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41
41화 기묘한 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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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달래가 이런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건 물론 카이루스가 귀족 연기를 할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재원이라는 점 덕분이었다.
공화국의 부호들과는 달리 발로른 제국의 귀족으로 위장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쓸 수 있는 수단은 전부 동원하는 편이 좋겠지.”
카이루스의 워낙 특수한 상황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나저나, 시장의 아들 행세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야?”
“장미정원이 약점을 아주 단단히 잡고 있는 모양이야.”
아들이 황립 아카데미의 논문 중 세 개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모양이다.
그 당시 아들의 나이가 13살 정도였던 모양이고, 지금까지는 아무도 그걸 문제 삼지 않았다.
“거참, 자식이 아니라 사람 발목 잡는 족쇄가 따로 없네. 망쳐놓은 자식 한 명이 화마보다 위험하다더니.”
카이루스는 쓰게 웃었다. 그런 식으로 자식을 키워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자식 가진 부모들은 도대체 언제쯤 깨달을까.
“어차피 성공했으니, 낳아놓은 자식 인생은 탄탄대로잖아.”
봄달래의 말에 카이루스가 차갑게 대답했다.
“그런 짧은 생각이 가문을 조져놓는 거야.”
갑작스럽게 떼돈과 명예를 거머쥔 사람들이 할 만한 생각이라는 건 가끔 저렇게나 아둔하다.
“성취의 가치는 과정을 통해 증명되는 거지.”
과정이 없다면, 성취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잡동사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돈 주고 검투대회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고, 그 사람이 검투대회 챔피언이 되는 건 아닌 법이지.”
돈 주고 산 훈장을 가졌다고 수훈기사가 되는 게 아니고, 가문의 권력과 돈으로 논문의 공동저자가 되었다고 그 사람이 똑똑해지는 게 아니다.
“아무런 상관없잖아. 어쨌든 논문 공동저자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도 아닌데. 결국 시장의 아들놈은 잘 먹고 잘 살 거라고.”
카이루스는 봄달래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베넷 시의 범죄조직에게 협박당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아버지를 둔 아들이라. 잘 먹고 잘 살 것 같네. 그 인생과 가문.”
오히려 미래에 먹구름이 낀 셈이다. 자식새끼 논문 공동저자 한 번 시켜준 대가로 베넷 시의 범죄자들에게 코뚜레가 꿰인 거다.
그 결과?
“제가 그 시장의 아들로 위장해 재무청장 저택을 털어낸다면,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뻔하잖아?”
13살 먹은 자식을 논문의 공동저자로 만든 시장은, 그 어리석은 결정의 대가로 멸문을 마주하게 된다.
“어차피 멍청한 자식이라면 포기해야지.”
가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 혈육은 방치되는 게 정상이다.
그게, 카이루스가 알고 있는 귀족 가문이 번성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였다.
“그건 좀 잔인하지 않냐?”
봄달래의 말에 카이루스가 대답했다.
“아니, 누가 들으면 태어난 혈육을 죽이기라도 한다는 줄 알겠네.”
애정과 사랑은 얼마든지 줄 수 있다. 자식이니까.
하지만, 가문의 중요한 일을 맡기지는 않을 뿐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건 사랑하는 거고, 가문의 중대한 일은 중대한 일이다.
“공과 사도 구분하지 못하고 혈육의 정에 이끌려, 오랜 기간 선조들의 피땀 어린 희생으로 지켜온 가문을 말아먹는 게 정상입니까?”
카이루스는 느긋하게 테이블 위의 지도와 자료를 살피며 짧게 한마디를 남겼다.
“못 하겠다고 해도 이해합니다. 그럼 그 가문은 거기까지라는 뜻이니.”
재능이 없는 자식은 방치된다. 유지될 자격이 없는 가문은 멸망한다.
페더윙도, 그래서 멸망할 뻔했다. 유지될 자격이 없었기에.
단지, 어쩌다 보니 카이루스가 살아남는 데 성공해서 멸문은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어쩌면, 카이루스가 노력하기에 따라 페더윙은 다시금 세상에 이름을 떨칠 수도 있을 거다.
서류를 살피고 있는 카이루스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가문의 부흥이 우선인지, 아니면 페더윙의 멸망에 관여한 모든 것들의 파멸이 우선인지.’
사실, 카이루스도 아직 자신의 본심을 알 수가 없다.
