무슨 상관인가.
그저 상급 부대 인사과에서 ‘베르게르 소위, 복무 부적합! 집으로 귀가!’ 이렇게만 도장 쾅 찍어주면 난 이불 밖은 위험해를 시전하며 살 자신 있단 말이다.
순간 향할 곳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아니, 솔직히 내가 그리 뭘 잘못했어?”
혼자 남은 집무실이지만 입 밖으로 절로 필터링되지 않은 말들이 튀어나왔다.
“고작 전역 못 해서 죽을 상황이라는 게 말이나 되냐? 내가 왜!”
언제나 생각하지만, 난 정말 스스로를 잘 안다.
난 어디 역사서에나 나올법한 영웅도, 전장 한복판을 선두에 달릴 용기 있는 지휘관도 아니다.
“난 그저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길거리 백성 1이었다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며 주제넘게 과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후우.”
니코틴. 지금 내 목마른 영혼은 담배를 갈구한다.
난 지금 누구한테 화풀이를 하려는 걸까.
나만 입을 닫으면 고요해지는 집무실이 답해줄 대상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파이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다음 몇 번 빨아들이니 겨우 혈관을 통해 연료를 받은 뇌가 진정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죽음이 가까워지는 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원 역사에서 나 하나 빼는 게 안 된다고?”
그럼 어쩔 수 없다.
“씨발… 그럼 역사를 뒤집어야지.”
그 과정에서 살 사람이 죽고, 죽을 사람이 살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나 같은 일개 사회구성원은 원래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브루주아나 프롤레타리아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다.
나아가 국가나 역사도 말이다.
일단은, 나부터 살고 보자.
***
돋아나는 새싹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뿌듯한 일이다.
잎사귀 하나하나 어찌 생겼는지 관찰해도 좋고, 잠시 눈을 뗐다가 언제 이리 자랐는지 보는 맛도 있다.
베르게르 소위를 위한 입학 추천서는 이미 다 썼다.
3, 4년 뒤 대위 달고 가면 더 좋겠지만 어차피 베르게르 소위도 사람이 부족해 급하게 자리를 채운 경우였으니 딱히 문제 될 것은 없다.
“에콜 폴리테크니크 졸업하고 포병 연대 쪽으로 가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을 게야.”
안 그래도 포병의 문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요즘 화포는 과거처럼 시야 안의 적을 조준해 쏘는 견인 직사포 따위가 아니다.
가까우면 수 km. 멀면 수십 km 산 너머의 적을 조준해서 쏴야 하기에 기술적인 측면이야 당연하고 전술 전략적으로도 고도화되었다.
“또 보내왔군.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려 했는데.”
슬슬 베르게르 소위를 직접 불러 말해야 할 때다. 더는 이런 보고서에 힘쓰지 않아도 이미 입학을 도와주겠다는 말과 함께 그와 함께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베르게르 소위 정도의 식견이라면 참모 쪽도 좋아 보이는데…’
그리 생각하며 페탱은 느긋하게 차를 한잔 마시고 가볍게 베르게르가 작성한 종이들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페탱은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발칸에서의 전쟁 발발]오스만 제국 식민지 분열 보고서에 대한 연장선인가 싶었지만, 내용은 전혀 달랐다.
추측성이 강하고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듯한 어조는 없었다.
전쟁이 일어난다는 강한 확신. 마치 보고서는 지금 당장이라고 소리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 친구… 과장이 심하군.”
그리 얼버무리고 싶었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베르게르 소위의 짙은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간접적인 원인은 러시아의 조력으로 내부 식민지가 흔들린다라.’
하나같이 ‘과연 그럴까?’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확실하게 아니라고 반박할 순 없는 내용들.
그렇기에 페탱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베르게르 소위는 저리 확신에 차 있는 걸까.
“마치 미래라도 보고 온 것처럼 말하는군. 발칸의 전쟁은 필연적이라니.”
누가 과연 발칸에서의 전쟁을 원하는가.
독일이? 이중제국이? 혹은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약소국이? 적어도 영국이나 프랑스는 절대 아닐 거 아닌가.
