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5
5화
장미래 리스트는 배우 장미래가 자살을 하면서 남긴 리스트다.
이 리스트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연예계의 어두운 면과 소속사와 방송국의 더러운 커넥션이 알려졌다.
다만 당사자가 없고, 경찰도 이에 연루되어 있는지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진 탓에 재환이 죽기 직전까지 리스트는 확신이 아닌 의혹으로 남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주일이 지나면 이번에도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의 신문의 기자 강재환입니다. 장미래씨 매니저 되시나요?”
“기자분이 무슨 일이시죠? 장미래씨 관련 소식은 저희 소속사의 홍보부를 통해서….”
“소속사를 거쳐서 얘기할 수는 없는 내용입니다.”
“하아…. 할 말 없고요. 끊습니다.”
“언제까지 눈 가리고 입 다무실 생각이시죠?”
전화는 끊기지 않았고, 매니저는 침묵했다.
재환은 초조해하지 않았다.
이 매니저를 통하면 장미래와 닿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리스트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밝힌 게 이 매니저였으니까.
재환은 매니저의 양심을 살살 긁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 역시 죄입니다. 장미래씨에게 미안한 마음 없어요?”
“기자님…. 어디서 뭘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다 거짓입니다.”
“매니저님, 이 일로 장미래씨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 죄책감을 견딜 수 있겠어요? 지금 당신이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까?”
재환이 양심을 박박 긁어대자 매니저는 앓는 소리를 냈다.
아직이다.
좀 더 그를 극한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매니저님이 쉽게 말을 못 하는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김장준 대표 때문이죠?”
“…….”
침묵은 곧 긍정이었다.
재환은 매니저의 속내를 읽어내고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줬다.
“매니저님, 김장준 대표에게 빚이라도 지셨나요? 아니면 약점이라도 잡혔나요?”
“…하아.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김장준 대표에게 쩔쩔매시는 겁니까. 뭐 말 잘 들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과장이라도 달게 해준다는 약속이라도 받았어요? 아니면 푼돈이라도 좀 받으셨습니까?”
재환이 거세게 밀어붙이니 매니저가 한숨을 연거푸 내쉬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기자님…. 기자님이 뭘 말씀하시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도 가정이 있는 몸입니다.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장미래씨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 말을 하실 건가요? 어쩔 수 없었다고?”
“…….”
찾아온 두 번째 침묵.
재환은 이제 당근을 내밀 때란 걸 알아챘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매니저님. 제가 매니저님에게 딜을 하나 하겠습니다.”
“딜이라뇨?”
“이번 일을 도와주시면 매니저님의 창창한 앞날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이요? 당신이 어떻게요.”
“곧 계약 끝나시죠? 계약 끝나면 나와서 소속사를 하나 차려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금전적인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지원이다.
로드 매니저만 전전하다가 한 소속사의 대표가 된다니.
매니저는 대표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마른 침을 삼켰다.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꿈이었지만 꿈으로만 남겼던 모습이었다.
잠시 꿈속을 헤매다가 금방 현실로 돌아왔다.
이상을 이뤄주겠다는 달콤한 말은 듣고 좋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가 어떻게 그 이상을 이뤄준단 말인가.
소속사를 만들 정도의 재력이 있는 기자는 듣도 보도 못했다.
“기자님, 말로는 뭔들 못하겠습니까.”
“서로에게 신뢰가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시죠. 오늘 저녁 저와 함께 하시죠. 제가 그 때 신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매니저는 주저하다가 그러겠다고 답했다.
저녁 장소를 정한 뒤 재환은 품의 다른 휴대폰을 꺼냈다.
아무 때나 전화해도 될까 싶지만 이러라고 준 휴대폰 아니겠는가.
“네, 구 회장님 접니다.”
“뭔데.”
“현금이 좀 필요합니다.”
재환은 얼마를 부르면 좋으려나 고민하다가 그냥 내질렀다.
“소속사 하나 세울 정도로요.”
“너… 그 돈이 얼마인 줄은 알아?”
“꽤 되겠죠?”
“알면서 그런 액수를 불러?”
“필요한 일이라서요. 실망시켜 드리진 않을 겁니다.”
구 회장은 재환의 능청스러운 말에 고민했다.
연예 기획사 하나 만드는 돈은 제법 되긴 하지만 그리 많은 돈은 아니다.
