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3
3화
재환은 물을 한 번 들이켜고 인사말부터 꺼냈다.
“구정혁 회장님이 직접 맞이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자네가 가져온 정보가 정보다 보니 말이야. 누구한테 처리하라고 맡기기 애매했거든.”
꽤 사람 좋은 표정으로 대해 왔지만 재환은 가볍게 보지 않았다.
구정혁 회장 역시 그의 손으로 회사를 키워서 대기업으로까지 성장시킨 인물이다.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밥이 나오기 전이지만 본론부터 얘기해보지. 그 정보, 출처가 어디지?”
“한성 그룹 내에 믿을 수 있는 취재원이 있습니다. 신분이 노출되면 그분에게 타격이 가니 직접적으로 알려드리긴 곤란합니다.”
“흐음, 그럼 우리가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려고 한다는 건 누구에게서 들었지?”
재환은 대답 대신 빙긋 웃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말할 수 없다.
실존하지 않는 취재원에 대해 계속 나불거리는 건 패착이다.
그러니 위와 같은 의미에서 말할 수 없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침묵을 유지하다가 재환이 화두를 바꿨다.
“제 정보가 어디서 흘러나왔는지 보다 중요한 게 있으실 텐데요. 한성 그룹에서는 이미 개발 모델을 짰고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실용화까지 2년은 있어야겠지만 그사이에 제가 가진 정보를 얻어내긴 힘드실 텐데요.”
“우리 기자님 외에는 얻을 수 없는 정보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지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모르겠군.”
구 회장은 피식 웃고, 고개를 까딱했다.
실랑이로 시간 낭비, 돈 낭비를 하고 싶진 않았다.
“설명해 봐.”
“차세대 휴대폰 이름은 스마트폰입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 쇼핑, 은행 업무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휴대폰을 제작한다고 합니다.”
“흐음….”
“자판은 없어지고 모든 건 터치로만 이뤄질 겁니다. 여기에 어플리케이션이란 시스템을 이용해 다양한….”
스마트폰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지만 구 회장의 반응이 싸했다.
묵묵히 탁자만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모습은 상당히 냉소적이었다.
“그렇기에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시면 두고두고 후회하실 겁니다.”
모든 설명을 마친 뒤 구 회장은 딱 한 마디만 내비쳤다.
“스마트라. 그게 다인가?”
지금 상황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말이 있다.
망했다.
구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있는 비서실장을 호출했다.
“회장님?”
“아이디어는 좋았어. 자네는 기자 말고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떤가?”
“…제 말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반대로 묻지.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을만한 근거가 있나? 지금 자네의 얘기는 익명의 취재원으로 받은 소설 같은 이야기지 않나. 요즘 3류 소설도 그것보다는 설정을 치밀하게 짜겠군.”
비서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와 외투를 구 회장에게 건넸다.
재환은 손에서 흐르는 땀을 훔쳤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다.
다른 대다수의 대기업은 카르텔과 엮인 놈들이니 딜을 해봐야 소리 소문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확률이 높다.
회귀 전처럼.
그러니 지금 상황을 뒤집어야 한다.
“돈은 냈으니 밥은 먹고….”
“비서실장님과 구 회장님이 많이 닮으셨네요.”
구 회장의 말을 자르고 튀어나온 재환의 말은 파문을 일으켰다.
구 회장이야 회장답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비서실장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유서진 비서실장님이 구 회장님의 배다른 아들인 걸 다른 아드님들은 아직 모르시죠?”
“이봐, 기레기. 감히 회장님 앞에서….”
“뭣 하면 유서진 비서실장님의 친모의 이름을 댈까요?”
비서실장이 참지 못하고 재환을 무력으로 제재하려했다.
그의 주먹이 올라간 순간, 구 회장이 잡아 세웠다.
“비서실장 나가 있게.”
“회장님.”
“나가 있어. 안 들리나?”
구 회장의 으름장에 비서실장은 재환을 한 번 노려본 뒤 방을 빠져나갔다.
제법 소리 나게 문을 닫은 건 그의 작은 반항일지도 모른다.
구 회장은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어디서 그 정보를 얻었지?”
“이거에 대해선 아까와 같은 말을 드릴 수밖에 없군요. 영업비밀입니다.”
“허.”
구 회장은 탁자를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렸다.
이 요망한 기자 새끼가 어디서 저 정보를 알아 왔는지 모르지만 세상에 알려지면 난리가 난다.
언론의 입을 막을 수는 있지만 잡음은 생기기 마련이고, 그 잡음은 잡음으로 끝나지 않게 된다.
후계자 싸움 구도가 이상해지고, 그 싸움을 틈타 다른 기업들이 KG그룹의 힘을 야금야금 깎아내릴 게 분명하다.
