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48
48화
“대표님에 대한 동정 여론이 상당한데요? 이 정도로 민심이 좋으면 정치권에 출마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
“정치 제대로 못하는 놈들 솎아내는 거면 몰라도 정치를 하는 건 안 맞아요.”
재환의 능청스런 말에 유서진은 슬쩍 미소만 지었다. 재환은 유서진이 새로 가져다 준 휴대폰으로 기사의 댓글들을 쭉 살폈다.
재환이 정오 뉴스에 나서서 보도한 건 크게 두 가지다. 한성 그룹과 일부 국회의원과의 부정청탁 의혹, 그리고 자신의 피습 사건 보도.
앞의 건은 어디까지나 의혹이란 뉘앙스로 보도했지만, 시청자들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보도하는 게 다름 아닌 재환이기에 의혹이 아닌 확신으로 여겼다. 덕분에 인터넷 댓글창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건 당연하고, 재환이 지목한 의원들의 사무실로는 항의 전화가 잇달아 걸려왔다. 한성 계열사의 콜센터들에는 비상상황이 선포됐다.
“저희도 아직 모르는 사안이라서요.”
“바로 확답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지금 다른 분들은 회의로 없으신 상황입니다. 네, 죄송합니다.”
기존의 매뉴얼로 대응하고는 있지만 그들로서도 당황스러웠고 감당하기 힘들었다. 문제는 위에서도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 지 쉽게 감이 안 잡힌다는 점이다.
“명예 훼손으로 고소할 수도 없고….”
“상대가 그 강재환입니다. 잘못하면 지금보다 더 한 역풍을 맞게 될 겁니다.”
“하아…. 그럼 이대로 놔둬?”
“일단 전략기획실에서 지침 떨어지길 기다려 보죠.”
회장의 지시에 따르겠다는 거지만 그 윗선에서도 골치 아팠다.
“노린 거 같지?”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후우…. 그 썩을 기레기 놈이.”
재환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피습 사건을 한성의 불법 청탁 기사 뒤에 실었다. 거기에 진실을 전달하면서도 교묘하게 말을 해서 한성이 꾸민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에 대한 의혹을 추가로 재기하면서 여론을 형성해 나갔다. 다른 신문사들은 급히 관련 정보들을 모아서 속보로 기사를 이어 나갔다. 경찰 쪽은 단순한 금품 갈취를 목적으로 한 거라 정보를 흘렸지만,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았다.
지금까지 많은 실망감을 안겨준 이들보다 재환이 더 믿음이 갔으니까.
유서진은 차를 주차하고 재환에게 서류를 건넸다.
“구 회장님이 지분을 전부 양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에 따른 세금이나 법적으로 문제 되는 부분은 같이 처리해 준다고 하십니다.”
“잘 됐네요. 그럼 이제 KG 그룹은 제 건가요?”
“계열사의 사장과 임원진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건데요. 계열 분리를 진행하자는 이야기가 바로 나올 거에요. 그걸 감당하실 수 있나요?”
“그걸 위해서 비서실장님께 몇 가지 일을 부타드렸잖아요? 걱정 마세요, 어차피 그들은 KG에서 떨어져 나가면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그보다 우리 전쟁터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얘기 좀 할까요?”
재환이 유서진을 똑바로 보고 물었다.
“제 비서실장이 되어 주시겠어요? 지금 비서가 없어서 힘든데, KG 그룹까진 감당하기 힘들 거 같아서요.”
“그 제안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으시군요.”
“물론 그 때보다 드릴 수 있는 건 지금이 더 많죠. 비서실장 자리 그 이상을 제안해 드릴 수도 있고요.”
유서진은 능글맞은 제안을 해오는 재환을 웃으면서 바라봤다. 그리고 팔짱끼고 고민하는 척을 했다.
“몇 가지 편의를 봐주셨으면 한다고 했는데 기억하시나요?”
“어제 일인데 그걸 까먹겠어요?”
“워낙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요. 하루가 거의 일주일보다 더 길었던 느낌이거든요. 뭐, 그래서 부탁드릴 내용을 정리해 왔는데요.”
