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79
79화
제야의 종이 나오는 화면을 보며 재환은 커피를 홀짝였다. 1년을 마무리 하는 오늘, 재환은 며칠 전부터 휴가라는 명목하에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잘 밤에 커피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냐?”
소이를 안아든 예희가 불평 반, 걱정 반으로 물었다. 아직 소이에게 젖을 물려야 하기에 예희는 되도록이면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그런 예희의 감정을 슬쩍 읽은 재환이 헛기침을 하고 잔을 내려놨다.
“당신이 타준 커피라 그런지 맛있어서.”
“커피 머신이 열일했지.”
예희는 옆에서 잠든 소율이에게 베개를 받치고 담요를 덮어준 뒤 재환의 옆에 앉았다. 어깨에 기대 오는 아내의 머리 무게를 느끼면서 재환은 올해를 되짚어 봤다.
‘어마어마한 한 해였지.’
과거로 돌아오는 걸 시작으로 신문사의 대표가 되고, KG 그룹의 회장이 되었다. 카르텔을 재정 곤란 상황에 몰아넣었고, 이재명과 거래를 통해 스마트폰 사업을 독점적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게 한 해에 이뤄진 일이라는 걸 누가 믿겠는가.
판타지 소설이라 하겠지.
“내년엔 좀 편했으면 좋겠네.”
“힘들지 않을까.”
이런 말하면 전생의 자신이 코웃음 치며 육두문자를 날렸겠지만 재벌도 재벌 나름 바빴다. 오히려 기자 시절이 더 제대로 쉬었던 것 같기도 하다. 출근 안 하는 날에는 진짜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뒹굴었으니까.
지금은 쉬는 날도 쉬는 날이 아니다. 서진이 업무 양을 조절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회장실에서 업무에 치이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재환이 원래 사업가가 아니기에 더 힘든 것도 한 몫하고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건 전부 구라야.’
드라마에 나오는 회장들은 맨날 골프치고 유유자적하던데 뭐가 이리 빡센지 모르겠다.
재환은 멍하게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다가 말했다.
“내년엔 여행도 좀 같이 갔으면 좋겠다. 이번에 미국 간 것도 괜찮았잖아.”
“그건 그래. 그런 추억을 좀 더 늘렸으면 좋겠어.”
비록 고글과의 협상으로 정신없긴 했지만 짬짬이 가족과 같이 보낸 시간도 충분히 즐거웠다. 가족 서비스를 한 재환으로서도 뿌듯했다.
“중국도 괜찮고, 유럽 쪽도 한 번 가볼까.”
“그것도 좋지. 근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해.”
“그건 그래야지.”
올해는 어지간하면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다. 팩트 체크용 현장 조사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밑밥을 까는 것 외에는.
‘그리고보니 아직 깡패들이 정리가 안 됐네.’
카르텔이 배후를 봐주고 있기에 완전히 뿌리 뽑는 게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건 언제고 자신과 가족에게 위협이 될 수 있기에 불안하긴 한데, 당장은 마땅한 방법이 없다.
재환이 나서서 드잡이질을 할 수도 없고, 깡패들끼리 싸우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아니지. 깡패들끼리 싸우게 만든다?’
제법 그럴싸한 생각이다. 고독마냥 그들끼리 싸우게 만들고 남은 놈을 처리해버리면 되니까. 아직 카르텔에 길들여진 사냥개가 된 것도 아니니 카르텔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비호하지도 못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재환은 턱을 슬슬 쓸며 대략적인 계획의 틀을 잡았다.
재환이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예희가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보니까 SJ 그룹의 사모님이 나한테 연락이 왔더라.”
“SJ 그룹이 너한테?”
“어. 아는 거 없어?”
재환은 SJ 그룹에 대해 잠시 떠올려 봤다.
SJ 그룹이면 식품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회사다. 지금은 엔터테이너먼트, 미디어, 유통 쪽으로 그 힘을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이런 것들보다 중요한 건 한성에서 떨어져 나온 회사란 점이다. 본래는 한성의 자회사에 불과했지만 재환이 태어날 즈음에 있었던 분쟁으로 인해 분리가 되었다고 알고 있다.
