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32
134화
의외로 오순철 의원인 이번 일에 대해 순순히 시인했다.
자신이 업체 선정에 도움을 줬다고 말이다. 하지만 적극적인 도움을 줬다고는 하지 않았다.
“제가 한 건 어디까지나 후보군을 늘려준 게 전부입니다.”
“업체 선정에 별 다른 수작질을 하지 않았단 말이죠?”
“제가 업체 선정에 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기나 합니까.”
다소 자조적인 어조로 말을 했지만, 재환의 생각은 달랐다.
2선이면 의원들 중에서도 급이 낮은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도 못해 줄 수준은 아니다.
재환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조금 더 떠물었다.
“그렇다고 보기엔 뒷돈으로 받은 게 있다죠? 그게 적은 액수도 아니고요.”
“아니, 조카가 삼촌한테 선물도 못 해준답니까. 어디까지나 선물입니다.”
재환은 그 말에 대해 반박하려다가 멈칫했다.
‘아, 김영란 법이 아직이지.’
청탁금지법, 흔히 김영란 법이라 불린 법안이 최초로 제안된 건 2012년도다. 제안 된 게 그 시기고 2년 반이나 지난 뒤인 15년에 시행되기 시작했으니 2010년인 현 시점에선 그에 대한 제안이 없다.
괜히 허튼소리를 했다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뻔 했다.
재환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얘기를 이어나갔다.
“선물이 좋긴 한데,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네요.”
재환의 의도를 파악한 오순철 의원은 바짝 긴장했다. 재환의 혀에 잘려나간 이가 한 둘이 아니라는 건 한마음당에 속한 그도 잘 알고 있다.
잘못하면 이번 의원 생활을 끝으로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나 짓게 될 수도 있단 생각에 그는 다급해졌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아니면 대체 무슨 원한이 있어서 저희에게 이러는 겁니까.”
“원한이라.”
재환은 턱을 슬슬 쓸며 그를 바라봤다. 그에 대한 원한은 없지만 카르텔에 대한 원한이라면 있다.
“제가 더러운 걸 좀 싫어해서요.”
“……그, 그게 이유의 전부라는 겁니까?”
“네.”
재환의 단답에 오순철은 이를 갈았다. 성인군자인 냥 행세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 안 들더라도 같이 할 필요는 있다.
“회장님, 조금만 생각을 해봐주시죠.”
“무슨 생각을 말이죠?”
“지금 회장님은 적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적이 많다는 말에 재환은 무심하게 그를 바라봤다.
안 그래도 요즘 재환이 걱정하던 것 하나를 딱 짚어낸 그는 이어서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다.
“회장님이 기자로서의 사명감에 넘치신다는 건 압니다만, 회장님은 KG 그룹을 이끄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 분이 적을 많이 만들어서 좋을 게 있습니까?”
마치 계열사 사장들이 할 법한 소리를 하니 재환은 괜히 미간이 좁혀졌다.
안에서 듣는 잔소리를 밖에 나와서도 들을 줄은 몰랐다. 우스운 건 서진이 자신도 모르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점이다.
서진의 반응에 힘입은 그는 신나서 입을 털었다.
“지금 KG 그룹이 진보 쪽을 지지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진정으로 KG 그룹을 생각하면 한마음당을 지지해주셔야 합니다. 저희야 말로 가진 자들을 더 가지게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요.”
“속물 같은 말이군요.”
“하지만 맞는 말이죠. 제 눈으로 봤을 때, 지금 회장님이 하시는 일은 조금 과장해서 자본주의에 대해 정면으로 대적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가진 자들이 문제라는 걸 밝혀서 그들을 처벌받게 한다.
이것까지는 좋지만, 그들이 처벌받으면서 회수한 돈들은 어디로 가는가.
국고로 환수되어 대부분은 국민들의 복지를 위해 쓰이게 될 거다.
가진 자들로부터 세금을 뜯어내 없는 사람들의 복지에 투자한다. 이것만 보면 홍길동이 따로 없지만, 조금만 비틀면 공산주의처럼도 보인다.
다소 선을 넘는 발언이었다는 걸 인지했는지 그는 손을 저으며 자신의 의견을 일부 수정했다.
“물론 이건 과장한 발언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북괴놈들과 같은 사상을 회장님이 하셨을 리는 없죠.”
“말하고 싶은 게 뭡니까.”
“이번 일을 덮어주시면 회장님의 힘이 되어드리겠다는 겁니다.”
이 말에는 재환보다 서진이 좀 더 솔깃했다. 그렇기에 끼어들어 잠시 이야기를 중단하길 원했다.
“회장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의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두 사람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옮겼다. 둘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된 뒤 서진이 제안했다.
“이번 건 아크 유통까지만 조지는 게 어떻습니까. 오순철 의원은 두고 말입니다.”
“비서실장님. 그건….”
“압니다. 회장님의 이상과는 부합하지 않는 결정이란 걸요. 하지만 회장님도 슬 느끼고 있지 않으십니까. 이대로면 KG 그룹은 고립되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서진도 서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다. 재환이 KG 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KG 그룹의 이미지는 청렴과 믿을 수 있는 기업, 국민을 생각하는 기업으로 굳혀졌다.
이는 굉장히 좋은 일이지만 문제라면 정재계로부터 고독해져 간다는 게 문제다.
재환이 정보를 못 얻는 것처럼 서진 역시 주위로부터 정보를 얻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이제 슬슬 현실과 타협해야 할 시점이다.
재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민하는 기색이 보이니 서진이 말을 덧붙였다.
“어디까지나 회장님이 하시는 건 불법적인 부분을 폭로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아크 유통만 조지면 될 일입니다.”