유서진이 작성한 리스트를 재환에게 건넸다. 재환은 열 개가 조금 안 되는 내용을 보고 고이 접어서 품에 넣었다. 재벌집에서 일하던 사람답지 않게 소소하고 소박한 일들이다. 평범하게 자랐다면 다 누리고 지냈을 만한 것들.
“어렵지 않죠.”
재환이 손을 내밀었고, 유서진은 그 손을 붙잡았다. 꽉 쥔 손은 그들의 단단한 유대관계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회의실에 들어가니 최연호 이사를 제외한 다른 임원진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입을 딱 다문 채 눈과 귀를 재환과 유서진에게 집중했다.
“다들 시간 맞춰 오셨네요. 그럼 어제 했던 이야기의 본론을 바로 이어 나가 볼까요? 구정혁 회장을 비롯해 구준열 사장과 구준표 사장을 타계하는 것에 대해 동의 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시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들 의견을 맞췄다. 하나도 빠짐없이 손을 들면서 만장일치로 의견이 통일됐다. 의견을 확인한 재환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구준열 회장과 구준열 사장, 구준표 사장을 해임합니다.”
재판장이 선언하듯 망치를 두드리며 판결을 선언하듯 박수를 쳤다. 재환이 박수를 치고 유서진도 따라 치니 다른 이들도 마지못해 박수쳤다.
잠깐의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나서 재환은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유서진 비서실장을 차기 KG그룹 회장에 위임하는 것에 동의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세요.”
앞의 건과 달리 이번에는 의견이 갈렸다. 예상대로 KG 그룹의 힘을 빌려야만 하는 계열사는 모두 거수했지만, 전자, 화학 통신은 가만히 있었다. 다수결로 따지면 유서진이 비서실장 되는 게 맞지만 들지 않은 이들의 입김이 너무 셌다.
재환도 그 사실을 알기에 세 사람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다수결에 따르면 유서진 비서실장님이 KG 그룹의 회장이 되는 게 맞지만, 아무래도 세분의 의견이 걸리네요. KG그룹을 가장 앞에서 이끌어나가시는 분들이시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재환의 질문에 전자의 사장이 준비한 폭탄을 터트렸다.
“지금 KG 전자는 스마트폰 덕분에 이번 분기 역대급 실적을 냈습니다. 주가 역시 계속 상승하고 있죠. 그런 상황에서 실적도 제대로 없는 이를 그룹 회장으로 앉히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럼 대안이 있으신가요?”
“KG 그룹에 대한 대안은 모르겠지만 KG 전자에 대한 대안은 충분히 준비 중이죠. 계열 분리를 진행할 겁니다. 필요한 서류와 법적인 사안은 법무팀을 통해 차차 얘기해 나가죠.”
비웃음이 만연한 그의 얼굴에서는 승리란 단어가 보였다. 화학과 통신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루 만에 그들의 생각이 바뀐 데에는 아마 한성의 공작이 큰 역할을 했을거다. 어지간히 큰 미끼를 푼 모양인데, 재환은 오히려 좋았다.
재환은 그들을 빤히 보다가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한성이죠? 세 분을 부추긴 거.”
“……아시면 더 이야기 할 거 없단 거 아시죠? 이 회의가 무의미하단 것도 아실 거고요. 그럼 일어나보겠….”
“앉으시죠.”
재환이 목소리를 착 깔고 말하자 전자 사장은 일어나다가 엉거주춤하게 멈췄다. 하지만 이내 무표정하게 일어났다. 접힌 옷자락을 털어내는 와중에 재환이 소리쳤다.
“앉아!”
재환의 호통에 전자 사장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이봐, 강재환 대표. 당신이 이 자리에 있으니 KG 그룹에 뭐가 되는 사람인 줄 아나본데, 당신은 아무것도 아냐. 건설 사장의 지분을 빌려서 임시로 참석하고 회장 대리인 척을 하는데 말야.”
“대리인 척?”
“뭐야, 그럼 어제 그 말이 거짓이었다고?”
다른 계열사들의 사장은 전자 사장의 폭로에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수근거림이 붕괴의 전초라고 여긴 그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재환에게 다가왔다. 앉아있는 재환을 내려다보며 말을 씹어 뱉었다.
