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38
38화
최연호 이사는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환은 자리에 앉아서 최연호 이사의 반응을 떠올려봤다.
지금으로서는 50대 50이다.
재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걸로 보였다.
그러면 답은 정해져 있다.
보여주면 되는 거다.
차를 몰고 돌아가면서 어떻게 그 확신을 보여 줄 건가 고민해봤다.
단순 특종으로는 약하고, 그렇다고 적을 늘릴 수 있는 기삿거리는 위험했다.
적당히 적이 물지는 않을 화제면서도 확실하게 흔들 수 있는 기사.
“어머, 강재환 기자님.”
TBS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가 재환을 불렀다.
듣기 좋은 고음에 장미래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맞다. 이제 대표님이죠?”
“편한 대로 부르세요. 직함이 뭐가 중요한가요.”
“호호, 직함이 사람을 얼마나 많이 바꾸는데요.”
방금까지 직함 하나로 사람을 휘두르던 곳을 갔다 왔더니 저 말을 바로 부정하기가 힘들었다.
그저 쓴웃음을 짓다가 화제를 돌렸다.
“여기엔 무슨 일이세요?”
“배우가 방송국에 무슨 일로 왔겠어요. 방송하러 왔죠.”
“맞네요.”
가는 방향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같이 걸어갔다.
“요즘 일은 어떠세요? 일감은 많이 들어오나요?”
“저번 사건 터트리면서 사정이 많이 좋아졌어요. 이미지도 바뀌어서인지 배역 제의도 많이 들어오고요.”
“그게 제일 잘 된 일이네요.”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재환은 민감한 내용을 물었다.
“핵심 인물들은 어떻게 됐어요?”
“예상한 결과대로죠. 뭐.”
이목이 줄어들었을 때, 여러 이유를 들어 잘 빠져 나갔단 소리다.
그만큼 정치 쪽에서 썩어 빠진 인물이 많다는 소리기도하고, 한 번 당한 인간들이 칼을 갈고 있단 소리도 된다.
마침 최연호 이사가 말한 상황과 비슷하기도 하다.
‘이걸로 가야겠네.’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사형 선고를 받았어야 할 인간들이 살아 나갔다.
그들을 다시 잡아서 사회적인 생명줄을 완전히 끊어버린다면? 최연호 이사도 재환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럼 그 때가서 중요한 일들을 맡겨 봄 직 하다.
재환은 주위를 슥 살피고 물었다.
“실례되는 말이지만 그 인간들 번호, 아직 가지고 있어요?”
“번호를 바꾸면서 전부 없애서요. 맞다. 대표님 제 번호 모르시죠?”
“저 가정이 있는 남자입니다. 이동훈 대표 통해서 받는 걸로 하죠.”
“이런 부분에선 또 깐깐하시네요.”
“구설수에 휘말리면 피곤하잖아요.”
이렇게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찌라시 기사가 나돌텐데, 괜히 물어뜯을 거리 만들어줄 필요는 없다.
“근데 그 사람들은 왜요?”
“멀쩡히 돌아다니잖아요. 피해자는 아직도 고통받는데 가해자는 멀쩡하다니. 전 그런거 못 봐서요.”
재환의 말에 장미래는 쓰게 웃었다.
선인만이 할 수 있는 정의로운 말이다.
하지만 그게 쉽지않은 게 현실이다.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어요.”
“장미래씨 저 만나기 전에도 그 생각하셨었죠. 근데 어때요? 달라진 게 없나요?”
재환의 말에 장미래는 잠시 벙쪘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네요. 대표님은 또 다르시죠.”
“제가 또 한다면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렇죠.”
“장미래씨!”
장미래를 찾으러 온 스태프로 인해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슬슬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 모양이다.
“다음에는 이렇게 말고 카페나 바에서 봐요.”
“둘 다 곤란하니 다음엔 제가 소속사로 찾아뵙겠습니다.”
“철벽이셔.”
장미래는 손을 흔들고 걸어가다가 멈춰서서 재환을 돌아봤다.
“아마 동훈이는 알고 있을 거예요.”
“이동훈 사장이요?”
“전 처음에 신고하고 경찰서에 왔다갔다 밖에 안했는걸요. 대부분의 일은 동훈이가 처리했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정보의 물꼬를 텄으니 발걸음을 다시 돌렸다.
엔진이 채 식지도 않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면서 이동훈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세요? 지금 좀 만나뵜으면 하는 데요.”
