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재환이 씻고 나오니 예희는 잠든 소이를 침대에 내려놓고 있었다. 3개월 만에 소이도 참 많이 자랐다.
“오늘 어땠어?”
“영화? 아니면 사모님?”
“둘 다.”
예희는 소이의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천천히 말을 골랐다. 재환은 괜히 재촉하지 않고 옆에 앉아서 기다려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예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딱 우리가 아는 재벌가 사모님이란 느낌이야.”
“그게 뭐야.”
“왜 명품을 둘둘 두르고 걸음걸이에서 귀품이 느껴지는 모습 있잖아. 옆에 서니까 괜히 기가 죽더라니까.”
그 말을 들으니 예희에게 미안함이 밀려왔다. KG 그룹 회장이 되면서 나온 블랙 카드를 예희에게 줬지만 소이를 돌봐야 한다며 사치는 부리지 않았다.
이사를 하면서 가정부도 생기고 여유가 생겼기에 형편이 나아졌다지만 입고 다니는 옷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들고 다니는 가방도 연애하던 시절에는 무리해서 사줬다지만 저렴한 가방이다.
재벌가 태생인 사람과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안되겠다. 다음에 당신 옷이랑 가방을….”
“됐어. 그건 잠깐이었으니까. 상대방도 그걸로 무시하는 말은 없었고, 오히려 너무 빨리 일정을 잡은 것 같다고 미안하다더라.”
예희는 재환이 오해하는 일 없도록 그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묘사했다. 덕분에 재환도 그 사모님이 얼마나 예희에게 선의를 품고 있었는지 알았다.
“영화 보기 전에 이런 저런 얘기를 했어. 왜 불렀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궁금했대.”
“궁금? 뭐가.”
“음…, 재벌이 된 기분이랑 한성을 엿먹인 기분?”
앞부분만 듣고 기분이 복잡해 질 뻔했지만 뒷말을 듣고 재환은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저 말을 들으니 SJ에서 예희에게 접근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당신 엄청 높게 평가하더라. 남이 우리 남편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는데 기분이 묘했어.”
“그래? 근데 나한테는 왜 안 오지.”
“사업적으로는 접근할 수가 없다던데, 자기네 몫 뺏길까봐 좀 그렇데.”
그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행히도 지금 SJ가 확장중인 미디어 사업은 재환 역시 힘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이동훈이 아이돌 그룹 서넛을 성공적으로 선보였고, 그 아이돌은 TBS의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이름을 알렸다. 전생이었다면 SJ의 TV채널에서 했어야 할 일이었는데, 그걸 낼름 훔친 격이다. 훔쳤다는 건 아무도 모르지만.
그 외에도 유통 쪽도 KG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경계할 만 하다.
“다음에 만나거든 그럴 일 없다고 해.”
“글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네.”
얘기를 쭉 듣고 받은 인상은 그거였다. 재환이 하려는 일에 그들도 동조하고 도움을 주고 싶다. 하지만 너무 가깝게 지내는 건 부담스럽다.
참 애매한 포지션이지만 재환은 그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라도 늘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앞으로는 적만 늘어나게 될 텐데 동료라도 있으면 좋으니까.
“앞으로 친하게 지내.”
“안 그래도 연락처 교환했고, 쇼핑하러 가기로 했어. 그 땐 당신 카드 아낌없이 쓰려고.”
“그래, 그렇게 해.”
예희라는 다리가 있으면 은근슬쩍 정보를 흘리는 것도 가능하니 되도록이면 원만한 사이를 유지하는 게 좋을 성싶다.
눈치껏 재환의 의도를 읽은 예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아니, 재벌가 사모님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거 같다 싶어서.”
“부담되면 안 그래도 돼.”
“아냐, 전처럼 전셋집에서 궁상맞게 애들만 보는 것보단 낫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쓰는 예희를 보고 웃어줬다.
* * * * *
D 포털 사이트의 사장인 황범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쩍 늘어난 한숨의 원인은 명확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떨어지는 시장 점유율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포털 사이트 순위에서 2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건 크게 주요하지 않다. 1위인 N 포털 사이트와는 이미 어마어마한 격차가 나고 있으니까. 따라잡는 건 이미 포기한 상태다.