지금 재환에게 받은 정보 값에 비하면 싸게 먹히는 것이기도 하고, 앞으로 이놈이 뭘 할지 생각하면 쉽게 내줄 수 있는 돈이다.
그래도 생색을 한 번 냈다.
“그 정도의 액수를 준비하는 것도 일이야. 법적인 절차도 있으니까. 꽤 번거로운 일이란 건 알지?”
“생색은. 걱정 마세요. 제가 관련해서 하나 더 큰 건 드릴게요. 저녁 전까지만 주시면 돼요. 그 정도는 가능하시죠? 감사합니다.”
“고얀 놈. 대신 지금 어떻게 되가는 지나 말해봐.”
재환은 흔쾌히 현 상황에 대해 말해줬다.
다 들은 구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되어 가는 구만. 이후의 일은 계획해 놨냐?”
“이동훈 매니저가 만드는 소속사를 시작으로 판을 키울 겁니다. 방송국 설립하기 전에 소속사에 뛰어난 연예인들을 발굴해 놓고 집중적으로 푸쉬하려고요.”
10년 뒤, 전 세계가 KPOP을 비롯한 한류 문화에 열광할 거라고 누가 믿겠는가.
재환은 그 시장을 메인 밥줄로 밥상을 키워나갈 생각이다.
“구 회장님도 같이 투자해 보실래요?”
“딴따라 놈들은 결과가 불확실하니까 싫다. 파티 준비나 잘해. 이쪽은 먼지 다 털어 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재환은 휴대폰을 안 주머니에 넣고 옷 위로 가볍게 두드렸다.
역시 백이 있으니 이렇게 든든하다
재환은 미리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수첩을 쭉 살폈다.
이틈을 타서 기록해 둔 정보들을 다시금 머리에 집어넣었다.
1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지 않았지만 발로 뛰어 얻은 정보들이었기에 옛 정보들을 금방 기억해 냈다.
“강재환 기자님.”
2009년의 정보를 싹 훑고 나니 유서진 비서실장이 재환에게 다가왔다.
그의 양손에는 묵직한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나서 재환에게 말을 툭 던졌다.
“구 회장님께 부탁한 물건입니다. 이쪽에는 법적인 문제가 없도록 준비한 서류들입니다. 세금 문제도 구 회장님께서 해결하셨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구 회장님이 신경 많이 써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알면 구 회장님께 잘 하십쇼.”
마지막 말은 처음으로 유서진 비서실장이 내비친 본심에 가까웠다.
인사를 하고 떠나는 그를 보면서 재환은 곰곰이 생각했다.
‘저 사람을 어쩌면 좋을까.’
배다른 혈육이란 낙인 때문에 그는 구정혁 회장이 물러나고도 KG그룹의 지분을 가지지 못했다.
그에 앙심을 품고 한성 그룹에 붙어 KG그룹의 힘을 빼는 역할을 했다.
한성 그룹과 관련된 이들은 다 박살 낼 계획이지만 유서진도 그에 포함하기엔 애매했다.
유서진이 한성과 손을 잡은 건 구정혁 회장이 물러나는 시점으로 몇 년 뒤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가지고 그를 단죄해야 하는가.
‘그럴 필요 없지.’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지금 구회장과의 커넥션이 생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니 그가 한성과 손잡는 미래를 비트는 것도 가능하다.
정보를 이용해서 구 회장과 손을 잡는다면 그를 내 밑으로 데려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재환이 유서진을 탐내던 그때, 유서진은 왠지 모를 오한을 느껴야 했다.
유서진을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두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기다리던 이가 도착했다.
“강재환 기자님?”
재환만큼이나 건장한 덩치를 가진 매니저가 재환의 옆에 딱 섰다.
그의 옆에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낀 장미래이 같이 있었다.
“시간 맞춰서 오셨네요. 앉으시죠.”
매니저는 쭈뼛거리면서 재환의 맞은편에 앉았다.
장미래 역시 가볍게 묵례를 한 뒤 매니저의 옆에 앉았다.
같이 온 이유야 얘기가 잘 되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함이 아닐까 추측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의 신문 사회부 기자 강재환입니다.”
“아, 장미래 씨 로드 매니저를 맡은 이동훈이라고 합니다.”
명함을 교환한 뒤 재환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게 전화로 말씀드린 신뢰입니다.”
재환이 탁자에 놓인 서류 가방을 이동훈에게 밀었다.
