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37
139화
이강철에게 패배했다는 문장이 뇌리에 박혀 빠지지가 않았다.
그렇기에 수첩에 적힌 문장을 꼼꼼히 살펴봤다.
어느 부분에서 실수가 있었는가, 어느 시점에서 이강철이 강수를 두고 나왔는가.
그리고 패착이 드러난 시점은 어디인가.
재환의 꼼꼼함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지가 되고 있었고, 카르텔의 붕괴 이후로 수첩을 자주 들여다봤기 때문에 기록에서 부족한 면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상당히 의외네.”
재환은 자신도 모르게 겪었던 또 다른 전생의 기록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전생의 내용만 보자면 이번 일의 패착은 이한철의 제안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시작이었다.
이한철과 이강철이 손을 잡았다는 게 아니다. 이강철이 영악하게 이한철을 이용했다는 게 옳겠지.
‘그 점을 생각 못하긴 했어.’
이강철도 머리가 있는 녀석이다.
이한철이 재환을 찾아갈 걸 조금도 예상 못했을까.
처음부터 예상을 하고 밑그림을 그렸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리고 이한철의 움직임을 제어하면서 날 함정에 빠트린다.”
그리고 그 함정을 만든 건 이강철이 아니라 이한철로 보이게 만드는 거다.
교묘하고 교활한 속셈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이한철이 노련한 맛이 있으면 같이 잡아넣으면 되는데.”
그건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다.
차라리 이강철이 자수하길 바라는 게 더 낫겠지.
고민을 조금 더 하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일단 이번 건은 혼자서 처리하기엔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다른 이들과 협력해서 한 번에 치는 게 낫다.
“비서실장님. 잠시 올라와 보시죠.”
서진을 부른 뒤 재환은 적당한 자료를 추려냈다. 주로 한성 물산에 관한 자료들로 일전에 조사한 비리와 관련된 사안들이다.
당장 이강철이 움직임을 저지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네, 비서실장님. 이거 좀 조사해 주세요.”
재환이 내민 자료를 본 서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성물산의 회계 감사 자료지 않습니까? 이건 2년 전 자료라 최신 자료와 비교하면 오차가 클 겁니다.”
“최신자료와 비교하면서 오차 확인하고, 최연호 사장에게 그 자료 보내서 저희 쪽에서 조사한 한성 물산의 자료와 비교 한 번 해보라고 하세요.”
“……문제가 있는 겁니까?”
“한성에서 장난을 조금 쳐놨거든요. 큰 문제로 삼긴 부족하지만, 적당히 건드릴 수 있을 거에요.”
서진은 한성물산과 적당히 딜을 보라는 재환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SJ 그룹의 재정 규모를 대략적으로 파악한 자료 좀 구해주시고요. 이정진 회장님께 밥 한 번 산다고 연락 좀 넣어주세요. 이한철한테도 말 좀 전달해 주세요.”
“어떤 말을 전달할까요.”
“독립하라고요.”
지금 이한철은 이강철과 같은 집, 본가에서 생활 중이다. 방 하나를 두고 생활하다보면 의도치 않게 여러 정보를 얻게 되는데, 이강철은 이 점을 이용해서 이한철에게 정보를 흘린다.
아까 했던 생각이지만 이한철이 좀 똑똑했다면 그 정보들을 좀 걸러듣거나 정보들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노련미를 보여주겠지만, 그런 건 바랄 수 없다.
차라리 이강철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따로 나와 사는 게 최선이다.
“이한철이 말을 들을까요.”
“안 들으면 오갔던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한다고 해주세요.”
재환의 강수에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한철의 짜증 섞인 불평을 듣게 됐지만, 배째라 식으로 나갔다.
지금 협력 관계는 상호 동등한 선에 놓여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실상은 재환이 갑에 가깝다.
재환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까딱 잘못하면 이한철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서 중국으로 팔려나가게 될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그 자존심 강한 이한철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올 줄은 몰랐군요.”
