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99
099화
페탱은 모헬과의 대화가 끝나고도 밤이 깊어졌지만 눈을 붙일 수 없었다.
“제국이 더는 제국이 아니게 된다라….”
러시아 내부적으로 반전 여론은 예상보다 적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 전시에 터진다라.
“반란 요소가 있어야지. 첫 번째는 새로운 황제를 옹립. 즉 허수아비를 세우는 것인데.”
니콜라이 2세의 유약한 알렉세이 황태자? 황녀들이나 대공들이 명분이 될 수 있을까. 비록 권력과 그리 가까운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만 니콜라이 2세를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그럼 모헬의 말대로 혁명이라는 말인데. 어떠한 혁명이지?”
지금 시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한들 제정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단 삶에 대한 불만이다.
모헬의 발언이 머리를 조여오는 느낌. 지끈거리며 답답하다. 그놈은 할 말 다 뱉고 나서 속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떠났다만.
이제 겨우 총사령관직에 올랐는데. 드디어 이 전쟁을 최소한의 피해로 끝낼 발판이 마련되었는데. 드디어 국토를 수복하고 1914년으로 돌아간 기분인데.
고작 아랫놈 한 명 때문에 이 모든 게 모래성처럼 느껴진다.
“젠장. 모헬, 이놈은 일부러 내가 총사령관이 되자마자 말한 거야. 분명 알고 있었을 거라고.”
혹시나 자기가 도망치거나 포기할까 무서워 꼼짝없이 책임지는 자리에 앉기까지 기다린 거다.
“어쩐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한다더니.”
밤새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린 페탱은 아침 해가 밝아도 답을 찾지 못했다.
아니, 답이라는 게 있을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사단 200개? 개전 초기 프랑스 병력이 군단 21개와 예비사단 25개였다. 병력으로 치면 약 190만 조금 안 되는 숫자.
헌데 여기서 적 사단만 200개가 추가된다라. 저 사단들이 8할은 보병사단이라 치면 결과는 간단하다.
“베르됭 같은 짓을 세 번은 더해도 되겠는데.”
심지어 지금 독일장군참모 내부는 프랑스처럼 권력의 변화까지 느껴진다.
자신과 모헬이 포슈 장군의 도움을 얹어 군권을 손에 넣었다면, 그곳은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가 떠오르고 있다.
둘 다 군사학적인 능력만으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무식한 공세. 무리한 계획 따위 시행하다가 이번처럼 쉽게 속는 일은 없을 거란 거다.
페탱은 어젯밤 모헬과의 대화를 상기해봤다.
“먼저 내게 말한 이유는 하나. 해결해달란 거겠지.”
이 미친놈은 자기가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니 상관한테 떠넘긴 거다.
“다음으로 수치. 동부 전선 자체를 비울 정도라면 러시아 차기 권력이 어떤 형태든 간에 전쟁에서 발을 빼야 한다는 의미야. 즉, 독일이 애초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말이지.”
그렇다면 권력의 공백 혹은 쟁탈전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설령 휴전을 해도 독일이 그거 하나 믿고 병력을 뺄 만큼 러시아가 만만한 나라는 아니다. 조약이나 협약은 후후 불어서 불씨 붙이는 용도로나 쓰는 곳이니까.
문득 러시아 제국을 분석하는 게 아닌 모헬과의 대화를 분석하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지만 페탱은 나름 진지했다.
그놈은 대전쟁도 당연시하는 놈이다. 모헬 대령이 상식과 이성을 대하는 태도는 러시아가 국제협약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역사에 두 번 다시 없을 전쟁에 권력을 쥔 수도승을 꺼냈어. 으음, 근데 그때 대답이 영 시원찮-”
똑똑.
“총사령관님, 계십니까?”
하나씩 되짚어가던 페탱의 추리는 아침부터 찾아온 불청객 때문에 끊겨버렸다.
“누군가.”
