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70
70화 붉은 괴물 (2)
사실, 다나 왓슨도 그냥 짐승 같은 본능에 따라 몸수색을 실시한 것뿐이었다.
별다른 수상한 물건이 나오지 않은 지금도 다나 왓슨의 본능은 여전히 카이루스에게 의문을 품고 있다.
“조사는 다 끝나셨습니까?”
카이루스의 말에 다나 왓슨이 대답했다.
“대충 그렇긴 한데 말이야.”
다나 왓슨은 이성의 목소리보다는 본능의 끌림을 더 중시하는 성격이다.
몸을 수색했고, 수상한 건 나오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이상 붙들고 늘어지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다.
하지만 어쩐지 다나 왓슨은 흔쾌히 카이루스를 풀어주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애초에 본능이나 직감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작용하는 법이다.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본능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이다.
‘그냥 풀어주기에는 영 찜찜한데.’
하지만 제아무리 본능이 경고한다 해도, 별다른 증거 없이 카이루스를 붙들어 둘 수는 없을 거다.
카이루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레나를 도와 순찰 중이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카이루스의 대답을 들은 다나 왓슨이 좋아, 라고 말한 다음 대검으로 카이루스의 양어깨를 툭툭 쳤다.
“좋아. 너는 오늘 하루 동안 내 수행기사다. 따라오도록.”
“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길거리 가판대에서 핫도그 사먹듯 수행기사로 임명된 카이루스는 당황스러운 감정을 애써 숨기며 되물었다.
“걱정하지 마라. 내 수행기사 하루치 일당을 지급해 줄 테니.”
카이루스는 이미 다나 왓슨에게 걸리면 뒈지는 게 분명한 범죄를 저지른 상태다.
그딴 푼돈을 받자고 어마어마한 위협을 감수할 생각은 전혀 없다.
‘심지어 이번 일이 잘 끝나면….’
그 보수로 약속된 게 제국 재무청장이 안전을 보장해 둔 계좌다. 거기에 지금 카이루스가 가지고 있는 돈을 옮겨놓으면?
소박하고 안전한 삶을 원한다면 이 이상 어떠한 노동도 할 필요가 없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 기사단장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니.
“저는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제가 단장님을 제대로 보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카이루스의 말에 다나 왓슨이 히죽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뭐야, 갑자기 겸손한 척하네.”
“솔직히 일당을 주겠다고 하셨는데… 일레나와 저 사이에 오가는 기류를 생각하면 제가 돈이 아쉬울 일도 없습니다.”
카이루스의 말에 다나 왓슨이 흐흫, 하고 웃음을 흘렸다.
“내가 지금 권유하는 걸로 보이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항도 없이 끌려가면 너무 매력 없지 않습니까?”
대답을 들은 다나 왓슨이 픽 웃었다. 카이루스 또한 심하게 저항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훔쳐낸 수장품 목록은 일레나와 만난 다음 즉각 들키지 않게 숨겨두었다.
“이야, 꼴에 매력까지 신경 쓰다니. 기특해라.”
다나 왓슨의 비웃는 것 같은 말에 카이루스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주둥아리야 어떻게든 떠들고 있는 중이지만, 카이루스가 다나 왓슨을 무서워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그는 박물관을 나오면서 다나 왓슨이 뿜어내는 기세에 억눌려 봤다.
‘제아무리 눈과 귀 한 쌍에 코가 달려있다고 해도….’
카이루스의 시선에 그녀가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보일 리 없다.
“뭐어, 너도 일단 작전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알려줄 것은 알려줘야겠지. 수장고에서 도둑맞은 것은 수장품 목록을 제외하면 없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수장품 목록과 명멸이라는 이름을 가진 배틀기어 한 점이다. 하지만 카이루스가 다나 왓슨의 말을 정정해 줄 필요는 없다.
“이상한 녀석이네요. 기껏 박물관에 들어가서 챙겨나온 게 아무것도 없다니.”
“그러게 말이다. 게다가 수장품 목록도 금방 되찾을 수 있어. 책 자체에 특수한 처리를 해두었거든.”
다나 왓슨의 말에 카이루스는 순간적으로 반응할 뻔했다.
‘나, 반응했나? 아니지?’
책에 특수한 처리가 되어있어 추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걱정이었지만, 지금 카이루스의 걱정은 그게 아니다.
다나 왓슨은 초인이다. 카이루스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반응을 보이면 그 순간 알아차릴 것이다.
“야, 이거 받아.”
