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47
47화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니 예희가 상기된 얼굴로 다가왔다.
“오빠!”
“어, 예희야. 많이 놀랐지?”
“괜찮아? 칼에 찔렸다며! 다친 데는! 수술해야 되는 거 아냐!”
“진정해, 많이 안 다쳤어.”
직접 만든 상처다 보니 깊이 베지도 않았다. 만약에 대비해 파상풍 주사 맞고 연고 바르고 붕대 감아두면 금방 나을 거다.
괜찮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예희는 흥분이 가시지 않는 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재환의 손을 꽉 잡았다. 습기 가득한 눈을 보니 참 못할 짓을 했다 싶다.
“괜찮아.”
“진짜 내가 오빠 때문에 제 명에 못 살 거 같아. 자다가 전화 받고 애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진짜로 애 떨어지면 곤란하지. 소율이가 동생 생기는 걸 얼마나 기다리는데.”
“지금 소율이가 문제야?”
예희의 따가운 눈총에 재환은 헛기침을 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괜히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네가 오빠라고 불러준 게 얼마만이야. 아직 잘생긴 오빠야?”
“잘생겼으면 화라도 안 나지.”
“…….”
예희의 타박과 잔소리는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그것도 퇴원 수속을 밟는다고 일찍 끝난 셈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예희는 당부의 말을 끝으로 잔소리를 마쳤다.
“당신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다치지 마. 이건 명령이야.”
“알겠어. 조심할게.”
하루가 고됐기 때문인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환은 기절하듯 잠들었다. 깊이 잠들었지만 수면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해가 뜨기 전 집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이다.
“늙으면 아침잠이 없어진다더니 진짜입니까? 아직 해도 안 떴어요.”
“고얀 놈, 휴대폰으로 몇 번을 걸었는데 안 받는 거야! 생각이 있어, 없어.”
“아, 스마트폰 박살났어요. 사정이 좀 있었거든요.”
재환은 곤히 잠든 예희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침실에서 나왔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눈꺼풀을 묵직하게 누르는 피로를 밀어냈다. 하품을 몇 번 하면서 물었다.
“흐아암, 이 시간에 뭔 일입니까, 구 회장님.”
“준비 다 됐다. 오늘 아침 뉴스부터 막아.”
구 회장의 말에 재환은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빠릿빠릿한 노인네다. 지분을 양도하기 위해선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닐 텐데 그걸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만에 해냈다. 두 아들에게 주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해놓은 덕이겠지만 그래도 빠른 건 빠른 거다.
“보자. 아침 뉴스는 힘들 거 같고, 점심 뉴스부터는 다른 거 보도할게요.”
“얘기랑 다르지 않나?”
“비비디 바비디 부같은 주문도 아니고, 말하는 대로 곧바로 이뤄지겠어요? 점심부터는 어제 얘기한대로 진행할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때마침 어제 피습 사건도 있었겠다. 직접 보도하면 이목도 끌고 이미지 메이킹도 제대로 될 듯 싶다. 임원진 회의에 참석하려면 빠듯하겠지만, 하는 수밖에 없다.
“쯧. 필요한 서류는 비서실장에게 보내놨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참에 푹 쉬시죠. 치료도 잘 받으시고요.”
“써글 놈.”
재환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유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짧은 신호음이 들리기 전에 유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재환 대표님이시죠?”
“어떻게 아셨어요?”
“집 번호는 미리 파악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보다 구 회장님이 지분을 양도하겠다는 서류를 보내왔습니다. 법무팀에 사본을 보내서 문제는 없는 지 확인하라 지시했는데, 아마 괜찮을 겁니다.”
“구 회장이니까요.”
유서진의 말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 감정에는 재환도 어느 정도 동감했다.
참 아쉬운 인물이다.
못난 두 자식만 아니었으면 재환도 이리 거칠게 나가진 않았을 거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농사가 자식 농사라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그보다 제가 오늘 좀 바쁠 거 같거든요. 몇 가지 부탁을 좀 드려도 될까요?”
“네, 어떤 걸 해드리면 될까요?”
유서진은 이야기를 듣고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해 추가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싶은 점을 보완했다. 역시 비서로만 두긴 아까운 사람이다.
“그럼 부탁 좀 드립니다.”
