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36
138화
오랜만에 본 이한철은 꽤나 수척해져 있었다.
모진 고문을 받다가 탈출한 이와 같단 느낌?
재환이 이한철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으니 그가 피식 웃었다.
“왜, 내 꼴이 좀 우스워?”
“알고 있는 거 같은데.”
“맞아. 알고 있지.”
이한철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모습에 재환이 이 사람이 진짜 이한철이 맞나 싶을 정도다.
자신이 아는 이한철이라면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도리어 뻔뻔하게 도와 달라 말을 할 인물이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죽다 살았어?”
“비슷하지.”
이한철은 아련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한성은 붕괴 직전이다.”
“……그거 참 듣던 말 중 반가운 소리네.”
재환이 직접 한성을 박살내려고 했는데, 손을 쓰지 않고도 알아서 무너져 준다? 이러면 그저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 망하느냐다.
단순히 한성 전자가 문을 닫는다는 건가, 아니면 계열사들이 떠나면서 힘을 잃는다는 건가.
어떤 식으로 망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얘기해 봐.”
“그 전에.”
이한철은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정보를 넘겨주면 이번 일에 날 돕는다고 확답을 해줘.”
“흐음…. 그건 두고 봐야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게 함정이라면? 같이 망하는 테크를 탈 수도 있으니 정보만 받고 런 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재환의 대답은 이한철도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인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행동에 재환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설마 내가 그 일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근데 이번 얘기를 들으면 생각이 좀 달라질 거야.”
이한철의 말에 재환은 어느 정도 호기심이 갔다.
“설명해 봐.”
“회장님이 포토존에 서기 전에 우리에게 내린 지시가 있어. 마지막 과제라고도 하지.”
이한철은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재환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설마하니 한성이 중국 쪽을 통해 활로를 찾으리라곤 생각을 못했던 탓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설마 싶었다. 중국을 통하는 건 리스크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게 도박수라는 걸 모를 이재명이 아닐 텐데, 이제 도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판단을 했단 말이지.’
자신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는 건 제법 만족스럽지만, 판을 너무 키웠다는 점에서는 곤란했다.
이대로면 KG 그룹의 규모를 더 크게 키울 때 문제가 생길 게 보였다.
그 부분에 대한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이한철의 말에 집중했다.
“그래서 이강철은 공산당과 연줄을 뚫었어. 중국 쪽에 몇 개의 협력체 본사를 이전하는 조건으로 자금 지원과 시장 루트를 확보했지.”
“그래, 그거까진 오케이. 문제가 되는 게 뭔데.”
“시장은 하나인데 사람은 둘이란 거지.”
“아하.”
중국과 연줄을 만드는 건 회장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수단이 되었다.
당연히 이강철은 이한철이 자신보다 좋은 루트를 뚫지 못하도록 막아야만 했다.
“그래서. 이강철이 널 담그려고 했다?”
“비슷하지. 감금당해 있었으니까.”
“용케 탈출했네.”
“회장님의 비서가 도왔지.”
이 부분도 조금 의아하긴 했다.
재환이 아는 이재명은 이런 경쟁에 자신의 손을 보태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을 줘야 하고,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경쟁이 되지 않을 테니까.
설령 이번에 이한철이 감금당했다 하더라도, 그건 대비하지 못한 이한철의 잘못일 뿐이다.
자신이 도와줄 이유는 일절 없는 셈이다.
“어째서?”
“제대로 된 경쟁을 위해서라던데. 진짜 속내는 모르지. 회장님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걸?”
재환은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면서 상념에 잠겼다.
‘이강철의 행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은데.’
지나치게 경쟁에 몰입되면 잘못된 수단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강철이 그런 케이스가 된 게 아닐까 싶다.
이한철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이기도 할 테고.
“그래서 이대로는 망하겠다 싶어서 날 찾아온 거냐?”
“그래.”
이한철의 눈을 보고 재환은 피식 웃었다.
이거 참 뭐 하나에 매몰된 모습이 딱 이용해 먹기 좋은 상태다.
그러려면 조금 더 흔들어 둘 필요가 있다.
“근데 왜 내가 널 도와야 하지? KG 그룹이야 경쟁자가 없어지면 환영이지.”
“그래, 하지만 한성이 있는 편이 더 좋을 걸? 경쟁자가 있는 게 도움이 되니까.”
“경쟁보다 좋은 건 독점이지. 공부 제대로 안 했나 보네? 우리가 원하는 속도대로 물건을 풀고, 정보를 풀 수 있는 상황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다고?”
재환의 맞는 말에 이한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게 이한철의 멘탈이 꺾였다는 건 아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지. 하지만 지금 네가 시장을 독점하면 문제가 안 생길 거 같아?”
이한철은 여기까지 그냥 찾아온 게 아니란 걸 보여주기 시작했다.
“지금 물밑에서 널 잘라낼 계획이 진행되고 있단 건 알고 있어?”
재환은 일전 구정혁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다.
정글에선 자신 역시 누군가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도록 이미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구정혁이 했던 말과 지금 이한철이 하는 말은 일맥상통했다.
재환은 그 무리에 속한 게 누구인지 지난 번 파티로 대략적인 유추를 하긴 했지만, 정답을 찾아내진 못했다.
“거기에 거드는 게 누구지?”
“그 패를 까보일 수는 없지. 다만 거기에 이강철도 손을 보태고 있어.”
그 말에 재환의 눈가가 꿈틀했다.
이강철이 손을 보태고 있다는 얘기는 KG 그룹을 무너트리겠단 생각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니지. 이건 그 수준의 이야기가 아냐.’
재환은 전체적인 정보를 조각조각 모아 다시 그림을 그려봤다.