“…이건 뭡니까?”
온갖 가능성과 걱정에 휩싸인 채 생각을 이어가는 카이루스에게 갑자기 다나 왓슨이 지폐를 몇 장 쥐여준다.
“어떤 개새끼인지 몰라도, 수장고에 불법침입한 개쌍것 때문에 밥을 못 먹었거든. 민가 들어가서 토스트라도 만들어 달라고 해.”
기사단장 밥 먹겠다는데 협조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다.
“알겠습니다.”
다나 왓슨은 자기 밥을 굶긴 사람에게 밥 배달을 시키는 업적을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달성했다.
“설탕 잔뜩 뿌려라. 자고로 인심은 곳간에서 나오고 행복은 설탕에서 나오는 법이야.”
카이루스가 민가의 협조를 구하러 간 사이, 다나 왓슨은 주변을 슥 훑어본 다음 이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다나 왓슨은 처음부터 카이루스를 의심하고 있었다.
‘일단 붙들어 놓고, 살짝 다른 짓을 할 시간을 줘보자고.’
카이루스에게 별로 필요도 없는 지시를 내린 다음, 다나 왓슨은 그의 뒤를 미행했다.
당연히, 카이루스의 실력으로는 다나 왓슨의 미행을 알아차릴 수 없다.
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의심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나 왓슨이 증거 없이 카이루스를 수상하게 여기는 것처럼.
‘수상하다고 광고를 하는 중이잖아.’
카이루스 또한 다나 왓슨이 이딴 쓸데없는 심부름을 시킨 의도를 의심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의 의도는 카이루스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굉장히 간단하다, 진짜로 그냥 민가에 들러 토스트를 만든 다음, 그걸 챙겨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카이루스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진짜로 책을 추적할 수단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카이루스가 사용하는 건틀릿에 장전할 수 있는 특수 플레셰트만 해도 연동되는 장비를 통해 어느 정도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
수장품 목록 같은 중요한 책자에 그 정도 안배를 해두는 것은 별로 이상하지 않다.
‘…씨발.’
카이루스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다음 곧장 근처의 공동주택으로 향했다.
“토스트에는 설탕 잔뜩 뿌려. 아주 절여서 잼을 만들 기세로. 단장님이 그걸 좋아하니까.”
나름의 사례로서 지폐를 내밀자, 집 안에 대피해 있다가 졸지에 협조를 요청받은 사람은 곧바로 토스트를 만들었다.
“아, 이렇게 된 거. 하나 더 만들어라. 그건 설탕 전혀 뿌리지 말고.”
겸사겸사, 카이루스도 토스트로 식사를 떼우기로 결정했다.
즉, 다나 왓슨이 수장품 목록을 추격할 수 있는 수단이 있더라도 대처하지 않기로 한 거다.
‘이제는 운에 맡겨야 할 때가 된 거지.’
지금 카이루스가 내린 결정으로 인해 시미드 캘로그는 반란 계획에 다소의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다.
물론 카이루스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황제 멱 따겠다고 달려드는 게 자신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당연히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습격받은 시미드를 살려내고, 장미정원에 가짜 정보를 보내고, 결국 레잔틴까지 와서 기사단장 코앞에서 수장고를 털었다.
‘근데 일이 이렇게 굴러가는 걸 어떻게 하라고.’
사실상, 카이루스가 포기하는 것은 안전계좌뿐이다. 그리고 포기하더라도 수장품 목록을 회수할 가능성은 있다.
‘다나 왓슨이 허세를 부린 거라면.’
그녀가 단지 카이루스를 떠보기 위해 거짓된 정보를 말한 것뿐이라면.
지금 카이루스가 순순히 책자 회수를 포기하고 토스트를 사서 가면 한 방에 두 마리 새를 잡게 된다.
다나 왓슨의 의심도 피하고, 나중에 천천히 책자를 회수할 수도 있을 테니까.
“다 준비되었습니다. 뭐, 마실 건 필요 없으십니까?”
카이루스는 음, 하는 소리를 낸 다음 말했다.
“커피 있으면 두 잔.”
커피와 토스트를 받은 카이루스는 다시금 다나 왓슨이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말씀하신 토스트입니다. 그리고 마실 건 그냥 커피를 챙겨왔습니다.”
주변을 살피고 있던 다나 왓슨이 고개를 끄덕이고 턱짓으로 벤치를 가리켰다.
“거기에 둬.”
