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038)
나이 먹으면 사람은 판단력이 떨어진다. 그걸 경험으로 메꾸는 것이 사람인데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정상적으로 메꾸겠지만 김일성은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다.
“그래서 내 말에 반기를 드는 건가?”
“반기가 아니라 위험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대로 그냥 진행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대룡에서 모조리 채 가면? 지금 이 순간에도 대룡에서 그 기업을 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거 모르나?
“모르는 건 아닙니다만 일단은 확실하게 안전을 위해서 접근하시는 것이…….”
“자네는 내가 얼마나 거친 세상을 헤치고 여기 왔는지 모르는 모양이군. 내가 고작 그 정도에 쓰러질 거라 생각하나?”
한만수는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 * *
“후우.”
한만수는 고개를 숙이고 소주잔을 들이켰다.
“그러니까 왜 반박을 해? 어떻게 된 이사인데?”
“어떻게 된 이사 자리이긴. 위에서 모가지 날아가서 온 이사지.”
“…….”
친구의 말에 그는 한숨부터 나왔다.
얼마 전 있었던 쿠데타 사건. 그건 단순히 주주들만 모여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주주들은 다른 주주들의 연락처를 모른다. 그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누군가 도움을 줘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맡았던 것은 일부 사장단과 이사진이었다.
“이건 완전히 폭주하는 기관차나 마찬가지야. 브레이크도 없고 안전장치도 없고.”
아무리 김일성이 틀어쥐고 있는 회사라고 하지만 엄연히 주식회사인 성화가 그의 마음대로 뭐든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다른 계파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들의 충성의 대상은 김일성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김일성, 아니 김씨 일가가 성화를 망하게 한다고 생각해서 축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전에 발각되었고 그 사건 이후부터 김일성은 지독한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자기 말을 거부하거나 의견에 반하면 바로 해직이라는 보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얻은 자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고작 부장이었다. 물론 능력이 있어서 거기까지 갔지만 이사는 꿈도 못 꿨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사가 된 것은 위에 있던 사람들이 마치 벼 이삭처럼 후두들 잘려 나가서였다.
“알잖아? 너도.”
“그거야 그렇지.”
친구는 안타깝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는 사람은 좋은 편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만수가 부장을 달 때 그는 만년 과장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서로는 계급을 떠나서 입사 동기이자 사람만 보고 우정을 나누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잘 알걸?”
“그렇겠지. 넌 과장이니까.”
부장만 되어도 별실을 주고 따로 격리된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래서 직원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타도 대룡.”
“반대룡이지. 후후후.”
성화와 대룡의 전쟁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그들은 대룡을 원수처럼 여겼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다. 몇 년 전만 해도 성화라고 하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망해 가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직장이 위험해졌다. 그리고 내부에는 반대룡 분위기가 불기 시작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야. 하지만 오로지 반대룡이면 곤란하다고.”
증오는 때로는 뭔가를 하기 위한 추진력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눈을 가리고 일을 망칠 수도 있다.
정치만 해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증오를 가지고 반대만 하면 사람들은 그저 반대만 하는 자라고 생각해서 떠나간다. 증오로 그보다 더 뛰어나다는 걸 증명해야 사람들은 자신을 추종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 성화는 그렇지 못한 상황.
“오로지 반대룡, 반대룡이야!”
터무니없는 명령도 대룡을 꺾어야 한다는 미명하에 집행되고 있었다.
“이대로는…….”
한만수가 한숨을 쉬면서 소주잔을 입으로 털어 넣었다.
그때 옆에 있던 사람에게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는 망하겠죠.”
“응?”
한 칸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의 목소리.
보통은 술자리에서는 상관을 안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끼어드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합석해도 될까요?”
대화에 끼어든 것도 모자라서 아예 잔을 들고 자신들의 자리에 다가오는 두 사람.
한만수는 그들을 보면서 눈을 치켜떴다.
“누구신지?”
“노형진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유민택 회장님입니다.”
두 사람은 얼굴이 딱딱해졌다. 세상에서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들이 누군지 모르지는 않으니까.
“별로 합석하고 싶지 않군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한만수. 노형진은 그를 잡지 않았다. 다만 피식하고 웃을 뿐이었다.
“그러면 내일 아침에 백수가 되실 겁니다.”
“뭐라고요?”
노형진은 손을 까딱거렸고 반대쪽에 있던 손님이 피식 웃으면서 자신의 핸드폰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네 사람이 자연스럽게 합석되어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당했다.”
노형진과 유민택이 다짜고짜 이쪽으로 올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설마 이런 사진을 찍어 뒀을 줄이야.
“내일 아침에 성화에 뿌려질 사진이지요. 마음에 드십니까? 구도가 마음에 안 드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만.”
“원하는 게 뭡니까?”
“일단 앉으시죠.”
노형진은 느긋하게 한만수에게 자리를 권했다. 한만수는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저 사진이면 자신의 인생은 파멸이니까.
“크으…….”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는 한만수.
노형진은 비어 있는 그의 소주잔에 술을 부으면서 중얼거렸다.
“증인을 모은다는 허황된 생각은 하지 마세요. 이 술집은 우리가 전세 냈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우리 측 사람이에요.”
“크윽.”
주변을 둘러보던 친구는 한숨이 나왔다.
“어쩐지 오늘은 이상하게 손님이 적더라니.”
