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590)
피와 눈물 위에 (2)
현실은 하나도 모른 채 탁상공론만 계속 반복하며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대기업은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라는 점점 망가지고 망한 중소기업인은 계속 자살하는 데 반해 대기업은 배에 기름이 가득 끼어서 쉽게 돈을 벌 생각에 법을 무시한다.
“내 아들에게 들은 것보다 훨씬 심각하군. 그걸 막을 방법이 없나?”
“뭐, 현재 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없지요. 특허를 침해한 건 대기업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기술을 받은 중소기업들이니까요.”
“자네가 전에 한번 비슷한 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지 않았나?”
“성화와의 사건을 말씀하시는 모양인데, 그건 아무래도 상황이 다릅니다.”
성화 때는 특정 기업과 공장이 목표였다.
그래서 다른 기업들에서 가지고 있던 특허를 구입하는 형태로 일을 방해함과 동시에 그들을 하나로 묶어서 새로운 기업을 탄생시켜 성화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에는 기업들의 적이 하나뿐이었지요. 하지만 이건 성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기업들 전반의 문제입니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그 방법은 가능성이 없습니다.”
“끄응…….”
“그리고 그건 어디까지나 기술이 특허를 받은 경우에 가능한 겁니다. 그것도 남들이 따라 하지 못할 그런 기술이어야 가능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은 그렇지 않다.
특허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살짝만 바꾸면 복제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고, 특허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특허라는 게 만능은 아니라서 한 번 특허를 내면 몇 년 이내에 그걸 공개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 그 안에서 변동 가능한 뭔가를 살짝만 바꿔서 다른 기술이라고 해 버리면 답이 없기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특허를 내는 것 자체를 상당히 꺼리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면 방법이 없나?”
“확실히 애매하기는 하지요. 뭐, 법을 통해 그런 기술을 요구하는 걸 막을 수도 없고.”
왜냐하면 기술의 보유 여부는 신제품이나 대기업의 경쟁력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기술도 확보하지 않고 제품을 만들면 그 제품이 어떤 꼴일지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은 데다, 그런 제품이 팔릴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거래할 때 그 업체의 기술 수준을 확인하는 것은 정상적인 절차였다.
“그 기술을 다른 기업에 넘기는 걸 막는 건?”
“뭐, 그런 법을 만든다고 해서 솔직히 대기업이 처벌을 받겠습니까?”
“그런가?”
“대기업의 힘을 만만하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 법을 만들었다고 쳐도, 입증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대기업은 그냥 안 줬다고 하면 그만이다.
“설사 줬다고 인정한다 한들, 그 법은 대기업을 옥죄는 겁니다. 지금 국회의원들이 움직이지 않는 걸 고민하시는 거 아닌가요?”
“하긴, 그게 문제이기는 하지.”
국회의원들이 이런 것에 대한 처벌을 확실하게 해 주면 모를까 그런 법을 만들어 줄 리가 없고, 만들어 준다고 한들 잘해 봐야 벌금 2천만 원? 그 정도 선에서 나오게 할 것이다.
“기업을 감옥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결국 벌금으로 퉁쳐야 하는데, 대기업에 그런 푼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각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70% 이상의 중소기업이 대기업 종속적인 입장으로 묶여 있다는 겁니다.”
그들이 뭐라고 하든 저항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
“그러면 그걸 못 주게 할 방법은 없나? 아, 그 특허권을 자네가 사는 건 어떤가? 전에 했던 것처럼.”
“잘 아시네요?”
“아들내미가 여러모로 알아봤다고 하더군.”
“그러면 지금은 왜 그렇게 못 하는지도 아시겠군요. 제가 특허권을 사는 것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아무리 노형진이라고 해도 특허 전부를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이미 소송에 들어간 특허를 사는 건 의미가 없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특허가 아니라 기술의 수준이나 과정에 관한 건 제가 산다고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특허란 개념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뭔가가 들어가야 인정된다.
기존에 들어가지 않던 재료가 들어간다거나 특별한 공정이 들어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중소기업들은 그런 특허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요.”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게 다 특허가 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모 기업에서 어떤 기술자가 기존 장비를 이용해서 3밀리미터 단위의 제품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는데, 원래 그 장비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저 단위는 5밀리미터로 알려져 있었다.
그 소식에 그 장비의 제작사인 독일 기술자들이 한국에 찾아올 정도로 충격을 받았지만, 그게 특허로 인정되었느냐?
그건 아니다. 그 장비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그 성능을 최대한 뽑아내는 것은 기술자의 개인적 능력일 뿐이니까.
“대부분의 중소기업의 기술력은 그걸로 끝입니다.”
그 기술자에게는 적지 않은 상여금과 보상이 지급되었지만 특허 등록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업은 그 3밀리미터 단위라는 기술 덕에 그 당시 주요 업체의 거래를 싹 쓸어 갔었다.
“그러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뭐, 이럴 때는 산업스파이 쪽으로 공격이 가능하겠지요.”
“산업스파이?”
“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속합니다.”
“음?”
노형진의 말에 박기훈이 되물었다.
“특허 같은 것과 관련된 게 아니고?”
“물론 특허가 관련된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걸 어디에서 얻었느냐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지요. 방금 각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기술을 빼돌려 하청 업체끼리 싸우게 만드는 게 지금 대기업의 수법이라고요.”
