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92
93화
박민혁은 자리에 앉아서 실실 웃었다. 자신의 말에 따라 이리 움직이고 저리 반응하는 시민들을 생각하면 그저 웃겼다.
사이비 교주라도 된 듯한 느낌. 세상 모두가 자신을 우러러보는 그 느낌.
‘이게 권력의 단맛이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있으니 다른 여성 당원 한 명이 다가왔다.
“박민혁씨, 저희 홍보 전단 배포하러 갈 건데 같이 가시죠?”
“아, 저는 다른 의원님이 시키신 일이 있어서요.”
누가 봐도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건만 그는 바쁘다고 딱 잡아뗐다. 다른 당원들 눈에 좋아 뵐 리가 없지만 시시비비가 걸려봐야 죽어나는 건 그들이기에 후일을 기약하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슬 더워지는 밖으로 나가는 그들을 보며 박민혁은 코웃음 쳤다.
‘내가 니들하고 같은 당원인 줄 아나.’
자신은 권력의 꼭대기에 설 사람이다. 어딜 감히.
이어 그는 아까 당원의 얼굴을 떠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드센 성격이 걸려서 그렇지 꽤 예쁘장했다. 나중에 권력으로 찍어 눌러서 굴복시킨다면 그 쾌감이 크지 않을까.
더러운 상상을 하며 웃고 있으니 당원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박민혁! 이 개 같은 새끼 어딨어!”
자신의 이름을 분노에 차 부르는 소리에 박민혁은 짜증이 먼저 들었다. 자신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이는 없을 텐데.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있는 머리가 벗겨진 2선 의원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시뻘건 것이 제대로 화가 난 듯했다.
박민혁은 커피를 홀짝이며 그의 위치와 자신의 위치를 저울질 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의원님?”
“이 개 같은 자식이!”
어떤 설명을 하기도 전에 의원이 손바닥이 날아들어 박민혁의 뺨을 후려쳤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박민혁의 머리가 휘청했다.
간신히 책상을 잡아서 넘어지지 않은 박민혁은 맞은 부분을 살짝 쓸었다. 코를 스쳤는지 화끈한 통증과 함께 피가 흘러 나왔다.
‘아, 얼굴은 생명인데.’
잠깐의 짜증이 얼굴에 묻어났지만 금방 다시 일어나서 의원을 똑바로 바라봤다.
“무슨 일인지 설명부터 해주시면….”
“설명? 하, 설명!”
의원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박민혁을 향해 발길질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까진 맞고 버텼지만 점차 그 수위가 강해지자 다른 당원들이 그를 말렸다.
“야, 야! CCTV 가려, 빨리!”
“아이고, 의원님, 사람 잡겠어요.”
다른 당원들의 제지에 박민혁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그는 박민혁을 손가락질했다.
“무슨 개짓거리를 했는지 설명은 네가 해야지. 어? 너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박민혁은 옷에 난 발자국을 털면서 짜증을 냈다.
“한국당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시민들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뭐 이상한 점 있습니까?”
“그냥 만나고 다녔는데, 이딴 투서가 사무실로 날아오냐!”
들어오면서 부터 의원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들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방관의 제스쳐를 취하던 당원들은 그 종이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서민의 의견을 날조, 사이비 교주처럼 시민들을 선동해서 생계를 위협했다?”
“이게… 무슨 소립니까?”
여유를 보이던 박민혁은 당원들의 말에 흩뿌려진 종이를 주워 모았다. 그리고 내용을 쭉 읽어나갔다.
읽으면 읽을수록 종이를 쥔 그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고,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아니, 어떻게….”
“네 새끼가 이러고도 한국당 당원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냐? 미친 새끼.”
자신이 그 사람들을 만났을 땐, 분명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KG 그룹과 계약을 파기하고 서민을 생각하는 중소기업과 거래를 터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생이라는 명목 하에 KG 그룹의 반발심리를 키우려고 했는데…. 일이 이상해졌다.
