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소율아, 아빠 좀 깨우렴.”
“아빠! 아빠! 일어나!”
구수한 북엇국 냄새와 소박한 가정집의 소음에 유서진은 그제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낯선 천장에 잠시 멍해 있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왜 여기에 있는가. 잠시 상념에 빠져있다가 어제 재환과 가졌던 술자리가 떠올랐다.
술은 자제해서 마시는 편인데 어제 처음으로 필름이 끊겼다.
자신의 실책에 머리를 부여잡고 있으니 부엌에 있던 예희가 웃었다.
“일어났어요?”
“아, 네….”
그가 머쓱하게 웃자 예희가 손짓했다.
소박하지만 따스한 아침상을 보니 괜히 가슴이 뭉클했다.
집이라 부르는 그 곳의 아침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가정부들이 의무적으로 차리는 구운 빵과 계란 후라이가 전부.
그 마저도 안 먹는 사람이 많다.
“차린 게 별로 없어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얻어먹는 처지이니까요.”
“흐아아암. 웬일로 밥상이 푸짐하네?”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일어난 재환을 예희가 째려봤다.
그 따가운 시선을 일부러 모른 척 하며 유서진의 옆자리에 앉았다.
과장스런 몸짓으로 유서진의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맛없으면 슬쩍 헛기침해요. 방송국 앞에 해장국 잘 하는 집 있거든요.”
“당신 밥 없어. 소율아, 아빠 밥 뺏어.”
“에이, 농담이지 농담. 당신 밥은 미슐랭 쓰리스타 코스 요리보다 맛있어.”
“그건 언제 먹어봤대? 난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예희와 재환이 투닥거리는 걸 본 유서진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이런 따스한 가족의 분위기를 느껴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했다.
어머니가 계실 때니 못해도 5년은 넘었다.
“어머, 괜찮아요?”
“아, 네. 괜찮습니다.”
“얼마나 맛이 없으면 먹고 울어.”
“엄마 밥맛없지 않아!”
유서진은 자신의 뺨을 매만지고 흠칫 놀랐다.
이런 상황에서 눈물을 흘릴 줄이야. 자신이 이렇게 감성적인 사람이었나.
급히 눈물을 훔치고 웃었다.
“아닙니다. 밥, 맛있습니다. 그냥 옛날 생각이 잠깐 나서요.”
“이 밥으로 대체 얼마나 슬픈 기억이 떠올랐길래….”
“별거 아닙니다. 자, 얼른 아침 드시죠.”
유서진이 웃으며 넘기려하기에 다들 더 묻지 않고 아침 식사를 이어 나갔다.
아침을 다 먹고 난 후 재환과 유서진은 같이 집을 나왔다.
“저는 택시 타고 가겠습니다.”
“구 회장님 저택으로 가십니까?”
“그래야죠. 아마 제가 안 돌아와서 소란이 좀 일어났을 겁니다.”
두 가정부가 일을 그만두고 나서 아직 제대로 된 가정부를 구하지 못했다.
그 전에는 당연히 자신이 그 일을 대신해야 하는데, 안 들어갔으니 아마 난장판일 확률이 높다.
그렇게 생각하니 재환의 집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고요. 일단 제일 흔들리기 쉬운 이사부터 공략해 보시죠.”
유서진이 택시를 타고 멀어지는 걸 본 재환은 자신의 차를 몰아 TBS 방송국으로 향했다.
한성이든 유서진이든 움직이려면 시간이 적당히 필요하다.
그 시간에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릴 순 없지.
대표실에 도착하자마자 재환은 보도국장을 호출했다.
“대표님,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1시 뉴스에 나갈 꼭지 중에 두어 개 뺄 수 있겠어요?”
“넣는 게 어렵지 빼는 거야 어렵지 않죠. 글로벌 뉴스 부분에서 빼면 될 겁니다.”
“그 자리에 이거 넣어요.”
재환은 KG의 비리 의혹에 관해 정리한 정보를 던졌다.
밤 사이 대충이나마 정리한 정보인데, 기사 한 두 개 써낼 정도의 내용은 된다.