* * * * *
유서진은 앞에 있는 전무를 고압적으로 내려다봤다.
KG 그룹의 전무라는 직책을 달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그는 지금 KG 그룹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이게 진짜 회장님의 지시라고? 자네가 딴 생각을 품고 있는 게 아니고?”
“전 회장님이 시키신 대로 할 뿐입니다. 제가 딴 생각을 품는다면 어차피 바로 들통날 거짓말 아닙니까.”
맞다.
구 회장의 신임을 얻고 있고,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게 유서진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서실장일 뿐이다.
KG 가문의 궂은 일을 처리하고, 더러운 일을 직접 처리하는 게 그의 일이다.
그리고 이것 역시 어떤 의미에선 더러운 일에 속한다.
유서진의 태도에 그는 한숨만 연이어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분을 넘기라니. 이건 그냥 나가라는 거 아닌가.”
“차분히 설명을 다 드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조만간 있을 위기 상황에 대비해 배신자가 누구인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한 일입니다.”
“그 위기 상황이란 게 확실한 건가?”
“네. 저희 비서실에서 몇 번의 검증을 거쳐 얻어낸 확실한 정보입니다.”
당장 담배를 피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자신이 가진 KG 그룹의 지분이라 해 봤자 0.2%도 안된다.
이걸 넘겨주고 KG 가문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싸게 치르는 거다.
그런데도 왜이리 찝찝한지 모르겠다.
“후우, 다른 분들은?”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신뢰를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어느 분이 동의하셨는지, 거절하셨는지는 밝힐 수 없습니다.”
“그래.”
전무는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을 만나 뵙고 말씀드리지.”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오도록 하겠습니다.”
유서진은 주저없이 일어나 사무실을 나왔다.
짙게 선팅이 된 자신의 차로 돌아와 목을 꽉 죄는 넥타이를 풀고 숨을 뱉어냈다.
“피곤하네.”
아무래도 지분 문제는 예민한 사항이기에 쉽사리 오케이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들 노라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KG 그룹에 대한 충성심 테스트.
이건 재환이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이사진들에게 지분이란 건 구실입니다. KG 그룹과 묶여있다는 걸 인지시켜주기 위한 구실이죠. 어차피 퇴사하고도 매각 못 할 지분이라는 건 다 알잖아요.”
“그렇긴 하죠.”
“근데 이건 어디까지나 KG 그룹이 안정적으로 성장한다는 전제하에 깔리는 겁니다. KG 그룹이 휘청하는 중에도 지분을 가지고 있고 싶어 할까요.”
위험성이 높은 현물을 보유하고 싶은 사람은 적다.
그러니 재환은 유서진에게 지분이 위험 현물이란 걸 이사진들에게 인지시키라 말했다.
“그러면 제대로 된 정보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들을 만나 보죠.”
유서진은 목을 한 번 문지르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 날 유서진은 다섯이 넘는 전무와 사장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늘 새로 들어온 가정부가 그를 맞이했다.
“다녀오셨어요.”
“네, 다른 분들은요?”
“방에 계세요. 저녁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시리얼만 준비해주세요. 방에 가져가서 먹을 게요.”
최대한 정을 주지 않기 위해 단답을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 방으로 가는 중, 구 회장이 있는 서재의 문이 열린 게 눈에 들어왔다.
항상 문을 닫아두시는 분인데, 어쩐 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니 나지막한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KG 기사들이 빈약하던데, 네놈이 시킨 거냐. 고얀 놈.”
고얀 놈이라고 칭하는 이는 정해져 있다.
강재환.
분명 구 회장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겠다 선언했으면서 구 회장에겐 무슨 일로 전화를 했지?
호기심에 조금 더 문에 바짝 붙어 섰다.
“거기 땅 값이 왜 떨어져! 뭐? 그린벨트? 내가 그런 정보도 모를 거 같냐! 한 번 묶이면 쓰지도 못할 땅이 되는 건데!”
“건설사끼리 나눠먹은 돈? 그게 왜 걸려!”
자극적인 단어들이 오고가는 중에 확신이 드는 건 저건 거짓 정보란 거다.
3류 찌라시나 다름없는 카더라에 가까운 내용들인데…, 재환이 말을 하니 다르게 들린다.
진실만을 말하던 입에서 거짓이 흘러나오니 구분이 불가능하다.
“알았다. 내 조사를 더 해보고 연락 주마.”
그 말을 듣고 슬쩍 서재의 문을 노크했다.