박민혁은 두통이 밀려오자 골을 문지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고압적인 상사의 태도와 같았기에 다른 이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다.
“태도가 그게 뭐냐? 네가 이러고도 잘 했어?”
“의원님, 얘기를 좀….”
“넌 퇴출이야! 여기 있는 놈들 똑똑히 들어. 당원이면 당원답게! 의원님들 보조할 생각을 해! 주제도 모르고 나대지 말고!”
“의원님!”
박민혁이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의원의 발목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독기가 바짝 어려 있었다.
“제 얘기를 좀 들으시죠?”
“하!”
의원의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가자 다른 당원들이 다시 그에게 달라붙었다. 혹여나 폭력 사태가 또 벌어지면 피곤해지는 건 그들이다.
더불어 다른 당원들이 박민혁에게 달라붙어 그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그는 그들을 뿌리쳤다.
“제가 갔을 때, 사람들이 다 제 의견에 동조했습니다. 이건 누군가가 제 행동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수작을 부린 겁니다.”
“수작을 부렸다. 그래, 그렇겠지. 세상에 정치를 하려는 놈들 중에 남 잘되는 꼴을 보는 인간이 몇이나 있겠어. 그 정도는 당연히 생각하고 판을 짜야지! 그렇게 단편적으로 생각하니까 일을 이따위로 밖에 못 하는 거 아냐!”
“맞습니다. 제 실수인 거 인정하죠. 하지만 서로를 위해서 극단적인 선택은 안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잊었느냐. 너도 의원 생활 끝내고 싶은 건 아니지 않느냐.
박민혁의 협박에 의원은 기가 찼다. 그가 박민혁에게 다가가려 하니 당원들이 뜯어 말렸다.
“아이고, 의원님 진정하세요. 애가 뭘 잘 못 먹었나 보죠.”
“미친 놈 상대해봐야 같은 미친 놈 밖에 더 되겠습니까.”
“다 비켜!”
의원의 으름장에 그를 말리려던 이들은 한숨을 내쉬고 물러나야만 했다. 그렇게 박민혁과 다시 마주선 그는 멱살을 틀어쥐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야, 창놈.”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네가 뭘 착각하는 거 같아서 확실하게 선을 좀 그어두려고 말야.”
그가 손을 들자 박민혁이 움찔했다. 또 주먹이 날아오려나 싶었지만 의외로 뺨을 가볍게 툭툭 치기만 했다.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는 손짓이었지만 그보다 더 기분 나쁜 건 의원의 표정이었다.
마치 더러운 것을 대하는 듯한 그 태도.
“이 손 놓으시죠.”
“듣기나 해. 버러지 같은 것아. 네가 지금 당원으로서 있을 수 있는 게 네 힘으로 일궈낸 거 같지? 아냐. 너 같은 건 언제든 써먹고 버릴 수 있는 놈이야.”
“놓으라고 했습니다.”
“허리 좀 흔들어서 차지한 자리가 네 것이라고 착각하는 놈을 누가 써먹겠어? 안 그래? 어차피 이 일이 위에 전달되면 그 자리도 끝이야.”
“이런 썅!”
자신이 쌓아온 것이 전면적으로 부정당하자 박민혁은 참을 수가 없었다. 항상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지자 의원이 비릿하게 웃었다.
“이제 어디 가서 한국당 당원이라고 말 안 하고 다니는 게 좋을 거야.”
의원은 그 말을 남기고 한국당 사무실을 떠났다. 박민혁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심호흡을 하며 가라앉혔다.
그래, 어차피 2선 의원이다. 당내에 입김도 약할 거고, 해봐야 자신만 못하다. 어차피 자신이 당에서 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굳게 믿었다.
* * * * *
재환은 문체원과 만나 커피를 마셨다. 이번 만남은 비공식적인 것이기에 재환은 신분을 노출하지 않도록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까지 썼다.
이러니 연예인이라도 된 기분이 들어 묘했다.
“회장님.”
“여기선 형이라고 부르시죠. 귀는 다 열려있으니까요.”
