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39
39화
재환은 이동훈을 만나 얻은 정보를 쭉 훑었다.
이동훈은 그들의 연락처를 알고는 있지만 건네주길 상당히 꺼려했다.
근묵자흑이라고, 아무리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똑같이 더러운 놈이 될까 걱정한 탓이다.
그나마 재환이 어르고 달래고 신뢰를 주면서 전화번호를 얻어냈다.
“나중에 이용하기로 하고.”
재환은 차를 멈춰 세우고 낡은 아파트를 바라봤다.
재개발이 들어간다는 소문이 파다한 아파트의 주위에는 붉은 천을 이마에 둘러맨 주민들이 가득했다.
“재개발을 취소하라!”
“취소하라! 취소하라!”
“소시민들은 살 자격도 없는 거냐!”
“없는 거냐! 없는 거냐!”
확성기를 들고 악을 써대는 사람의 앞에는 덩치있는 인부 몇 명이 썩은 표정을 짓고 있다.
우연이겠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KG의 로고가 박혀있다.
“아니, 아저씨들. 그런 얘기는 저희에게 해도 소용없다고요. 저희도 다 위에서 시켜서 하는 거에요. 돈 받고 하는 거라고요.”
“돈이면 다야? 그럼 우리는? 쫓겨난 우리는 어디로 가!”
“여기 아파트 새로 올리면 우선 매매권 드리잖아요.”
“여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태산이야! 당장 갈 곳도 마땅치 않고, 입주권이 생긴다 해도 살 돈이 있을 거 같아?”
“그거야 당신들 사정이죠.”
의견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렸다.
저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결국 무너지는 건 주거자 들이다.
그들 말마따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이 태산인데, 이런 시위를 며칠이나 지속할 수 있겠는가.
한두 명 빠지는 순간 주거자들이 가진 유일한 강점이 단합력이 무너지고, KG 건축이 의도한대로 재개발에 착공할 거다.
재환은 당장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씁쓸하면서도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에 탄식했다.
저런 이들을 위한 법이 좀 더 마련되면 좋으련만.
카르텔에 엮인 국회의원이 국회의 과반수에 해당하니 그런 법안이 제출되기도 힘들 거고, 제출된다 해도 가결되기는 더 힘들 거다.
썩어빠진 이들을 끌어내려야지만 이런 사태가 줄어든다.
“이거 또한 나중에 해야 할 일이지.”
재환은 시위에 있는 사람들을 쭉 둘러보다 찾던 사람을 발견했다.
아직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다부진 눈으로 인부를 바라보는 여성은 얼마 전까지 KG가에서 가정부로 일했던 이다.
유서진에게 들은 바로는 꽤 험한 일을 당했을 텐데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모양이다.
재환은 바로 차에서 내리지 않고 시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필요한 일들은 노트북을 이용해서 처리하면서 겸사겸사 이 시위에 대해 보도할 것을 지시했다.
“직접 취재하고 결재 받을 필요가 없으니 이렇게 편한 걸.”
재환은 권력의 맛에 슬쩍 웃다가 차에서 내렸다.
인부들이 일단 물러나면서 시위도 일단락되었다.
그들은 승리를 쟁취했다며 고양되어 있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사람들을 지나쳐 재환은 전 가정부였던 이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그녀는 경계심 짙은 눈으로 재환을 바라봤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재환은 명함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오늘의 신문사 대표이자 TBS 방송국 대표인 강재환이라고 합니다.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명함과 재환의 얼굴을 번갈아 본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재, 재개발 건이라면 동 대표와 만나 보시는 게….”
“그것도 있지만 다른 건에 대해서 얘길 듣고 싶어서요.”
재환의 말에 그녀는 숨이 턱 막혔다.
이걸 말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깊은 고민을 반복하던 그녀는 결국 명함을 움켜쥐고 아이를 안아들었다.
“죄송합니다.”
후다닥 도망가는 그녀의 뒤에 대고 재환이 소리쳤다.
“비밀 유지 서약서라면 걱정말고 연락 주세요. 저라면 도와드릴 일이 있을 겁니다.”
달리던 전 가정부가 잠시 멈칫하는 게 보였다.
물론 잠시일 뿐,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재환은 주위를 슥 둘러보고 명함을 돌렸다.
