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30
30화
“녹음해도 괜찮죠?”
“네, 좋습니다.”
재환의 질문에 본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꿇릴 것도 없고, 상대방이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드는 증거가 될 수 있으니 이득이다.
인터뷰를 가장한 대담이 시작됐을 때, 본부장은 그리 확신했다.
“그나저나 요즘 핫한 신문사의 대표님이 직접 찾아오실 줄은 몰랐네요.”
“제 모토가 초심을 잃지 말자거든요. 제가 기자다 보니 기자 정신을 잃지 말자가 모토가 됐네요.
가볍게 얘기를 주고받은 뒤 재환은 녹음기를 재생시키고 첫 질문을 던졌다.
“K방송사 국장 몇 분이 검사님들과 술자리를 가지셨던데요. 이건 언론 규정에 위반되는 일 아닙니까?”
첫 질문부터 한 가운데에 꽂히는 강속 직구였다.
본부장은 살짝 당황했지만 그도 사회에서 먹은 짬밥이 있다 보니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제 강재환 대표님도 기자셨으니 아실 거지만 언론 규정이란 게 무조건 이렇게 해라 하는 게 아닙니다. 이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가이드라인인 거죠. 그리고 제가 알기로 검사들과의 술자리는 가진 적이 없습니다.”
“증거가 있는 데도요?”
한 발도 물러나지 않고 강하게 몰아붙이는 재환의 태도에 본부장은 작게 헛기침을 했다.
재환의 눈을 잠시 피하면서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자신이 알기로는 그 이야기가 어딘가로 빠져 나갈 리는 없다.
나가봐야 다 죽을 텐데 왜 빠져 나가겠는가.
그렇다면 저건 구라라고 봐야했다.
“증거. 확실한 증거인가요?”
“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죠.”
“그 증거 한 번 보여주시죠. 제가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재환은 펜과 수첩을 내려놓고 부장검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료를 들고 K방송국으로 오라는 내용을 전달하고 삐딱하게 기대앉았다.
“그 증거 가져다 드릴 테니 다음 질문을 먼저 드릴까 싶습니다.”
“증거도 없는데 거짓말하시는 거 아닙니까? 혹시 이전에 강재환 대표님이 쓰셨던 기사에도 거짓이 섞여 있는 것 아닙니까?”
재환이 살짝 틈을 보이니 숨겨뒀던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물어뜯고 할퀴려 들었다.
하지만 이건 재환이 일부러 내준 틈이다.
“제 기사에는 오보 한 줄 없습니다. 이건 저희 신문사 간판을 걸 수 있습니다.”
“작은 신문사 간판 떨어져 나가도 누가 알겠습니까.”
본부장의 공격적인 어투에 재환 역시 공격적인 어투로 되물었다.
“유영철 본부장님의 명패가 떨어지듯 말이죠?”
“제 명패가 떨어질 일이 있겠습니까?”
“국장들이 판검사들과 술자리 가지는 거 알면서도 묵인 하셨잖아요.”
재환의 날카로운 지적에 본부장은 웃는 낯을 유지했다.
“제가 국정원의 인물도 아니고, 하물며 저희 국장들이 위험한 사람들도 아닌데 일거수일투족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셔야 할 텐데요. 본부장님도 그 장소에 계셨잖아요. 다른 룸이었지만.”
차를 마시려던 유영철 본부장의 손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
……저것도 떠보는 건가? 아니면 약간이라도 알고 있나?
간 보는 본부장을 보며 재환은 피식 웃었다
“왜 차 마시다가 멈추시고 그러십니까. 그냥 편히 드시죠. 맛도 좋던데.”
자신의 몫으로 나온 차를 들이켜고 본부장에게 손짓했다.
본부장은 불편한 표정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놨다.
재환의 말에 대한 진위를 모르는 상황에서 차의 맛이 느껴질 리 없다.
“이상한 소릴 하시는 군요. 제가 그 술집에 있었다니요.”
“아니신가요?”
“전 그 날 집에 있었습니다. 퇴근하고 바로 집에 들어가서 맥주 한 잔 하면서 야구 경기를 보고 있었죠. 그날 베어즈가 역전 홈런 딱 때려줘서 기억합니다.”
적당한 알리바이까지 대면서 고개를 까딱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대표님도 그 날 M 방송사에서 바쁘셨다면서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닌다고.”
