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96
096화
1914년부터 묵히고 묵혀온 란레작 장군의 분노는 고작 가벼운 비웃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난 총사령관, 그리고 중앙에서 고생하는 참모들의 권한을 존중하오. 그래, 비록 목숨 걸고 이 나라를 위해 싸워왔다만 내가 적합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그러나 감히 자신들의 아집을 꺾지 않아 프랑스를 적에게 바친 놈들에겐 조금의 존중도 없소.”
해고당하고 홀로 집에 처박혀 국가가 무너져가는 꼴을 지켜보던 남자는 이 자리에 없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증인석에 분노를 하나씩 꺼내 설명하는 사람은 누가 보더라도 진정한 애국자, 그 자체였다.
“아무리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더라도 벨기에로 병력은 보냈어야지. 조프르 총사령관. 몽스에서 후퇴하던 영국군이 보낸 보고는 어디에 팔아먹었소? 나와 갈리에니 장군이 보냈던 수많은 경고들은? 국경에서 수십만 병력을 낭비했으면서 고작 5군을 벨기에로 보내는 것 하나 못 했소? 만약에 당신이 정말로 이 나라를 위했다면! 정말 그랬다면 최소한 적에게서 눈을 돌리는 게 아니라 똑바로 쳐다봤어야지. 당신은…. 총사령관이잖아.
감정의 호소에 가까워진 란레작 장군의 성화는 자조적인 말투로 끝을 맺었다.
란레작 장군이 감정을 추스르도록 기다린 뒤, 질문은 이어졌다.
“장군,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왜 북부 전선으로 가셨습니까?”
“유일하게 벨기에로 적이 온다고 외쳤던 이들이 바로 페탱 중장과 모헬 중령이오. 동시에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일 뻔한 후배들이지. 비록 명예조차 잃어버렸지만 조금이라도 보호해주고자 했소.”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증인의 증언을 마치겠습니다.”
조프르를 두고 한 블록 한 블록 던져진 질문들은 마치 벽돌처럼 그를 가두었다.
그리고 마지막 란레작의 답이 끝나자 나는 내 차례가 왔음을 직감했다.
‘사실 이 정도면 증언과 심문이 아닌데?’
부적절한 인사권 사용이 아니라 조프르의 무능을 까발리는 장이다.
그리고 당연히.
“딱 내가 원하는 그림이야….”
온갖 비리와 잡다한 죄목을 가져다 붙여도 직접적인 증거는 적고 ‘어쩔 수 없었다’가 먹히는 수준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절차는 단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 총사령관 조제프 자크 세제르 조프르 씨는, 사실 심각하게 무능한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이번엔 그와 극한으로 대비되면서 언론 노출에 익숙한 나의 차례다.
“재판장님, 마지막 증인을 부르겠습니다.”
“허락합니다.”
“베르게르 모헬 중령님, 부디 자리에 위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가슴팍에 달린 그랑 오피셔 훈장이 겁 많은 파비앵 부랄처럼 쪼그라든 조프르의 그랑 크루아보다 더욱 빛나는 것 같다.
자리에 앉아 난 어서 질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증인, 자기소개를 해주시지요.”
“베르게르 모헬 중령, 현재 발령 대기 중입니다.”
사실 자리 박차고 나간다고 선언했다만 페탱 사령관님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기에 난 간단하게 한 줄로 소개를 마쳤다.
란레작 장군이 저 인간 때문에 쫓겨났다면 난 저 인간 때문에 그만두는 군인이라는 점을 강조한 거다.
“조프르 총사령관과 사적으로 알고 있습니까?”
“아니요. 사적으론 단 한 차례도. 독대 자리조차 가져본 적 없습니다.”
“그럼 혹시 스스로가 부적절한 이동을 지시받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셨습니까?”
“음, 전선 어디든 위험하겠지만 매번 ‘아 오늘 죽겠구나.’ 싶은 날은 많았습니다. 뭐, 운이 좋아 살아남았지만요.”
“좀 더 정확히 예를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이 정도로 콕콕 잘 집어주는 검사라니. 정체가 궁금해질 정도다. 아무튼, 판 깔아줬으니 드디어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줄 때다.