“오늘의 신문 대표 강재환이라고 합니다. 여기 시위에 대해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요.”
여기 온 본 목적을 흐리기 위해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러면서 KG 건설의 동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재개발 허가가 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와서 이러겠다, 저러겠다 말을 하지 않습니까.”
“보상금 얘기는 오고 갔습니까?”
“그 쪽에서 제시한 돈으론 서울 어디에서도 집을 구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지방으로 내려간다 한들 일자리를 다시 구하는 것도 요원한 일이니까요. 다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재환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에서 KG 건설의 로비 목록을 쭉 훑었다.
구 회장이 직접적으로 지시한 사항은 아니니 건설사 사장 선에서 얘기가 오고 갔을 텐데, 그럼 전무급이 모를 리가 없다.
동 대표의 말을 녹음하는 중에 유서진으로부터 까톡이 왔다.
-건설 라인이 하겠다고 합니다.
타이밍도 좋다.
이렇게 되면 당근과 채찍을 양 손에 든 셈이니 건설을 쥐고 펼 수 있게 됐다.
“동 대표님.”
“예?”
“제가 이 재개발 한 번 막아보겠습니다.”
“대, 대표님이요?”
동 대표는 재환을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럼 보며 손을 덥석 붙잡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이요?”
조건이란 말에 동 대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보통 이럴 때의 조건은 기존의 조건보다 더 안 좋기 마련이고 자신의 목을 죄는 경우가 대다수기에.
재환은 그런 마음을 읽고 손사래를 쳤다.
“별 거 아닙니다. 그냥 인터뷰 하나만 하고 싶을 뿐이에요.”
“아, 그렇습니까.”
인터뷰란 말에 동 대표의 움츠러든 어깨가 다시 풀어졌다.
말 하는 거야 돈 나가는 일도 아닌데 어려울 게 없으니까.
재환은 전 가정부와 인터뷰를 하고 싶으니 자리를 한 번 마련해 달라 말했다.
“그거면 되겠습니까?”
“네. 충분합니다.”
“음…. 알겠습니다. 저희가 노력해보겠습니다.”
“대신 강압적으로 하시면 안됩니다. 그러면 전부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재환은 당부의 말을 덧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도 밑밥을 깔았으니 다음은 KG 건설을 만나볼 차례다.
유서진과는 그 쪽에서 보자고 말을 미리 해놔서인지 재환이 도착했을 때, 그는 삐딱하게 서있었다.
“빨리 왔네요?”
“대표님이 늦으신 겁니다. 왜 이리 늦으셨습니까?”
“잠깐 사무실에 뭐 좀 가지러 갔다 왔어요. 근데 차 막히는 시간에 딱 걸린 바람에 조금 늦었네요. 이해해 줘요.”
가볍게 투닥거리며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KG 건설 사장실로 들어섰다.
사장실에는 KG 그룹의 지분을 가진 전무와 상무, 그리고 사장이 앉아 있었다.
“비서실장? 옆에 쟨 뭐야.”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신문사와 TBS 대표인 강재환입니다.”
TBS란 말에 사장의 눈가가 살짝 풀어졌다.
그도 어쨌든 KG의 일원이기에 구 회장이 마음에 들어한 사람이 누군지는 꿰고 있다.
특히 TBS 개국식에 구 회장이 참여했단 소리에 재환과는 적잖은 연이 있을 거라 눈치를 챘다.
“아유, 이거 귀한 분이셨네? 이런 분이 오실 줄 알았으면 좀 더 좋은 자릴 마련하는 건데 말이죠.”
“그럴 거 없습니다. 이 자리도 충분히 좋은 걸요.”
재환은 마음에도 없는 입 바른 말을 뱉어내고 적당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걸 본 사장은 비서실장이 한 말이 어느 정도 거짓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나눌 얘기는 밖에 새어나가서 좋은 소리 듣긴 힘들 거니까.
KG 그룹의 갑질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강재환 대표님이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이번 아이디어를 제공했거든요. 그래서 참관 자격으로 앉아 있습니다.”
재환의 능청스런 거짓말에 유서진은 포커페이스 아래로 혀를 내둘렀다.
저 정도는 되어야 구 회장을 삶아 먹는 구나 싶다.
