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31
31화
재환의 요구는 말도 안 되는 폭정이었지만 본부장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녹음기를 끈 본부장이 뺨이 부풀어 오른 국장을 가리키며 으름장을 놨다.
“알아서 50명 각출해라. 니들이 싼 똥은 니들이 치워!”
“본부장님! 50명은 너무 많습니다!”
“많아?”
본부장은 보도국장의 멱살을 쥐고 으름장을 놨다.
“내가 너부터 보낼까 하다가 참는 거야. 50명 못 뽑으면 너부터 짐 싸!”
그 말을 남기고 본부장은 떠났다.
회의실은 잠시 적막이 내려앉았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같이 한숨을 내뱉었다.
“50명?”
“한두 명도 아니고, 50명을 어디서 내냐고.”
“50명 빠지면 그 자리는 어떻게 메우고.”
앓는 소리를 내는 것도 잠시 회의실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바뀌었다.
“보도랑 예능 쪽에서 30명은 내야지.”
“왜 우리 애들한테 그래!”
“야! 너희 때문에 생긴 일 아냐! 왜 벌집을 건드려서 이 사단을 만들어!”
한 명이 빠지면 그 자리는 누가 메우는가. 당연히 남은 사람들이 갈려 나가는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 퀄리티는 낮아지는 게 당연한 일이고, 시청률 역시 대폭 하락한다.
당장 짐을 빼는 건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짐을 뺄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니 국장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티려고 했다.
K 방송사에서 투기장이 열리거나 말거나 재환은 진작 K 방송사를 떠나 M 방송사로 향했다.
언질도 안 하고 갔지만 이미 정 이사의 비서가 대기하고 있었다.
K 방송국이 박살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시청률을 두고 으르렁거리는 지상파 3사지만, 공공의 적이 나타났으니 곧바로 손을 잡는 거다.
“이사님이 기다리십니다.”
“가죠.”
비서는 재환을 데리고 이사실로 바로 향했다.
정 이사는 재환을 보고 먼저 머리 숙였다.
“이번 건은 미안하게 됐네.”
“아뇨. 잘 됐다고 생각해요. 지분 건도 얘기가 아직 안 끝난 참이잖아요?”
재환의 말에 정 이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든 재환의 약점을 잡아서 거래를 파토내거나 조건을 완화할 생각으로 기존에 약속했던 지분의 지급을 미뤄왔다.
그 건이 이제 와서 목을 죄일 줄은 몰랐다.
“이건 어떻게 배상하실 거에요?”
“어떻게… 봐줄 수 없겠나? 우리에게 빚을 지운다 생각하고….”
“지난 빚도 못 갚은 사람에게 무슨 빚을 또 지운답니까. 씨알도 안 먹힐 소리 말고 제대로 된 제안을 하시죠.”
재환의 단호한 목소리에 정 이사는 얼굴을 매만졌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게 말라 비틀어져 가는 고목나무 같다.
“뭘 원하나.”
“K 방송국에 한 것과 똑같은 제안을 해드리죠. 50명만 각출하세요. 위아래 잘 섞어서.”
“50명이나 빠지면 우린 일 못하네.”
“K 방송국에서는 수락한 걸 왜 M 방송국은 못합니까. 그리고 못 하는 건 제 알바가 아니죠.”
재환의 제안에 정 이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정 이사의 확답까지 받은 뒤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식은 이번 주 내로 처리하시죠. 늦으면 더 봐드리지 않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다음엔 주총 때 뵙죠.”
할 말은 다하고, 뜯어낼 것도 다 뜯어낸 재환은 정 이사의 사무실에서 유유히 빠져나왔다.
재환이 나간 뒤 정 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비서는 사무실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사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으니까 거기서 사직서나 가져오지.”
사직서란 말에 비서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이 사직서는 재환이 도착하기 직전에 작성 된 것이다.
“책임지고 물러나는 게 모양새가 좋겠지?”
K 방송사에서 있었던 일이 퍼지고 대표가 정이사에게 직접 연락했다.
정 이사는 억울하고 할 말도 많았지만 그러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위에서는 버림 말로 낙점 찍었다.
버틴다고 버틸 수 있는 게 아니다.
재환이 터트리지 않으면 위에서 터트려서 자신의 목을 날려버릴 거다.