“알자스-로렌 공세 당시의 아르덴 숲. 마른 전투. 바다로의 경주. 아미앵 전역과 아라스 전투. 릴 전투와 벨기에 해방 작전. 그리고 최근에 시행한 페탱 공세까지. 단 한 번도 제 목숨이 안전한 날은 없었습니다.”
“그중 조프르 총사령관이 노골적으로 상관 페탱 중장 혹은 본인을 노렸다고 느낀 게 있습니까?”
“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떠한 명령이든 따르는 군인입니다. 의문을 품지도, 거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한 적이 있습니다.”
“무슨 생각입니까?”
잠시 허공을 응시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느낌을 준 뒤, 난 담담히 말을 꺼냈다.
“왜 내 아래에 있는 이들은 다 죽는 걸까….”
순간 재판장의 모두가 침묵을 만들어냈다. 가장 높은 상석의 판사도, 질문하는 검사도, 수많은 방청객과 기자들도. 모두 미세한 소음조차 만들지 않았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을 뿐인데. 그저 상부의 명령을 듣고 안 무서운 척, 다들 괜찮은 척 함께 나아갔을 뿐인데 왜 죽어야만 하는 걸까….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누군들 이 전쟁이 자신에게 가혹하게 안 느껴지겠냐만 그렇기에 난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거다.
그리고 공감한다는 의미는 마치 다른 사람보다 더욱 가혹하도록 조작된 나의 현실이 자신의 현실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래, 마치 조프르가 직접적 가해자인 것처럼.
“그거 아십니까? 누구보다 잘 싸워온 저희 아라스 제33보병 연대 인원들 중 지금 살아남은 이들은 2할 채 안 됩니다. 총참에서 뱉은 한 마디를 실현시키기 위해 제 부하들은 폭탄에 손발이 떨어져 나가도, 총알이 그들의 몸속에 하나씩 쌓여가도 애써 두려움을 잊고 발을 내디뎠단 말입니다. 근데 그게 사실 조프르 총사령관의 시기와 권력욕 때문이라면….”
공허하던 눈을 잠시 감은 뒤, 난 다시 뜨며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조프르를 죽일 듯 노려봤다.
“당신은 위대한 프랑스의 군인이 아니다. 권력에 미친 늙은이일 뿐이지.”
처음부터 의심하지도, 의심을 품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며 난 조프르의 의혹들을 결론 내려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운명이 결정지어졌고 이후부터는 란레작 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군인의 이성이 아닌 일개 인간이 느낀 감정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차라리 날 그냥 죽이지 그랬습니까. 왜, 도대체 왜! 내 손으로 내 부하들 보고 죽으라고 명해야 하는 건데! 내가 싫다면 나만 죽이면 되는 거잖아!”
“지, 진정하세요!”
달려들 것처럼 앞으로 한 발씩 나아가며 소리치자 주위에서 경위들이 튀어나와 내 손과 발을 잡는다.
내 몸을 인력으로 구속할지언정 누구도 내 입을 막을 순 없다.
“조프르, 당신은 조국을 죽이고 아군을 죽이며 국민을 죽인 살인자다! 네놈은, 존재해선 안 되는 악 그 자체다!”
“진정하세요!”
“야, 잡아! 잡으라고!”
“으아아아아! 네놈을 저주한다!”
“재판은 1시간 뒤, 오후 1시 정각에 재개될 것입니다!”
언제나 자조적으로 비웃던 모헬은 이 자리에 없다. 장기전을 당연시하던 장교도, 냉혹히 현실을 파악해 미래를 예측하던 차가운 지식인도 없었다.
오직 권력에 미친 총사령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젊고 혈기 넘치는 애국청년이 울분에 차서 악다구니 칠 뿐이었다.
그리 끌려가는 와중에 겨우 숨을 고른 나는 방금 대화를 상기하며 느꼈다.
가장 먼저, 이제 조프르는 이후의 판결이나 이어질 재판과 관계없이 끝장났다는 것.
그리고.
‘전역하기 위한 한 걸음. 성공.’
개전 3년 차.