“취재가 있었긴 했죠. 근데 그건 딴 날입니다. 그 날은 베어즈가 졌거든요.”
“아, 그랬나요? 이거 나이를 먹으니 조금씩 깜빡깜빡….”
“구로에서 나온 시민당 3선 의원님이 주신 술 맛은 기억하시면서요?”
재환이 정확히 같이 있던 사람을 대자 본부장은 숨을 딱 멈췄다.
눈만 움직여 재환의 낯을 살폈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서는 오만함 마저 느껴졌다.
‘이 새끼 진짜잖아?’
정보준 의원과의 만남은 극비리에 진행됐다.
내용인즉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시사 프로그램 하나를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는데, 알려져서 좋을 게 없기에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술집의 종업원도 룸에 들이지 않았으니 새어나갈 구멍이 없었다.
본부장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재환이 비릿하게 웃었다.
“국회의원과 방송사의 본부장이 유착관계를 가졌다라, 이거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요?”
“증거 있어요? 아까부터 증거도 없이 자꾸 우겨대는데 내가 지금 찌라시나 만드는 삼류 기자하고 인터뷰하는 기분 드네요?”
계속 밀리면 결국 밑천 다 털린다는 걸 느낀 본부장이 강수를 뒀다.
증거.
“증거도 없고, 심지어 증언을 할 목격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주워들은 걸로 주절주절 떠드는데 당신 기자 맞습니까? 기레기지?”
“기레기라…. 저도 이 얘기가 전부 거짓이라 기레기라 낙인찍히면 정말 좋겠는데 말이죠.”
“더 얘기 나눌 것도 없군요. 나가보시죠. 인터뷰는 그만….”
“본부장님,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때맞춰 비서가 본부장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본부장의 눈에는 그런 비서가 아주 예뻐 죽겠다.
얼굴이 반반해서 뽑아서 쓰는 데 이런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맞추니 마음에 쏙 든다.
‘저 엉덩이나 좀 만져볼까.’
잠깐 사이 더러운 상상을 하고 일어나서 재환을 내려다봤다.
“마침 손님도 오셨다고 하니 나가보시죠.”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날 기색 없이 그저 휴대폰만 꺼내 봤다.
안하무인인 그 태도에 본부장이 버럭 화를 냈다.
“깡패나 다름없는 사람인 줄 알았으면 들이지도 말 걸 그랬네요. 요즘 잘 나간다고 세상이 다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죠? 내가 몇 년 더 살았으니 충고 하나 하자면 그러다 크게 다칩니다.”
“크게 다치는 건 제가 아닌데요.”
재환의 말대꾸에 본부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자리에 비서만 없었다면, 재환이 K방송국의 국장급이었다면 당장 따귀가 날아들었을 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재환은 고개만 돌려 입구에 선 비서에게 물었다.
“지금 오신 손님 분 저 찾아오신 거죠?”
“아, 그게….”
“여기에 온 손님이 왜 당신 손님이야!”
재환의 말에 본부장은 머리에 몰렸던 피가 싹 가라앉았다.
불길하다.
재환은 증거를 나중에 보여준다고 했다. 그게 블러프가 아니라면? 진짜로 증거를 들고 있는 인물이라면?
비서는 본부장의 눈치를 살피다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래 싸움에 새우가 끼면 등만 터져 나간다.
“네. 강재환 대표님이 여기 계신 걸 알고 만나러 오셨습니다.”
“대체 누구야! 누군데 저 놈을 만나러 와!”
“목청 좋으시네요. 차가 좋아서 그런가. 아, 저 차 좀 더 주세요.”
재환이 유유자적하게 비서에게 빈 잔을 건네고 고개를 소파 쪽으로 까딱했다.
“그렇게 계속 서 계시지 말고 다시 앉으시죠. 저희 얘기 아직 안 끝난 거 같은데.”
“당신은 나가!”
“나가면 본부장님만 곤란하실 텐데요.”
재환의 으름장에 본부장은 이를 갈았다.
말을 할 때마다 재환의 흐름에 말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데, 말을 안 하면 저 놈의 계략에 빠져 죽을 것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비서의 뒤로 기다리던 부장 검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숨이 콱 막히는 상황에서도 본부장은 부장 검사의 외투에 달린 법원 배지를 볼 수 있었다.
“실례합니다. 큰 소리가 나기에 무슨 일 있나 싶어 얼굴을 비췄습니다.”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사소한 의견 충돌이죠. 들어오세요.”
