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24
24화
회사로 돌아가니 한결이 한숨을 푹 내쉬고 재환을 노려봤다.
이유야 뻔했으니 재환이 먼저 지고 들어갔다.
한결의 어깨를 주무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비서 일 많이 빡세?”
“비서 일에 편집국장 노릇까지 하려니 죽을 거 같다. 비서 안 뽑냐? 나 말라 죽는 거 보고 싶어?”
“좀만 참아봐. 지금 구하고는 있는데 쉽지가 않네.”
카르텔에 줄을 댄 인간이 어디든 있다는 걸 알았으니 함부로 비서를 뽑기가 좀 그랬다.
그렇다고 한결을 계속 괴롭힐 수는 없으니 비서를 뽑긴 해야 했다.
‘유서진, 그 사람은 아직 결정을 못 내렸나.’
구 회장이 타계할 때까지 시간은 준다고 했지만 조금만 더 빨리 결정해 달라고 할 걸 그랬다.
그가 있으면 비서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될 테니까.
“그래서 연락 온 거 있어?”
“M방송국의 예능 국장이 직접 찾아왔다. 얼굴 벌게져서 온 게 독이 잔뜩 오른 거 같던데, 너 또 뭐 했냐?”
“하긴 뭘 해. 자기가 쫄리니까 찾아온 거지.”
먼저 찾아갔을 때는 냉랭하더니 하루도 안 되어서 직접 찾아올 줄이야.
그만큼 김 PD를 뺏긴 게 분한 모양이다.
“대표실에 있다.”
“어, 고마워.”
바로 들어가도 되지만 일부러 직접 차를 타면서 시간을 끌었다.
급한 건 재환이 아니지 않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대표실에 들어가니 소파에 앉아서 인상을 팍 쓰고 있는 구한정 국장이 보였다.
“아유, 예능 국장님이 여기까진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 예의만 없는 줄 알았는데, 상도덕도 없군!”
다짜고짜 호통부터 내지르니 살짝 귀를 막았다가 뗐다.
그 행동이 그의 성질을 더 돋웠지만 알 바 아니다.
“저에게 예의를 논하기에 예의를 아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시네요.”
“뭐야?”
“연락이나 좀 하고 오시지 그러셨어요. 제가 좀 많이 바쁘거든요.”
다리를 꼬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거만한 태도에 예능 국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지만 아랑곳 않고 추가타를 넣었다.
“국장님도 바쁘실 텐데요. 김 PD님 대신해서 무제한 도전 이끌어 나갈 PD도 구하셔야 할 거고, 내일 쓰실 시말서도 미리 준비해 놔야 되지 않겠어요?”
“김 PD는 못 내줘! 그거 우리 방송국의 의견이다.”
“자유 경제시장에서 돈 많이 주고, 혜택 많이 주는 대로 옮겨가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김대협 PD가 M방송사의 소유물도 아닌데, M방송사에서 이래라저래라하는 건 좀 웃기지 않나요?”
예능 국장은 화병으로 금방이라도 드러누울 것만 같았다.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저었다.
“들어가서 쉬세요. 내일 여기저기 얼굴 비추시려면 피곤하실 텐데요.”
재환의 단호한 축객령에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재환의 뺨을 거칠게 때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김 PD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재환에게 사정을 해야 하니까.
“강 대표, 그러지 말고 좀 유연하게 생각을 해보자고.”
“일 없습니다.”
재환은 컴퓨터를 켜며 더 말을 섞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알고 무슨 답을 할지도 뻔한데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축객령에도 소파에 앉아 버티고 있는 예능 국장을 무시하고 기사를 써 내려갔다.
녹취록을 틀고 그걸 옮겨 적을 때마다 그의 안색도 파리하게 질려갔다.
장문의 기사를 어느 정도 완성시킬 즈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강 대표님, 손님 찾아왔습니다.”
한결의 목소리를 듣고 재환은 목을 주물렀다.
불청객일 거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저 바빠요. 그러니까 따로 날짜 잡아주신 뒤에 돌려보내 주세요.”
“많이 바쁜 모양이군.”