“……재환 형님. 하나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요.”
“이렇게 될 줄 아셨습니까?”
문체원은 조간 신문의 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거기에는 한국당 의원들이 당원의 몰상식한 행동에 대해 대표로 사과하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내용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할 이들이 자신들의 의견에 맞춰 시민들을 조종하려 했다는 거다.
중앙 신문의 기사긴 한데, 기사 한 번 잘 뽑혔다.
“네, 어느 정도요.”
“허, 참.”
문체원은 턱을 슬슬 쓸으며 자신이 한 일을 생각해봤다. 그리 큰일을 한 건 아니다.
박민혁이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떠난 뒤 그는 사람들을 만나서 은근히 말했다. 박민혁의 말이 이상한 것 같지 않냐고.
우리를 위한다면 거래할 업체와 물꼬라도 터줘야 하지 않느냐. 이대로면 그냥 물건 못 받아서 망하지 않겠느냐.
그런 의문들을 던졌다.
문체원의 이미지가 성실한 청년이었기에 그 말은 또 그럴싸했다.
여기서 재환은 KG 유통에 지시를 내렸다. 한 달 정도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소상공인들에게 납품할 때 받는 돈을 적게 받으라 한 것이다.
문체원의 말에 술렁이던 사람들은 KG 유통 직원들의 얘기를 듣고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 조금 손해가 생기긴 했지만, 덕분에 KG 유통을 통해 물건을 받고 싶다는 이들도 생겼다.
그들의 충성심이야 두 말할 것도 없다.
“사람은 변화에 저항하려는 관성이 있어요. 괜히 작심삼일 같은 말이 있는 게 아니죠. 특히나 소상공인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분들인데 그런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시죠.”
왜 보수가 오랫동안 정권을 잡고 있었는가. 이 또한 그런 맥락에서 생겨난 거라 재환은 추측했다.
“그러니 조금만 생각하면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죠.”
“음…. 그런데 그 당원은 당에서 제법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는 거죠.”
“간과한 거요?”
재환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나중에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미래는 정해진 게 없습니다.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 사람이 영 쓸모가 없을 수도 있고, 길가의 돌멩이같은 사람이 어떤 보석보다 가치 있을 수도 있죠.”
“……그 돌멩이가 저란 겁니까? 너무 띄워주시는 거 같은데요?”
“지금 말하는 논점은 그 당원이 생각보다 유능하지 않았을 거란 겁니다. 문체원씨, 자의식 과잉이 심하시네요.”
재환이 농을 던지자 문체원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인상을 썼다. 분위기가 좀 누그러지니 문체원이 말을 꺼냈다.
“회자…. 형님. 근데 전 아직 모르겠습니다.”
“뭘 말입니까?”
“제가 의원이 되도 괜찮을지 같은? 그런 자신감 말입니다.”
“국회의원이란 건 사람들의 대표입니다. 아시죠?”
대표라는 건 그들의 의견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의견을 대변하려면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게 우선시 된다.
“그런 점에서 문체원씨는 누구보다 의원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오늘 너무 띄워주시는 거 아닙니까? 다단계 사기라도 치시려는 분위기인데요?”
“다단계 사기 해봐야 KG 전자 주식 1주도 못 삽니다.”
맞는 말이지만 참 재수없다.
“문체원씨는 지금껏 해오던 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고 이야기를 듣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쉬운 듯 어려운 걸 하라고 하시는 군요.”
“조금 지나면 아실 겁니다. 그들을 돕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위에 올라가는 것이란 걸요.”
킹 메이커와 비슷한 역할을 하겠단 말에 문체원은 생각에 잠겼다. 잠시간의 침묵 후 문체원이 말을 꺼냈다.
“전에 하셨던 제안 아직 유효하죠?”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대한 얘기다.
재환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문체원은 그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문체원 의원님.”
“김칫국 너무 들이키시는 거 아닙니까.”
“김칫국이라뇨. 정해진 결과입니다.”
이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