이정진 회장은 고기를 썰며 그리 말했다.
그 날 저녁에 이정진 회장과 만난 재환은 이한철과 만났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다만 이강철이 다른 기업체들과 공조해서 KG 그룹을 흔들려고 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정진 정도면 제법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KG 그룹의 약점이 될 법한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으니까.
“그나저나 한성을 중국에 매각한다라…. 배짱이 큰데, 이재명 회장이 이걸 가만 두고 볼지 모르겠군요.”
“이재명 회장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지난 번 부정선거에 한 손 거들었다는 이유로 한성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니까요.”
“그래도 강재환 회장님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럴수록 뻔뻔하게 버텨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얼굴에 철판을 대고 뻔뻔하게 버티면 결국 위기를 만회하고 넘어갈 수 있는 기회가 온다.
그걸 잘 아는 이정진 회장이기에 이재명 회장이 순순히 물러난다는 점에서부터 이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재환은 한 입 크기로 썰은 고기를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이강철이 밀어낼 겁니다. 이재명 회장의 비리와 더불어 누구에게 돈을 먹였는지, 언제 지시했는지, 그런 정보들을 풀 겁니다.”
이건 재환이 겪지 못한 전생에서 일어난 일이다.
메모를 할 때의 자신도 놀랐는지 글씨체가 다소 흐트러져 있었다.
“흐음…. 그거 참 극단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군요.”
“이강철은 한성을 버리기로 작정한 거 같으니까요.”
이미 용골이 휘고 바닥에 구멍이 크게 난 배를 더 탈 이유가 없으니 적당한 때에 기회를 봐서 팔아 버리겠다는 거다.
“그렇다고 가족을 버리다니….”
“사고방식이 다르죠.”
범죄자와 일반인의 사고방식이 다른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된다.
이 경우엔 일반인과 사이코 패스의 사고방식 차이랄까.
“그나저나 이강철이 그런 방식으로 나온다면 조만간 한성이 조각조각 나겠군요. 계열사 중에선 중국으로 넘어가길 원치 않는 곳도 있을 테니까요.”
한성이 타격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한성이다.
아직까지는 국내 1위 기업이란 이미지를 갖추고 있는 덕에 굳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싶지 않은 계열사도 나올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계열 분리가 일어난다.
“그 점 때문에 이정진 회장님을 부른 겁니다.”
“어떤 얘기가 나올 지 흥미진진하군요.”
“한성의 계열사를 흡수해 보실 생각 있으십니까.”
재환의 질문에 이정진 회장은 고민하는 기색을 흘리면서 나이프만 놀렸다.
스테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적당히 다 썬 다음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그 일련의 과정 동안 재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정진 회장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상하군요. KG 그룹에서 계열사를 흡수하는 게 더 이익 아닙니까? 굳이 저에게 그런 제안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어차피 이야기를 듣고 하나 정도는 먹어야겠다 생각하셨지 않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하게 되죠. 어느 사업가가 이런 기회를 놓치겠습니까.”
한성의 계열사라면 독자적으로도 생존하겠지만, 큰 그룹 하나와 함께 하고 싶단 생각도 있을 터다.
돈이 돈을 버는 법이니까.
이정진은 스테이크를 간 보듯 포크로 쿡쿡 찌르면서 되물었다.
“그걸 왜 KG 그룹에서 하지 않고 선심 쓰듯 넘겨주겠다는 겁니까.”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괜히 욕심 부리다가 배 터져 죽는다고 말이죠.”
재환은 전생의 지식들을 기반으로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기업을 불리고 있다.
그렇다보니 KG 그룹의 성장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지만 여유 자금이 부족했다.
여유 자금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힘들다는 얘기도 된다. 노련한 이들이 보기엔 지금 상황이 굉장히 아슬아슬하단 거다.
“그런 이유로 저희 쪽에선 여유가 많이 없거든요.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한 입 정도는 해볼까 싶지만, 통째로 삼키기엔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SJ 그룹은 다르죠?”