독이 방송국 전체에 돌기 전에 물린 부위를 자르겠다는 심산이다.
40년 가까이 몸 담아온 방송국에서 이런 식으로 쫓겨 날 줄은 몰랐다.
뒷문으로 적당히 돈을 챙겨 준다고 약속했지만 글쎄다.
자신이 아는 대표는 쓸모없어진 곳에 돈을 투자하는 인물이 아니다.
“씁쓸하구만.”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자네도 몹쓸 이사 하나 보좌한다고 고생 많았어.”
정 이사는 얼마 안되는 짐을 챙겨 일어났다.
오래 일을 했는데 방송국에 남아있는 짐은 가방 하나에 전부 담을 수 있을 만큼 별 게 없었다.
“후우….”
정 이사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 날 저녁 뉴스로 정 이사의 비리 사실이 보도되었다.
얼굴 마담인 M 방송국의 아나운서들이 대표로서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뱉어냈다.
집에서 뉴스를 보던 재환은 코웃음을 쳤다.
“어지간히 싫었나 보네.”
M방송사에서는 이제 입 싹 닫아버릴 거다.
정 이사가 멋대로 한 약속을 자신들이 지킬 이유는 없다 하겠지.
재환이 무기로 쥐고 있던 정보는 이미 왜곡시켜 터트려버렸다.
재환이 터진 정보가 잘못됐다 말해도 되겠지만 원래 정치는 선빵이 중요하다.
저 말에 거짓이 섞여 있다는 걸 밝히려면 지금 있는 정보의 배 이상이 필요할 거다.
정보를 얻는 건 문제가 안 되지만 그러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게 적다.
“한 방 먹었지만…… 날 건들면 어떻게 되는 지 알려줬으니 이거면 됐겠지.”
“저것도 당신 작품이야?”
예희가 물어보자 재환은 애매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계기를 만든 건 맞지만 결국 나가라 지시한 건 M 방송국의 인사들이다.
그러니 합동 작품이라 보는 게 어울릴 것 같다.
“제 지위를 이용해 뭐라 해명하기조차 민망한 일들을 벌여 정말로 죄송합니다.”
검찰청 앞의 포토라인에서 구구절절 설명하는 정 이사를 보고 재환은 채널을 돌렸다.
더 볼 것도 없다.
재방송으로 나오는 예능을 보며 만약의 일을 생각해봤다.
만약 저들이 자신과 협력, 공생 관계를 구축하고자 했다면 재환은 충분히 그럴 의향이 있었다.
지금이야 시청률이 중요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시청률은 10%만 나와도 높은 게 된다.
당연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방송사들의 협력 관계는 긴밀하게 구축될 수 록 다 같이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이 커진다.
뭐 지금으로서는 먼 일이다.
TV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으니 예희가 재환의 얼굴을 붙잡아 돌렸다.
자신의 눈을 보게 하니 재환은 괜히 심장이 뛰었다.
대통령을 대면할 때도 차분하던 심박수가 높이 뛴다.
‘내가 뭘 잘못했던가?’
최근엔 집도 꼬박꼬박 잘 들어왔다.
바쁜 와중에도 소율이와는 놀아주려고 애썼다.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여보, 나 일 해야 될 거 같아.”
“일? 갑자기? 왜?”
돈이라면 부족할 리 없다.
요 몇 달 벌어들인 돈을 합치면 사회인이 되서 벌어들인 돈 전부와 맞먹는다.
대부분은 다시 투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예희에게 준 돈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세 가족이 먹고 살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다.
“앞으로 들어갈 돈이 많을 거 같아서, 이사도 가야하고, 소율이 앞으로 돈도 모아둬야 하고.”
“이사 갈 목돈도 충분하잖아. 부족하면 대출 끼면 될 일이지.”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비자금으로 사둔 주식들을 팔면 된다.
확실히 성장하는 주식들을 샀기에 이미 투자금의 200% 가까운 수익을 냈다.
“애 둘 키우려면 지금까지의 돈이 배로 들 거니까.”
“애 둘?”
소율이의 말에 재환의 사고가 잠시 정지했다.
둘?
“표정이 왜 그 모양이야? 소율이 동생 만들어주자고 할 땐 언제고.”
“어, 그러니까….”
“임신했어. 3주차래.”