지금 이한철이 한 이야기와 자신의 생각을 붙여 모으니 하나의 결론이 나왔다.
“이강철이 회장이 되면 한성이 중국 기업으로 넘어갈 확률이 높아지고, 그럼 KG 그룹은 자연스럽게 독점 체제가 되겠지. 그런 상황이 되면 이강철의 주도 하에 조직적으로 날 끌어내린다. 그리고 KG 그룹은 이강철이 먹는다.”
다소 비약이 섞인 그림이다. 이 정도의 그림을 그리면 도화지 밖으로 그림이 빠져나가다 못해 도화지를 찢어버리는 수준이니까.
하지만 상대가 이강철이고, 한성이다.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이한철 역시 재환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를 보였다.
“사업을 새로 시작하느니 이미 있는 기업을 먹는 게 빠르다고 생각한 거겠지.”
“한성은 버리는 배라는 거군. 이재명은 그 꼴이 보기 싫었던 거고.”
누구라도 어렵게 키운 사업이 자신도 모르게 홀라당 남의 손에 넘어간다면 혈압이 오를 만하다.
그것도 그냥 기업도 아니고 한성 정도 되는 대기업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보는 게 맞겠지. 이제 좀 한성이 있어야 할 이유를 알겠어?”
재환은 이한철을 가만히 바라봤다.
번거로운 짓거리를 하는 이강철보다야 이한철이 낫다.
그리고 한성을 완전히 잡아먹는 것보다 이한철을 회장으로 두고 있는 한성을 필요에 따라 이용해 먹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어느 정도 저울질을 하고 난 뒤 물었다.
“근데 날 찾아왔다는 건 네 힘으로 이강철을 못 이긴다 판단한 걸 거고, 대가는 충분히 치를 수 있겠지?”
“계열사 두 개. 어때.”
“통 크네.”
“물론 내가 회장이 될 때까지 돕고 나서의 이야기지만.”
한성이 보유한 여러 계열사 중 캐쉬 카우에 속하는 계열사 두 개를 아무런 손해 없이 챙길 수 있다면 상당한 이익이다.
미래에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것들을 얻으면 더 도움이 될 터고.
더불어 한성에 다소 무능력한 윗대가리를 앉히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 정도 된다.
“흐음….”
“어쩔 거야.”
“여기까지 와서 그냥 쌩으로 도와 달라 하진 않을 거고, 어느 정도 생각해 둔 그림이 있겠지?”
재환의 질문은 곧 이한철의 제안에 대한 답이었다.
이한철은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TBS를 이용할까 싶거든?”
“TBS를?”
“중국 쪽에 국내 기업의 기술 유출 건으로 묻어버리려고.”
기술 유출 문제는 중요한 안건이긴 하다. 단순히 기업을 매각하는 것과 달리 기술을 유출한다는 건 나라 팔아먹는 수준의 일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니까.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 증거가 있어야지. TBS는 증거 없는 기레기 같은 기사는 절대 안 내보내는 거 알지?”
“증거는 차차 모으면 될 일이고. 일단 대략적인 방향성만 잡아 둬.”
이한철은 거기까지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시 동맹관계를 체결했다는 것만으로 자신은 여기까지 온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나가려는 이한철을 보고 재환이 말을 던졌다.
“허튼짓 할 생각이 있다면 버리는 게 좋을 거야.”
“그럴 여력도 없어.”
이한철이 떠나고 재환은 서진에게 곧바로 지시했다.
“이한철의 뒤를 밟아두세요. 최근 행적도 조사하고, 행동거지도 전부 확인해 두고요.’
“회장님은 이한철 사장이 함정을 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머리는 없죠.”
이한철이 자신을 상대로 함정을 판다?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지금까지 당한 횟수만 세 번을 넘어간다. 그런 상황에서 또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하는 건 학습능력이 떨어진다고 시인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재환은 조심스러웠다.
“한 번 미끄러지는 것도 타격이 크니까요. 한성이 다시 살아나는 꼴을 보고 싶지도 않고요.”
“그것도 맞는 말이죠.”
“그러니 철저히 조사해 두세요.”
“알겠습니다.”
서진이 메모를 하고 나서 재환은 추가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절 끌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죠.”
“그 부분도 제대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내부에는 누가 있는지 외부에는 어느 기업이 가담했는지 확실하게 알아두세요. 저를 적으로 돌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확실하게 경고를 해줘야죠.”
지시를 받은 서진이 회장실을 나가고 재환은 상념에 잠겼다.
일이 빠르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들은 전부 정리가 됐다. 하지만 리스크는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기업 이미지나 마케팅, 협력업체들의 관계 등. 생각할 부분이 많네.’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면 아까 말했던 그룹이 재환을 밀어내기 위해 혈안이 되서 달려들 게 분명하다.
그러니 철저하게 일을 진행해야 한다.
관자놀이가 또 당기기 시작하니 재환은 본능적으로 수첩을 꺼내 확인했다.
이번만큼은 전체적인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간단한 메모를 곁들이면서 내용을 훑었다.
그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수첩을 덮으려는 순간, 일전에 받았던 기묘한 느낌을 다시 받았다.
“또냐.”
덮었던 수첩을 다시 펼치니 변화가 있었다.
재환의 필기체로 쓰여졌지만, 재환이 쓴 적 없는 내용이 뒤 쪽 빈 페이지에 추가가 되어 있었다.
재환은 새로운 내용을 다시 확인하기 전에 자신이 겪지 못한 결말을 확인했다.
-KG 그룹은 한성에 넘어갔다.
-이강철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충분한 대책 마련,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다.
재환은 그 내용을 확인하고 수첩을 덮었다.
“철저하게란 말이지.”
실패했던 내가 그리 말한다면, 그렇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