이동훈은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어보고 숨을 멈췄다.
수표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가방을 보니 정신이 아찔했다.
“큰 곳은 아니더라도 자그마한 기획사는 차릴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됩니다. 연습생들 하나둘 키우기에도 충분하죠.”
“그, 그렇겠네요.”
“이쪽은 법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서류가 들어 있습니다. 차근차근 확인해 보시죠.”
재환은 여유롭게 서류를 읽을 시간을 줬다.
직접 서류를 확인하진 않았지만 구 회장 성격이면 일 처리에 모난 곳은 한 곳도 없을 터다.
이동훈은 몇 장을 넘겨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더 안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서류인데도요?”
“까놓고 말해서 봐도 잘 모르겠거든요. 무엇보다 이 정도 준비를 하셨다는 것만으로도 믿을 수 있는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걸렸다.
재환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테이블 위에 올려둔 두 서류 가방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여기까지가 재환이 보여주는 신뢰다.
이제는 저쪽이 신뢰를 보여줄 차례다.
이동훈과 장미래는 서로 눈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하나의 결심을 내린 게 분명하다.
장미래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제대로 인사했다.
“기자님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장미래입니다.”
“직접 만나 뵈니 좋네요.”
가볍게 악수를 주고받은 뒤 그녀는 다시 선글라스를 꼈다.
할 얘기가 할 얘기인 만큼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는 건 좋을 게 없다.
“장미래씨께 불편한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기자로서, 연예계의 어두운 면을 세상에 폭로하고자 합니다. 도와주실 수 있나요?”
“네.”
그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답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각오는 마쳤다.
장미래는 품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 하나를 재환의 앞에 내밀었다.
그 종이 안에는 재환이 찾던 이름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재환은 그 리스트를 쭉 읽어보고 수첩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녹음기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추가로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자세한 상황을 듣고 싶어서요.”
“네.”
장미래는 취조와 같은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했다.
그녀가 받은 고통을 다른 이들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흑.”
모든 답변을 마친 뒤 의연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남에게 말하지 못했던 고통을 털어놓음으로써 홀가분해진 탓이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동안 매니저가 그녀의 등을 토닥였고 재환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눈물샘이 마를 정도로 눈물을 흘린 뒤에 재환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믿을 수 있는 형사에게 장미래씨의 보호를 요청해 둘게요. 악질적인 기레기나 몹쓸 인간들로부터 지켜드릴 수 있을 겁니다. 기사가 나가고 한동안 힘드시겠지만 힘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네.”
“이 기사는 이번 주 금요일 즈음에 나갈 겁니다.”
“내일 바로 나가는 게 아니고요?”
그들 입장에서는 내일 바로 사건이 폭로되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재환은 판을 더 키울 생각이다.
“경찰들도 이 판에 끼어 있잖아요? 가만두면 이 사람들 다 빠져나갈 겁니다. 그러니까 도망치지 못하게 준비를 철저하게 해두려고 합니다.”
그리 말을 하는 재환을 표정은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꾼과 같았다.
마주 앉아 있던 매니저는 괜히 몸이 살짝 떨렸다.
“걱정 마시고 이번 주는 어떤 활동도 하지 마시고 집에만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장준 대표 전화는 받되 전부 녹음해놓으세요.”
“알겠습니다.”
“이번 사건이 끝나면 여기 계신 이동훈 대표님과 함께 새 출발을 해봅시다.”
세 사람은 결의의 악수를 주고받은 뒤 자리를 떴다.
재환은 차에 올라타 품의 전화기를 꺼냈다.
얘기가 잘 됐으니 우리 물주님께도 연락을 한 번은 드려야 되지 않겠는가.
“구 회장님, 네. 파티 준비는 끝났는데, 제가 하나 큰 건 더 드린다고 했죠?”
재환은 수첩에 끼워둔 리스트를 꺼내 눈으로 쓱 훑다가 하나의 이름에 시선을 고정했다.
대성 기업.
국내 식료품과 의약품 유통에 독보적인 위치를 지닌 대기업이다.
자산 규모만 따지면 다른 대기업에 밀리지만 대성 기업이 지닌 유통망과 인지도는 가히 압도적이다.
KG전자에서 나온 TV를 못 살 정도로 어려운 형편의 집안도 대성 기업에서 나온 쌀은 사 먹으니까.
그 대성 그룹의 대표 이름이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