정보를 쭉 훑어본 보도국장은 숨을 들이켰다.
“이거… 아니, 대표님이 가져오신 정보니 팩트는 확실하겠군요.”
“팩트긴 한데 약간 카더라란 느낌으로 보도해줘요.”
“팩트 체크도 된 걸 굳이 그래야 할까요?”
“네. 일부러 KG가 발뺌하게끔 만들려고요.”
재환의 의도를 읽은 보도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찌라시를 던져서 큰 건을 낚아 올리는 거야 이 업계에서 자주 있는 일이다.
다른 사소한 점이라면 상대가 KG라는 것 정도?
‘어차피 난 시킨 대로 한 죄밖에 없으니까.’
보도국장은 대표실을 나가자마자 자료를 기자들에게 뿌렸다.
기자들은 자료를 보자마자 숨을 들이켰다.
“국장님, 이거 진짜에요?”
“KG 주가 휘청하겠는데.”
“근데 이건 너무 찌라시 같지 않아요? 저희 이미지만 갉아 먹는 거 같은데요.”
기자들의 불안함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제 막 생겨난 방송국에 입사한 이유는 재환이 가진 신뢰의 이미지가 가장 컸다.
그의 이미지 빨을 받는 TBS에 있으면 자신들의 기사도 신뢰도가 높아질 게 당연하니까.
그런데 찌라시를 써낸다는 건 자충수에 가깝다고 여겨졌다.
“이거 대표님 발 정보다. 걱정말고 기사 쓰는데, 찌라시 느낌내라.”
“……진짜죠?”
“알겠습니다.”
단 한마디로 기자들 사이에 흐르던 이상한 기류가 싹 사라졌다.
이게 재환이 쌓아올린 신뢰의 힘이었다.
기자들이 빠르게 기사를 쓰는 사이 재환은 KG 유통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은밀히 KG 유통의 건물로 간 재환은 건물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오고가는 사람들을 눈에 담았다.
대충이나마 변장을 해서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침체된 게 보이네. 구준열이 얼마나 깽판을 쳐놓았을까.’
말하기 무섭게 고급 세단이 건물 입구에 멈춰서면서 구준열이 내렸다.
구준열이 오자마자 직원들이 도열해서 인사를 한다.
그 모습을 구준열은 흐뭇하게 웃으며 봤지만 재환이 보기엔 갑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실제로 도열해 있는 직원들의 표정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
욕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는 게 분명했다.
“자, 이러지 말고 얼른 일들 보러 가시죠.”
구준열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뱉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리를 옮겼다.
그가 사라진 뒤에야 로비를 누르던 무거운 공기가 사라졌다.
외근을 나오던 직원 둘은 한숨을 내쉬고 욕지기를 뱉었다.
“이러려고 남았나 싶다.”
“KG 계열사라고 해서 나을 줄 알았는데, 차라리 대성이던 시절이 훨씬 나아요.”
그들의 불평불만을 캐치한 재환이 슬쩍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저희 종교 안 믿어요. 바쁩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전 이런 사람이거든요.”
TBS 자리에 오르면서 새로 판 명함을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혀를 차던 둘은 명함을 보고 딱 굳었다.
그리고 재환을 뚫어지게 쳐다본 뒤 입을 벌렸다.
“아니, 아니!”
“왜, 왜 방송국 대표가 이런 데에!”
“기자가 취재를 다니는 거죠. 그러지 말고 잠시 얘기 좀 나누시죠. 아까 보니까 구준열 사장의 태도가 좀 지나치던데요.”
둘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내부 고발자로 찍히면 피곤해지는 건 그들이다.
당연히 재환은 신분 보호를 해주겠지만 앞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죄송합니다. 저희가 드릴 말이 없어요.”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사정이야 있는 법이니까요.”
재환은 손사래를 쳤다.
어차피 목표는 증언이 아니다.
증언이야 있으면 좋은 거고, 없어도 큰 문제는 안 되는 거다.
“대신 최연호 이사님하고 연결 시켜주실 순 있으실까요?”
천대성의 버려진 셋째 아들이자 구준열의 패악질에 피해를 입은 KG 물산의 이사.