“충성, 소령 자키 파비앵. 소령 샤를 드골입니다.”
“들어오게.”
모헬이 계급을 떠나 친하게 지내는 몇 안 되는 인물들. 둘이 나란히 자신을 찾아온 적은 처음이다. 심지어 저리 다급한 목소리로 오다니, 무슨 일이 터진 건가.
“충성!”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안이 꽤 시급합니다!”
“하아…”
뭐 얼마나 심각한 일이길래. 자긴 지금 머리통이 터질 거 같은 기분인데, 아랫놈들의 호들갑까지 받아줘야 한단 말인가.
짜증 섞인 총사령관의 태도에 움찔했지만 두 사람은 이내 사명감을 가진 채 설명 시작했다.
“일단 핵심부터 말씀드리자면 모헬 대령이 이상합니다.”
“파비앵, 자네 상관은 언제나 이상했어.”
“근데 더 이상합니다. 요즘 꼴이 혼자 몰래 나쁜 짓을 꾸미는 게 틀림없습니다!”
“…. 그래도 모헬 대령과 지낸 시간이 헛되진 않았나 보군.”
눈치 빠른 하급자. 아마 자기 상관이 음모를 꾸미는 것을 깨닫자마자 자신에게 찾아온 거다.
‘문제 생기니 찾아와서 해결해달라는 꼴은 자기 상관 판박인 것 같다만.’
아무튼, 좋다. 이건 매우 좋은 신호다. 적어도 그놈 옆에 머릿속에 이성이 똑바로 박힌 놈이 있으면 통제가 더 쉽겠지.
“자네도 마찬가진가. 드골 소령.”
“제가 그간 봐온 모헬 대령을 보면 최근 들어 벌이는 모든 일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무슨 이유.”
“무언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겁니다! 이게 맞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들고, 자기가 나서서 무언가를 하긴 싫은데 가만히 놔둘 순 없어서 그런 겁니다!”
“놔두면 터지는데, 자기가 하긴 싫다?”
“정확하십니다.”
모두 화려한 전공과 유명세로 무장한 인간의 겉모습에 속아 넘어갈지언정, 저 둘은 확실히 베르게르 모헬이란 인간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응책은?”
“어, 무슨 문제인지 아십니까?”
“일단 자네들이 생각하는 방법부터.”
예상외로 놀라지도, 걱정하지도 않는 페탱의 모습에 두 사람은 되려 놀라면서 이내 존경심이 들었다.
‘이 정도 평정심이 있어야만 총사령관이 되는 건가.’
‘역시…. 짬의 질이 달라, 짬의 질이.’
두 사람이 보내는 부담스러운 시선과 별개로 페탱은 당장 저들만의 노하우가 알고 싶었다.
자신이야 계급으로 누르고 약간 숨통을 틔워주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저들은 그게 안 되었을 테니까.
“저희가 생각한 방법은 하나입니다. 분명 모헬 대령은 문제가 터지면 외면하고 내외하다가 끝까지 가서야 손대는 유형입니다.”
“그렇지.”
“그럼 총사령관님께서 나서서 문제를 직면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본인이 해결하게 만들어라? 어떻게.”
“모헬 대령님이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사람이시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매번 베르게르, 그 친구는 ‘무소불위 권력의 몽둥이가 기어코 나를 괴롭히는구나!’라고 소리치는 놈입니다. 시키면 한다는 소리지요.”
“……”
그게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서 호들갑 떨면서 낸 결론이냐. 그냥 군대니까 계급과 권력으로 해결하자는 소리잖나.
‘근데… 틀린 말은 아니지.’
밤새 자기가 머리 아프게 생각한 시간이 억울한 이유가 이거였나. 굳이 아랫놈이 있는데 홀로 끙끙거릴 이유가 없다.
“자키 파비앵.”
“말씀하십시오!”
“명령서 하나 써주지. 가지고 모헬한테 전하게. 그리고 옆에서 지키며 경과를 나한테 따로 보고해주고.”
