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057)
“아마도 졸부 집 마나님인가 보지.”
“헐.”
“네, 듣기로는 남편이 거대 기업의 이사라는데, 연봉이 한 3억쯤 되는 모양이더군요.”
“그래서요?”
“모녀가 와서 매일같이 진상을 부려서 백화점에서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요. 회사에서는 말릴 생각도 없고요.”
“말릴 리 없지.”
회사의 입장에서 직원은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존재다. 그에 반해서 그렇게 많이 쓰는 손님은 흔하지 않다.
“몇몇이 고발하려고 했지만…….”
“했지만?”
“회사에서 막았답니다.”
“그럴 겁니다.”
웃기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진상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다. 고객이라는 이름하에 말이다.
“우리나라는 웃기단 말이야. 도대체 왜 진상을 보호하는지.”
진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멀쩡한 고객에게 들어갈 자금과 노동력이 소모되어야 한다. 그러니 차라리 그런 진상들을 쳐 내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상이 고객이라고 하면 일단 찍소리도 못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성향이 있다.
“하여간 모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더군요.”
문성준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잔뜩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이제부터 촬영을 해 볼까 하는데 어떻게, 한번 가 보시겠습니까?”
“그런데 촬영하려면 당사자들에게 동의를 얻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문성준이 씩 웃었다.
“안 그래도 이미 연락해 봤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 두 손 들고 환영하더군요. 아주 치를 떨고 있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백화점인데?”
엄밀하게 말하면 남의 가게가 아닌가?
노형진이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 백화점은 공공의 공간으로 취급돼.”
“공공의 공간?”
“그래.”
사유지에서 촬영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 쉽게 공개된 공간은 법적으로 공공의 장소로 취급되며, 그곳에서 촬영하거나 하는 것은 합법이다.
물론 개인이 무차별적으로 촬영하는 것은 좀 곤란할 수도 있지만.
“하지만 우리는 이미 언론사로 등록해 둔 상황이지. 그러면 어지간한 위법성은 사라진다고. 내가 왜 쓸데없이 언론사로 등록하자고 했겠어?”
“아!”
“더군다나 이건 명백하게 사회 고발 프로그램이야. 사회 고발을 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부분이 일부 있다고 해도 그 피해가 미미하고 그 공익성 목적이 충분하다면 처벌은 받지 않아. 언론의자유의 보호를 받으니까. 안 그러면 고발이라는 게 불가능하지.”
대한민국은 자본주의국가다. 그래서 대부분의 땅은 주인이 있다.
없다고 해도 국유지로 들어가 있는 땅이 대부분이다.
그런 곳에서 일일이 다 촬영 허가를 받으면서 촬영한다면 사회적 고발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니 촬영에 대해서는 문제가 되지 않아.”
“아아.”
“그나저나 그 사람들이 그렇게 심합니까?”
“진상에도 계급이 있다면 성골급이라고 하더군요.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안 당한 사람이 없답니다.”
“호오?”
그런 거라면 상당한 시청률이 나올지도 모른다.
노형진은 그 말을 들으면서 왠지 기대에 찬 얼굴이 되었다.
사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많은 젊은 청년들 중 이런 진상들에게 안 당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들의 복수가 되는 이야기라면 충분히 이슈가 될 것이다.
“그나저나 제목은 뭐로 정했어요?”
“응?”
“아니,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제목을 정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건 아직…….”
문성준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제가 작명 센스가 영 아니라서요.”
“흠…….”
노형진은 잠깐 생각하다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진상을 만나다, 어때요?”
“네?”
“어차피 그 녀석들 다 진상 아닙니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인데도 자기들의 힘을 이용해서 지랄을 하는 녀석들이니 진상이지요.”
“진상을 만나다라…….”
이미지도 그렇고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도 그렇고, 딱 좋은 이름이었다.
“좋네요, 진상을 만나다.”
“후후후. 자, 그럼 진상 한번 만나 보러 갑시다.”
* * *
“오늘도 오는군요.”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촬영 사흘째.
지난 사흘간 모녀는 계속 오고 있었다.
“하긴 1년에 1억 쓰려면 자주 오기는 해야겠다.”
물론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그들이 돈을 어디에서 쓰든 그건 자기들 마음이다. 더군다나 불법적으로 번 것도 아니고 남편이 합법적으로 번 돈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가관이었다.
-아니, 무슨 코디를 저딴 식으로 해 놔?
-네?
-지금 내가 이 가방 들고 있는 거 안 보여? 저렇게 코디해 놓으면 개나 소나 이 가방을 살 거 아니야? 그러면 내 가방의 가치가 떨어지는데, 그럼 네가 책임질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책임져야지! 당장 바꿔!
-하지만…… 저 상품은 이번에 회사에서 행사로 적극적으로 판촉하는 거라…….
-뭐? 장난해? 개나 소나 들고 다니게 되면 내 가방의 가치가 떨어지잖아! 그런데 행사? 지금 행사라고 했어? 내 가방이 산 지 오래된 것도 아니고 1년밖에 안 됐는데, 행사? 지금 제 가격 주고 산 사람 무시하는 거야, 뭐야?
-죄송해요.
-여기 매니저 누구야! 당장 매니저 나오라고 해!
버럭버럭 화를 내는 아줌마를 보면서 손채림은 기가 막힌지 피식피식 웃을 뿐이었다.
“재미있냐?”
“재미있는 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그래.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지?”
회사의 입장에서는 나온 지 1년쯤 된 상품은 재고로 분류된다. 당연히 그걸 처분하기 위해서 행사를 한다.