재환이 노리는 건 그 한 명이었다.
두 직원은 재환의 말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그것도 좀….”
“저희 같은 말단이 어떻게 이사님과 직통으로 연결시켜 드릴 수 있겠습니까.”
두 직원이 소극적으로 나왔지만 재환은 포기를 몰랐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드신 거 아닙니까?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는데요.”
“그건….”
“제 이름을 걸고 장담합니다.”
재환이 가려운 곳만 박박 긁어주는 통에 두 직원은 갈등했다.
앓는 소리를 내며 고민하던 둘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저희도 이사님 번호를 모릅니다. 대신 아시는 분과 연결해 드릴 순 있어요.”
“그거라도 좋습니다.”
“저희 신변은….”
“당연히 보호해드리고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취재원을 보호하지 못하면 기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거다.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상사의 번호를 재환에게 건넸다.
“그런데 대표님이면 직접 전화해서 연락을 취해도 되지 않나요?”
굳이 이런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가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다.
“조용히 만나뵜으면 하거든요. 그러니 두 분도 절 봤다는 말 하시면 안됩니다.
맨 윗대가리가 구준열인 이상 공식적으로 접촉하면 애기가 바로 위로 전달된다.
그러면 또 구 회장으로부터 한 소리가 날아들 텐데,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바에야 조금 번거롭더라도 이렇게 번호를 구하는 게 맞다.
“어차피 저희가 말하면 저희 목만 죄는 꼴이니까요.”
“말이 잘 통해서 좋으시네요. 두 분 명함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두 직원은 고민하다가 명함을 내줬다.
그걸 받아 챙긴 뒤 재환은 몇 다리를 거쳐서 최연호 이사의 연락처에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강재환 대표님이시라고요?”
“네.”
남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재환은 가까운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최연호는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는데, 카페 안에 들어와서도 벗지 않았다.
이유야 뻔하다.
멍이 들어 있을 테니까.
“눈은 좀 괜찮으십니까?”
“……아시는 군요?”
“제 발이 좀 넓거든요.”
최연호는 쓰게 웃고 커피를 들이켰다.
그 과정에서 슬쩍 드러난 팔도 멀쩡하다고 보긴 힘들었다.
담배 불에 지져진 게 아닐까 의심되는 화상 자국도 언뜻 보여서 괜히 짠했다.
“다 아시면서 찾아오셨다는 건 기사화 하고 싶으시단 건가요?”
“네. 패악질 하는 놈을 가만 내버려 둘 순 없잖아요.”
재환의 신랄한 비난에 그는 쿡 웃었다.
“강재환 대표님의 말이라면 영향력이 있죠. 하지만 기사 하나로는 많은 게 바뀌지 않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화제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아무리 강력한 화제라도 짧은 시간 타오르고 나면 끝이다.
구준열도 잠시 아프다는 핑계로 피신해 있다가 화제가 전부 타오르고 나면 다시 사장 자리에 앉을 거다.
이건 기자로서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재환은 그 이상의 힘을 갈구한 거다.
“사장 자리에서 끌어내리면 되죠.”
“그게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주주가 구정혁 회장이고, 친 회장 파인 이사들의 지분을 다 합치면 과반이 넘습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에요.”
재환은 그 얘길 듣고도 그저 웃었다.
어제 유서진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해줘야 할 거 같다.
“이사들을 포섭할 겁니다. 그들이 보유한 지분을 합하면 충분히 과반의 표결을 이끌어 낼 수 있죠.”
“그게 가능할 리가….”
“있습니다.”
재환은 확답을 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 이사님이 힘을 좀 써주시면 가능합니다.”
“……전 아무 힘도 없습니다. 그저… 줄을 잘 타서 이사 자리까지 올라 온 거죠.”
인상을 쓰는 그를 보며 재환은 웃었다.
줄타는 것도 실력이다.
“줄 잘 타신다는 걸 시인하신 거니 아시겠네요.”
“뭘 말이죠?”
재환은 유서진이 가져온 자료를 전부 보여주며 말했다.
“지금 잡아야 할 줄은 저라는 걸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