오직 러시아다. 이들조차 직접적인 개입은 불가능하니 식민지 군사교육단 파견 혹은 물자 지원 정도겠지. 뭐, 여기까지는 공공연한 비밀이자 가능성이다.
그럼, 무엇이 페탱을 신경 쓰이게 하는가.
“그답지 않아. 내 비록 직접 만나본 적은 없어도 베르게르 소위가 어떤 이인지는 알 듯한데.”
전쟁이 일어난다. 이에 대한 원인을 설명까진 완벽에 가깝다.
허나 가장 중요한, 결과가 없다.
“전쟁의 결과는 무엇인가.”
그에 대한 설명은 일체 없다. 마치 일부러 피하듯이.
페탱은 혼자 남은 퍼즐들을 맞춰보려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베르게르 소위가 그에게 알려주지 않는 숨은 조각들이 무엇인지 말이다.
“발칸은 늪과도 같은 화약고야. 터지면, 지금의 유럽 판도가 뒤틀림과 동시에 원치 않아도 모두가 빨려들어 가겠지.”
이를 그레이트 게임의 연장선이라 불러도 좋고 비스마르크가 만든 판을 뒤엎는 행위라 봐도 좋다.
러시아가 다시 한번 범슬라브주의라는 미명하에 확장주의를 펼친다.
그럼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몇 년 전 비공식 속국이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공식적으로 삼키며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당사자인 오스만 제국은 애초에 반응할 깜냥도 안 되니 무시하고.
“그럼 독일 또한 가만히 있진 않겠지. 이중제국과 러시아는 냉정히 보면 상대조차 안 되는 수준이니.”
러시아의 성장세는 그만큼 매섭기 그지없다.
몇 세대 뒤에는 프랑스, 독일 영국 세 서유럽 국가가 러시아를 억제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일 정도이다.
그러나 당장은, 프랑스는 러시아와 함께하고 있다.
러불 동맹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으며 단순히 외교적 동맹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러시아의 성장을 프랑스 자본이 돕고 있으며 기술적으로는 철도와 산업 공장에 대한 도움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재까지의 정보만으로 페탱이 예상하는 외교 구도는 이랬다.
발칸을 삼키려는 러시아와 이를 눈감아주는 프랑스.
이에 맞서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과 뒷배로 나서는 독일.
그럼 케스팅 보트는 영국이다.
“영국은… 러시아와 독일, 둘 다 두려워하지.”
이미 영국의 산업력을 넘어선 독일. 반대로 엄청난 가능성을 지닌 러시아.
자신들이 섬으로 떨어져 있기에 유럽 대륙에 지배적 강국의 등장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다만 십 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독일과 영국의 해군력 경쟁을 생각하면 영국은 최대한 ‘현상 유지’ 루트를 택하지 않을까.
게다라 태어날 때부터 러시아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탯줄과 함께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섬나라 특성상 더욱 러시아가 튀어나오길 원하지 않을 거다.
여기까지 추측이 이어진 페탱은 역시 결과를 쉬이 예측할 수 없었다.
아니, 여전히 전쟁이 일어난다는 가능성조차 확신하지 않았다.
“정보가 너무 부족하군. 섣불리 판단하기엔 여기부턴 상상의 영역이야.”
전쟁의 과정과 결과. 이후의 협상 및 외교적 선택은 이 좁은 집무실에서 고려하기엔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럼, 혼자 이를 다 생각하고 있는 베르게르 소위는 과연 어떠한 결론을 내렸을까.
“다음에 직접 물어봐야겠군.”
하루하루 편히 보내다 너무 열심히 생각했더니 슬슬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낀 페탱은 이만 관심을 돌렸다.
그러나 페탱이 돌린 관심은 불과 하루가 지나지 않아 다시 미친 듯이 보고서를 찾게 되었다.
다음 날인 10월 8일.
세르비아, 그리스, 몬테네그로 왕국은 동시에 오스만 제국에게 독립 전쟁을 선포했다.
여기에 터키, 마케도니아가 합세하였으며 알바니아도 독립을 위해 군사를 파견했다.
겉으로는 식민지 반란으로 보였으나, 이들 뒤에 제정 러시아가 있다는 것은 이탈리아 백수도 아는 사실.
발칸에, 불씨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