‘카르텔하고는 엮이지 않은 깨끗한 기업.’
아주 깨끗하냐고 물으면 아니올시다지만 구정혁이 있던 시절의 KG 그룹과 비슷하다. 하지만 카르텔과 엮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재환의 입장에서는 깨끗한 기업이었다.
그런 곳에서 예희에게 접근해 왔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선의로 해석할 여지가 반, 악의로 해석할 여지가 반이다.
‘전생에서 정보를 좀 얻어 놨으면 좋았겠지만….’
전생에 SJ 그룹에 대한 정보는 거의 구해두질 않았다. 카르텔과 엮여 있지 않다는 것에 확신이 있었던 탓인데, 이번 생에 이렇게 엮이게 될 줄은 몰랐다.
“아는 건 없고, 그럴 여지도 없어. 그 쪽에서 뭐래?”
“그냥 영화 티켓 생겼다고 같이 보지 않겠냐고 하던데? 지금 한참 광고하는 좀비 나오는 영화.”
“그거 아직 개봉일 많이 남지 않았나?”
“SJV가 자기네 계열사라서 미리 볼 수 있다더라.”
미개봉 영화를 먼저 볼 수 있게 해준다라, 이건 저쪽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예희가 영화 내용을 발설하면 자신들의 매출에 실질적인 타격을 받게 되니까.
아직 만나보지도 않은 예희에게 그런 제안을 왜 했을까.
‘설마 자신들이 영화 내용을 터트리고 예희 탓으로 돌리려고?’
가족을 건드리면 재환도 가만있지 않는다. 모든 능력을 다해서 철저히 박살을 내줄 의사가 충분하다.
하지만 저쪽 의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민 반응할 수는 없다.
“일단 오케이 해. 너 영화 좋아하잖아.”
“그건 그렇지.”
TV 아래에 쌓인 영화 DVD들이 예희의 오랜 취미였다. 같은 영화를 몇 번이고 보면 질릴 법도 한데 예희는 항상 처음 보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대신 비밀 서약서는 써야 할 거야. 자신들 매출에도 영향이 생길 테니까. 근데 너가 영화 내용을 유출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을 경우에만 이 서약서가 효력을 발휘한다는 조항을 넣어.”
“그거면 돼?”
“충분하지.”
보수적으로 나가려면 그냥 흘려 넘기는 게 좋긴 하지만 이번 일로 SJ 그룹의 성향을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아, 제야의 종 울리네.”
“응. 또 한 살 먹는 구나.”
꿀같은 연휴를 보내고 새해 첫 업무로 KG 그룹의 2010년 첫 임원 회의를 진행했다.
각 계열사 별로 작년의 실적을 보고하고 평가, 피드백, 올해 목표 수순으로 발표를 이어나갔다.
“1분기 내에 전자는 80% 이상의 성장율을 이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올해 건설은 고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판단으로 손해는 만회했지만 딱 그 뿐입니다. 작년과 같은 수준의 매출을 올려도 다행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부의 개발 허가가 어느 정도 완화가 되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카르텔이 장악한 정부에서 KG 그룹에 유리하도록 규제를 완화해 줄 리가 없으니까.
재환은 건설 쪽에 조언 하나를 덧붙였다.
“해외 쪽으로 눈을 돌려보시죠. 그 쪽 사람들을 구하면 인건비도 저렴할 거고, 주변국에서 비슷한 계약을 따낼 수 있을 겁니다. 사업팀과 글로벌 팀하고 협력해서 기반 마련해 보세요. 위기는 기회라고 이번 기회에 KG 건설의 이름을 밖으로 더 알릴 수 있을 겁니다.”
재환이 가진 정보의 힘 덕에 KG 그룹은 바람 탄 돛단배와 같았다. 이런 양상이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올해까지는 무난히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이걸로 정기 보고는 마치겠습니다만 회장님께 질문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을 꺼낸 건 전자의 박학도 사장이었다.
