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061)
“그런 건 잘 몰라서요.”
마진건설.
재하청을 하는 건설사로, 직원이 백 명쯤 되는 중견 기업이다.
규모가 그렇게 큰 곳은 아니지만 건설사들의 세계에서 정규직이 백 명이라는 것은 절대 작은 규모가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건설업은 기본적으로 일용직을 쓰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규직 백 명은 현장 관리직과 회계만 들어가니까, 실질적으로 그 정도 규모면 하루 평균 오백 명 이상의 근무자가 있어야 하는 셈이다.
“회사에 대해 잘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던가요?”
“네, 없었어요. 건설업이라는 게 아무래도 남자들만의 세계다 보니까.”
“끄응…….”
유가족은 아내와 아들 둘뿐이다.
아내는 전형적인 가정주부로, 사업에 대해 잘 몰랐다.
‘대학도 유아교육학과를 나왔고.’
두 아들도 마찬가지.
한 명은 중학생, 다른 한 명은 대학생이지만 현재 군대에 가 있고 전공도 이공계다.
“일단 저희가 사건을 조사하다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상하다고 하시면?”
아내인 조미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무래도 누군가 회사를 내부에서 갉아먹는 것 같아서요.”
“네?”
“돈 쓸 곳이 없는데 갑자기 채권이 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공사 자체도 그다지 문제가 없는데 빼앗겼고요.”
하청을 받아서 일하는 구조상 그건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마치 누군가 계획적으로 회사를 망하게 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누가요?”
“그게 문제죠.”
노형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런 일을 할 사람을 아십니까?”
“그게…… 저는 잘 몰라요.”
“전혀 감이 안 잡히세요?”
“애아빠가 회사 일은 집으로 가지고 오지 않는 타입이라서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예 임직원이 누군지도 몰라요.”
“끄응…….”
노형진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멍청한 짓을 했군.’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뭘 하는지 가족에게 제대로 알려 주지 않는 사람들.
이런 일이 터지면 가족에게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회사의 인감은 누가 가지고 있나요?”
“회사의 인감요?”
“네, 회사에서 결정을 할 때 찍는 도장 말입니다.”
“그건 신임 사장이 가지고 있어요.”
“신임 사장요?”
“네, 백조수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이미 회사에 대해 조사하면서 신임 사장이 누군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해 노형진은 부정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는 지분이 없는 사장이기 때문이다.
“마진건설은 개인회사 아니던가요?”
주식회사나 지분을 나눈 유한회사가 아니라, 원래 남편이 전부를 가지고 있는 개인회사다.
그렇다 보니 지분을 가진 다른 사람이 없다.
당연하게도 새로 사장이 된 사람도 지분이 없다.
“그 사람, 전문 경영인이에요.”
“내부에서 승진한?”
“네. 그 회사에서 추천을 해 준 사람이에요.”
“당했네요.”
“네?”
노형진의 말에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는 조미혜였다.
당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녀도 모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업계에 대해 잘 모르시는 걸 이용해서 작정하고 덤빈 것 같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문 경영인이라는 존재가 왜 돌려막기 되는지 아십니까?”
“네? 돌려막기요?”
“네. 전문 경영인들은 한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옮겨 가지요.”
가령 A라는 회사에서 일하던 대표가 퇴직 후 B라는 회사에 가기도 하고, 다시 퇴직 후에 C라는 회사에 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비슷한 업계로 가는 게 아니라 화장품 회사로 갔다가 음료 회사로 갔다가 핸드백 회사로 가기도 한다.
“아니, 왜요?”
“파벌 때문입니다.”
“파벌요?”
“네.”
내부에서 승진하면 그 업계에 대해 잘 안다는 이득도 있지만, 반대로 그 내부에 자기 파벌이 있다는 문제도 있다.
그가 자기 파벌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면 기업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 업계에 대해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붙여 주고 전문적으로 경영을 하는 게 차라리 파벌이 있는 내부 승진보다 더 이득이 많기 때문에 해외 기업들이 전문 경영인들을 외부에서 수급하는 겁니다.”
내부 파벌로 인한 피해가 그 업계를 모르는 것보다 더 크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 업계에 대해 잘 모르면 1년 정도 집중적으로 배운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내부 파벌 싸움은 기업 자체를 날려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사람에 대한 추천은 만장일치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어떻게 아셨어요? 다들 그분 아니면 사람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아, 민주주의국가에서 만장일치라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만장일치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득을 새로운 사장이 건들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파벌이라는 것은 결국 다른 경쟁자가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만장일치가 된다고요? 그러면 이야기는 하나뿐이죠.”
