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81
81화
재환을 본 황범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협상 자리에서 재환을 데려오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긴 했지만 진짜로 올 줄은 몰랐다.
재환은 비서에게 나가봐도 괜찮다고 말한 뒤 문을 닫았다. 마치 자신의 집무실에 온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응접용 소파에 앉으니 황범수와 부사장이 눈치를 보다가 재환의 옆에 앉았다.
“일단 본의 아니게 나누시는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재환의 말에 부사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걸로 거래는 물 건너 간 셈이 됐다. 어떤 사람이 자기 욕을 한 회사를 인수하려 하겠는가.
황범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역으로 기회라 여겼다.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찬스.
“들으셨다니 아시겠군요. 회장님이 N 포털 게시판에서는 상당히 우호적인 시선을 받고 계시죠.”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도 아실 겁니다.”
악평이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거래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려 했다. 부사장은 당장 사장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싶었지만 그 심정을 알지도 못한 채 황범수는 말을 술술 이어갔다.
“회장님에 대한 악평이 늘어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순진하다 해야 하나 순수하다 해야 하나 모자라다고 해야 하나.
재환은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저 빙긋 웃었다.
“해보시죠.”
“네?”
“해보시라고요.”
아직까지 재환은 악행이라는 단어가 붙을 정도의 일은 한 적이 없다. 그건 최후에 카르텔을 산산조각 내기 위해 써야 하니까. 그러니 지금 떠도는 말들은 전부 루머일 뿐이다. 아니면 또 다른 사정은 쓰지 않은 조작된 정보거나.
그러니 재환은 자신이 있었다.
더군다나 N 포털 사이트도 아니고 고작 D 포털 사이트다.
이 사이트의 의견이 대다수의 의견이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다.
“대신 여론을 조작하겠다는 말을 들은 이상,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 KG 그룹의 법무팀이 일은 잘하거든요.”
“……자, 잠시만요. 강재환 회장님?”
“더 들을 얘기는 없을 거 같네요.”
재환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니 부사장은 참담한 심정으로 마른 세수를 했고, 황범수는 급히 재환의 손을 잡았다.
잡힌 손을 불쾌하게 한 번 내려다보니 황범수는 곧바로 손을 놓고 고개를 숙였다.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한 번 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오늘 제가 안 내려 왔으면 저는 영문도 모른 채 제 평판이 깎이는 걸 봐야 했을 겁니다. KG 그룹의 주식도 하락했겠죠. 당신은 KG 그룹의 주식이 깎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재환의 서슬퍼런 말에 황범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재환이 손목을 털면서 그런 황범수를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
“D 포털 사이트 인수는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사장님을 보니 D 포털 사이트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어 보이는 군요.”
“회장님, 죄송합니다!”
황범수는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숙였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재환의 노여움을 줄이는 것 뿐이다.
그 모습을 보며 재환은 묘한 동정심을 느꼈다. 지금의 황범수는 전생의 자신과 비슷했다. 자신이 가진 패로는 절대 이기지 못하는 상대를 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점이라면 자신은 현실을 부정하며 그들을 무너트릴 수 있을 거라 여겼고, 황범수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였다. 자신이 멍청했음을.
‘이런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재환은 한숨을 내쉬고 황범수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자신이 가진 힘은 오로지 카르텔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죄없고 힘없는 약자를 괴롭히기 위한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힘을 쓴다면 카르텔 놈들과 똑같아 지는 거다.
“좋습니다. 사장님의 정성을 봐서 합병 얘기는 계속 진행하도록 하죠. 하지만 전보다 조건이 좋지 못하리란 건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극적인 화해의 장면에 옆에 있던 부사장이 묵은 숨을 토해냈다.
재환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접대용 소파에 앉았다. 황범수 역시 맞은편에 앉았다.
“저희의 요구사항은 어제 들으셨을 겁니다.”
“네.”
“제 기준에서는 대부분 용납 가능한 범위에 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부분에서 조율이 필요한 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황범수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솔직하게 토로했다.
