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4
4화
구 회장과의 식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입구에 서 있던 비서실장의 눈이 호의적이진 않았지만 알 바인가.
‘이걸로 구 회장이란 백을 얻었어.’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앞으로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물론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까지 유지되는 관계니 그 선을 잘 유지해야겠지만 정보라는 무기를 쥔 이상 실패할 일은 없다고 봤다.
“여보. 얘기 끝났어?”
“아빠! 이거 맛있다?”
한참 전에 식사를 끝냈음에도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 딸을 보니 몸을 꽉 죄던 긴장감이 풀려나갔다.
재환이 소율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니 예희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누구 만난 거야? 높으신 분 같던데.”
“높으신 분이라….”
KG그룹 회장 정도면 높다고 봐야했다.
하지만 높다고만 생각하면 영원히 다가갈 수 없다.
그러니 달리 생각해야지.
“그냥 옆집 할아버지였어.”
“옆집 할아버지가 이런 곳의 밥을 사줘? 당신 뭐 뒷돈 받은 건 아니지? 범죄 같은 건….”
“그런 거 없어. 걱정 마.”
걱정스레 이리저리 캐묻는 예희를 달래고 식당을 나왔다.
바쁘신 몸인 구 회장은 일찌감치 식당을 떠났지만 비서실장은 남아 있었다.
“이건 회장님께서 드리는 선물입니다.”
“뭘 이런 걸 다.”
“그럼.”
딱 할 말만 하고 떠나는 그의 모습은 심통난 어린애 같았다.
회장이란 말을 주워들은 예희가 재환을 다시 캐물었지만 적당히 둘러댔다.
시간이 흐르면 구 회장과 만날 때가 오겠지만 지금은 이르다 판단했다.
집에 돌아온 뒤 비서실장이 건넨 봉투를 열어봤다.
안에는 최신형 휴대폰과 수표 몇 장이 들어 있었다.
휴대폰을 켜보니 구 회장의 연락처가 이미 저장되어 있었다.
‘할부 요금은 네가 내라 하는 쪼잔한 짓은 안 했겠지.’
재환이 휴대폰을 살펴보고 있으니 구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네, 어쩐 일이십니까?”
“생각해보니까 중요한 걸 안 물어봤거든. 기사는 언제 낼 거야?”
기사가 3류 찌라시가 되지 않으려면 확실한 증거나 증인의 말이 있어야 한다.
재환은 수첩을 펼치고 관련된 정보를 찾아냈다.
“빠르면 이번 주, 늦어도 다음 주에는 기사가 나갈 겁니다.”
“일 한번 빠르군.”
“달리기로 결정했으면 달려야죠. 머뭇거릴 시간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회장님도 미리 준비해두시죠.”
“현실적인 건지, 이상적인 건지 알다가도 모를 놈이군. 준비는 늦지 않게 해주마.”
구 회장 정도면 5일 이내에 관련된 인물들을 색출해 해고 통지하는 건 쉬운 일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한다.
해고당한 이들은 찔리는 게 있으니 아무 말도 못 하겠지만 주변 이들이 멋대로 이런저런 말을 떠들 것이다.
그 잡음이 소음으로 변하기 전에 특종을 터트린다.
비리를 알고 처리한 KG그룹의 주가는 반등할 것이고, 일에 관련된 이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시나리오는 완벽하다.
‘그러려면 그분을 회유해야겠지.’
주말이 지나고 출근한 재환은 고민에 빠졌다.
시나리오도 짜였고, 배우도 정해졌다.
문제는 캐스팅이다.
“한결 선배, 혹시 연예 기획사에 아는 줄 없어?”
“사회부가 연예 기획사에 무슨 줄이 있겠냐. 차라리 문화부 연예팀 쪽에 물어보지 그러냐. 마침 저기 자리 지키는 놈 있네.”
한결이 가리키는 쪽을 봤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연예팀 파티션에 앉아 있는 배승열은 수화기를 붙들고 뭔가를 바쁘게 메모하고 있다.
재환과 입사 동기지만 그와 배승열의 인지도 차이는 컸다.
경찰서에 빌붙어 경범죄나 기사를 싣던 재환과 달리 배승열은 핫한 이슈들을 뽑아 기사를 써서 편집장들의 인지도가 좋았다.
“쟤랑 말 섞기 싫은데….”
“네가 연예 기획사 연줄 닿으려면 달리 방법 있냐?”
“하아….”
재환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다른 방법은 없나 고민하고 있으니 박기범이 다가왔다.
“야! 강재환!”
“네?”