그가 이미 다른 자들과 짜고 회사를 나눠 먹기로 한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만장일치가 나올 수가 없다.
“그럴 리 없어요! 그럴 리가……!”
“이건 만장일치가 나오지 않으면 실행할 수가 없는 사건입니다.”
만일 다른 누군가가 반대를 했다면, 그래서 그가 조미혜와 그 유가족에게 사실을 알렸다면 일은 모조리 틀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이 너무 좋아서 만장일치가 나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고연미는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노형진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생각해서, 학교에서 반장 선거를 해도 라이벌이 있는데 이 정도 되는 규모의 회사의 대표를 뽑는데 만장일치가 가능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아무리 전문 경영인이라고 하지만 연봉이 무려 2억이다.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노리지 않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손을 덜덜 떠는 조미혜를 보면서 노형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게 한두 건일까?’
사업을 하는 사람들.
주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많다,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가 일이 틀어져서 가족들이 한꺼번에 망하는.
“그러면 어쩌죠? 어쩌죠?”
“일단 싸우는 건 가능합니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만.”
“지금이라도 당장 백조수를 자를까요?”
“아니요. 그러면 안 됩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다. 하지만 그건 최악의 수다.
“그는 지금 합법적으로 대표가 된 상황입니다. 자를 수야 있겠지만, 결국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다.”
“아…….”
“다만 이야기가 달라지면 되지요.”
“네? 이야기가 달라져요?”
“그를 바로 자르는 게 아니라, 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어떻게요?”
“그의 배신을 입증하는 거죠.”
그의 배신을 입증하면 그는 대표로 재직하면서 회사에 큰 타격을 입힌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해직은 물론이고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쉽진 않을 거예요.”
고연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녀가 보기에 이건 절대 쉬운 사건이 아니었다.
“저도 압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게 우리의 새로운 돈줄이 될 것 같네요.”
그 말에 고연미의 얼굴이 갑자기 핼쑥해졌고, 노형진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 * *
“일 좀 그만 만들지 그러나.”
“진심이십니까?”
“진심이네. 그러니까 고 변호사가 얼굴이 그렇게 변하지.”
송정한은 노형진의 이야기를 듣고 허허 웃었다.
그가 일선에서 물러났다지만 그래도 아직 대표이기 때문에 이 건은 그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하하하…….”
노형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고연미의 얼굴이 사색이 된 이유가 일 때문이었다니.
“일이 좀 많기는 하지요.”
돈 벌 거리라는 것은 결국 일거리가 생긴다는 뜻이니, 안 그래도 인력 부족으로 허덕이는 새론과 하늘에 또 다른 일거리가 추가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일은 좀 다를 겁니다. 딱히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상 인맥 관리를 하는 거니까요.”
“인맥 관리라…….”
“네. 아마 한국의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자신이 죽은 후 아래에서 돈을 빼앗으려 들지 않을까, 회사를 집어삼키지 않을까 하는 고민 말이다.
“우리는 그에 대한 보험을 들어 주는 거죠. 사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경영인들이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할 겁니다. 이런 보험은 없으니까요.”
“보험?”
“네. 다만 돈으로 보장해 주는 보험이 아니라 관리자를 파견해 주는 보험인 거죠.”
노형진이 생각한 사업은 간단했다.
제휴를 맺은 기업이 일정 액수의 돈을 내면 만일의 사태에 새론에서 관리자를 내보내서 사업체 운영을 지원한다.
“어차피 그들은 새론에서 보내는 사람이고 새론은 계약서상 해당 기업의 지분을 가지지 않는다고 못 박아 두면 됩니다.”
최소한 파견한 전문 경영인들이 있는 동안은 지분을 가지지 못한다고 못 박아 두면 된다.
“전문 경영인은 그 회사를 운영하면서 유가족에게 재산이 돌아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거죠.”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군. 금전적 보험이 아니라 사회적 보험이로군.”
“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충분히 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
송정한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그런 사건들을 많이 봤다.
적은 외부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부에도 있는 법이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넘어가는 기업들도 많았고, 그 때문에 유가족들이 길바닥에 나앉는 사건도 많았다.