그러니 어떻게든 저 말이 밖으로 나가는 건 막아야 한다.
구 회장의 복잡한 심경을 어느 정도 예측한 재환은 이제 당근을 쓸 차례라고 여겼다.
“구 회장님. 저는 KG 그룹과 척을 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저 같은 3류 기자가 KG그룹의 미움을 받아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 반대입니다. 처음 드린 정보를 떠올려 보시죠. 전 이미 두 가지의 충언을 드렸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재환이 KG그룹의 목에 칼을 들이밈으로써 KG그룹을 살리게 되었다.
분하지만 구 회장은 아까 들은 소설이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하나만 묻지. 왜 하필 KG그룹으로 왔지? 자네가 쥔 약점을 들고 한성 그룹으로 갔으면 더 이득이지 않나?”
구 회장은 의외로 침착하게 현실적인 답을 내놓았다.
재환이 한성 그룹으로 향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카르텔에 뼈를 묻은 그룹이 한성 그룹이니까.
정보를 주고 나면 버림당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 사실을 곧이곧대로 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KG그룹만이 믿을 수 있는 깨끗한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20%는 구라다.
KG그룹 역시 비리가 있고, 헤쳐 먹은 돈이 수십억이다.
그래도 카르텔과 엮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비교적 깨끗하다 봤다.
구 회장은 재환의 입바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진위야 어찌 됐든 듣기 좋은 말 아닌가.
“그래, 근데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깨끗하다는 건 곧 믿을 수 있는 기업이라는 겁니다. ‘신뢰할 수 있는’ 수식어는 KG 그룹의 힘죠. 그렇기에 제 정보가 더해진다면 국내 1위 그룹을 넘어 세계 1위 그룹이 될 수 있을 거라 봤습니다.”
“그 말은, 네 정보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
재환은 자신감을 담아서 말을 뱉었다.
“네.”
“흐음….”
“당장 스마트폰에 대한 정보를 구 회장님이 1년, 아니 몇 개월 늦게 아셨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반도체 사업은 포기한 뒤니 한성 그룹이 스마트폰 사업을 확장해 나갈 때, 허겁지겁 뒤를 쫓아갈 준비를 하겠지만 만년 2등이란 꼬리표가 붙을 겁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1등만을 기억하죠. 사람들이 한성 제품만을 사고, KG그룹의 제품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될 겁니다.”
혀에 기름이라도 바른 것처럼 말이 술술 쏟아져 나왔다.
그게 지금까지 KG그룹이 쌓아온 모든 걸 부정하는 말이지만 말이다.
구 회장은 표정 변화 없이 턱을 까딱했다.
“계속해봐.”
“한 번 자본에서 차이가 나버리면 끝이라는 건 사업가이신 구 회장님이 더 잘 아시겠죠. 같이 개발을 시작해도 늦게 끝날 거고, 품질도 뒤떨어질 겁니다. 실패를 거듭하면 KG 그룹은 국내 3위에서 5위, 10위로 밀려나겠죠. 믿을 수 있는 이란 수식어도 잃게 될 거고요. 이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여전히 소설 같은 말이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현실성이 넘쳤다.
구 회장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유지하면서 말을 이었다.
“좋아. 우리 그룹이 10년 뒤면 힘을 잃고 10위로 밀려난다는 거지? 그럼 반대의 상황을 말해 봐. 어떻게 하면 우리 그룹이 세계 1위가 되지?”
재환은 숨을 한 번 골랐다.
내면에 있는 자신감을 모두 끌어내어 말에 담았다.
“제가 정보를 드리죠.”
“정보라.”
“정보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잘 아시겠죠. 그리고 전 아주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해 드릴 수 있습니다.”
카르텔에 속한 기업과 정치인들에 대한 정보는 10년 치를 하나도 빠짐없이 가지고 있다.
이거야말로 재환이 가진 힘이다.
구 회장은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재환을 바라봤다.
옛날 길거리의 약쟁이가 딱 저런 눈을 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이놈이 파는 약은 믿을만한 특효약이라는 점일 것이다.
“원하는 게 뭐지?”
됐다.
구 회장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 넘어온 걸 확신하자 재환은 생각한 바를 털어놨다.
“전 오늘의 신문이란 신문사의 기자입니다. 그리고 전 이 신문사의 대표가 되고 싶습니다.”
구 회장의 표정은 미묘했다.
신문사의 대표는 결코 낮지 않은 위치다.
하지만 자신을 이렇게까지 압박해서 얻어 내야만 하는 위치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왜 하필이면 신문사의 대표지?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겠지만 강남의 건물 몇 채가 더 나은 제안일 텐데?”