“너 발제 안 해? 오늘 기사 안 쓰겠단 거야?”
“발제 올렸는데요. KG그룹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준비하고 있다. 이게 기사냐? 찌라시지? 우리가 이딴 찌라시나 써 갈기는 신문사야?!”
박기범이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 탓에 다른 부서의 기자들도 재환쪽을 힐끔 바라봤다.
그중에는 배승열도 포함되어 있었다.
잠깐 눈을 마주치니 배승열은 코웃음을 치며 하찮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편집장님, 이 정보 KG그룹의 고위 간부한테서 받아온 정보에요. 확실하다고요.”
“네가 언제부터 KG그룹의 고위 간부하고 연줄이 있었냐? 야, 네가 상황 파악을 못 하나 본데 허위기사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우리 신문사 평판 아작나는 건 기본이고, KG그룹에서 홍보 자료 보내 주겠어? 광고 끊기면 네가 책임질 거야!”
“네, 책임지겠습니다.”
애초에 저 정보는 KG 그룹의 구 회장에게서 받은 정보다.
저 정보를 부정한다는 건 KG 그룹을 전면으로 부정한다는 말과 같았다.
믿는 구석이 있기에 재환은 당당했지만 박기범은 코웃음 치며 손가락으로 재환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네가 어떻게 책임질 건데? 너 하나 옷 벗는다고 될 일인 거 같아? 헛소리하지 말고 발제 다시 해 와라. 알겠어!”
자기 할 말을 마치고 자리를 뜨려는 박기범의 등을 가만히 바라봤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회인이라면 여기서 들이받지 않는다.
하지만 회귀를 했다는 점에서부터 재환은 정상과는 한참 멀어졌다.
“만약 저 기사가 다른 신문사에서 먼저 나온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뭐야?”
“편집장님 때문에 단독 보도를 놓치게 된 건데 편집장님은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재환의 으름장에 사무실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폭풍이 지나갔다고 생각한 시점에 몰아친 또 다른 폭풍.
어느 틈엔가 탕비실로 대피해 있던 한결은 침을 삼키며 그 폭풍의 핵을 바라봤다.
발걸음을 돌려 재환에게 돌아온 박기범의 얼굴을 분노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야, 강재환. 너 회사가 우습냐? 네 상사가 우스워?”
“전 사실만을 말씀드린 겁니다. 고급 정보를 가져왔는데도 안 받아 주시지 않습니까.”
“너 같으면 받겠냐? 매일 사기꾼, 빈집털이 같은 잡범과 관련된 기사나 쓰던 놈이 대뜸 KG그룹의 구조조정이라는 예민한 건을 들고 왔는데 너 같으면 받겠냐고.”
“못 받을 게 뭐 있습니까. 아니라면 나중에 기사 내리고 정정보도 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자, 편집장님 진정하시죠.”
사태가 심각해 지려하자 빠져있던 한결이 끼어들었다.
그는 둘 사이에 몸을 비집고 들어가 박기범을 뒤로 밀어냈다.
“쟤가 요즘 많이 아픈 거 같아요. 왜 지난주에는 눈물도 펑펑 쏟아내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나름대로 맺힌 게 많아서 그런 거 같으니 편집장님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재환이는 사수인 제가 기강 잡겠습니다.”
“야, 박한결. 지금 저 새끼 편드냐?”
“에이, 여기에 편이 어딨습니까. 다 같은 사회부 아닙니까. 절 봐서라도 넘어가 주시죠.”
한결은 말로 박기범을 구슬려서 화를 풀게 만들었다.
더불어 보이지 않게 주먹을 흔들어 보여 재환의 입을 다물게 했다.
박기범은 한결과 재환을 번갈아 보다가 으름장을 놨다.
“저 새끼 한 번만 더 나한테 대들면 둘 다 죽을 줄 알아.”
“아유, 제가 정신교육 제대로 시켜놓겠습니다.”
화를 진정시키고 떠나는 박기범의 등을 보다가 재환은 추가타를 날렸다.
“이거 기사 계속 쓸 겁니다.”
“야, 이 눈치 없는 새끼….”
한결이 재환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터져 나온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멀리서도 분노에 얼굴이 붉어진 게 보이는 박기범은 재환을 노려보고 으르장을 놨다.
“맘대로 해라. 대신 잘못됐을 때 책임진다는 그 말 잊지 마라.”
박기범이 사무실을 완전히 나간 뒤에야 한결은 묵은 한숨을 토해냈다.
사회인으로 살아온 시간 중 지금이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너 진짜 왜 그러냐. 안 그래도 편집장이 너 별로 안 좋아하는데 왜 들이 받았어?”