“지금 저희 계열사 아래에 있는 소프트웨어 팀을 분리하실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네. D 포털 사이트를 인수해서 분리하려고 생각중입니다. 물론 스마트폰에 맞춤형 어플도 개발해야 하니 인원 전부를 빼돌리진 않고 적당히 놔둘 생각입니다.”
재환의 말에 박학도는 턱을 한 번 쓴 뒤 다시 물었다.
“굳이 D 포털 사이트를 인수하시려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이미 회장님은 오늘의 신문과 TBS도 보유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경쟁사에 밀려서 힘이 다 빠진 D 포털 사이트를 인수하는 건 적자가 확실한 투자입니다. 굳이 그런 일을 벌이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작년에 고글과 협약을 맺은 건 아실 겁니다. 고글의 검색 엔진을 들이면 포털 사이트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재환이 자신만만하게 말하니 박학도 사장은 입을 몇 번 열었다가 닫았다. 말해도 안 들어 먹을 게 뻔한데 더 말해서 뭐하겠느냐 싶은 거다.
“적자 나면 회장님이 메우셔야 할 겁니다.”
“걱정말고 2세대 스마트폰 발표 준비나 잘 해주시죠.”
얄궂은 재환의 말에 박학도 사장은 이를 갈았다. 사업 실적과는 별도로 여전히 재환은 밉상이었다.
“그럼 회의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리죠.”
“네, 회장님.”
재환은 서진과 함께 회의실을 나온 뒤 회장실로 향했다. 보고를 듣는 입장임에도 묘하게 지쳤다. 관리직도 쉬운 게 아니다.
의자에 몸을 묻고 있으니 떨어진 곳에서 대선 후보자의 연설 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소상공인을 살릴 수 있도록 힘 써보겠습니다! 요즘 얼마나 힘듭니까….”
저 연설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서진에게 물었다.
“SJ 그룹은 어때요? 한성이나 YK 그룹과 거래한 게 있나요?”
“그런 흔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회장님이 한성에 문제가 있다는 보도를 할 때마다 적극적인 비난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제대로 카르텔과 척을 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 다행인데요.”
적의 적이 아군이라는 법은 없다.
“예희는요?”
“사모님은 자녀분들을 가족께 맡기고 용산 SJV로 가셨습니다. 경호 한 명을 붙여 놨으니 안전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잘하셨어요.”
어딜 갈 때마다 경호원을 대동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세상살이가 무섭다.
재환은 오늘 저녁에 예희에게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전에 생각했던 걸 말로 뱉었다.
“언제까지고 경호원을 고용하는 건 안 좋겠죠.”
“어쩌실 생각입니까?”
“깡패들 씨를 좀 말리죠.”
재환의 말에 서진은 침묵했다.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스케치를 해야 그런 그림을 만들 수 있을지 감이 안 왔다.
사실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자신은 화가가 아니라 화가가 쓰는 붓이니까.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충실히 움직이면 될 일이다.
“제가 깡패 몇 놈을 언론으로 터트릴 겁니다. TBS로 얘기가 나오면 싫어도 경찰이 움직이긴 하겠죠.”
사건이야 지금 안 알려졌을 뿐 자잘하게 많다. 그 중 몇 개를 골라서 터트리면 된다.
재환이 KG의 회장이 되면서 TBS와 오늘의 신문에 악평이 미미하게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TBS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럼 그 때 김정연에게 연락해서 그 깡패들 좀 홀려 놔 주세요.”
“어떻게 말입니까?”
“지네들끼리 싸우게요.”
거기까지 들은 서진은 재환이 그리는 그림이 어떤 건지 알아차렸다. 말 귀를 빨리 알아들은 서진은 내용을 메모했다.
“근데 이걸로 되겠습니까.”
“한 번에 다 뽑지는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되겠죠. 그거면 충분합니다.”
자잘한 놈들이 싹 정리되면 그건 그거대로 한두 놈 두들겨 패는 게 쉬워져서 좋고, 작은 놈들만 남으면 큰 위협이 없어져서 그것대로 좋다.
어쨌든 재환은 뒤에서 떡만 먹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윗자리가 편하네.”
전에 자신이 전부 발로 뛰었던 시절을 떠올리고 재환은 의자에 다시 기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