“넌 아무것도 아냐. 그 작은 방송국을 계속 지키고 싶으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 어따 대고 이래라 저래라야?”
“제법 조사를 열심히 한 모양이네. 거기까지 알고 말야. 근데 이건 몰랐나봐?”
재환은 유서진에게 받은 서류 봉투를 전자 사장의 가슴팍에 내던졌다. 봉투에서 서류가 쏟아져서 바닥에 흩뿌려졌지만 재환은 줍지 않았다. 어차피 사본이니까.
“맞아. 어제는 회장 대리가 아니었지. 근데 지금은 아냐.”
“뭐?”
“지금은 내가 회장이거든.”
전자 사장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눈을 굴려 바닥에 뿌려진 서류 중 굵고 큰 글씨들을 훑었다. 그것만으로 재환의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게…. 뭐?”
“그러니까 앉아. 회장 말을 무시하고 멀쩡할 수 있겠어? 한성도 당신들 못 챙겨 줄 텐데.”
“………….”
전자 사장은 불타는 눈으로 재환을 내려다봤다. 이번 일도 과연 블러프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불행하게도 그는 오늘 계열분리와 이후의 기업 향방에 대해 논의하느라 재환이 터트린 의혹 기사를 접하지 못했다.
묘한 눈싸움이 지속되는 와중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KG 유통의 이사인 최연호가 뒤늦게 참석했다. 전무나 상무도 아닌 이사가 이 회의에 참석한다는 게 의아했지만, KG 유통의 사장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다들 어느 정도 이해했다.
재환은 최연호를 보고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시킨 일 때문이신데요. 뭐.”
시킨 일.
그 말에 회의실 분위기가 또 묘하게 변했다. 묘한 기대감과 불안감, 호기심과 같은 감정들이 어지러이 뒤섞였다. 최연호는 그 감정을 필터없이 맞이하자 속이 울렁거렸다. 이런 자리에 나서기 싫어서 대성 기업의 후계자 싸움에서 물러난 건데, 다시 또 이런 자리에 서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운명인가.
그런 속내와 달리 최연호는 KG 건설 자리로 가서 앉았다. 바로 옆에 앉은 생활과 스포츠의 전무는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분위기가 분위기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최연호가 앉는 걸 지켜보다가 재환이 전자 사장을 다시 바라봤다.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는지 모르겠네. 가서 앉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당신 머리에 피 말리게 만들어 줘?”
두 사람의 기 싸움이 이어지는 중 화학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그 역시 계열 분리를 준비했지만 재환이 터트린 건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정보를 접했다.
“일단 앉으시죠. 어차피 별 내용 아니겠지만, 들어보고 판단해도 낫지 않겠습니까.”
“쯧.”
화학 사장의 말에 전자 사장은 마지못해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고도 그의 눈에는 불길이 이글거렸지만 재환은 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전자 사장님의 행동 방침을 이해는 합니다. KG 그룹을 세우고 이끌던 구 회장 일가가 사라진 지금, KG 그룹은 처음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 상황을 타계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무슨 수로? KG 그룹에 범죄 그룹이란 낙인이 찍혔는데, 그 낙인을 지울 수 있다고?”
“네. 말끔히 지우지는 못하겠지만, 그럴듯한 흉터로 남길 수는 있겠죠.”
재환은 최연호를 바라봤다. 최연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져온 자료를 사람들에게 돌렸다. 두께가 상당한 서류는 옛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연상케 했다.
다들 가볍게 훑어보고 입을 떡 벌렸다. 그 안에 빽빽하게 적힌 건 KG 그룹 계열사들의 장단점, 개선이 필요한 부분과 세계정세에 맞춘 대응 전략들이 적혀 있었으니까.
KG 그룹을 잡아먹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재환이 계속 준비해 왔던 것이다.
“이게 다… 뭡니까?”
“보고도 모르세요? 여러분이 하셔야 하는 거죠.”
재환은 깍지를 끼고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확신을 담아 말했다.
“KG 그룹 부흥을 위한 열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