“글쎄…. 화풀이 대상이 되는 것도 싫고, 깔봐지는 것도 싫고. 그 인간 자체도 싫고.”
“딴 건 모르겠지만 편집장 그 인간 싫은 건 동감. 듣자 하니 데스크에서 한바탕 한 모양이더라. 상도덕도 없냐고.”
“사내에서 상도덕이 왜 튀어나와.”
“너 주말에 문화부 기사 가져와서 썼잖아. 그게 편집장 지시인 거 들켜서 난리가 났다더라.”
한결의 말을 흘려듣고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어디가?”
“승열이한테.”
“편집장한테 가는 거 아니지?”
“아냐.”
걱정을 담은 잔소리를 쏟아내는 한결은 예희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문화부 파티션으로 넘어가니 배승열이 재환을 보고 놀란 시늉을 했다.
“너 배짱 두둑하다? 편집장하고 붙을 생각을 다 하고?”
“그러게. 나도 이렇게 배짱 넘치는 줄 몰랐어.”
재환은 그 시늉에 대충 맞춰줬다.
밥맛인 이놈과 얘기를 섞다 보면 속이 매스꺼워졌지만 지금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 무릎을 꿇을 타이밍이다.
“그보다 하나만 묻자.”
“뭔데? 불똥 튀기려는 건 아니지?”
“배우 장미래 씨의 연락처 아냐?”
“장미래?”
배승열은 재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되물었다.
그야 다짜고짜 배우 연락처 아냐고 물어보면 비슷한 반응일 것이다.
“그 배우분은 왜?”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지금 준비하고 있는 기사가 있는데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계신 것 같더라고.”
“흐음….”
배승열은 고개를 끄덕이고 명함 케이스를 꺼냈다.
그 안에 빽빽하게 꽂혀있는 명함 대부분은 연예 기획사의 매니저와 홍보팀의 것이다.
거기서 관련된 명함을 찾으면서 배승열이 캐물어 왔다.
“무슨 기사를 준비 중이기에 그래?”
“네가 들으면 까무러칠 기사?”
“얼마나 크기에 내가 까무러친 데? 짧게라도 얘기해 줘봐.”
‘미쳤냐. 내가 너한테 얘기해 주게.’
말해주면 자신이 먼저 장미래과 접촉해서 정보를 홀라당 빼먹고, 특집 기사를 쓸 게 분명하다.
능구렁이 같은 인간은 충분히 그럴 만한 놈이니까.
“얘기해 보기 전까지는 선뜻 말하기가 그렇네. 팩트 체크도 해야지.”
“언제부터 팩트 체크를 일상화했다고?”
“기자라면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틈만 나면 가쉽 기사만 쓰는 연예팀하곤 무게가 다르잖아?”
비아냥을 맞받아치자 명함을 뒤지던 배승열이 손이 멈췄다.
그리고 재환을 다시 빤히 쳐다봤다.
분명 강재환이 맞는데 아까 편집장에게 대드는 모습이나 쌈닭마냥 공격적으로 나오는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가쉽기사라고 쉽게 쓰이는 건 아닌데 말이야.”
“그렇겠지. 기사 쓰는 게 어디 쉬운 일이니? 비문 하나만 나와도 사람들이 기레기라고 달려드는데 말이야. 아, 거기 매니저 명함 있네.”
재환은 배승열의 명함 지갑에서 장미래 매니저의 명함을 뺏듯이 꺼내갔다
휴대폰에 번호를 저장한 뒤 명함은 돌려줬다.
“그러니까 오탈자랑 비문 체크 잘 해. 요즘 많더라.”
재환은 배승열이 말을 꺼내기 전에 곧바로 자리를 벗어났다.
길게 싸워봐야 자신이 질 테니 히트 앤 런이 최고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재환은 곧바로 짐을 챙겨서 일어났다.
“또 어디 가냐?”
“선배가 내 마누라야?”
“오늘 네가 저지른 일을 생각해 봐라. 위치 추적기라도 달아놔야 되나 싶다.”
“쓸데없는 걱정 말고 선배 기사나 잘 쓰셔. 난 이미 기사 다 써서 결제 올려놨거든.”
이미 기사를 다 썼다.
그런데 취재를 나간다?
“너 뭔 짓거릴 준비하고 있는 거냐?”
“짓거리라…. 별 건 아냐, 그냥….”
재환은 품에 있던 수첩을 꺼내 한 페이지를 보고 한결에게 다시 말했다.
“리스트 하나를 받아보러 가는 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