“네, 나중에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재환은 끓었다가 식어버린 커피포트의 물을 다시 끓였다. 피로를 푸는 데에는 수면만한 게 없지만 자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늘어났다.
카페인에 의지해 잠을 몰아낸 재환은 씻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보도국장에게 KG 관련 소식은 아침 뉴스까지만 보도하라는 지시와 정오 방송에 출연하겠다는 지시를 내려뒀다. 더불어 지상파 방송사에 관련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고 나니 해가 완전히 떴다.
다시 스멀스멀 몰려드는 피로를 밀어내기 위해 커피를 내리고 있으니 한결이 들어왔다. 걱정스런 표정이었지만 재환의 얼굴을 보고 금방 안도했다.
“생각보다 멀쩡하네. 칼침 맞았다더니.”
“조금 베인 거야. 근데 어디서 들었어? 정보가 새어 나갔나?”
“제수씨한테서 들었다. 야, 제수씨가 아침부터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는 줄 아냐. 너 어딨는지 아냐고 물어보더라.”
“일찍 나온다고 말을… 안했나?”
사무실에 연결된 전화기의 선이 빠져 있다. 생각해보니 어제 몰래 카메라와 도청기를 제거하면서 빼버리고 연결을 안했다.
본의아니게 또 예희에게 걱정을 끼친 셈이 됐으니 또 혼나는 건 확정이다.
전화선을 다시 연결하는 사이 한결은 하품을 쩍 하고 응접용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커피를 내주니 한결이 재환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물었다.
“일 해도 돼? 다쳤으면 쉬어야 되는 거 아니냐?”
“이 정도는 해프닝이지. 맞다. 선배, 어제 나 피습 당한 사건도 보도 자료 줄 테니까 기사화 해줘.”
“뼛속까지 기자인 새끼. 어떻게 자기가 칼침 맞았다는 기사를 써달라고 할 생각을 하지?”
“내 이름이 있잖아. 잘 팔리지 않겠어? 그보다 요즘 신문사는 어때?”
재환은 TBS 쪽 일에 집중하느라 오늘의 신문사의 일은 한결에게 전부 일임했다. 바지 사장이나 마찬가지다.
한결은 커피를 들이키며 답했다.
“네 기사가 없으니까 예전만큼은 못한데, 그래도 예~엣날보단 낫다. 기사 질도 전체적으로 높고.”
“좋아. 소식을 빨리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팩트 체크는 반드시 해 줘. 우리는 정보의 질로 승부하니까. 저 신문사에서 나온 기사면 믿어도 된다란 인식을 심어주게끔. 광고도 좀 가려서 받고.”
“광고 가려 받으면 돈은 어쩌냐.”
“그러니까 믿을 만한 소식들을 전하란 거야. 기사 하나의 가치를 높이라고.”
기사를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한다는 생각은 꽤 위험했지만 한결은 그러겠노라 답했다. 어차피 재환이 있으면 엇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선배, KG 그룹과 관련된 기사는 당분간 자제해줘.”
“그게 지금 제일 잘 팔리는 기사인데 안 쓰면 애들 입이 이만큼 나올걸?”
한결이 우스꽝스럽게 앞으로 쭉 뻗었다. 재환은 가볍게 웃다가 손을 내저었다.
“조금만 고생해줘. 지금 구 회장이랑 딜한 게 있거든. 대신 이것들 기사화 해줘. 서울 내에 조직폭력배가 다시 늘어났어. 올 초에 자갈치파가 잡혀 들어가자마자 다시 이 지경이 됐다고 살살 긁어줘.”
“넌 구 회장을 직접 깜방에 넣어놓고 딜을 했냐? 그 영감이 너 죽이려고 안 하디?”
“죽이고 싶어도 깜방에 있는데 어쩔 거야.”
한결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 재환이 건넨 자료를 받아서 일어났다. 기자들이 KG에 관한 기사를 써서 결재를 올려놨을 텐데 가서 죄다 반려시켜야 한다. 이걸로 그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봐야지.
한결이 떠나고 다시 기사화 할 정보들을 추리고 있는 중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강재환 대표, 나 이강철인데 얘기 좀 할까?”