구 회장은 유서진을 보고 들어오라 손짓했다.
“정보 값은 아시죠? 잘 챙겨주셔야 합니다.”
“말도 안 듣는 네놈에게 정보값을 주고 싶겠냐!”
“에헤이. 모른 척 자꾸 하시면 저 맘상해요.”
“끊어!”
능글맞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사라졌다.
전화를 끊고 구 회장은 휘갈겨 쓴 메모를 유서진에게 건넸다.
“조사해봐.”
“알겠습니다.”
“그 정보가 확실하면 건설에 말해서 몸 줄이라 말하고, 법조팀에 말해서 손해보는 게 있는 지 알아봐.”
구 회장의 메모를 받아 들고 돌아서다가 멈춰섰다.
“회장님.”
“왜.”
“혹시 서재 문, 회장님이 열어두셨나요?”
“맞다.”
“그러시군요.”
일부러 열어뒀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두 아들에게 재환이란 존재를 알리려 한 거다.
왜?
도움이 되는 사람이니 구해서 손을 잡으라고? 아니면 미리 밟아버리라고?
어느 쪽이든 재환과 같이 움직이는 유서진에게는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닫아 놓을까요?”
“아니, 살짝 열어놔.”
유서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재를 나왔다.
자신의 방으로 가면서 두 아들의 방을 보니 확실히 조금씩 문이 열려있다.
방에 들어와 문을 닫고 나니 주머니에 넣어뒀던 휴대폰이 크게 진동했다.
-구 회장에게 거짓 정보를 일부 흘렸습니다. 적당히 조작해주세요.
재환에게 온 문자와 손에 들린 메모를 번갈아 봤다.
두 아들이 노리고 있단 사실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옷도 안 벗으시고 서서 뭐하세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가정부로 인해 가슴이 철렁했다.
표정 관리에 관해서는 프로급이지만 갑작스런 상황에 대응하는 건 항상 힘든 법이다.
“잠시 급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보다 노크는 해주세요.”
“죄송해요. 저희 집은 집 안에 문이 없다보니 노크가 익숙치 않네요.”
문이 없다니. 그런 집이 있나?
가정부는 책상 위에 시리얼과 잼 바른 빵 한 조각에 따뜻한 꿀물을 내려놨다.
“시리얼만 먹으면 배가 안 찰 거 같아서 조금 더 챙겨봤어요. 피로할 수록 잘 챙겨먹어야죠.”
“……감사합니다.”
배려 깃든 접대에 감사를 표했다.
가정부는 슬쩍 웃고 방을 나갔다.
꿀물을 한 모금 들이키니 따뜻한 기운이 몸에 퍼진다.
괜히 재환의 집에서 먹은 아침이 생각났다.
소박한 맛에 담긴 소박한 따스함.
괜히 웃음이 났는데 금방 첫째가 가정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나마 잊고있던 현실감이 다시 유서진을 덮쳐왔다.
오늘 또 도망가시겠네.
이번 분은 괜찮았는데.
“후우….”
서랍에 넣어놨던 귀마개를 꺼내 끼고 지독한 소음이 빨리 끝나길 기원하며 서류를 들춰보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집 안이 잠잠해진 뒤 유서진은 방에서 나왔다.
시리얼로 대충 끼니를 때운 탓에 허기가 다시 졌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찾으려고 부엌으로 나왔다가 흠칫 놀랐다.
“아, 뭐 드릴까요?”
도망쳤을 거라 생각한 가정부가 아직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나? 라고 생각하기엔 찢겨진 블라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엄한 일을 당한 건 분명했다.
“제가 챙기겠습니다.”
“아뇨. 돈 받고 일하는 걸요. 제가 해야죠.”
“……그럼 과자 몇 개만 내 주세요.”
“시리얼만 드시니 배고프시죠?”
그녀는 가볍게 웃고 찬장에서 고급 과자를 몇 봉지 꺼냈다.
팔을 뻗을 때 보인 불그스름한 자국이 유서진의 마음을 쓰리게 했다.
“오늘 그만두신다고 해도 퇴직금은 맞춰 드리겠습니다.”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 뿐이었다.
우유를 꺼내 잔에 붓던 가정부는 고개를 내저었다.
“전 돈이 많이 필요해서요. 더 일하려고요. 여기 요깃거리요.”
유서진은 멍하게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다과를 받았다.
그 날 잠들 때까지 그 아픈 웃음이 유서진의 눈가에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