“우리와 관계를 이어 가면서 전문 경영인을 보내 준다고 하면 아마 적잖이 의뢰를 할 겁니다.”
“일종의 미끼로군.”
“네, 미끼죠.”
“나쁜 생각은 아니군.”
딱히 돈을 받을 필요도 없다.
일정 부분 이상 자신들과 거래한 사람들에 한해서 혜택을 준다고 하면 한국의 상당수 중소기업들이 의뢰를 할 것이다.
그런 곳들은 대개 전담 변호사를 고용할 여건이 안 되니까.
“더군다나 전담 변호사가 내부에서 배신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웃기는 일이지만 변호사도 변호사를 못 믿는 판국이니까.”
그렇다고 딱히 새론에서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평소 전문 경영인의 연락처를 확보해 두고 있다가, 비상사태에 연락해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부르면 된다.
“만일을 대비해서 경영학과 쪽과 손잡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경영학과?”
“한국의 가장 큰 문제가 그거 아닙니까? 돈이 없으면 경영도 없지요.”
“무슨 뜻인지 알겠네.”
외국은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하면 전문 경영인으로서 자수성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수많은 경영학과가 있지만 졸업을 한다고 해도 결국 전문 경영인이 될 수는 없다.
“한국은 혈연주의니까.”
전문 경영인을 쓰기보다 자기 핏줄이 회사를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우리가 그걸 넘겨받을 수 있겠군.”
“그렇지요.”
유가족이 일을 제대로 배우거나 성인이 될 때까지 그 회사를 운영할 수도 있다.
아예 현 사장 옆에서 배우면서 근무하다가 비상 상황 발생 시에 대리하도록 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그러면 비상 상황에 기업이 흔들거릴 이유가 없다.
“그리고 최소한 그동안 사건 수임은 우리가 하겠지.”
“다른 이득도 있지요.”
“다른 이득?”
“유가족이 다시 전면에 나선다고 해도 갑자기 회사를 넘겨받을 수 있을까요?”
그건 무리다.
아무리 제대로 배운다고 해도 실무와 이론은 완전히 다르다.
설사 실무를 배웠다고 해도 지금까지 회사를 이끈 건 전문 경영인이다.
“감사나 부사장, 이사 등 다른 자리로 옮겨서 활동하게 할 수 있지요. 그곳에서 근무하면서 사장에게 배운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우리가 있는 이상 그가 배신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의뢰인은 유가족이니까.”
“음?”
“우리가 작은 기업들에 전문 경영 훈련을 받은 사람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겁니다.”
혈연으로 경영권을 넘긴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회사가 망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전문 경영인이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자리로 옮겨 가면 그만이다.
대표라는 타이틀, 운영권이라는 타이틀은 전문 경영인에게는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혈연관계에서는 중요하다.
“노 변호사.”
송정한은 그 말을 듣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려면 우리 회사가 한 세 배쯤 커져야 할 텐데?”
“키우죠, 뭐. 어차피 매년 로스쿨생은 계속 나오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로스쿨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인력 부족 현상은 많이 해결되었다.
다만 그 실력이 문제였는데, 새론과 손잡고 졸업하는 졸업생들은 다른 로펌에서도 군침을 흘릴 정도로 능력이 출중했다.
“사업을 할 때 상대방에 대해 조사하는 것도 중요하니 그걸 우리 정보 팀에서 해결해 주면 도움이 될 테고요.”
“하긴, 사업이 망하는 상당수 이유는 사기 때문이지.”
사업자가 개개인에 대해 조사하긴 어려우니 동업한다고 손을 내밀었다가 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새론에 정식으로 위임해서 그들에 대해 조사한다면, 안전하게 사업을 해 나갈 수 있다.
“중소기업들은 구조상 법률적 보호에 약하기는 하지.”
대부분 사건이 발생하면 막대한 돈을 내 가면서 의뢰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노형진의 계획대로 된다면 약간의 보험료를 내는 조건으로 최소한의 방어는 가능하게 되는 셈이다.
“확실히 좋은 생각이야. 변호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말이야.”
“하하하.”
노형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확실히 빠르게 성장하는 시스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력 부족 현상은 어쩔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마진건설 사건부터 잘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요.”
“재판에서 이길 수는 있겠는가?”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이길 자신이?”
“아니요. 질 자신이요.”
노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