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31
133화
회사 앞에서 일어난 소란으로 인해 이미 사내에는 재환이 왔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모든 직원들이 알게 모르게 회사에 문제가 있다는 걸 느끼고 있기에 거북이마냥 목을 움츠리고 상황을 살폈다.
재환과 직접 마주한 사장의 비서는 뻣뻣하게 웃었다.
“어,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여기 사장님을 좀 만나 뵈러 왔습니다.”
비서는 마른 침을 삼키고 차분히 답했다.
“지금 사장님은 출타 중이셔서 약속을 잡고 다음에 오시는 게….”
“안 계세요? 그럴 리 없을 텐데.”
재환은 슬며시 웃으며 서진을 바라봤다. 서진은 곧바로 수첩을 꺼내 아크 유통 사장의 스케줄을 쭉 읊었다.
“오늘 9시 출근, 10시에는 바이어와 미팅, 11시에는 바이어와의 점심 약속이 잡혀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별 다른 스케줄이 잡혀 있지 않는데, 여기에 오차가 있습니까?”
서진이 스케줄을 시간 단위로 줄줄 읊고 있으니 비서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 그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자 서진은 비서를 지나쳐 문을 벌컥 열었다.
고급스런 의자에 앉아있던 사장은 갑자기 들이닥친 둘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진은 담담하게 재환을 돌아보며 말했다.
“안에 있습니다.”
“뻔 하죠, 뭐.”
서진과 재환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뒤 곧바로 문을 걸어잠궜다.
사장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재환을 보고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KG 그룹 회장님이 여기까지 오실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요.”
“그럴 만 하죠. 저도 여기까지 와야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걸요.”
재환은 그리 말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가 아크 유통에 관한 재미난 얘길 들었거든요. 군납물품들에 장난을 치셨다면서요.”
재환의 돌직구에 사장은 바짝 긴장했지만, 이미 이런 상황에 대응 가능한 메뉴얼은 충분히 마련해 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저희가 납품하는 물픔은 전부 군부대에 최적화된 물품들입니다. 설령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군부대의 규모가 크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결과겠죠.”
모르쇠와 더불어 뻔뻔하게 형식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 건에 대해 조사하려던 기자들이면 쓸 만한 내용은 건지기 힘들 터다.
하지만 재환은 다르다.
“그렇다고 보기엔 받은 돈과 물품 사이의 갭이 크던데요.”
“……KG 회장님은 그리 안 바쁘신가 보군요. KG 그룹과 상관없는 회사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걸 보니 말이죠.”
사장은 메뉴얼대로 대응하면 문제 될 게 없다고 여겼는지 아까보다 여유있어 보였다.
그 여유가 오만함으로 바뀌면서 재환을 얕잡아 보기 시작한 게 문제라면 문제다.
“아, 그리고 보니 회장님은 원래 KG 그룹과는 연이 없던 분이셨죠?”
비아냥거림과 대놓고 면박을 주니 재환은 피식 웃었다.
자신이 들은 가장 많은 비아냥이 저런 거다 보니 이젠 별 데미지도 없다. 차라리 기자로서의 명예를 깎아내린다면 신박해서 좀 더 짜증이 나지 않았을까.
“제가 아크 유통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면 안 되나요? 저희 KG 유통의 자회사로 키우려고 생각한 건데 말이죠.”
KG 그룹의 자회사란 말에 사장의 얼굴이 다시 딱딱하게 굳었다.
재환이 KG 그룹을 손에 넣은 건 어디까지나 기자의 힘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넣은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장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사이 재환은 폭탄을 다시 드랍했다.
“군납품으로 유통하는 물품 양이 상당해서 꽤 이익이 될 거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일부 물품은 상품화해서 시장에 풀어도 될 거고요.”
“……그건 진심입니까?”
“진심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가요?”
이 회사를 고가에 팔 수 있단 게 중요하지.
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장은 곧바로 캐치할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머릿속으로 셈을 시작했다.