카이루스는 시키는 대로 했다. 토스트와 커피를 내려놓자마자, 다나 왓슨이 벤치 한쪽에 앉더니 다리를 꼬았다.
“의심해서 미안했다. 대신이라고 하긴 좀 뭣 하지만, 재주 한 번 부려봐라. 내가 잠깐 봐줄 테니.”
다나 왓슨은 성격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나름의 규칙은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본능에 의존해 카이루스를 의심했던 그녀 입장에서는 군말 없이 요구에 응한 카이루스에게 간단하게나마 사과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사과의 방식으로 선택한 게 바로 이거다.
“감사합니다.”
카이루스는 군말 없이 명멸을 뽑아들었다. 이런 기회는 좀처럼 없다.
다나 왓슨은 별거 아닌 사과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나 왓슨의 관점일 뿐이다.
“흠, 제풍은 한참 전에 완성했는데… 섭운은 전혀 익히지 않았군. 직계는 확실히 아니구나. 하긴, 직계가 살아있을 리가 없지.”
카이루스가 검을 뽑아들기 무섭게 다나 왓슨의 입에서 평가가 나왔다.
카이루스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녀의 앞에서 검을 제대로 뽑아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여자는 정말로 검을 뽑는 모습 하나만 보고 카이루스의 경지를 꿰뚫어 본 것이다.
‘만약 내가 섭운을 익히고 있었다면?’
다나 왓슨이 알아차렸을 거다. 그녀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섭운부터는 직계만 익힐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잘못했으면… 여기에서 내 정체를 들킬 뻔했어.’
원래 큰 실수는 더럽게 어이없이 발생하는 법이라지만, 이건 진짜 너무 허탈하게 들통 날 뻔했다.
‘섭운을 익힐 수 있게 되어도….’
과연 바로 섭운을 익히는 게 현명한 행동인지 아닌지, 카이루스는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물론 다나 왓슨이 발로른 제국의 기사단장이라서 한눈에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란 공화국을 포함한 타국의 실력자들은 카이루스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봐도 다나 왓슨처럼 정확하게 맞추지는 못할 거다.
“탁월풍부터. 제풍의 기본이니 잘 할 수 있겠지?”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제풍이라면 제대로 싸워야 하는 상대가 있으면 항상 사용하는 기술이다.
카이루스가 제풍을 위해 바람을 움직이자, 10초 정도 구경하던 다나 왓슨이 얼굴을 구겼다.
“아이고 이놈아. 맨날 어르고 달래고 구슬리기만 하며 시간을 다 보낼 셈이냐?”
검을 휘두르던 카이루스가 다나 왓슨의 말에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그게 무슨.”
자리에서 일어난 다나 왓슨이 벤치 옆에 기대두었던 에인젤린의 해답을 들어올렸다.
“필요할 때는 말이지.”
다나 왓슨이 대검을 든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런 식으로! 혼쭐을 내줘야 할 때도 있는 거야!”
바람의 흐름이나 결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폭급한 휘두름 한 번에, 카이루스가 제풍으로 빚어낸 바람을 갈가리 찢어져버렸다.
그리고, 다시금 이어지는 한 번의 휘두름에 흐름을 잃고 날뛰던 바람이 강제로 끌려가듯 움직인다.
카이루스는 잠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 꼴을 바라봤다.
그가 만들어낸 탁월풍이 다나 왓슨에 의해 박살나버린 것처럼, 그의 상식 또한 눈앞에서 박살나고 있었다.
‘저건 바람을 다루는 게 아니야.’
바람에 목줄을 채워서 질질 끌고 다니는 수준이다. 제풍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카이루스가 해왔던 제풍이 아니다.
순간, 카이루스는 다나 왓슨의 행동을 부정할 뻔했다.
[저런 건 제풍이 아니야. 제풍의 묘리와 이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힘만 쎈 주제에 나에게 제풍을 가르치려 들어?]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한 다음 카이루스의 머릿속에는 다시금 새로운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서, 제풍이 뭔데?]카이루스는 당연히 알고 있다. 그는 제풍을 완성했으니까.
제풍이 뭐냐? 라고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선명하다.
[공기를 움직여 바람을 만들어내고, 바람을 자신의 뜻 아래에 두고 통제하는 것.]그렇다면….
‘저런 방법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는 거잖아.’
공기를 움직여 바람을 만들어냈고, 그 바람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었다.
제풍의 본래 의미를 생각해보면….
다나 왓슨의 행동은 몇 년 동안 제풍을 수련하며 얻은 심득을 전부 부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제풍이 아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