강남의 집값이야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미쳐 날뛰고 있다.
거기 상가 건물 몇 채만 가지고 있으면 벼락부자가 되는 건 가뿐하다.
하지만 재환은 그런 벼락부자보다 더 큰 뜻이 있다.
“신문사를 키울 겁니다.”
“그래서?”
“신문사를 방송사로 성장시킬 겁니다. 그리고 저희 방송사에서 나오는 뉴스를 믿음을 가지고 보고, 예능을 즐겨보며, 다큐멘터리를 보고 웃고 울게 만들 겁니다.”
“흐음….”
“거기에 필요한 다양한 문화 사업을 지원해서 전 세계인이 보는 방송국을 만드는 것. 그게 최종목표입니다.”
향후 10년간 가장 크게 성장한 사업은 문화 산업이다.
지금도 한류가 외국인들의 입소문에 오르고 내리지만 10년 뒤에는 더 커진다.
많은 나라가 KPOP을 즐겨듣고, 한국 영화가 국제 영화제의 상을 휩쓰는 날이 온다.
그 산업에 지금부터 뛰어들면 돈과 지위는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리고 돈과 지위와 더불어 국민의 신뢰까지 얻을 수 있다면 카르텔을 박살 내는 건 손쉬운 일이 된다.
큰 그림을 들어도 와닿지 않으니 구 회장은 다소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재환의 꿈과 같은 이상향으로 보일 뿐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지.’
저놈 말마따나 신문사가 커져서 방송국으로 성장한다면 거기에 힘을 보태 두는 게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된다.
상당히 멀리 보는 투자지만 앞에 있는 놈의 자신만만한 면상을 보니 해볼 만한 것 같다.
“꿈이 큰데. 자고로 크게 되려면 꿈이 커야지. 좋아. 그렇게 하지.”
재환은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구 회장을 구워삶는다는 1단계는 해냈다.
물론 언제든 구 회장이 자신의 뒤를 후려칠 수 있기에 끝까지 방심은 금물이었다.
“얘기를 나누느라 식사가 많이 늦어졌군.”
구 회장이 밖에 지시를 내리자 곧바로 준비된 만찬이 들어왔다.
살짝 식은 음식을 보니 이미 완성은 됐지만 얘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모양이다.
“나머지 얘기는 들면서 하도록 하지.”
“네, 잘 먹겠습니다.”
앞에 펼쳐진 음식들이 원가 고급이었지만 남이 사는 음식이었기에 더 맛있게 느껴졌다.
식사를 하는 동안은 부드러운 담화가 이어졌다.
결혼은 했는지, 자식은 있는지, 학교는 어디 다니는지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손녀딸 얘기에 열을 올리는 구 회장은 대기업 오너가 아니라 옆집 할아버지와 같이 푸근한 인상을 줬다.
덕분에 처음보다는 말을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식사를 마무리하고 디저트에 와인을 곁들이고 있으니 구 회장이 물었다.
“대표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생각해 놓은 건 있겠지? 자네 같은 야심가가 그런 것도 생각 안 했을 리는 없을 거 아냐.”
“하하. 그렇게 또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니 부끄럽군요.”
“생색 내지 말고 말해봐. 어떻게 계획을 짰는지, 내 도움이 어떻게 필요한지.”
재한은 와인잔을 흔들면서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일단 위에 계신 분들이 사라져야 올라가겠죠. 편집장, 편집국장, 그리고 대표 이렇게 말이죠.”
“셋을 날린다라. 뭐로 날릴 건데?”
재환은 말을 선뜻 꺼내지 않았다.
괜히 질질 끄는 재환의 태도에 구 회장은 코웃음을 쳤다.
“KG그룹하고 관련이 있냐?”
“타격이 있을 수도 있고요. 오히려 이득을 볼 수 있고요.”
“두루뭉술하게 얘기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재환은 와인을 입안에 털어놓고 핵심을 털어놨다.
“연예 기획사에서 아이돌 지망생들을 이용해서 성접대를 했습니다. 거기에 저희 편집장님과 편집국장님이 포함되어 있고요.”
“…성접대?”
“네. 근데 이거 KG그룹에서도 받았는지는 모르겠네요. 한성 그룹이랑 대한그룹에서는 받았거든요.”
재환의 말에 구 회장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한성 그룹과 대한 그룹이 엮여있다는 건 알면서 KG 그룹이 엮였다는 건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눈 감아 줄 테니 알아서 정리하라는 거다.
“당돌한 녀석.”
“그 특종 터트리면 세상이 떠들썩해지고 위의 두 분은 모가지가 날아가겠죠. 관련인이 있는데 당연히 대표도 책임을 져야 할 거고요.”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때 절 대표로 밀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