“포털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겠다는 걸로 들었습니다만 아닙니까?”
“아닙니다. 포털 사이트 자체는 유지할 겁니다. 다만 주 사업이 되진 않을 겁니다.”
재환은 앞으로 D 포털 사이트의 미래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을 했다. 본래 성향이 개발자에 가까웠던 황범수는 재환의 말을 듣고 서비스 될 사이트의 모습을 머리로 그려봤다.
“까톡에 흡수시키겠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메신저 기능에 검색 기능을 통합시키면 강력한 무기가 되겠네요. 하지만 너무 무거워지지 않을까요?”
“그 점을 논의했을 때, 포털 자체가 무겁지 않으면 어느 정도 해결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D 포털 사이트를 최대한 가볍게 가져가려는 거고요. 이 이상 문제 있습니까?”
재환은 짧은 텀을 주고 말을 이었다.
“근데 이걸 못 받아들이신다하면 D 포털 사이트를 합병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생각을 바꿔 보시는 게 어떠실까요.”
“……그러겠습니다.”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고, 황범수는 그 손을 맞잡았다.
이걸로 D 포털 사이트의 인수에 더 문제가 생길 건 없다.
1층까지 배웅나오는 두 사람을 올려 보내고, 재환은 서진이 준비해 둔 차에 올라탔다. 문을 닿자마자 재환은 눈가를 문질렀다. 서진은 백미러로 그를 보고 짧게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피곤하네요.”
“피곤할 만 하죠.”
인수합병이 결렬될 거 같다는 소식에 놀라서 직접 내려왔다. 좀 더 밑에 사람들을 믿고 맡겼으면 좋았을 텐데, 전생에서 워낙 호되게 당했던 지라 아직은 그게 쉽지 않다.
“공항까지 가는 동안이라도 눈 좀 붙이시죠.”
“할 일의 메모를 좀 하고요.”
재환은 품의 수첩을 꺼내 서울로 올라가서 할 일을 메모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 들었다.
꿈은 마치 인생을 빨리 감기 하는 것만 같았다. KG 그룹이 스마트폰 계열에서 세계 1위를 하고, 파인애플 사와 특허권 시비에 걸렸다. 그 때부터 재환의 다음 꿈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허권 분쟁에서 패소하고, 지난 기사 중 하나가 거짓이었다는 게 밝혀졌으며, KG 그룹의 주가는 미친듯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환은 회장직에서 물러나야했다.
빨리 감기던 세상이 그제야 원래의 속도를 찾았다.
“강재환 회장님, 그 동안 행복하셨죠?”
그 말을 던진 건 지긋지긋한 이강철이었다. 이강철은 비릿하게 웃으면서 재환을 내려다봤다. 위치상 재환이 아래에 무릎꿇고 있는 형색이었다.
이강철은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고 재환에게 한 마디 더했다.
“근데 저희도 이제 봐드릴 만큼 봐드렸고, 그만 합시다. 지긋지긋하니까.”
분위기상 뭔가가 단단히 잘못 되서 전생과 같은 처지에 놓인 모양이다.
재환의 입이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로 움직이며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뱉어냈다.
“하….”
그 짧은 한숨에 많은 감정에 실려있었고, 곧이어 묵직한 주먹이 안면으로 날아들었다. 그 한 번을 시작으로 또 수차례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분명 꿈인 것 같은데도 지나치게 현실적인 고통에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입 안에 피가 고이는 게 느껴졌다.
“거기까지. 우리 잘생긴 강 회장님 얼굴이 엉망이 다 됐네.”
이강철의 만류에 폭력의 세례는 멈췄다. 재환은 탁한 숨을 뱉어내고 고개를 들어 이강철을 봤다. 놈의 얼굴에는 딱 한 번 봤던 승리를 확신한 사람의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참, 우리 강 회장님 운명도 비루하지. 회장이 된 지 1년만에 회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질 않나. 믿었던 심복에게 배신당하질 않나.”