그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물건을 먼저 산다는 것은 그 물건의 한정됨을 즐기는 것이니까.
그런데 행사를 하지 말라니.
-매니저 나오라고 해! 매니저, 아니 사장 나오라고 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아줌마.
문성준은 재생되던 장면을 멈추고 피식 웃었다.
“어때요?”
“답이 없어 보이는군요.”
노형진이 촬영하는 곳을 매일 찾아갈 수는 없으니 문성준이 촬영한 장면을 들고 여기에 온 것이다.
“그나마 덜한 겁니다.”
“네?”
“그나마 덜한 부분을 보여 드린 거라고요.”
“이게 덜하다고요?”
“네. 제가 봤을 때는 매일 오는 것도 이유가 있어 보이더군요.”
“이유?”
“네. 지난 며칠간 촬영한 걸 보고 있자니 의외더군요.”
“의외라 하심은?”
“사소한 것 하나도 백화점에서 사더군요.”
사실 백화점에서 파는 물건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가령 동네 구멍가게에서 파는 음료가 1천 원이면 마트는 900원이고, 편의점과 백화점은 1,300원까지 한다. 그래서 조금 사면 가게에, 대량으로 사면 마트에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저들은 작은 것 하나까지 백화점에 와서 사면서 진상을 부린다.
“일종의 정신병인 것 같습니다.”
“정신병요?”
“네. 저도 좀 알아봤더니 그런 게 있더군요.”
진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들은 그냥 단순히 성격이 나쁜 게 아니다. 관심을 얻고 싶어서, 그리고 자신의 가학성을 충족하고 싶어서 오는 것이다.
실제로 공무원들의 세계에서 보면 민원은 넣는 사람들만 계속 넣는다.
“자신이 힘이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싶어 하는 거군요.”
“네.”
실제로 온갖 민원을 넣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합법적인 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민원을 넣었고 동사무소, 아니 주민자치센터에서는 그걸 가지고 동네 주민들을 찾아다니면서 따져야 했다.
가령 휠체어 이동용 턱받이 같은 것도 민원을 넣었고, 남의 가게의 간판 색이 마음에 안 든다고 민원을 넣었다.
그는 그렇게 민원을 넣으면서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쾌감을 즐겼던 것이다.
“포식자라. 켕기는 것이 있나 보군요.”
“켕기다니요?”
“확실히 원래부터 부자였던 것처럼은 안 보여서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런 게 좀 있습니다. 사는 방식의 차이죠.”
진짜 부자들은 저러지 않는다.
대부분의 부자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힘을 쓰지 않는다.
‘짖는 개는 무섭지 않는다고 하지.’
사실 사람들은 부자라고 하면 무조건 싸가지없고 성격이 개떡 같다고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부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정도는 아니다. 보수적이고 예의를 중요시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단 돈이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안정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봤을 때 그들이 상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부류다. 끼리끼리 뭉친다고 할까?
그러니 서로 쓸데없이 싸우게 되면 단순히 언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변호사를 통한 총력전이 된다.
서로 피곤한 일이기 때문에, 그걸 피하기 위해서 부자들은 예의를 중요시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양반이라고 하는 자들은 예의를 중시했습니다. 외국의 귀족들은 기사도니 어쩌니 하면서 예의를 중시했지요. 그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요?”
“보통 저런 식으로 돈지랄을 하면서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녀석들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작자들이지요. 졸부가 되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
갑자기 돈이 많아졌지만 예의는 배우지 못한 것이다.
“전에 술집 사건을 할 때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진짜 부자들은 그런 곳에 놀러 와도 그다지 거칠게 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정작 거칠게 놀면서 거기 여자들을 무시하는 것은 가난한 놈들이 돈 모아서 오는 경우라고요.”
“그런가요?”
“네.”
부자라고 해서 미워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대로 예의도 배우지 못한 녀석들에게는 그만한 예절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절 교육은 언제쯤 할 것 같습니까?”
“사흘만 더 촬영하고 다다음주쯤에 방영할 겁니다.”
“기대되는군요.”
* * *
인터넷. 현대의 문명.
그곳에서 이슈가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된다.
현대 문명에서 인터넷은 사회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인터넷에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진상을 만나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진상과 점주를 고발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그 프로그램은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지금 어디다 대고 호각을 불어! 엉!
넓은 주차장.
그곳에서 모녀가 한 청년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건 괴롭힘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역주행을 하시니까 막으려고…….
-역주행은 무슨 역주행이야! 여기가 도로야? 도로냐고!
백화점의 입구와 출구는 다르다. 당연히 그 안에서 나가는 길도 다르다.
그들은 편한 길로 가기 위해서 역주행을 했고, 그걸 본 주차장 관리 직원이 호각을 불러서 멈추게 한 것이다.
정상적인 과정이었고 문제가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모녀의 행동은 정상정이지 않았다.
-어디 주차 요원밖에 안 하는 자식이!
-당장 무릎 꿇고 빌어!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모녀.
주차 요원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백화점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급하게 와서 말렸지만 그들은 화를 멈추지 않았다.
-무릎 꿇고 기어서 오면 내가 봐주지.
콧대를 세우고 기고만장하게 외치는 모녀.
그러자 옆에 있던 백화점 직원이 주차 요원을 다그쳤다.
-뭐 해? 당장 빌지 않고!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그 호각 때문에 놀란 내 가슴은 어쩔 거냐고! 당장 안 기어? 사장 나오라고 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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