망가진 인생의 복수 또는 멸망을 목전에 둔 가문의 부흥.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떤 선택지를 고를지 카이루스는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눈앞에 사지가 묶인 황제가 자신을 살려주면 페더윙의 부흥을 약속하겠다고 하면 어떨까.
카이루스는 과연 황제를 향한 분노를 참을 수 있을까.
잠깐 고민하던 그는 몸을 살짝 떨었다.
카이루스가 싸움을 잘하지 않았다면 칼슨 노동교화소에 입소한 첫날 다른 죄수들에게 똥꼬부터 찢어졌을 거다.
“이런 씨팔, 가문이고 뭐고 그냥 눈에 보이는 순간 죽여버리고 싶은데.”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하며 죽인 다음 다시 살려내서 또 죽여버리고 싶다.
“응?! 뭔 소리야 갑자기.”
옆에 있던 봄달래가 살벌하기 그지없는 카이루스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카이루스 같은 괴물이 살기를 질질 흘리며 허공을 노려보며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하면 망치로 머리를 맞아 성난 하마도 단번에 얌전해질 거다.
“아무것도 아니야. 잠꼬대 했어.”
주먹을 쥐고 있던 카이루스는 손에 힘을 빼고 봄달래를 바라봤다.
“재무청장이 주최하는 겨울나기 파티라면 초대되는 손님들은 대부분 반황제파겠군.”
원래 재무총장은 황제가 임명하기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황제파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재무청장인 시미드 캘로그는 반황제파다.
국세를 빼돌리는 것부터가 황제파에서 쉽사리 시도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주인 돈을 훔치는 하인이 해고당하는 것과 같다.
“캘로그 저택이라.”
카이루스도 초대되어 본 기억은 없는 곳이다. 카이루스는 후계자가 아니었으니까. 다른 가문들과의 교류에 신경을 쓰던 건 후계자였던 큰형이었다.
“기차표도 예약해두었다.”
봄달래가 카이루스에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켄싱턴 특급열차 1등석이라. 대충 아무거나 타고 가도 괜찮은데.”
카이루스의 말에 봄달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서 분장을 하는 것도 괜찮지만, 장미정원의 지원을 받는다면 실패 확률을 최대한 낮추는 게 더 중요해.”
말하는 봄달래의 눈은 장난끼가 전혀 없다. 카이루스 또한 세실리아가 했던 경고를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장미정원의 지원을 받는 이상, 실패는 단어조차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협조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설계도를 그린 봄달래에게 새삼스럽게 감사한 마음이 든 카이루스가 꽤나 정중하게 감사인사를 했다.
곧바로 봄달래가 대답했다.
“큰물로 기어올라가려면 위험한 순간을 붙잡아 기회로 제련해야 하는 법이야. 난 견실한 삶이 아니라 모두가 우러러보는 삶을 욕망하고 있으니, 네가 미안해할 이유는 없어.”
봄달래가 난처해했던 건,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바로 다음 일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장미정원의 위험 따위는 봄달래에게 큰 고민거리가 아니다. 기회라는 꽃은 언제나 가시덩굴이 휘감긴 절벽 위에서 사람을 유혹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말씀하니 다행이구만.”
카이루스는 표를 챙겨들었다. 옆에 놓인 꾸러미에는 저택 도둑질이 끝날 때까지 카이루스가 사용하게 될 신분증과 인적사항 따위가 들어있었다.
“이건 정말로 진짜 신분증과 구분을 못 하겠는데.”
카이루스는 작게 감탄하며 신분증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의 말에 봄달래가 당연하다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당연하지. 사용된 소재들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들이니까.”
카이루스는 아… 하는 소리를 낸 다음 신분증을 다시 살폈다. 위조에 급이 있다면, 이건 최상급이다.
아예 제국 신분증에 실제로 사용되는 재료들을 모두 이용해서 신분증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지폐로 치면 진짜 지폐를 제작하는 재료를 이용해 실제로 지폐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생산한 위조지폐 같은 거다.
“이러면 불법이라 해도 알아낼 방법이 없긴 하지.”
가짜와 진짜의 차이를 알아내려면 차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카이루스가 사용하는 신분증은 진품과 차이가 없다.
저택의 파티에서 카이루스가 정체를 들키게 된다면 그건 준비한 물건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카이루스의 탓이다.
“그리고 이건 저택 청사진이다.”