지금도 군납품으로 꽤 돈을 벌어들이고는 있지만, 자신의 탐욕을 채워주기엔 부족한 양이다.
하지만 이 회사를 바로 팔아버리면?
사장은 잠깐 생각한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평정을 되찾으려 했다.
“어, 얼마까지 생각하셨습니까.”
하지만 그 노력과 달리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 꼴이 우스워 재환은 짧게 웃었다.
사람이 한순간에 이렇게 바뀔 수가 있단 사실이 너무나도 우습다.
그럼 바뀌면서 어디까지 사람이 비굴해질 수 있는가.
그걸 알아보기 위해 미끼를 던졌다.
“500억까지는 생각하고 있죠.”
“500억!”
KG 그룹의 계열사들에 비빌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중소기업을 인수하기엔 상당한 금액이다.
미끼를 제대로 문 사장을 보면서 재환은 낚싯줄을 팽팽히 당겼다.
“지금 저희가 조사한 게 확실하다면 말이죠. 그걸 확인하러 제가 여기까지 온 거기도 하고요. 이젠 좀 회사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지 알겠나요?”
사장은 눈에 가득찬 탐욕을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고 재환은 확신했다. 당근은 충분히 쥐어줬으니 채찍을 휘두를 때다.
“근데 사장님 하나는 확실히 아셔야 해요.”
“어떤….”
“저희가 이 회사를 M&A를 진행한 뒤에 말이죠. 장부가 조작되어 회사 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게 밝혀질 경우.”
재환은 잠깐의 뜸을 들인 뒤 싸늘하게 그를 바라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장님의 삶을 나락으로 처박아드릴 겁니다.”
말에 담긴 한기 때문에 사장은 순간 지금 계절이 겨울인지 의심해야했다.
사장의 등골을 얼려버린 재환은 다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정보를 캐기 시작했다.
“일단 어떻게 군납 업체로 선정됐는지 그 과정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 * * * *
재환과 서진은 아크 유통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
“사장이 배짱이 좀 두둑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탐욕에 절어있던 사장은 최대한의 이익을 보고 위험은 줄이려고 했다. 이건 모든 사업가들이 갖춰야할 필수 덕목이긴 하지만, 사장은 그게 과했다.
“문제가 있는 사안에 대해선 직원이 멋대로 했다고 하고, 이익을 본 부분에 대해선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이런 상사 만나면 골치 아프죠.”
재환이 비서실을 통해 아크 유통에 대해 모든 걸 파악했단 사실을 모르는 사장은 사실에 일부 왜곡을 더해 재환에게 털어놨다.
재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 중 하나다.
“그래도 아크 유통 자체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까?”
“비서실장님은 농담도 잘하시네요. 저런 회사를 자회사로 인수 합병하라 말하면 최연호 사장님이 거품 물고 뛰어 올 겁니다.”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사장의 마음을 뒤흔들어서 원하는 정보를 빼내고, 가지고 있는 정보 흐름을 세탁하기 위한 블러프일 뿐이다.
진짜로 회사를 인수할 마음 따위는 1도 없다.
서진은 차에 시동을 걸고 재환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모실까요.”
“한마음당으로 가보죠.”
재환의 말에 서진이 멈칫했다.
“거긴 또 왜 가십니까?”
적진의 한복판으로 달려가자는 말에 서진이 불만 섞인 목소리를 냈다.
재환은 그런 서진을 보며 웃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재환은 아크 유통의 사장과 만나 정보를 교차 검증하고, 정보를 얻어낸 과정을 세탁했다.
이제 이 정보를 가지고 한마음당으로 가서 그들을 탈탈 털어버릴 일만 남았다.
“늘 하는 말이지만, 당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는 건 리스크가 상당합니다. 아직 카르텔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니 쓸데없는 구설수에 휘말릴 수도 있고요.”
“그 구설수는 기사 내면 끝날 일입니다. 정보 조사차 돌아다녔다고 하면 되죠.”
재환의 명성이 어중간할 때나 문제가 됐지. 압도적인 명성을 가지게 된 지금은 문제가 될 게 없다.