징집 국가를 우습게 보지 마라. 절대 전쟁 끝난다고 집에 쉬이 보내줄 거라 기대 안 한다고.
슬슬 빌드업이 필요한 시기다. 누구도 나의 전역증에 도장 안 찍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야 한다.
설령 그게 페탱이라도.
***
‘총사령관 조프르, 무기징역!’이라고 나오면 좋겠다만 사실 이번 한 번의 재판으로 끝나기엔 그리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그래도 볼 장은 다 봤다.”
이른 아침부터 건물 외벽을 진동시키던 시위대의 목소리도 오후가 되니 슬슬 힘이 빠진 것 같다.
하지만 수많은 의혹, 증거와 증언들을 다 쏟아낸 재판은 조프르를 확고한 개새끼로 만들어줬다.
너무 많은 정신적 데미지를 입어서일까, 피고인석에 앉아 꼼짝없이 공격을 받아내던 조프르는 초췌한 몰골로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오늘의 발언들을 거르고 증명하는 시간이 필요하겠다만 확실히 여론과 권력 이동을 의식한 판사는 깔끔하게 선을 그었다.
“다음 재판은 3주 뒤, 이 장소에서 열릴 것이며 피고인은 자택에서 구금할 것입니다. 증거 조작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외부와의 접촉은 차단되며 조제프 조프르 씨는 이 시간부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됩니다.”
수석 판사가 자신의 선에서 내릴 수 있는 정석에 가까운 판결을 내리자 옆에 있던 파비앵이 조용히 귓가에 손등을 가까이하며 속삭였다.
“아까 점심 즈음, 푸엥카레 대통령실에서 총사령관의 직위를 해제되었습니다.”
“유죄만 확실히 되면 직권 파면으로 전환되겠군.”
“그렇습니다.”
진정 끝이다. 그토록 기다려온 조프르의 멸망이 눈앞에서 이뤄졌다. 이를 내 손으로 해냈다고 생각하자 무지막지한 쾌감과 감동이 몰려오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툭툭.
“저 보시오.”
판사의 설명이 이어지는 와중에 모두가 슬쩍슬쩍 날 쳐다본다.
“모헬 중령님이…”
“허어 저런.”
“얼마나 고생했겠소?”
“에잉, 그냥 이 자리에서 감옥에 보내버릴 것이지!”
모른 체하며 판결에 집중하고 싶다만 이 자리의 시선이 나에게만 집중되니 그것도 쉽지 않다.
이젠 고개를 푹 숙인 채 이전의 당당함을 잃은 조프르는 스스로 죄인이라고 시인하는 모습이다.
누군가는 이를 보며 미약한 동정심이 일지 모르겠다만 야전 뛰던 난 달랐다.
‘시발… 드디어 잡았다.’
윗대가리 모가지 하나 따는 게 독일군 모가지 수십만 따는 것보다 어려운 거 실화냐.
진짜 군대에서 합법 레볼루숑을 이뤄낸 내 스스로가 대견해서 당장이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을 지경이네.
온종일 이어지던 재판이 판사의 퇴장으로 끝나자 난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탱 사령관님과 나를 선두로 이번 재판을 구경 온 군 관계자들이 퇴장하자, 양 측면에서 하나둘씩 커지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박수 소리는 재판장 문을 열고 나서자 더욱 크게 들렸다.
재판 결과를 듣고 여태껏 생트샤펠 성당 앞을 지키던 시민들이 환호하며 우리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는 소리였다.
“페탱 중장이다!”
“모헬 중령도 있어!”
“우린 당신을 믿었어요!”
“정의는 승리한다!”
루이 16세를 처형하던 시민들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광기에 가까운 행복과 승리의 기쁨이 전쟁터에 나가지도 않은 이들 얼굴에서 느껴진다.
계단을 하나씩 내려올 때마다 시민들의 반응은 배로 커지는 것 같다. 통제하던 경위들과 경찰들도 몸싸움을 하며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 페탱, 그리고 뒤따르는 모든 군관들은 전장과는 사뭇 다른 승리를 만끽하며 나아갔다.
우린 단순히 증인과 참관인들이 아니다.