분명 돌려보내 달라고 했건만 문이 멋대로 열리며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재환은 무정하게 그를 바라봤고, 가시방석 위에 앉아있던 예능 국장은 용수철이 튕겨 나오듯 일어섰다.
“이사님, 여기는 어쩐 일로….”
“방송국 기둥이 뽑히게 생겼다는데 가만있을 수 있나.”
“정 이사님, 저희 대표님이 곤란해하시니 다음에….”
“다시 한번 물어보게. 나하고 얘기 나누는 게 곤란한지 말이야.”
재환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정이사라는 늙은이를 가만 바라봤다.
그가 가늘게 뜬 눈을 보자면 묘한 확신이 있었다.
협상 테이블에 재환을 앉게 만들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그런 확신.
그 확신을 재환은 정면에서 부정해줬다.
“제 답은 같습니다. 오늘은 일이 많아 바쁘니 다음에 시간을 잡고 오시죠. 지금은 대통령이 시간을 내달라고 해도 못 내드립니다.”
“허허, 그러지 말고 가볍게 약주나 한 잔 하지? 이 술이 돈 주고도 못 마시는 귀한 술이야.”
정 이사는 가방에서 검은 봉투에 담긴 술병을 들어 보였다.
재환이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신다는 정보를 어디서 캐낸 모양이다.
하지만 재환은 평범한 애주가가 아니다.
은은하게 풍기는 술 냄새로도 저게 고급 양주인지 아닌지 정도는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요 앞에서 싸구려 양주라도 사신 모양인데, 그걸 어떻게 돈 주고 못 삽니까. 그걸로 꾀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재환이 단호하게 선을 긋자 정 이사는 헛기침을 했다.
설마 냄새만 맡고 바로 술을 알아차릴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잘됐네요. 거기 계신 분하고 같이 손잡고 나가셔서 술이나 하시죠. 그림도 잘 나오겠네요.”
“미안하네.”
재환이 계속 철벽을 치니 정 이사는 빙 둘러가길 포기하고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60이 넘은 영감이 32의 청년에게 고개를 숙이는 건 어떤 이유든 별로 보기 좋은 그림이 아니다.
“우리 애들이 좀 처신을 못 했던 모양이야. 이 늙은이를 봐서라도 용서해주게.”
“말로 용서할 수 있다면 살인자들도 전부 용서받겠죠.”
재환은 한숨을 내쉬고 문가에 서 있는 한결을 바라봤다.
아마 여기서 제일 난처한 게 한결이 아닐까 싶다.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도 지금보단 처지가 나을 거라 여기며 짠내나는 눈빛으로 재환을 바라봤다.
‘적당히 해결해라.’
한결에게 진 빚이 많기에 더 고달프게 만들기는 싫었다.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맞이용 소파로 돌아왔다.
정 이사는 그제야 허리를 펴고 재환의 맞은편에 앉았다.
재환이 일어설까 봐 곧바로 술병을 까서 같이 가져온 종이컵에 부었다.
“자, 자. 일단 한잔하지.”
“아뇨, 얘기부터 하죠. 찾아오신 이유는 기사 때문이시죠?”
정 이사는 자신 몫의 술을 입에 털어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사, 기사화하는 거 재고해 봐줄 수 있나?”
“무리입니다. 제 이름을 걸고 내겠다고 말했으니까요. 방송국의 이사 정도 되시면 이게 어느 정도의 각오인지는 아시겠죠.”
신뢰를 쌓기는 어렵지만 무너트리는 건 아주 쉽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건 신뢰를 처음부터 쌓아 올리는 것보다 어렵다.
특히 이번에 세우는 방송국은 재환의 신뢰를 이용해서 시청률을 끌어와야 한다.
“그 정도도 모르겠나.”
“아신다니 얘기가 금방 진행되겠네요. 딜을 하시려면 그만한 가치의 무언가를 내놓으셔야 할 겁니다. 그게 안 된다면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나가시고요.”
재환의 서슬 퍼런 협박에 정 이사는 잔에 술을 채우며 제안했다.
“우리 방송국의 주식 지분 3프로 어떤가.”
주식이라는 거 자체가 널뛰기가 심한 상품이긴 하지만 M방송국의 주식이면 얘기가 또 다르다.
어찌 됐든 공짜로 준다는 거 아닌가.
