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40
40화
사장실의 분위기가 싸해졌지만 재환은 아랑곳 않았다.
유서진마저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화약고에 앉은 기분에 괜히 속이 탔다.
‘이게 첫 수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전부 꼬이는 것처럼 첫 수는 중요하다.
여기서 저들에게 휘둘려서야 나중에 KG를 먹고 나서도 피곤해진다.
“신뢰의 증거로 그 로비 내역을 공개하지 않을 겁니다.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이 기사를 사람들이 믿을 거 같습니까?”
“제가 쓴 기사인데도 말입니까?”
“………….”
재환이 썼다는 말에 사장은 이를 빠득 갈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재환이 쓴 기사라는 건 그 만큼 신뢰성이 보장되어있다는 의미다.
이 서류의 내용이 팩트기도 하니 기사가 나가면 불리한 건 사장 쪽이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조건으로는 최상이라 생각하는데요. 안 그래요?”
“이렇게 나오고 후회안할 자신 있습니까? TBS 건물 올린 거 저희라는 거 아시죠?”
“거기에 대한 대가는 제대로 지불했습니다. 모르셨나보죠? 아, 그 때는 남산 아래에 있는 요정집에 가 계셨던가요?”
사장은 어떻게든 주도권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제대로 약점이 잡힌 상황에서 그게 쉬울 리 없다.
재환은 능글맞게 웃으며 다른 서류를 꺼냈다.
가지고 있는 KG 주식을 재환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이 담긴 서류다.
“법적인 절차도 저희 쪽에서 준비를 마쳤으니까 걱정마세요. 아, 참고로 이거 임대라서요. 조만간 돌려드릴 거에요. 그건 서류에도 명시되어 있으니 확인해 보시고요.”
펜과 같이 내밀어진 서류를 받아든 사장은 펜을 내던졌다.
“너희 이거, 구 회장님이 시켜서 하는 거 아니지? 구 회장님이 이 사실을 아시나 모르겠군.”
사장의 말투가 완전히 바뀌었다.
말에서 적대감이 뚝뚝 묻어났다.
“당연히 모르시죠. 아실 리가 있겠어요?”
재환의 말에 사장은 꼬투리를 잡았는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네가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벌이는 일의 규모가 큰가 본데, 내일 이 사실을 구 회장님이 아시면 어떻게 될 거 같아?”
협박에 가까운 말이지만 재환은 그저 웃었다.
시답잖다.
“하세요.”
“뭐?”
“구 회장님에게 고자질 하시라고요. 애새끼마냥.”
비꼬는 말투에 사장은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엎을 기세였다.
재환은 그런 사장을 보며 딜을 했다.
“자, 사장님 진정하시고 제가 왜 이런 짓거리를 할까 생각해보시죠.”
“머리가 돌아서 그렇겠지.”
“그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되긴 하지만 적당한 답은 아니죠. 신문사는 잘 나가고, 이제 막 개국한 방송국의 슬슬 시청률이 오르고 있는 지금 제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하겠어요?”
사장은 재환의 말에 눈을 굴리면서 콧김만 내뿜었다.
옆에 앉아 있던 전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지금 KG에 이러는 이유가 따로 있다고요?”
“네. 유서진 비서실장님이 전한 말 중에 어디까지나 거짓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궁금하실텐데, KG에 위기가 온다는 건 진실이에요. 그것도 구 회장님과 구준열 사장, 구준표 사장에게 말이죠.”
재환의 말에 전무는 등골이 오싹했다.
저승사자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더라도 이렇게까지 무섭진 않을거다.
“KG 오너 일가가 박살이 난다 이런 말이냐?”
“박살까지야…. 그냥 사회적인 질타를 좀 받고, 주가 좀 크게 휘청이고 사업 몇 개 정리하는 정도겠죠.”
그게 박살이 아니면 뭔데!
사장은 그 말이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았다.
저 놈의 말대로면 진짜로 놈에게 KG 주식 지분을 넘기고 접대 이슈가 터지기 전에 사장 자리를 정리하는 게 현명하다.
그게 완벽한 답은 아니지만 차선책 정도는 된다.
최선책은 역시 KG 재벌가가 멀쩡하게 존속되는 것이다.
“차라리 그 위기를 네가 말해서 넘기면 되는 일 아닌가? 구 회장님이 네 말은 듣지 않나?”