“설마 저한테 프락치 짓을….”
“어허! 그게 애국이고 충성이야!”
“아, 알겠습니다!”
들켜도 상관없다. 알게 되면 어쩔 건데. 자긴 이미 총사령관이고 그놈이 자신과 맞먹으려면 아무리 전공이 높고 인기가 높아도 20년은 이르다.
독일장군참모에서 어리다고 욕먹는 루덴도르프가 쉰 살이 넘었는데 그놈은 여전히 솜털이 살아있는 이십 대니까.
“헌데 총사령관님. 분명 저희 모헬 대령님이라면 자기만 일 시킨다고 내팽개쳐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그토록 원하는 것 이뤄준다고 하면 알아서 할 거야.”
“원하는 것 말씀이십니까? 저희 모헬 대령님이 따로 원하시던 게 있습니까? 딱히 보직이나 직책에 연연하시던 분은 아닌데.”
“나야 모르지.”
솔직히 모른다고 말했을 뿐인데 파비앵과 드골 두 사람의 눈빛에 약간의 불충함이 깃들었다. 그러나 진짜 모르는 걸 어찌한단 말인가. 다만 무언가 노리는 게 있다는 점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그놈은 태어날 때부터 자본주의에 걸맞게 태어난 놈이야. 사회주의처럼 의욕 없는 세상에서는 손가락 하나 꼼짝 안 할 놈이란 거지.’
무엇인지 모르겠다만 이미 군인의 끝에 다다른 자신이다. 그가 군인으로서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든 하나 정도는 은퇴 전에 들어줄 수 있을 터.
‘충분히 자격도 있으니.’
진급? 명예? 인기? 권력? 혹은 나중을 위한 정치군인? 뭐든 상관없다.
“그냥 그대로 전하면 되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바로 가보겠습니다.”
어차피 그는 차기 프랑스 군권을 쥐게 될 운명이나 마찬가지니까.
***
예전에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육군에는 휴가를 무진장 모아서 일찍 전역하거나 마지막에 한꺼번에 쓰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때 병사들은 휴가라고 하면 목숨 걸고 달려들었다.
당시에는 ‘하루 일찍 집 가는 게 저리 중요한가?’ 싶었지만 지금 내 확실히 말해준다.
단 하루라도 빨리 이 집단을 떠날 수 있다면, 군인은 무엇이든 한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지금 이 꼴이다.
“으윽… 햇빛. 며칠 만에 보는 자연광이냐.”
“4시간 만이십니다.”
“닥쳐, 파비앵. 내가 느끼기론 삼일 만이야 이 배신자 놈아.”
“그때 제 행동은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을 기반으로 한 행동이었습니다. 전 당당합니다.”
“누가 그러던가? 누가 그게 애국심이고 충성이래? 그 사람 내 앞으로 불러와!”
“총사령관님이요.”
“…. 그래, 너 잘났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 잘 훈련시키고 이 전쟁통 속에서 살아남게 해줬더니 돌아오는 게 뒤통수 퍽치기라니. 그래놓고 총사령관님을 등에 업고 당당한 게 진짜 꼴보기 싫다.
“총사령부한테서 받은 동부 지도나 가져와.”
“책상 위에 펼쳐놨습니다만 사실 이 지도도 정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워낙 정보 공유가 잘 안 되고 있는 곳이라.”
“그래도 자기들 지도 하나쯤은 있을 거 아니야.”
“그게 전선 지도 제작을 작년 이후로 멈췄다고… 그래도 크게 변한 곳이 없으니 거의 비슷하답니다!”
“환장하겠네.”
파비앵의 말대로 동부 전선은 저런 곳이다. 자기들이 싸우는 곳 지도조차 제대로 없는. 알자스-로렌 공세 당시 관광지도 들고 싸웠던 우리가 할 말은 아니다만 진짜 저것들 전쟁할 생각이 있는 걸까 싶다.