그 말에 박기훈은 고민하는 듯했다.
노형진은 그런 박기훈에게 말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은 이런 사건의 처리 순서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응? 무슨 소리인가?”
노형진의 말에 박기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각하께서 문제 삼으시는 건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기술을 요구하는 건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검증 차원에서 그런 걸 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겁니다. 그걸 아니까 저런 짓을 하는 거죠.”
“그래서?”
“그런데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 각 중소기업은 억울하다고 상대방 기업과 싸우죠.”
“상대방 기업이 아니라 대기업과 싸우게 해야 한다는 건가? 그게 쉽지 않으니까 내가 이러고 있는 것 아닌가?”
노형진은 그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수법이 생긴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는데 끝장 보자고 덤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겠는가?
애초에 대기업의 목적은 단가를 낮추는 것이니, 다른 곳에서 더 싼 가격으로 장비 부품을 가지고 올 수 있다면 기존 업체가 고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당연히 죽음을 각오한 일부 업체들은 대기업을 대상으로 싸움을 건다.
“하지만 대부분은 집니다.”
“역시 돈 때문인가?”
막대한 로비가 이루어지는 대기업을 이길 방법은 없으니까.
설사 로비가 없다고 해도, 대기업을 두려워하는 판검사들이 알아서 기어 버리니 이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이어지는 노형진의 말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니요. 로비 때문이 아니라, 싸움 대상을 잘못 고른 거지요.”
“응? 그게 무슨 말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기업을 공격하지요. 사실 누가 문제인지야 빤히 보이니까.”
하지만 빤히 보이는 것과 그걸 증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그건 간과한다.
“공격해야 하는 대상은 대기업이 아닙니다. 그 책임자지.”
“설마 회장을 공격하라 이건가?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나?”
박기훈은 턱도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기업을 공격하는 경우에도 생존이 불투명한데 오너를 공격한다? 그건 자기한테 기름을 뿌린 뒤 폭탄을 짊어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꼴이다.
“아, 오해하셨군요. 제가 말한 책임자는 그 기업을 관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 기업을 관리하는 사람?”
“네. 애초에 기업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 아닙니까?”
“직원을 말하는 건가? 그 사람을 공격해서 뭘 어쩌려고?”
노형진은 그 말에 씩 하고 웃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지요. 제가 시범을 보여 드리지요. 뭐, 어차피 이런 소송은 엄청나게 많으니 저희 새론에서 싹 쓸어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후후후.”
***
“박송찬이라고 합니다. 노무사입니다.”
박송찬은 인사하면서 뒤에 있는 사람을 힐끔 보았다.
“불편하시면…….”
“불편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데요, 뭘.”
“하하하, 저는 엄청나게 불편해서요.”
노형진은 박송찬의 말에 씩 하고 웃었다.
하긴, 불편할 만하다.
노무사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직업 중 하나다.
그런 사람에게 갑자기 경호원이라고 몇 명씩 따라다니기 시작하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제가 독립한 게 저 사람들 때문이라니까요.”
“아, 그래요?”
“말도 마십시오. 저 원래 노무사 사무실에서 같이 일했습니다.”
한 열 명 정도 되는 노무사들이 모여서 같이 일하는 사무실이었는데, 박송찬의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자 갑자기 경호원들이 상주하게 되었다. 이후 경호원들의 부담스러운 시선과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압박 때문에 다른 직원들이 불편해하는 게 보이자, 박송찬이 어쩔 수 없이 개인 사무실을 차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어떻게 아시게 된 겁니까? 보통 이런 사건은 변호사가 담당하는데요.”
“거기 직원분이 몇 달 치 월급과 퇴직금을 받지 못하셨다고 해서요.”
“음, 그 정도면 사실상 기업은 끝장났다고 봐야겠네요?”
“네. 그래서 아버지랑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겁니다.”
하청을 주던 중소기업으로부터 기술을 빼앗고 나면 대기업은 하청을 끊어 버린다.
그러면 그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그 과정에서 직원의 월급이나 퇴직금이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
“뭐, 담당 변호사랑도 이야기해 봤습니다만, 담당 변호사도 답이 없어서 쩔쩔매더군요. 하긴, 대기업을 개인 변호사가 이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는 하니까요.”
“상대 기업이 어딘데요?”
“두한입니다.”
그 말에 노형진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두한과 여기서 엮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두한과는 악연이긴 한 모양이군.’
“관련 자료는 혹시 있으십니까?”
“네, 뭐, 일단은 있습니다. 처음에는 안 주려고 하다가 제 아버지가 대통령이라고 하니까 은근 기대하더군요.”
“하하하.”
하긴, 하소연하는 것도 아니고 기업이 망해 가는 꼴을 공개하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
“일단 보면 아시겠지만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전형적이라…….”
기록을 보니 확실히 그랬다.
딱히 특허가 있는 기업은 아니지만 제품 생산을 하는 데 있어서 나름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이었던 태상은 주로 전자 기판을 만드는 곳이었다.
그곳은 다른 곳에 비해 불량률이 엄청나게 낮았는데, 그게 바로 그들만의 일종의 스킬이었던 것.
“그런데 두한에서 그 스킬을 알려 달라고 한 거죠.”
물론 태상은 당연히 거절했지만, 그러면 거래를 끊는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공개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