“제가 그럴 마음이 없거든요. 오히려 산산조각 났으면 싶어요.”
KG란 이름이 과거의 영광이 될 정도로.
재환의 눈에서 야망을 엿 본 사장은 괜히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박살내서 얻는 게 뭐지? 구 회장님의 덕을 많이 보고 있는데 그런 결정을 내리는 건 멍청한 짓 아닌가?”
“멍청하다라…. 그건 구 회장님에게 할 말이죠.”
재환의 말에 사장은 흠칫했다.
구 회장의 안목이 전만 못했다거나 두 아들놈이 제멋대로 하는 데도 컨트롤 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얘기가 사장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긴 하지만, 대놓고 멍청하다는 소릴 하진 못한다.
어찌됐건 KG 그룹을 만들어서 일으켜 세운 사람이 그니까.
“구 회장님이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두 아들 놈들을 그렇게 둬선 안됐죠.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구 회장님은 멍청해진 겁니다.”
“후환이 두렵지 않은가 보네.”
“그런 거 두려우면 일 할 수 있겠어요?”
재환의 배짱 넘치는 모습에 사장은 조금씩 홀려 들어갔다.
괜히 헛기침을 하고 앞에 놓인 주식 임대 계약서를 내려다 봤다.
조항은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목줄 차이는 건데, 함부로 사인할 수 없다.
“당신이 배짱 넘친다고 해도 쉽게 믿을 순 없겠어.”
“이 분이고 저 분이고 전부 다 신뢰할 수 없다고 하니 원. 이만큼 특종을 터트려도 안되나 보네요.”
재환은 과장스럽게 고개를 내젓고 사장이 내던져서 자신의 앞으로 굴러온 펜을 집어들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조항 하나를 추가해요.”
“뭐지?”
“제가 말한 일이 안 벌어진다면 주식 지분을 전부 무사히 돌려드리는 건 물론 위약금을 물겠습니다. 처음에 말씀하셨던 인당 20억씩 드리죠.”
그 어떤 말뿐인 내용보다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사장은 그 말에 상당히 고민했다.
현재로서 자신에게 불리한 점은 단 하나다.
재환이 들고 있는 비리 정보.
‘리스크, 리턴…. 어렵군.’
단순 계산으로는 이익이 나는지 손해를 입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하는 사장을 보고 재환은 시계를 슬쩍 봤다.
“한 마디만 더 드리자면 여기서 얘기가 끝나지 않으면 다음은 없습니다. 사장님은 그대로 몰락하는 배 안에 갇혀서 못 나오겠죠. 추를 달고 있으니 더더욱 빠져 나올 수 없겠네요.”
재환이 말한 추란 그 동안 해온 로비와 비리 건들이다.
사실상 안 하면 네놈을 목 졸라 죽이겠다 선언한 셈이다.
“개 같은 놈.”
“칭찬 감사하네요. 요즘 개팔자가 상팔자라는데, 제가 왕이 될 상이가 보죠?”
재환은 펜을 사장에게 던져주며 능글맞게 웃었다.
사장이 서류에 사인을 하자 옆에서 눈치를 보던 전무와 상무도 사인을 해서 재환에게 넘겼다. 깔끔하게 사인된 서류를 보고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첫 발은 제대로 뗀 셈이다.
“그럼 일 터지기 전에 서둘러 정리하는 걸 추천드려요. 지금 하는 사업들도 얼른 정리하시고요. 괜히 욕심 부리다 배 터집니다.”
재환은 경고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앉아 있던 유서진도 자리에서 일어나니 사장이 그를 불렀다.
“자넨 구 회장님을 오래 모셨잖아. 왜 구 회장님이 아니라 저놈 편에 선 거냐.”
유서진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강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구 회장님은 멍청하셔서요.”
비서실장의 말에 벙쪄버린 그들을 내버려 두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재환이 하이파이브를 위해 손을 들어올렸지만 유서진은 어울려 주지 않았다.
누가 뭐라해도 지금 상황에서 가장 머릿속이 복잡한 건 그일 테니까.
그 심중을 대충이나마 알기에 재환은 위로 차원에서 말했다.
“어차피 깜빵에 들어가진 않을 겁니다. 치료도 받으셔야 하고, 직접적으로 가담하신 건 아니니까요.”