억압받은 피해자이자 억울하게 죽은 군인들의 동료이며 동시에, 끝내 모든 것을 뒤엎은 차기 권력자다.
극단적으로 치달은 시민들이 루이 16세를 죽이고 그 권력을 제1공화국에게 이양하자 일어난 공포정치는 우리 자랑스러운 프랑스 제1공화국의 역사이자 이 땅에 두 번 다시 없을 절대권력 체제였다.
프랑스 혁명 지도자였던 롤랑 부인조차 새로운 체제 앞에서 목을 내주면서 죽었다.
그녀가 자유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죄악들을 목격했다면 나는 승리라는 이름 아래에 지금부터 이 빌어먹을 나라를 뒤집어 보겠다.
이제 와서 나서지 않겠다는 과거의 이중적 자태 따윈 없다. 그땐 어중간한 태도로는 이 집단은 변하지 않음을 망각하던 과거였으니까.
‘책임완수, 내 일이니 확실히 끝내고 간다.’
누군가의 신념, 누군가의 다른 해석의 정의, 또 누군가의 색다른 관점과 시각이 있을 거다.
근데 그딴 거 펼칠 만큼 프랑스라는 나라는 여유 있지 않다.
이제 와서 느끼는 바다만 이번 전쟁에서 모든 문제의 정답은 사실 정해져 있었다. 심지어 난 누구보다 열심히 그 답을 알려줬었고.
그럼에도 그 답을 적어서 제출하는 것 하나 못했다면… 그건 사람이 틀려 먹은 거다.
“페탱 중장님. 이대로 바로 다음 일도 하시죠.”
“그게 무슨 말인가.”
“회색분자 색출 말입니다. 혁명을 방관한 지주들과 영주들은 전부 목이 잘렸습니다.”
“…. 자넨 로베스피에르라도 되고 싶은 건가?”
“그게 승리를 가져온다면, 예. 전 로베스피에르가 아니라 누구든 되겠습니다.”
로베스피에르가 자유, 평등, 우애(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를 가져왔는가. 난 잘 모르겠다.
근데 하나 확실히 아는 사실은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를 했을지언정, 승리했다는 거다.
“갈리에니를 끌어내리지요. 포슈 장군이 최고위원회로 가는 데 걸림돌이 될 겁니다.”
“후우, 포슈 장군도 그렇더니만 자네도 약간 이상해진 것 같네. 이제 와서 권력의 향기가 달콤해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전 원래 이랬습니다만?”
“…그건 또 맞지.”
간단히 동의하며 진지해질 뻔한 분위기를 페탱 중장님은 넘겨버렸다.
공포정치. 이름만 들으면 이상향에 가까운 정치 아닌가.
공포심만으로 통제가 된다니. 일부의 목을 잘라 나머지 모두를 통제할 수 있다면. 적어도 이 제도는 미쳐버린 시대의 군대에서 최고의 정치제도가 아닐까.
‘우린 좀 더 과격해져야 한다. 두 번의 기회는 없어.’
다시 지겹고 따분한 수백km 참호전이 시작되기 전에 확실히 모든 권력을 페탱이 쥐어야만 한다.
그리 해도 언론, 정치, 내부 파벌에 안 끌려다니고 수백만 병력을 통솔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그러니, 일단은 시민들이 지지하고 모든 권력층이 인정해버린 우리의 ‘정당한 분노’를 표출할 때다.
난 나와 페탱 중장님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 말했다.
“조프르 다음 재판 전까지 총사령부 내의 인물들을 전부 이분법적으로 구분한다. 하나, 우리와 함께할 이들. 둘, 조프르와 함께하게 만들 이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를 들은 페탱 중장님은 딱히 제재하지 않으셨다. 무언의 동의라고 본다.
이제부터 살생부를 만들고.
절차에 따라 이름을 하나씩 지운 다음.
시민들이 씹고 뜯기 좋게 던져주겠다.
배고프다고 거리로 나와 외치는 시민들이 없도록, 모두가 배터져 죽을 것 같이 만들어 주겠다.
시작한 혁명은 충분한 피를 봐야만 끝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