꽤 달콤한 제안이지만 재환은 턱만 슬슬 쓸 뿐 어떠한 리액션도 내놓지 않았다.
무반응이 곧 대답인 셈이다.
“3프로면 우리 이사진들과 똑같은 대우야. 우리 이사들은 언제든 나가서 방송국 하나 차릴 수 있는 인력들이니 그 정도로 쳐 줬네.”
자기들로서도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생색을 냈지만 재환의 눈에는 영 차지 않았다.
고작 주식 3프로 먹고 떨어지기엔 잃는 게 크다.
“정 이사님 계산 참 특이하게 하시네요. 그런 계산에 따르면 8프로 정도는 받아야겠네요.”
“뭐, 뭐?”
“그 정도는 되어야 쌍방이 웃으면서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정 이사는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8프로 정도는 자신의 재량으로 협상할 수 있다.
문제는 그만큼의 지분을 내줬을 때 불러올 파급효과다.
“4.5프로 어떤가.”
8프로면 재환이 이사진 3명과 비슷한 지분을 가지게 된다.
달리 말하면 재환이 주주총회에서 이사진 3명 몫의 발언권을 얻는다는 의미가 된다.
다른 회사의 대표가 자기네 회사를 쥐락펴락하게 되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다.
정 이사가 다시 후려치자 재환이 코웃음치고 일어났다.
“뭘 착각하시는 거 같아서 다시 짚어드리죠. 지금은 제가 갑입니다.”
“후우…. 아무리 그래도 8프로는 너무 많아!”
정 이사의 통한의 외침에 재환은 어깨를 으쓱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마음에 안 들면 일어나서 나가시면 됩니다. 내일 아침이면 주가가 반 토막이 날 텐데, 종이 쪼가리 들고 기도나 하시죠.”
“끄응, 6프로!”
“정 이사님이 나이가 있으셔서 제 말이 잘 안 들리시는 모양인데, 전 8프로라 말했습니다.”
재환이 의지를 굽히지 않자 정 이사는 매섭게 재환을 노려봤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재환은 수십 번은 능지처참 당했으리라.
“6.5프로.”
“8프로 받고, 김 PD에 대한 위약금은 전부 무효처리하시죠.”
“왜 허들이 더 높아지는 거야!”
“화장실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 마음 다른 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재환이 신경을 박박 긁어대니 정 이사는 앓는 소리를 내며 술을 들이켰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재환을 상대할 수가 없다.
“좋아. 8프로! 대신 이 건에 대해서는 영원히 침묵하는 걸로!”
“우리 정 이사는 세상 하루 이틀 사신 것도 아니고 왜 그러십니까. 세상에 영원이란 건 없어요.”
수틀리면 언제든 돌아서야 하는 게 사업 아닌가.
재환의 당연한 말에 정 이사는 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는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 것 같나?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가만 안 있으시면 어쩔 건데요.”
“그런 작은 방송국이 얼마나 버틸 것 같아? 그런 방송국으로 가겠다는 인간이 있을 것 같아?!”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데 재환이 보기엔 귀여울 뿐이다.
카르텔이 찍어 누르려던 것도 단신으로 막아낸 재환이다.
지상파 방송사 하나가 날고 기어 봐야 재환을 박살내는 건 불가능이다.
“그럼 전 바짝 긴장하고 있을 테니, 내일 기대나 하시죠.”
“자네 크게 후회할 거야!”
정 이사는 술병을 내던지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예능 국장은 사이다라도 마신 것처럼 개운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라 나갔다.
재환은 열린 문 너머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저 당당함이 과연 언제까지 갈까.
확실한 건
‘내일 되면 후회하겠지.’
날이 밝자마자 재환의 기사는 속보로 퍼져나갔다.
중소기업도 아니고 지상파 방송국에서 열정페이란 명목하에 사람을 노예처럼 굴려먹었다는 소식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믿을 수 있는 재환의 기사에 더불어 김 PD가 그동안 당한 설움을 털어 놓으면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여유롭게 출근한 재환은 느긋하게 M방송국의 정 이사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서론을 넘기고 본론을 던졌다.
“15프로. 사건 더 커지기 싫으면 에누리 없이 준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