“카르텔은 그대로 두자는 겁니까? 그 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비서실장님도 따로 조사를 해서 아시지 않습니까.”
재환의 말에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환을 통해 카르텔의 존재를 인지하고 난후 서진도 독자적으로 그들의 뒤를 캤다. 그 결과 대부분이 진실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을 처벌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하지만 강경대응을 주장하는 재환과 서진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오순철 의원도 깨끗하지 않은 건 맞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악인이라 불릴 수준은 아닙니다. 고작해야 돈을 조금 더 먹고, 갑질을 몇 번 부렸을 뿐이죠. 형사사건이라 불릴 만 한 건은 전혀 없습니다.”
서진은 마른 입안을 잠시 축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는 약간의 잘못된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무단 횡단을 한 사람과 신호등을 꺾어버린 이를 똑같이 처벌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나치게 빡빡한 도덕적 잣대에 유연성이 필요하다 주장하니 재환도 고민을 했다.
그리고 타협안을 제시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이번 건은 비서실장님 말대로 처리하되, 오순철 의원이 같은 짓을 하게 되면 깔끔하게 처리하는 걸로 하죠.”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고의다.
재환이 어렵게 낸 타협안에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극적인 합의를 하고 난 뒤 다시 오순철과 마주했다.
“좋습니다. 이번엔 오순철 의원님의 편을 들어드리죠.”
“아이고, 감사합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재환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행동할 것, 그리고 한마음당 내부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지 감시할 것을 요구했다.
스파이가 되라는 말에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더했다.
“아, 그리고 아크 유통과 쓰리스타는 언론에 보도될 겁니다. 그 점은 미리 알아두세요. 봐드리는 건 어디까지나 오순철 의원님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죠.”
이야기를 마치고 차에 올라타 KG 그룹으로 향하는 재환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너무 빡빡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건가.’
악행은 강력히 처벌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일이 또 발생할 테니까.
전생을 포함해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악의 축이라 부를 수 있는 카르텔과 상대하면서 생긴 하나의 철칙이었다.
하지만 재환은 그 생각이 너무 뻣뻣한 건 아닌가 고민이 됐다.
서진의 말대로 무단횡단을 한 사람과 횡단보도 신호등을 부순 이를 똑같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닌가.
만약 그렇게 보고 있었다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이런 일들을 보도해도 될 인간인가.
“때 아닌 인문학적 고민을 하고 있냐.”
이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는 한결밖에 없었고, 한결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네놈 고지식한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잖아.”
“……내가 그랬어?”
“자각이 없었다는 게 더 무섭네. 그래, 임마. 내가 제3자의 시선으로 본 너에 대해 말해줘?”
재환이 해달라고 하기도 전에 한결은 말을 줄줄 읊었다.
“자존심은 더럽게 쎄고, 아니다 싶은 건 의견 굽힐 줄 모르고 달려들고, 이런 놈이 어떻게 기자가 됐냐 싶지.”
“선배, 이 때다 싶어서 할 말 안 할 말 다하는 거지?”
“알았냐?”
한결은 킬킬 웃다가 뒷말을 했다.
“너도 조금 유해질 필요가 있어.”
“유해진다라….”
“어차피 카르텔의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잡아넣었잖아. 악의 근원이라 부를 인간들이랑 그 간부급들. 남은 건 전부 조무래기 아냐.”
“그렇지.”
말 그대로 조무래기들이다.
개개인이서 어떤 일을 벌이기에는 별 다른 힘이 없는 이들.
“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할 기회도 없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은 잘 처리했다고 생각해.”
“그런가.”
다소 애매한 표정을 짓는 재환에게 한결이 말을 덧붙였다.
“이젠 적이 아니라 니 편을 만들어야지. 말없이 지지해줄 수 있는 이들이 아니라 적극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말야.”
한결의 말은 결국 최근 재환이 고민하던 것에 대한 답과 일맥상통했다.
정보가 필요하다면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악행을 저지른 이들에게 회개할 기회로서 이용해보자는 거다.
“어차피 수틀리면 바로 기사 터트리면 되잖아. 지금 TBS 인지도가 어떤 줄 아냐? 니가 종교를 만들어도 믿고 따를 신도들이 줄을 이을걸. 진리교 같은 걸로 말야.”
“그건 좀 과장이 아닐까.”
“내기 해볼래?”
자신의 생각이 틀린 거 같진 않은데, 내기 하면 질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재환이 침묵하니 한결이 웃다가 전화를 끊었다.
한결과의 얘기를 마친 뒤 재환은 어딘가 편안해진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카르텔의 큰 무리를 조각조각 낸 뒤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기분이었는데, 지금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 * * * *
아크 유통의 군납 비리 기사가 터지고 며칠이 지났다.
아크 유통의 사장은 재환이 자신을 찾아와 갑질을 했다고 말했지만, 그 정도의 논란에 휘둘리기엔 재환이 쌓아온 명성은 견고했다.
그 덕에 재환은 한결이 했던 말이 진실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재환은 그 뒤로 자잘한 기사들을 보도하며 새로운 인맥을 넓혀갔다.
거미줄과 같은 정보망을 넓혀가는 중 재환은 의외의 연락을 받았다.
“싸가지 없는 놈. 바쁘냐.”
오랜만에 연락을 해온 건 다른 이가 아닌 구정혁 전 회장이었다.
지난 번 일이 터지고 난 뒤 연락을 한 적이 없어서 꽤 반가우면서도 미안했다.
“잘 지내셨어요?”
“누구 덕에 그러지 못했다.”
“거 참. 그래도 안전가옥 정도면 안전하게 잘 지냈을 거면서.”
재환은 피식 웃은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쩐 일로 연락을 다 주셨어요?”
구정혁은 한숨을 내쉬고 궁시렁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나 좀 도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