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78
78화
구정혁 회장은 전화를 끊고 짧은 숨을 뱉어냈다. 지금 도와줄 이가 재환 밖에 없어서 재환에게 부탁한 것이지만 그게 썩 마음에 든 건 아니다. 재환이 아니었다면 이런 위험한 상황에 처일 일도 없었을 테니까.
“써글놈.”
“아버지.”
옆에 온 구준열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구정혁 이상으로 재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게 기분 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준표는.”
“연락이 안 됩니다.”
“후우….”
구정혁은 눈가를 문질렀다. 한성이 YK 그룹을 이용해서 깡패를 부린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담하게 나올 거라곤 생각 못했다. 그만큼 그들이 한국에서 법 무서운 줄 모른다는 걸 수도 있고, 궁지에 몰린 거라고 볼 수도 있다.
‘보나마나 재환이 뭔가를 했겠지.’
“그 놈들이 준표를 죽인 건….”
“아직은 아닐거다.”
아직은.
구정혁은 재환만큼은 아니지만 이재명과 카르텔의 행동 방식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자신들에게 걸림돌이 된다거나 잠깐이라도 걸리적거린다는 확신이 들면 주저하지 않고 해치워버린다. 하지만 이용가치가 있다면 풀 수 없는 목줄을 채워서 이용한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구정혁과 구준열은 이용가치가 있는 인물이고, 그 둘의 목줄이 구준표다.
혈연만큼 단단한 매듭은 세상에 또 없으니까.
“차분히 기다려라. 놈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것처럼 굴면서 때를 노려. 조만간 살아나갈 구멍이 보일 거다.”
“……네.”
* * * * *
재환은 부산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한 뒤 서진에게 대응방안을 전했다. 생각보다 상황이 위태위태했지만 아주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회장님이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한 게 의외입니다.”
“어째서요? 전 회장님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거 생각하지 않으시는 분이잖습니까.”
서진의 날카로운 지적에 재환은 가볍게 웃었다. 그 말대로 재환이 아무런 이익도 없는데 움직이는 경우는 없다.
“구정혁 회장의 마음을 살 필요가 있어서요.”
재환은 이번 사태를 넘기더라도 구정혁 회장과 거래를 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카르텔과 이재명은 이 거래를 언젠간 약점잡아 올 것이 분명했으니 그에 대응해야 했다.
당사자의 증언을 남긴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두 아들의 마음까지 돌리면 최고겠죠.”
“그건 저도 달갑지 않군요.”
서진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필요에 의해서라고 해도 악마같던 그들을 편으로 들이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재환은 그런 서진을 보고 짓궂게 물었다.
“그리고보니 요즘 그 분은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식은 언제 올리실 거에요? 요즘 사람들이 많이 개방적이 되었다고 해도 식 올리기 전에 같이 지내는 거에 대해서 말 많잖아요.”
“주변이 잠잠해지면 진행하겠습니다.”
재환의 놀림을 흘려넘긴 서진은 자신의 휴대폰을 재환에게 건넸다. 아까 이재명 회장에게 말했던 2시간이 훌쩍 지나간 참이다.
저쪽에서 짜증을 삼키며 기다리고 있겠지만 재환은 그러든 말든 여유로웠다. 어쨌든 갑은 자신이다.
“이재명 회장님, 좀 기다리셨죠?”
“강재환 회장, 시간 감각이 없나 보군.”
“제가 좀 많이 바빠서요. 이재명 회장님도 비슷하실 텐데, 아니신가?”
이재명 회장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걸로 그 대답을 대신했다. 재환의 보도가 나가고 집 앞에 기자들이 진을 쳤다. 사람들을 시켜서 대충 물렸음에도 어느 틈엔가 다시 몰려와 있었다. 뭐 하나라도 건져보려는 하이에나들을 보고 있으면 골이 당겼다.
“강재환 회장, 사담은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본론이라 할 게 있습니까.”
“자네가 큰 거 하나 더 물고 있다고 들었네.”