청사진은 또 어떻게 구한 거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진다.
세실리아가 ‘지원하겠다.’라고 말한 시점으로부터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테이블 위에 깔려 있는 자료는 하나하나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구한 건지 알 수 없는 신비함 투성이었다.
“잘 때는 알몸으로 자는데, 매일 아침에는 식사 대신 토마토 주스를 한 잔 마시는군.”
“씻을 때 사용하는 비누는 알레그랜스 라일락. 아침에는 찬물로 샤워하고 저녁에는 뜨거운 물로 목욕.”
좋아하는 음식 같은 건 당연히 적혀 있다.
심지어 가장 최근 잠자리를 함께한 여인이 누구였고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사랑을 나누었는지와 같은 정보들까지 적혀있다.
이러한 세밀한 정보는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이나 하녀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저택 포크 개수 맞추는 건 놀랄 일도 아닐 정도잖아.”
카이루스는 서류에 적혀 있는, 재질별로 구분된 포크 개수를 슥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장미정원에서 일한다면 내가 어디까지 가능할지 궁금할 지경이야.”
봄달래는 다소 황홀한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건축사 입장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반응이다.
장미정원에서 일하게 되면 어떠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 지원을 바탕으로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강렬한 유혹이었다. 이 모든 정보를 봄달래가 자신의 힘으로 수집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일에 집중하죠. 나중에 장미정원에서 뵙게 되는 일이 있어도.”
카이루스의 말에 봄달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근 도시 시장의 아들로 위장해 재무청장의 저택에서 열리는 겨울나기 파티에 참석한다.
어차피 준비된 신분증을 포함한 다양한 것들 때문에 카이루스의 신분을 의심하지는 못할 거다.
“재무청장의 저택은 5층 구조인데, 저택의 중앙에 큰 정원을 둔 □ 형태지.”
천장이 뚫려있는 커다란 정원을 저택으로 감싼 형식이다.
정원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방식이라서 지체 높으신 귀족들은 꽤나 좋아한다.
페더윙은 저런 저택 구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암살이나 급습이 무서우면 힘을 키우면 될 것을. 어쨌든, 지하실 같은 건 따로 없나?”
카이루스의 질문에 봄달래가 대답했다.
“지하에는 하인들의 숙소와 부엌, 창고 같은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긴 한데….”
“그런데?”
봄달래가 말을 끈다는 건, 뭔가 있긴 하다는 뜻이다.
“장미정원에서 제공해준 청사진에는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는 지하에 있거든.”
봄달래는 몇 개의 설계도면을 하나씩 펼쳐놓으며 말했다.
“저택이 지어진 이래 총 5번의 개보수 공사가 있었고….”
지금 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도면들은 각각의 개보수 이후 저택의 변화가 반영되어 있다.
“확실히 한 곳은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네. 게다가 용도도 모르겠고.”
지하 2층의 약 3제곱미터 정도 되는 작은 공간이 계속 남아있다. 벽으로 감싸져 있기에 들어가거나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문제는 이 공간이 위층들과 이어놓으려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점이지.”
“파티 중에 벽을 부술 수는 없지 않나?”
겨울나기 파티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손님들이 많기에 굉장히 북적거릴 것이다.
물론, 하인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을 저택 지하 또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오갈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함부로 지하의 벽면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초대받은 사람들 중에는 기사단장을 포함한 수훈기사들도 있어.”
카이루스도 물론 제법 칼을 쓰는 편이지만, 저런 괴물들이 무더기로 달려들었을 때도 웃으며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이번 일은 힘자랑을 접어둬야 할걸.”
카이루스가 재무청장의 저택에서 힘자랑을 하려고 들면, 그 순간 진짜 힘 좀 쓰시는 분들이 달려들어 카이루스의 사지를 찢어놓을 거다.
“겨울나기 파티는 2박 3일로 진행되니까. 신중해도 괜찮아.”
발로른 제국의 겨울은 길고 혹독하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겨울이 정점에 달했고 앞으로는 따뜻해질 날만 남았다는 것을 기념하는 겨울나기 파티는 성대하게 열린다.
“일정과 계획에 맞추려면 서둘러야겠네.”
카이루스의 말에 봄달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의 시작은 켄싱턴 특급열차를 타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준비는 모두 끝내두었으니, 바로 출발하면 된다.”
봄달래의 말에 카이루스는 마련된 짐들을 챙겨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