“그거 감사한 말이네요.”
“두 아들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깜빵에서 썩게 만들꺼지만요.”
“그거 역시 감사한 말이고요.”
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이제 슬쩍 정보를 흘려줘요.”
“어떤 정보 말이죠?”
“이사님에게만 말하는데, 주식을 옮긴 사람이 있다고요.”
이 한 마디로도 꽤 많은 사람들이 술렁이고 따라 움직일 거다.
원래 맨 앞에 나서는 게 어렵지, 뒤따라가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다.
잘못되면 맨 앞에 나선 놈 손가락질 하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한성 쪽에서 슬슬 찝적댈 거에요. 주식 얘기도 하고 M&A 얘기도 지나가는 소리로 던질지 모릅니다.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해요.”
“블러프를 치란 소리군요.”
“그런 거죠. 원래 전략 전술에서 블러프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재환의 말에 묘하게 설득된 유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액셀을 밟기 시작했으니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만이 답이다.
“그럼 다음에 또 뵐게요.”
“저녁 안 드실래요?”
“들어가서 먹으려고 합니다.”
“집 밥이 맛있나 보네요? 전에도 집에 빨리 들어가시더니.”
재환의 장난스런 말에 유서진은 슬쩍 웃고 노코멘트 했다.
집에서 차려주는 밥이 밖에서 먹는 밥보다 맛있지는 않지만 가정부로 있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묘하게 식욕이 돌았다.
재환은 유서진에게 더 저녁을 권유하지 않고 먼저 KG 건설을 나왔다.
그리고 집이 아닌 TBS 방송국으로 돌아왔다.
대표 사무실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보도국장 사무실로 향했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늦은 시간까지 고생많네요.”
“대표님도 마찬가지신 거 같은데요.”
재환은 웃는 걸로 대답을 하고 넌지시 물었다.
“KG 기사 관련 반응 어때요?”
“나쁘지 않습니다. 슬슬 사람들이 뭔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KG 그룹의 더러운 면이 드러나겠다고 확신하는 사람도 꽤 되고요. 대표님의 이름 덕인 것 같습니다.”
“아니라곤 못하겠네요. 제 이름으로 써낸 기사니까요.”
반응이 괜찮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야지.
“제가 정보 하나 더 드릴 테니까 그거 내일 아침 뉴스로 내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특종 하나가 나갈 거에요. 그건 제가 직접 보도하려고 하는데, 도와주실 수 있죠?”
“음…. 죄송한 말씀이지만 대표님이 아나운서 경력은 없으시지 않나요? 그런 특종의 경우 전달력이 중요해서 자칫 잘못하면 내용이 잘못 전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보도국장의 말에 재환은 헛헛하게 웃었다.
팩트는 때론 굉장히 아프다. 그리고 이번 거는 상당히 아팠다.
“연습을 좀 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정 대표님이 하시겠다면 아나운서들에게 도와드리라 말씀 드리겠습니다. 반응이 영 좋진 않겠지만요.”
세상 그 어떤 직원이 대표에게 교육을 하겠는가.
상상만 해도 품 안의 사직서를 내던질 정도로 짜릿하다.
“너무 겁주지 마세요. 아무래도 제가 쓴 기사인데 제가 발표를 안 하면 임팩트가 약할 거 같아서 그래요. 제 이름 뿐만 아니라 저 자체가 신뢰의 상징이잖아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속성 과외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도 찾아드릴까요?”
“아뇨, 아뇨. 괜찮아요.”
보도국장의 말에 괜히 손사래를 쳤다.
지금같이 하드한 스케줄에 과외까지 곁들인다?
특종 보도하기도 전에 과로로 실려 갈 지도 모른다.
그건 또 그거대로 특종이겠네.
“적당히 발음 정도만 교정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 정도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네, 그럼 기사 준비 잘 부탁드려요.”
재환은 보도국장에게 KG의 자잘한 악평을 쌓아올리도록 지시를 내리고 사무실로 올라왔다.
슬 퇴근을 하고 싶지만….
“아, 아. 가나다라마바사…. 간장공장공장장….”
이런 연습을 가족들 보는 앞에서 하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질 거다.
당연히 퇴근이 늦어져서 예희에게 등짝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