현재 러시아의 전선은 크게 둘. 동부와 남부다.
동부는 순수하게 러시아 대 독일 구도이고 남부는 독일+이중제국과 러시아 구도다.
“남부는 작년까지 크게 오스트리아-헝가리 내부 영토까지 진입했으나 동맹국의 연합으로 크게 패배. 이후 1914년으로 원상복귀.”
“고를리체-타르노프 공세로 2년간 얻은 영토를 다 토해냈습니다.”
“그리고 동부 전선은 겨울과 중간 중간의 공백기를 빼면 그냥 일방적 패배.”
확실히 모든 전술과 구도에서부터 드러난다.
우리 프랑스와 영국도, 그리고 러시아 스스로도 동부 전선을 서부 전선에 가해지는 압력 빼는 용도로만 사용해왔다.
‘이러니까 우리 프랑스가 공세에 미친 거지.’
동서남 세 전선에서 전쟁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 서부 전선에만 있으니까.
각 전선의 역할과 사정을 내 이해는 한다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애초에 딜 하나 못 넣는 세 국가가 힘을 합친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 그냥 국가 체력 믿고 탱킹 하는 거지.’
루덴도르프가 2년간 몽둥이 들고 조금만 머리 들어도 두더지 뚝배기처럼 다 깨버려서 그런지 러시아는 안 그래도 해봤자 의미도 없는 공세, 더 안 하고 있다.
“최근에 우리가 대대적인 공세를 요청했었는데 어떻게 되었지?”
“베르됭 전투 당시에 했습니다만 러시아 측이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끝나버렸습니다.”
“그럼 결국 가만히만 있겠군.”
종합적으로 볼 때, 프랑스가 내릴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 동부 전선이 망하기 전에 전쟁을 끝낸다.
둘, 동부 전선이 망해도 버틸 수 있도록 대비한다.
첫 번째 방안은 모두가 바라는 바다만 현실과 괴리가 있다. 어떻게 결국 협상이 아니면 베를린에 삼색기 꽂아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그럼 두 번째 방법인데….
‘그땐 진짜 전쟁 끝날 기미가 안 보이겠는데?’
이제 겨우 희망의 빛을 보고 자라나기 시작한 프랑스 국민들이 동부 전선 망하는 꼴을 본다? 바로 삶의 의욕이 사라지지 않을까.
두 가정 모두 기본적으로 ‘동부 전선이 망한다’라는 전제하에 세워진 논리라서 프랑스 전체를 설득할 자신은 없다. 솔직히 당장 페탱 총사령관님도 설득하기 힘들어 보이거든.
“일단 약간은 넘어오셨으니 대응 방법부터 세워봐야지.”
말했듯이 러시아가 자발적 거세를 안 하면 우리야 같은 남자로서 전우애를 유지할 수 있으니 좋은 거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어디 딸 모가지 없나’ 찾는 일은 잠시 그만두고 온전히 총사령관의 명령에 매달리길 며칠.
가만히 있는 나를 깨우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도 원치 않는 인물을 통해서.
“형님, 오랜만입니다.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잠도 못 자서 피곤하던 눈이 번쩍 떠지는 몰골.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왜 병상이 아닌 내 방 앞에 있는지도 모를 모습이다.
“베르게르. 우리 레몽 형이 죽었네.”
“…. 세상에.”
근데 하나 불길한 게.
“이 빌어먹을 나라는 얼마나 더 죽어야 끝나는 건가. 자네가 내게 알려주면 안 되겠나. 내 몸이 갈가리 찢겨 파리로 돌아왔더니 들리는 소식은 우리 형이 죽었다는 소리더군.”
“어….”
프랑수아의 눈에서 차오르는 게 눈물인지 분노인지 분간이 안 된다는 것이다.
분노라면, 그게 조국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독일을 향한 것인지도.
난 분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