재환의 웃음에 이정진은 미간을 좁혔다.
그 말대로 지금 SJ 그룹에는 여유 자금이 꽤 됐다.
근데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재환의 KG 그룹 때문이었다. 재환이 여러 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는 덕에 지금 이정진 회장은 어느 곳에 투자를 하기가 애매해졌다.
덕분에 돈이 쌓여만 갔다.
“강재환 회장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번 기회에 하나 정도는 먹어 치워 볼까 싶군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 제안을 한 대신 KG 그룹에서 지원을 조금 해주시겠죠?”
이정진이 능글맞게 웃으니 재환이 사무적인 웃음을 지었다.
“이미 정보를 드린 걸로 부족합니까? 충분하다 못해 넘칠 거 같은데요.”
“그동안 KG 유통에서 저희 유통망을 제법 가져간 걸 빼고 말씀하시네요. 그걸로 저희가 제법 많이 손해를 봤는데요.”
두 사업가의 웃음소리가 가볍게 흘렀지만 동시에 불꽃이 튀었다.
잠시 후 재환은 차분히 답했다.
“안 그래도 그 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습니다.”
“뭡니까. 불길한 소리를 할 것 같단 예감이 드는데요.”
“천만에요. 이건 이정진 회장이 바라는 말일 겁니다.”
재환은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답했다.
“조만간 KG 유통을 내놓을 겁니다.”
“……네?”
“계열사 분리를 진행한단 얘깁니다.”
이정진 회장은 재환의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마비가 걸린 뇌를 억지로 움직여서 재환의 말을 다시 정리해봤다.
‘KG 유통을 내놓는다. 이걸 나한테 말했다는 건 우리보고 유통을 먹으라는 얘긴데, 대체 왜?’
이정진 회장은 최근에 KG 그룹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떠올려 봤다.
전체적으로 규모를 빠르게 키우고 있던 탓에 주가가 껑충 뛰고 있었지만 자금에 여유가 없단 느낌을 받긴 했다.
그런 상황에서 1인분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사업이 KG 유통이었다.
그걸 내놓겠다는 이유가 뭘까.
‘자금이 필요하단 얘기다. 어디에 쓰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걸 호재로 봐야할까 악재로 봐야할까.
고민을 하던 이정진은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어디에 쓰시려고 합니까. KG 유통 정도면 규모가 제법 큰데 말이죠.”
한 때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대기업이었던 KG 유통을 버리고 뭘 취하려고 하는가.
이에 대한 질문에 재환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건 지켜보시면 알겁니다. 일단 이정진 회장님께 도움이 된다는 건 확실하지 않습니까. 경쟁사가 사라진다는 건데요.”
“그건 그렇지만, 하….”
이정진은 이마를 한 번 쓸어 넘기고 고개를 저었다.
“대체 강재환 회장님이 어떤 그림을 그리시는지 저로서는 도통 감이 안 오는군요.”
“지켜보시면 압니다.”
이정진은 조금 더 고민했으나 일단 결정을 내리지 않고 유보하기로 했다.
당장 결정하기엔 너무 규모가 큰 건이다.
“천천히 생각해보시고 답을 주시죠. 답을 주시는 대로 움직일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어려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식사를 마저 할까요.”
이미 차갑게 식은 고기를 입 안에 넣은 재환이 그리 말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정진 회장을 배웅한 뒤 서진이 준비한 차에 올라탔다.
서진은 식사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도청으로 실시간으로 들은 상태였다.
“KG 유통을 매각하신다고요?”
“네.”
“저한테는 그런 얘기 없었지 않습니까.”
다소 서운한 투로 얘기하는 서진에게 재환이 말했다.
“말하면 말리실 거 아닙니까.”
“당연하죠. 그 좋은 사업을 왜 포기하는 겁니까.”
재환은 창밖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더 큰 그림을 위해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