“하…. 그건 네놈들이 개수작을 부려서 그런 거지.”
재환은 피 섞인 침을 뱉어내고 이강철을 노려봤다.
“인간의 거죽을 쓰고 말야. 짐승 같은 짓거리나 하는 새끼들.”
“우리 회장님, 회장직에서 내려오셨어도 그 패기하고 혓바닥은 여전하시네. 혓바닥 좀 펴지면 말을 안 하시려나.”
이강철의 말에 옆에 있던 깡패가 연장을 들고 다가왔다.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재환은 서슴지 않고 말을 뱉어냈다.
“그 딴 식으로 얻은 회장 직위가 얼마나 유지될 거 같아? 세 달? 두 달? 아니, 일주일도 길지.”
“……아, 그리고 보니 기사 쓰고 있다고 했지? 근데 그거 씨알이나 먹히겠어? 강 회장님 말빨이 섰던 것도 예전 일이지. 호텔 건 오보내고 끝났잖아.”
오보란 말에 가슴이 서늘했다. 오늘의 신문이나 TBS나 양보다 질을 추구하고 있기에 한 발 늦더라도 팩트가 확인된 것만 보도했다. 그런 상황에서 오보가 났다? 말이 안 된다.
“그래도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마약하며 향락 파티를 즐겼다는 특종은 이목을 끌겠지.”
“이목은 끌겠지. 보도가 된다면.”
이강철이 다가와 재환의 손가락을 짓밟았다. 뼈가 부러지는 고통에 눈이 부릅떠졌다.
“이미 언론사들과 방송사들하고는 얘기 끝났어. 당신이 쓴 기사는 절대로 보도하지 않기로 말야.”
“……그럴….”
“한국에서 사업 접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 아냐.”
한국에서 사업을 접는 수준이 아니라 지하에 매장될 확률이 높을 거다. 재환은 이를 악물고 코웃음쳤다.
“세상에 이 사실이 알려지기만 해도….”
“인터넷에 음모론이 한두 개인 줄 알아? 우리가 그런 거 두려워 할 거 같으면 이 짓거리 못하지. 안 그래?”
이미 재환의 기사에 대한 대응책을 전부 마련해 둔 상황이다. 완벽한 체크 메이트다.
재환의 표정이 조금씩 절망에 물들어가자 이강철이 환히 웃으며 그 얼굴을 걷어찼다.
“내가 그 표정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를 거야.”
몇 번이고 재환의 얼굴을 후려친 이강철은 후련한 얼굴로 돌아섰다.
“근데 다신 안 봤으면 좋겠네. 이제 묻어버려.”
이강철이 돌아서 자리를 떠나자 깡패들이 재환의 머리에 가죽을 뒤집어 씌웠다. 그 상태로 저항도 못한 채 질질 끌려가다가 내동댕이 쳐져야했다.
묵직한 것이 몸 위로 쌓여가는 순간 재환은 눈을 부릅떴다.
“허억, 허억.”
“회장님?”
서진은 백미러로 재환의 상태를 확인하고 차를 갓길에 세웠다. 차가 서자마자 재환은 내려서 속에 든 걸 전부 토해냈다.
재환의 갑작스런 변화에 서진은 당혹스러울 뿐이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등을 두드리는 것 뿐.
재환의 구역질이 멈추자 서진은 물을 내밀었다.
“가까운 병원으로 모실까요?”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속이 조금 안 좋았을 뿐입니다.”
“소화제를 잠깐 사오겠습니다.”
가까운 편의점으로 가는 서진의 뒤를 보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가늘게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니 방금까지 봤던 꿈이 마치 현실만 같다.
몸을 일으킨 뒤 재환은 자신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언제나 지니고 다니는 수첩의 감촉이 손안에 느껴졌지만 묘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이럴 땐 역시 수첩을 다시 살펴보는 게 심신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빠르게 수첩의 내용을 속독하다가 재환은 큰 충격에 빠졌다.
수첩에는 자신이 쓴 적 없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