사장은 유서진을 슬쩍 봤는데, 그는 별 말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미심쩍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선문답만 계속하면 중요한 얘기는 나눌 시간이 사라진다.
“좋아. 그럼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지. 우리 지분을 다 비서실장에게 넘기면 되나?”
“아뇨. 강재환 대표님에게 넘겨주시면 됩니다.”
“응? 그건 처음과 얘기가 많이 다른데?”
전무의 인상이 험악해진 건 당연하고, 사장 역시 불편한 눈으로 재환과 유서진을 바라봤다.
“이봐, 비서실장. 지분이 뭐 휴지조각도 아니고 남에게 넘겨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나마 비서실장한테 넘겨주는 것도 구 회장님의 직속 비서니까 가능한 거 아닌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처음과 같습니다.”
유서진은 길게 말을 하지 않았다.
괜히 꼬투리 잡히면 피곤해지는 게 누구인지 명확하니까. 사장 역시 그 사실 알고 있다. 그렇기에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 캐묻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강 대표 아이디어고, 구 회장이 지시한 거 맞아?”
“아니라고 하면 믿으실 겁니까? 이미 사장님이 의심하기 시작하신 거 같은데, 이래서야 검은 걸 검다 말해도 희다 믿지 않으실 거 같은데요?”
재환의 말에 사장은 인상을 썼다. 맞는 말이다. 어차피 진위를 확인할 방법이 사장에게는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전무와 상무 역시 마찬가지.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나 되서 구 회장에게 직접 연락해봐야 알 수 있을 터다.
“좋아요. 근데 일이 이렇게 됐으니 그냥은 안되겠습니다. 저희도 지분을 돌려받고 구 회장님의 신임을 받을 수 있단 증거가 있어야겠어요.”
“증거라. 뭘 원하시죠?”
“인당 현금으로 20억씩. 빳빳한 돈으로 채워 주시죠.”
사장이 부른 억 소리 나는 금액에 같은 편인 전무와 상무 역시 입을 딱 벌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큰 게 아닌가.
재환은 사장의 말에 피식 웃었다. 예상대로 지분을 재물 그 이상 그 이하로 안 보는 사람이었다. 지분이 이상하게 꼬이더라도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돈을 챙기겠다는 거다.
유서진이 짧게 신음소리를 흘렸지만 재환은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 계신 분 다 드리려면 TBS 방송국 기둥 두 개 정도는 뽑아야 겠는데요?”
“어차피 그 기둥도 구 회장님이 세우라 말하셔서 저희가 세운 거 아닙니까. 이 참에 조금 돌려받는 것도 나쁘지 않죠.”
“그렇게는 안 되죠.”
그만한 돈은 융통도 힘들다. 할 생각도 없지만.
재환은 가져온 서류 봉투를 가볍게 흔들고 사장에게 넘겼다. 사장은 봉투를 열어보지도 않고 피식 웃었다.
“뭡니까?”
“우리 사장님이 KG 건설을 크게 만들기 위해 하셨던 노력의 흔적들이죠.”
전무가 먼저 서류 봉투를 열어서 내용을 대충 훑더니 안색이 파래졌다.
전무의 반응이 반응이다 보니 사장은 괜히 속이 바짝 탔다.
“무슨 내용이야!”
“……로비에 흘러 들어간 자금 흐름입니다.”
누구에게 얼마를 줬다더라. 어떤 의원과 만나서 밀담을 가졌다더라. 같은 카더라 자료는 재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가지고 있는 오로지 팩트.
그것도 뒤를 철저히 캐내서 얻어낸 팩트다.
사장은 전무의 손에서 서류를 뺏어서 한 장 한 장 살폈다.
도형까지 활용해서 보기 좋게 만들어놓은 서류의 맨 마지막 장에는 KG 건설이 지은 죄의 목록이 쭉 적혀 있었다.
“민사든 형사든 재판장에 들어가면 사장님 꽤 곤란해지실텐데. 안 그래요?”
“이건 다 찌라시….”
“찌라시라 믿고 싶으시면 믿으세요. 근데 법정에서도 찌라시 믿고 설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재환은 다리를 다시 꼬고 삐딱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인간과 거래를 준비 중인 악마의 모습 같았다.
“이제 좀 얘길 편하게 나눌 수 있을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