임신이란 말에 기쁨과 감격이 벅차올라 예희를 끌어안았다.
예희는 그런 재환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기쁨을 나눈 뒤 재환이 말했다.
“돈 걱정은 하지 마.”
“당신 벌이 뻔히 아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이번에 보너스 받은 걸로는 택도 없어.”
“보너스는 아니었어. 그러니까 모를걸?”
재환은 방송국과 더불어 준비 중인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사업이란 얘기에 예희의 표정이 살짝 어두웠지만 얘기를 전부 듣고는 어느 정도 납득했다.
“그러니까 딴 생각 말고 몸조리나 잘 해.”
“당신이야 말로 무리는 하지 마.”
그 날 밤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밤을 지새웠다.
덕분에 재환은 커피를 들이키며 하루 종일 하품을 해댔다.
“커피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니에요?”
“하암, 괜찮아요.”
비서는 다 마신 커피를 치우고 알려줘야 할 사안을 전달했다.
“S 대학교 학생들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물건 다 만들었다고 하던데요.”
“내일 간다고 말해 주세요.”
“네, K 방송사에서 명단을 보내왔는데 확인해주셔야 할 거 같아요.”
비서가 있으니 확실히 일의 관리가 한층 수월해졌다.
큼지막한 일을 전부 배분한 뒤에 비서가 조심스럽게 마지막 말을 이었다.
“유서진 비서실장님이 오늘 만나 뵙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분이요? 흐음….”
유서진이 재환을 직접 찾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항상 재환이 그를 찾았지, 반대의 경우는 없었다.
“빠를수록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점심이나 저녁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하죠.”
뭘 얘기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유서진은 옆에 두고 같이 지내야 할 사람이다. 어지간한 부탁은 다 들어줄 수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 유서진은 대표실로 직접 찾아왔다.
“빨리 오셨네요. 앉아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기사 좀 마저 쓰고요.”
“이번엔 무슨 기사를 쓰십니까.”
“구 회장님한테 서비스 좀 해 줄까 해서요.”
스마트폰에 관한 정보를 일부 담은 기사를 유서진에게 보여줬다.
얼리어답터들은 크게 관심을 가질 거고, 흐릿하기만 하던 스마트폰의 성공 여부가 어느 정도 보일 것이다.
그러면 구 회장의 발언권은 어느 정도 강화될 것이고 더불어 재환의 신뢰도 역시 탄탄하게 다져 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기사 써도 되죠?”
“이미 다 쓰셨으면서 차후에 물어보는 의도가 뭔지 모르겠네요.”
“의례적인 거죠.”
재환은 기사를 마무리 한 뒤 유서진과 마주 앉았다.
“식사는 하셨어요? 드시면서 얘기할까요? 이 주변에 맛있는 중국집 아는데.”
“괜찮습니다. 회장님이 찾으시기 전에 들어가봐야 해서요.”
저 말인 즉 구 회장 몰래 자신을 찾아왔다는 게 된다.
구 회장에게 비밀로 할 만한 이야기라.
재환은 어느 정도 짐작이 됐다.
“구 회장님에 관한 거군요? 그것도 건강관련?”
유서진은 쓰게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재환은 감이 좋다.
“정확합니다.”
“많이 안 좋으시죠?”
“의사들이 처방하는 약이 점점 독해지고 있습니다. 수술을 권유하고 있지만 회장님이 한사코 거절하고 계시죠.”
구 회장이 물러나는 시기는 3년 뒤지만 이미 몸 상태는 악화되어가고 있다.
처음엔 정정하던 노친네가 어느 틈엔가 지팡이를 짚고 다녔으니까.
“저는 구 회장님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아프시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애착이 강하시군요.”
“아버지니까요.”
이미 진실을 아는 재환이기에 유서진은 그 부분을 털어놨다.
“어머님도 암으로 돌아가셨기에, 아버님도 그렇게 보내고 싶진 않습니다.”
“그래서 절 찾아오신 이유는 구 회장님을 좀 말려달라는 겁니까? 치료 권유를 하라고요.”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재환은 소파에 기대서 고개를 저었다.
그 노친네 고집을 꺾고 병원에 입원 시키는 것부터가 허들이 높다.
“구 회장님을 회장직에서 끌어 내리는 거, 강 대표님이시면 가능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