재환은 마치 제 사무실인 것 마냥 부장 검사를 자신의 옆으로 안내했다.
이미 목줄을 꽉 잡힌 부장 검사는 한숨을 내쉬고 재환의 옆에 앉았다.
“여기 찾으시던 자료의 카피본입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얘기가 좀 수월하게 진행 될 거 같네요.”
재환은 부장 검사가 내민 서류를 속독으로 훑고 테이블에 내려놨다.
본부장은 선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로 서서 그 서류 봉투를 내려다 봤다.
“본부장님이 찾으시던 증거입니다. 그 날 술집의 CCTV 자료하고, 녹취록도 담겨 있네요. 아, 증언도 거기 잘 적어놨으니까 이제는 믿으시겠죠?”
재환의 체크메이트 선언에 본부장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CCTV 기록이라면 국장이 어느 룸에 들어갔는지, 자신은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와 만났는지 바로 알게 된다.
같은 방에 있었다.
저 작은 진실만으로도 불러올 파급효과는 크다.
특히 앞에 있는 놈이 진실에 거짓을 살짝 첨가한다 해도 사람들은 그게 진실인줄 알 것이다.
그게 재환이 쌓아놓은 신뢰의 이미지였으니까.
“원하는 게 뭐야.”
“어유, 이 얘기 하자고 먼 길을 돌았네요.”
재환은 유리하게 깔린 협상 테이블에 앉아 상대의 어떤 패를 가져올까 고민했다.
사실 고민하는 척이다. 이미 어떤 걸 요구할 지도 다 정해놨으니까.
“본부장님이 가지신 K방송국 주식의 지분 80프로 주시죠.”
본부장 주식의 80프로를 얻게 되면 주주총회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얻게 된다.
집 안에 무장한 군인이 군화발로 짓밟고 들어오게 되는 셈이다.
“절대 안 돼!”
“고민은 좀 하고 말하시죠. 이게 요구가 아니라는 걸 알만큼 아실 분이 말이죠.”
재환의 위협에 본부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숨을 뱉어냈다.
“그런데 지금 부장급 검사와 같이 있다는 건 오늘의 신문 역시 검찰과 유착 관계가 있는 거 아냐?”
재환은 비서가 내 온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빙긋 웃었다.
“증거. 있으세요?”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니 본부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진실을 숨기기 위해 했던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의 얼굴을 후려칠 줄은 몰랐다.
“증거도 없으면서 사람 막 몰아가는 거, 그거 기레기나 하는 짓이잖아요. 본부장님 기레기세요?”
“하….”
“잔재주 피우지 마세요.”
재환의 으름장에 본부장은 마른세수를 했다.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타계하고 싶지만, 자신의 목을 따기 위해 칼을 갈고 온 상대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막막하다.
“아무리 그래도 80프로는 너무 많아.”
“돈 너무 좋아하시네. 그거 들고 있다고 저승 가는 길에 기차 태워주는 것도 아닌데.”
재환은 다리를 반대로 꼬며 다시 딜 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저희 방송국에 지금 인재가 많이 부족하거든요? 그러니까 필요한 인력을 파견 형식으로 빌려줘요. 한 3년 있다가 돌아오고 싶으면 돌려보내 드릴게요. 계속 있고 싶다하면 계속 있게 하고요. 아, 기기도 부족한데 이건 임대 형식으로 빌릴게요. 적당한 값 치러드리죠.”
마찬가지로 막무가내인 요구였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나았다.
이 요구는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으니까.
거기다가 사회적으로 괜찮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다.
신생 방송사와 상생하려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으니까.
나름대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본부장을 보면서 재환은 피식 웃었다.
‘역시 이게 제일 잘 먹혀.’
협상에서 처음에 100을 부르고 다음에 10을 부르는 것과 처음에 10을 부르고 다음에 100을 부르는 건 심리적인 반감의 크기가 다르다.
처음부터 10을 말했으면 씨알도 안 먹혔겠지만, 100을 들은 다음에 10을 듣는 것이라 이 정도면… 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물론 월급은 저희 쪽에서 지급 할 겁니다. 공문만 작성해서 하달해 주세요.”
“몇 명이나 빼가려고….”
“글쎄요. 저희가 전문 인력이 또 많이 필요하거든요.”
재환은 손을 쫙 펴서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50명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