술집에서 썩 좋지 않게 헤어졌기에 다시 연락해오리란 생각을 안했다. 만약 연락이 온다면 자신을 확실하게 쥐고 흔들 수 있는 상황이라 여겼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 판단은 맞았다.
“바쁩니다.”
“구 회장과 거래를 했다지? 기사를 안 써주는 대가로 말야.”
재환은 눈가를 문질렀다. 구 회장과의 대화는 은밀히 진행됐을 텐데, 어떻게 알았는가. 답은 금방 나왔다.
“집 전화를 도청하고 있는 겁니까?”
구 회장 쪽에 있는 사람들은 확실하게 구 회장 사람들이니 이야기가 넘어갔을 리 없다. 어제의 연락역시 그와 같은 루트였지만, 오늘 아침의 연락만큼은 본의아니게 집 전화로 대화를 나눠야 했다.
“그게 중요한가?”
이강철의 말은 범죄를 시인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재환은 아침에 구 회장과 나눴던 대화를 곱씹으며 이강철이 어디까지 아는 지 가늠해봤다.
“이 거래가 세상에 알려지기 싫으면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
“어이구, 그래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넘어갈 거 같냐?”
“배짱 부리지 마. 너 그러다 죽어.”
“죽는다라….”
재환은 코웃음치고 책상 위에 놓인 많은 서류 중 하나를 들었다. 한성과 싸울 때를 대비해서 모아둔 자료들이다.
그걸 쭉 들여다 보다가 재환이 말을 꺼냈다.
“죽여보던가.”
“허, 넌 목숨이 두 개라도 되냐?”
“그럴 수도 있고.”
죽었다가 되살아났으니 목숨이 하나 이상인 건 맞을 거다.
“근데 너 어차피 나 못 죽이잖아.”
“왜 못 할 거라 생각하지?”
“니네가 쓰는 깡패 새끼들, 몇 시간 뒤면 개 박살날 거거든.”
재환의 말에 이강철의 말이 없어졌다. 역으로 한 방 맞을 줄은 몰랐으니까. 침묵하는 이강철에게 재환이 덧붙였다.
“참고로 그거 풀어버려도 난 타격 없어. 내가 그 정도 준비도 안 해놨을 거 같아?”
TBS와 오늘의 신문에서 KG그룹의 이야기가 사라진 걸 문제 삼으면 이미 관련 자료는 지상파 방송사에 넘겼고, 다른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거짓말쟁이 신문사의 말보다 재환의 말이 더 강력하니, 언플에서는 지지 않는다.
“이강철, 너 혹시 금붕어 대가리냐?”
“뭐 이 새끼야?”
“내가 너한테 경고했지. 머저리짓 하는 순간 투신자살하는 게 편할 거란 생각 들게 만들어 줄 거라고.”
손에 든 자료에서 한 부분을 펜으로 쭉 그었다.
한성에서 후원금 목적으로 꽤 큰 액수의 돈을 몇 몇 정치인들에게 보냈는데, 그 이후 한성에 유리한 법안이 발제되었다. 다른 법안과 함께 묶어서 통과시켰기에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이게 알려지면 한성의 이미지에 작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타격을 받게 된다. 견제를 받고 나면 자연스럽게 기업 이미지를 생각해서 KG 계열사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오기가 힘들어진다.
이 정보를 공개할 마땅한 이유가 부족했는데, 이강철이 이유를 만들어 준 셈이니 재환으로서는 땡큐다.
“이재명 회장님께 이 사태가 왜 일어난 건지 잘 설명하길 바란다.”
“강재환!”
재환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전화선을 다시 뽑아버렸다. 놔두면 이강철 저 놈이 또 전화를 걸어와서 피곤하게 만들 테니까.
곧바로 보도국장에게 내려가 한성의 청탁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고, 뉴스 룸으로 내려갔다.
어쩐지 오늘은 대표 사무실에 있으면 누가 찾아와서 귀찮게 만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맘 편히 뉴스 룸에 대기하면서 기사 준비나 하는 게 좋아보였다.
아나운서들이 불편해 하는 게 눈에 밟혔지만, 회식비를 거하게 지원하기로 약속하니 불만이 싹 사라졌다.
역시 불만을 없앨 때는 뭐니뭐니해도 자본 치료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