이 껍데기집은 평소에도 사람들이 적지 않게 오는 곳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사람이 적었다고 생각했더니 설마 전세를 냈을 줄이야.
“왜 이러는 겁니까?”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서 말이죠.”
“이야기? 무슨 이야기? 당신들과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할 게 있다고.”
으르렁거리는 한만수. 노형진은 그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당신 이직요. 그리고 당신이 가지고 올 성화의 비밀들.”
“이거 미친 거 아냐?”
한만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자신은 이직을 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이직이라니? 거기에다가 비밀이라니?
물론 자신은 성화의 이사다. 아주 1급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이직하게 되면 많은 정보를 가지고 가게 될 것이다. 추후 어떤 사업을 하게 될지 또는 어떤 식으로 대응하게 될지까지 사소하지만 방향을 알 수 있는 것들 말이다.
“내가 가지고 간다고 해서 그걸 회사에서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
“압니다. 알겠지요. 그래서 가지고 오라고 하시는 겁니다.”
“뭐라고요?”
자신이 정보를 가지고 갈 거라는 사실을 알 거라니?
하지만 다음 말에 그는 얼굴을 사정없이 찡그렸다.
“만일 정보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회사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것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까요?”
“크윽!”
한만수는 ‘아차.’ 하는 얼굴이 되었다.
맞는 말이다. 비밀은 이쪽에서 가지고 갔다는 걸 몰라야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일 자신이 이사의 직권을 이용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비밀을 가지고 간다면?
회사의 입장에서는 그걸 다 바꿔야 하는데 기업의 방향성을 바꾼다는 것은 못해도 수십억의 피해가 발생하는 일이다. 그중에 일부는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이고 말이고.
“네놈들은…….”
한만수는 이를 악물었다. 걸려도 그만, 안 걸려도 그만이라는 얼굴.
“허허허.”
유민택은 노형진에게서 이 계획을 들었을 때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형진의 말대로 된다면.
‘어찌 보면 기업의 비밀을 가지고 오는 것보다 더 이득이다…….’
비밀을 바꿀 수 있지만 회장은 바꿀 수 없다. 한번 실패했고 김일성이 그걸 그냥 둘 리는 없다.
“싫으면 말든가요.”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말하는 노형진.
유민택은 이쯤에서 자신이 끼어들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슬쩍 대화에 끼었다.
“어차피 자네도 성화가 몰락하는 건 알고 있지 않나? 대룡이라면 충분히 좋은 직장이네만.”
“…….”
그건 사실이다. 대룡은 복지도 좋고 이제는 성화보다 훨씬 큰 곳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들과 싸우던 자다.
“솔직히 말해서 자네가 우리한테 와도 자네에게는 좋은 자리는 주지 못하네. 최소한 성화가 망할 때까지는 말이야.”
“그걸 알면서 오라는 겁니까?”
비웃는 듯한 표정이 되는 한만수.
“하지만 훨씬 안정적이겠지. 이사 자리가 얼마나 갈 것 같나? 1년 2년? 과연 성화가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
“아니, 애초에 자네 이번에 김일성 회장에게 찍히지 않았나?”
“그…… 그걸 어떻게……?”
“자네들만 스파이를 심어 둔 게 아닐세.”
“으으으…….”
한만수는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유민택인 그런 그에게 계속해서 유혹했다.
“김일성의 판단력은 떨어지고 있지. 자네도 알 거야. 그런 자에게 기업을 지킬 힘은 없지.”
보통 회장의 판단력이 떨어지면 그 아래에서 지탱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경우는 회장은 상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부분의 안건은 사장단에서 하게 되어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회장은 최상위 로비스트라고 해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 쿠데타 사건 이후에 그 시스템이 모조리 무너졌다. 완전 독주 체제. 김일성은 자신의 말에 저항하는 자를 그냥 두지 않는다.
“당신이 잘리는 건 기정사실입니다. 그걸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것이냐, 아니면 그냥 백수가 될 것이냐는 본인의 선택이지요.”
“끄응.”
“그리고 당신이 잘리면 친구분은 어떻게 될까요?”
“아니, 왜 날?”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는 친구.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우정이라는 것은 좋은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친구분은 나이가 적지 않지요. 만년 과장. 그게 친구분의 현실이구요.”
“…….”
친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만년 과장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경기 좋을 때의 이야기지, 그렇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용납되는 게 아니다. 이미 부장을 달지 못한 한만수의 동기들은 대부분 해직당했다.
“한만수 씨가 잘 지켜 주셨지요.”
“…….”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한만수는 그를 지켜 줬다, 자신의 부장이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그래서 그가 만년 과장 소리를 들으면서도 잘리지 않도록 도와줬다.
“하지만 얼마나 버틸까요?”
“…….”
한만수가 잘리는 순간 그도 해직이다.
“자녀분이 이제 대학 다니시죠? 돈 많이 들어가실 텐데.”
“큭.”
완전 양아치 같은 모습이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는 해야지…….’
한만수에 대해서 조사하면서 의외의 모습이 바로 이 우정이었다. 수십 년지기 친구. 회사 동기를 넘어선 그들의 우정. 힘들 때 서로를 도와주는 그 모습은 가히 보기 좋았다.
‘그리고 약점으로도 좋지…….’
남자는 가끔 친구를 위해서 과감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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