“후우….”
“사장님.”
부사장이 황범수를 결연하게 쳐다봤다. 그 눈빛이 부담스럽지만 의도는 명확히 읽어낼 수 있었다.
“결정하셔야 합니다.”
“결정하고 말고, 이미 정해진 거 아닌가?”
체념하듯 뱉은 말처럼 이미 자신의 회사의 운명은 어느 정도 결정 된 상황이다. KG에서 제시한 조건이 너무나도 좋았으니까.
“그럼 뭐가 걱정인 겁니까.”
“걱정은 없지. 지주회사로 KG를 두면 우리로써도 손해 볼 건 사실 없잖아?”
롤러코스터 마냥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 하락세를 유지중인 주가 그래프가 급등하리란 건 안 봐도 뻔하다. 그 그래프와는 별도로 KG의 지원을 받으면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해서 도전해 볼 수 있다.
그러니 합병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며칠 후 미팅에 임했다.
“다음 사이트는 최소한의 서비스만 남길 겁니다. 서비스를 추가할 계획은 없습니다.”
“……네?”
KG의 직원이 꺼낸 말에 황범수는 살짝 어안이 벙벙해졌다.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이야기가 편안히 오고가고 있었다. 나쁠 것도 없었고, 오히려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KG 그룹의 지분을 어느 정도 제공해 준다고 하니까.
요즘 금값에 버금가는 게 KG 그룹의 주식이니까.
하지만 지금 들은 말에 모든 생각이 멈췄다.
“사장님?”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D 포털 사이트는 최소한의 서비스만 남겨둡니다. 서비스를 추가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황범수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직원은 그 태도에 눈을 잠시 크게 떴지만 딱 그 뿐이었다. 미리 언질을 받았던 탓이다.
“사장님, 좀 진정하시죠. 물 좀 드시고요.”
“후우…,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했네요.”
황범수는 물을 벌컥 들이킨 뒤 다시 직원을 바라봤다. 최대한 무심하게 보려했지만 그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D 포털 사이트는 95년부터 서비스해 온 초창기 포털 사이트 중 하나고, 한 때는 1위 포털 사이트기도 했습니다. 근데 지금 그 사이트를 접겠다는 소립니까?”
“정정할 부분이 있습니다. 한 때 1위였고, 지금은 2위지 않습니까. 거기다 점유율로만 따지면 N 포털 사이트가 78.8%에 D 포털 사이트는 12% 남짓이죠. 그리고 포털 사이트를 접겠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서비스로 유지한다는 거죠. 남길 기능은 여기 보시면 됩니다.”
서류에 명시된 서비스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메일, 뉴스, 웹툰, 쇼핑, 지도.
손이 벌벌 떨렸다.
“이게 그 말 아닙니까! 고작 이 정도 서비스를 유지하는 걸로 사이트가 유지 될 거 같습니까? 배너 광고도 안 들어올 겁니다.”
“그것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아뇨. 들을 거 없습니다.”
황범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상은 결렬이다.
직원은 그 태도에 눈가를 문질렀다. 이미 두 번은 참았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기에 참고 있는 거지 아니었으면 자신도 이 거래를 진작 파토냈을 거다.
“사장님, 잘 생각해보시죠. 이게 D 포털 사이트를 살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사장시킬 기회겠죠! 더 얘기할 거 없습니다. 이 협상 계속 진행하고 싶다면 사장 오라고 해요. 아니, 그 유명한 강재환 회장이라도 와야 할 겁니다!”
그 날 저녁 황범수는 허름한 술집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인수합병의 협상을 엎어버린 걸로 모든 이가 자신을 지탄했다. 어떻게 그렇게 멍청한 짓을 했느냐고, 오래 같이 해온 부사장 역시 황범수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번만큼은 그도 황범수를 용납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보니 그는 홀로 술잔을 기울여야 했다.
“또 나오네. 강재환.”
“저 회장은 다른 회장하고 다르게 뉴스 나오는 걸 좋아하네.”
“자기가 기사 쓰잖아. 하여간 특이해.”