이재명 회장이 말하는 큰 건이란 장기매매 건이었다. 이게 밝혀진다면 한성의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실추된다. 자사 제품들이 대체 불가능한 제품들도 아니고, 주가와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그게 보도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하지만 이재명이 모르는 건 재환이 그 정보에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아, 그거요? 이야, 이재명 회장님이 그걸 어떻게 아셨지? 조금 더 확실한 증거를 엮어서 보도하려고 했는데.”
재환이 진실을 말했음에도 그 어투 덕에 역으로 모든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가증스러운 모습에 이재명은 살짝 쥔 주먹에 힘을 빡 들어갔다.
당장 앞에 있었으면 그 주먹이 날아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재명 회장님, 각오 하셔야죠.”
“한성 디스플레이를 넘기고, 반도체 연구 협약을 맺는 걸로 딜하지.”
이재명이 내놓은 패는 사업가라면 누구라도 탐날만한 것이다. 특히 KG 그룹의 사업가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성 디스플레이는 KG 전자 산하의 디스플레이에 비해 매출은 저조했다. 하지만 언제든 KG 전자의 뒤를 칠 수 있는 저력이 있었다. 그런 디스플레이를 넘긴다는 건 하나의 사업을 KG가 독점할 수 있다는 말과 상동했다.
그리고 KG에서 하이닉스를 붙잡고 있지만 한성 반도체와는 수준 차이가 난다. 그 증거가 스마트폰의 스펙 차이에서 드러났다. 몇 개월 차이가 나지만 한성의 스마트폰 스펙이 조금 더 우위에 있었으니까. 그 점을 미루어 봤을 때, 앞으로 스마트폰의 스펙 상승을 위해서도 이 연구 협약은 상당한 이익이다.
재환으로서는 손 안대고 10조의 가치가 넘는 이익을 취하는 셈이다.
“우리 회장님, 많이 쪼리셨나 보네요?”
“할 거야, 말 거야.”
재환은 당장 콜해도 이익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전자에서 스마트폰 사업 접으시죠.”
“미쳤나?”
“안 미쳤습니다. 지극히 정상적이죠.”
재환은 펜을 손 위에서 돌리며 차분히 말했다.
“참 많은 걸 주신 것처럼 말하셨지만, 아니잖아요? 우리 회장님이 디스플레이를 넘겨주겠다고 해도 그게 잘 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공정위에서 반대를 놔버리면 전부 물거품인데요.”
카르텔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당연히 카르텔이 움직여서 인수합병을 막을 게 뻔하다. 이재명이야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 발뺌하면 그만이다. 증거가 없으니까.
“거기다 연구 협약이라고 해도 기밀 자료 취급을 해서 핵심 기술을 보여주지 않으면 다 무의미하고요.”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이재명 회장은 치밀했다. 그리고 재환도 녹록치 않다.
“그러니 확실하게 우리 회장님이 해줄 수 있는 걸로 해주시죠. 스마트폰 사업 접으세요. 사업성이 없어서 접었다고 하면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하….”
이재명은 재환의 말에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캐시 카우가 될 게 뻔한 사업을 내다 버리라니. 저 딜을 받아들일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싫으면 마시고요.”
“좋아. 받아주지.”
재환은 이재명이 순순히 나오자 곧바로 경계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재명은 그 내용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네놈이 정보를 발설했을 경우의 보험을 내놔.”
“보험이라….”
“TBS를 담보로 넘겨주면 되겠군.”
그 말에 재환은 썩은 미소를 지었다. 이 늙은이는 구정혁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저 밑도 끝도 없는 욕심은 쉴 틈도 없이 혀를 낼름거린다.
“TBS나 오늘의 신문은 담보로 내드릴 수 없습니다.”
“그게 아니면 내가 뭘 믿고 이 거래를 계속 진행해야 하지? 네놈이 모든 걸 먹어치우고 입 싹 닦고 모른 척하면 어쩌란 거지.”