비밀스런 문제들을 폭로하기위해 발로 뛰어 정보를 얻었다고 하면 누가 문제 삼겠는가.
재환의 말이 일견 타당했기에 서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여전히 재환의 행동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어찌됐든 재환의 충실한 비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재환을 태운 차가 한마음당의 당 사무실로 향한다는 정보를 한마음당에서도 확인했다.
“대체 여긴 왜 오는 거야.”
“아크유통을 들렸다가 오는 중이라고? 거기하고 관련있는 거 누구야!”
“오순철 2선 의원님의 조카가 거기에 사장이라고 합니다.”
“아, 젠장. 그 놈 어딨어!”
그들은 재환의 행보를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고 대비를 했다. 물론 그런다고 재환을 막아 설 수 있는 건 아니다.
“강재환 5분 거리 내에 도착했답니다.”
“하, 어떻게든 시간 끌어봐!”
“오순철 이 놈은 왜 연락이 안 돼!”
한마음당이 시장 바닥마냥 소란스럽다가 재환이 도착하기 직전 상황이 얼추 정리가 됐다.
강재환은 한마음당에 도착한 뒤 마중 나온 의원을 보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거 조금 빨리 찾아뵀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진작 찾아와서 니들이 저지른 짓들을 털어버렸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지?
재환의 말을 다르게 해석한 이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이를 갈았다.
그나마 연륜이 좀 있는 의원이 나서서 말을 꺼냈다.
“아닙니다. KG 그룹을 이끄시는 분이 굳이 시간을 내서 이런 곳을 찾아주실 이유가 있겠습니까.”
수작부리지 말고 그냥 가라.
그런 의도를 담아 한 말을 재환은 곧바로 받아쳤다.
“찾아봐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 왔겠죠?”
“……무슨 이유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여기에 오순철 의원님 계시죠? 제가 지금 인수하려는 회사와 관련이 있으시다고 얘기를 들어서요.”
사업을 빌미로 나오자 의원들은 눈치를 살폈다.
미리 대응책을 짜긴 했지만 그게 유효할 지 감이 안 왔다. 차라리 그들은 오순철의 연락이 닿지 않아서 그냥 오늘을 넘길 수 있길 빌 뿐이다.
“지금 오순철 의원은 자릴 비웠습니다. 보좌관과 같이 이번에 준비하는 법률과 관련해서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보러 나갔으니까요.”
“그거 참 아쉽네요.”
재환이 진심으로 아쉬워하자 의원들은 고개를 돌리고 작게 욕지기를 뱉어냈다.
그래도 재환이 돌아갈 명분이 생겼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나 하늘은 그들을 돕지 않았다.
“후우, 오늘도 많이 덥네요.”
연락이 계속 안 되던 오순철 의원이, 하필 지금 당 사무실에 돌아온 것이다.
그들은 원망 섞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고, 재환은 진심으로 반가운 마음을 담아 그의 손을 붙잡았다.
“때마침 잘 오셨네요. 오순철 의원님.”
“어, 강재환 회장님?”
그는 왜 여기에 강재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어쩐지 꿈자리가 사납더라니.
당장 재환과 잡은 손을 놓고 사무실을 나가고 싶었지만, 어느 틈엔가 서진이 뒤에 서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진퇴양난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제가 오늘 좀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어, 어떤 얘기를….”
“여기서 나누긴 좀 그러니 자리를 좀 옮기죠. 당 사무실 내에 얘기를 나눌만한 장소가 있을까요?”
재환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묻자 그는 눈을 굴리면서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시선을 외면했다.
여기서 어정쩡하게 도와주면 같이 망한다는 걸 아는 탓이다.
“없나보군요. 그럼 일단 차로 같이 가실까요?”
“아니, 그게….”
재환은 오순철 의원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의 어깨를 붙잡고 사무실을 나갔다.
다른 의원들은 그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백정이 소 잡으러 가는 꼴과 다를 게 없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