오뎅탕의 국물을 안주삼고 있으니 옆 테이블에서 하는 말이 들렸다. 좁은 술집이기도 했고 손님도 몇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말이 들렸다.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작은 티비에선 재환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TBS에서 나오는 건 아니었고, 다른 프로그램에서 재환을 얼굴을 써먹고 있었다.
저 얼굴을 보니 그는 괜히 울화통이 치밀었다. 저 놈이 자신의 사업을 말아먹으려고 했다니….
“썩을….”
“근데 저 강재환 회장 정보 믿어도 되나 몰라.”
그 말에 황범수는 슬쩍 옆 테이블을 봤다. 이미 술에 취했는지 테이블에 앉은 이들 모두 얼굴이 불그스름했다.
“거 생각해봐. 믿을 수 있는 정보라지만 지한테 불리한 정보는 입 싹 다물 거 아냐. 그럼 다른 기레기 놈들이랑 다른 게 뭐야.”
“거참, 이 친구 많이 취했네.”
“취하긴 뭘 취해! 조금만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애도 알 수 있는 거 아냐? 지들한테 좋은 정보만 짜깁기하고, 아닌 건 모른 척 할 거고! 그런 놈의 말을 믿을 수 있겠어?”
그 말에 황범수의 머릿속에서 벼락이 쳤다. 지금까지 끌려다니기만 했던 자신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이!
다음 날 출근한 황범수는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강재환 회장에 관한 글 전부 싹 긁어와. 그 중 조금이라도 안 좋은 내용이 담겨 있으면 내버려두고, 칭찬 글은 적당한 이유를 들어서 다 내려버려. 신문 면도 강재환 회장에게 부정적인 내용이 실린 걸 메인으로 올려두고.”
“사장님?”
“언플을 한 번 해보자고.”
재환의 위상을 깎아 조금이라도 이점을 취하려는 생각인데 누가 봐도 악수였다. 그걸 황범수만 모를 뿐.
“사장님, 이거 강재환 회장과 싸우자는 거에요. 싸워서 이길 수 있어요? 못 이기잖아요!”
“자기가 어쩔 건데, 사람들이 검색해서 상위에 노출된 거라고 하면 돼. 우리한테는 마땅한 이유가 있어.”
여론을 유도를 하지만 어차피 강재환이 그걸 밝힐 방법은 없다. 그 점을 이용하겠다는 거다.
부사장은 황범수의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했다.
“어제 협상 때문에 많이 마음 상한 건 알겠는데,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봐요. 지금 강재환에 대한 여론은 상당히 긍정적이에요. 지금까지 강재환이 발표한 기사 중에 거짓이 섞인 게 있었어요? 없잖아요.”
부사장의 논리는 일목요연했다.
“거기다 사람들이 미워할 수가 없어요. 자기가 회장 되고 제일 처음 한 일이 뭐에요. KG 그룹 내에 문제 있는 사람들 싹 잘라냈잖아요. 그리고 앞장서서 머리숙여 사과했죠. 자신이 한 일이 아님에도!”
“그래서, 뭐 어쩌라고.”
“좀 진정하고 그 머리로 생각을 좀 하라고요!”
부사장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린 을이에요. 을 중의 을이라고요. 저기서 요구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괜히 찍혀서 이 협상이 물 건너 가면 사장님이 직원들 월급 줄 수 있어요? 못 주잖아요. 서버 유지할 수 있어요? 안되잖아요.”
“그래서 이대로 손 놓고 지켜보자고? 상대가 흙 묻은 발로 우리의 안방을 짓밟겠다는데!”
두 사람의 언쟁이 격화될 때 즈음 방 안에 노크소리가 울렸다. 비서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두 사람을 번갈아봤다. 그 눈에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저, 사장님….”
“뭐야, 바쁜 거 안 보여?”
“손님이….”
“무슨 손님!”
“바쁜 거 같은데, 실례하겠습니다.”
살짝 열린 문을 벌컥 연건 다른 사람도 아닌 재환이었다.
재환은 환한 웃음과 함께 황범수를 바라봤다.
“저희 직원에게 듣기로 절 직접 봐야겠다고 하셨다면서요? 그래서 직접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