“믿음이죠. 모든 거래는 신뢰를 바탕으로 진행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지나가던 개가 웃겠군. 애들끼리의 약속에도 보증금이 걸리는 법인데. 그깟 말 하나만 믿고 진행하자고?”
재환은 턱을 슬슬 쓸었다. 이재명이 저렇게 삐딱하게 나오리란 건 어느 정도 알았다. 그러니 대응책도 준비했다.
“우리 회장님 지금 구준표, 인질로 잡고 있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다 아니까 모른 척 하셔도 의미 없습니다. 구씨 일가 전부 볼모로 넘겨 드리죠.”
재환의 말에 옆에 있던 서진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구 씨 일가를 써먹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재환은 서진을 보고 살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정보를 교환하니까 정보를 담보로 드리면 되는 거겠죠.”
“하….”
“이재명 회장님도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그 분들은 저에 대해 좋은 마음이 없거든요. 원하는 대로 써먹으시면 될 겁니다.”
재환의 말에 이재명은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얼핏 보면 제법 괜찮은 딜이지만 아직 부족하다.
“하나 더 덧붙여야겠군.”
“여기서 뭘 더 덧붙일 게 있습니까.”
“오늘의 신문의 대표가 될 때, 전 대표 윤판석을 협박했지?”
확신을 담은 말.
재환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현실을 말씀 드렸을 뿐입니다. 협박한 적은 없습니다.”
“그 정보도 같이 터트리는 걸로 하지.”
재환이 가진 기반을 전부 부술 수 있는 정보들이다. 이 정도는 되야 거래의 저울이 얼추 균형을 이뤘다.
“그러죠. 이걸로 협상 완료입니다. 나중에 딴 소리하면 같이 죽자는 걸로 알겠습니다.”
“내가 할 말이지.”
“구체적인 계약서는 따로 작성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하니 전화는 끊겼다. 재환은 휴대폰을 슬쩍 보고 서진에게 돌려줬다.
“이 거래를 서면으로 남겨도 되겠습니까.”
“위험하긴 하죠.”
단지 재벌가가 되려는 것뿐이면 이런 거래를 서면으로, 발목 잡을 수 있는 증거가 되는 걸 남기는 건 악수다. 그럼에도 재환은 이 거래를 진행했다.
어쨌든 그의 최종목표는 카르텔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박살이 나는 것이기에.
자신은 부족함 없이 지낼 정도만 가져가면 된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이 계약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세요. 비밀 서약서는 당연히 작성해 주셔야 하고요.”
“맡겨 주세요.”
서진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 나가고 재환은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걸로 카르텔의 자금줄을 한 번 틀어막았다. 뿌리 중 절반 이상을 도려낸 셈이다. 상당히 큰 타격을 입혔으니 당분간은 아무것도 못하리라.
하지만 이 정도로 끝났으면 전생도 10년이나 고생하진 않았을 거다.
“이제 조져야 되는 건 국회의원들이지.”
이쪽이 더 골치 아프다. 정치질에 도가 튼 사람들이고, 뒤가 더러운 일은 아주 꼼꼼히 처리해놨기에 흠 잡기도 쉽지 않다.
한 번 언론에 터트려도 그들에게는 면책 특권이 있다. 한 번 일을 터트려도 다음 번 총선 직전 그들은 그 일을 덮어버리고 깨끗한 이미지를 다시 만들어 낼 게 분명하다.
‘어렵네, 어려워.’
어떤 방식으로 조지면 좋을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검은 돈을 주고받는 장면을 포착해서 터트리는 것이지만, 그것도 쉽진 않을 터다. 가장 가까운 사건도 내년 말에나 있을 테니.
그렇다고 그 동안 놀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사업을 키우자.’
처음에야 카르텔에 대항할 힘으로서 KG 그룹을 인수한 거지만 지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재환도 사업가라는 것에 욕심이 생겨났다.
KG 그룹을 확장한다.
내년에 있을 사건 전까지 그걸 목표 삼아 나가기로 재환은 결정하고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금 큰 그림을 그려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