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69
69화 붉은 괴물
카이루스는 가까스로, 다나 왓슨의 기세가 억누르고 있는 일대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크하악! 허업…!”
세력권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하자마자, 카이루스는 바닥에 대가리를 처박는 것처럼 쓰러진 다음, 크게 호흡하며 공기를 마구 빨아들였다.
제대로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카이루스는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여기에서 오래 시간을 쓸 수 없다. 계속 이동해야 한다.
“일단!”
카이루스는 미리 봐두었던 공원의 공용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닫아 건 다음 변기 저수조 뚜껑을 열었다.
저수조 안에는 방수처리가 된 가방이 들어있었다. 카이루스는 그걸 꺼내 안에 있는 옷으로 갈아입고, 세면대의 거울을 보며 약품을 이용해 위장을 지웠다.
‘최소한, 내가 이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본 사람은 없었지.’
적엽기사단에서 통행금지령도 내린 모양이다. 군 소속이 아닌 사람은 누구든 돌아다니다 걸리면 그 자리에서 구금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해도, 곧바로 병사들이 배치되지는 않았다. 물리적인 거리가 있고, 챙겨야 하는 장비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레잔틴 시의 백성들을 이런 지시에 철저하게 복종했다. 치안이 뛰어난 도시답게, 공권력의 지시에 조금의 의문도 품지 않은 것이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카이루스를 본 사람도 없었다.
‘문제는….’
공용 화장실 밖에서 절그럭거리는 갑옷소리와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카이루스가 위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는 사이 군 병력이 도착한 것이다. 단순히 지역 통제만 하는 게 아니라, 수색하며 거수자도 색출하는 중이다.
몇 분 뒤면 카이루스가 잇는 화장실로 들이닥칠 거다.
위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었다 해도 그 흔적이 이렇게 떡하니 남아있으면 의미가 없다.
‘잘못하면 화장실을 연 병사들을 죽여야 하는데.’
카이루스가 여지껏 살면서 죽인 병사들은 많다. 이제 와서 갑자기 죄책감 때문에 고민하는 게 아니다.
“와 씨, 이거 너무 위험하다. 죽이면 나도 죽는 거 아니야?”
박물관 안에서 벌였던 일과는 상황이 다르다.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이미 다나 왓슨은 전투 준비 및 지시 하달까지 완전히 마쳐두었을 거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나 왓슨이 출동을 지체할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다.
카이루스가 여기에서 일을 벌이면 다나 왓슨이 도착해 그의 머리통을 짜개놓는 데에는 10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옷은.”
카이루스는 갈아입은 옷을 담아두고 있던 방수포를 다시금 활용해 옷을 감싼 다음, 변기 저수조에 집어넣었다.
변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들을 처리하고 있으려니, 절그럭거리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카이루스는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잠그고, 숨을 죽인 채 다음에 이어질 일을 대비했다.
‘문이 열리면.’
아마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카이루스는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와중에 공중화장실에서 발견되었기에 거수자로 취급된다.
발견되는 즉시 군인은 구속을 시도하는 동시에 화장실도 수색할 것이다.
‘군인이 본격적으로 수색한다면….’
변기 저수조에 숨겨놓은 옷가지나 미처 처리하지 못한 위장의 잔여물 같은 건 들통 나게 된다.
그 뒤에 일어나게 될 일은 뻔하다. 몸 수색이 이어지면 카이루스의 품 안에 있는 수장품 목록이 들키게 되고….
‘죽는다.’
병사를 죽이지 않아도 다나 왓슨에게 죽는다.
차라리 병사가 문을 열자마자 죽여버리고 도주를 시도하는 편이, 희박하게나마 살아남을 확률이 있다.
물론, 그 확률이라는 건 약물주사형을 당했는데 죽지 않을 확률과 비슷하다는 점이 문제다.
카이루스는 천천히 허리춤으로 손을 옮겨 명멸을 뽑을 준비를 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하? 너 뭐야. 왜 여기 있어.”
카이루스는 검을 뽑아 휘두를 뻔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확인하고 살짝 당황했다.
“일레나. 반갑다. 무슨 일이야.”
살았다. 카이루스는 순간 온몸의 긴장이 다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다 있어. 나는 적엽기사단 소속 기사야.”
지금은 비상사태고, 레잔틴 시의 모든 병력은 적엽기사단장 다나 왓슨이 총지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당연히 적엽기사단 소속의 일레나 캘로그 또한 일시적으로 휴가를 반납하고 수행할 수 있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물론, 그녀가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분수광장 공용화장실에 숨어있는 카이루스를 발견하게 된 것은 우연이 맞다.
“…뭐라고 해야 하나.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려서 말이지.”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쯔, 하고 혀를 찼다.
“베넷 시가 얽혀있는 일이겠지?”
일레나가 팔을 꼰 채 대화를 나누는데,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캘로그 경, 혹시 저희가 도울 일이 있겠습니까?”
그 목소리에 일레나가 태연한 어투로 밖을 향해 지시했다.
“없어. 각자 지정된 위치에서 임무 수행에 집중하도록.”
견습이라 해도 기사는 기사다. 평범한 병사들은 견습기사의 지휘를 무시할 수 없다. 아니, 지금 실질적으로 이 분수공원의 병력을 통제하고 지휘하고 있는 게 일레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넌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박물관 털이가 실패라도 했나봐?”
카이루스는 순간 움찔할 뻔했다. 하지만, 카이루스는 일레나에게 레잔틴 시에서 그가 뭘 하려고 했는지 밝힌 기억이 없다.
일레나는 그냥 농담하는 거다. 카이루스는 그렇게 결론짓고는 그녀를 향해 코웃음 쳤다.
“무슨 소리야. 이미 다 털어서 배틀기어를 50점 넘게 뽀렸다.”
“그러시겠지.”
일레나는 카이루스의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단장님 이름으로 내려온 통행금지령도 무시하고 돌아다닐 정도면 돈이 엄청 되는 일인 모양인데.”
일레나의 질문에 카이루스가 으음, 하는 소리를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잘 풀렸다. 보수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카이루스의 말에 오호, 하는 소리를 낸 일레나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너 여기에서 크게 오해받았을 거야. 최소 구금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단장님의 일격에 즉사했겠지.”
일레나의 말은 구구절절 순도 100%짜리 진실이었기에, 카이루스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일레나는 침묵하고 있는 카이루스의 태도에 묘한 만족감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목숨을 구해줬다는 뜻이니. 부스러기 정도는 요구할 수 있잖아.”
“캘로그 가문 외동딸이 베넷 시의 범죄자 뒷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탐내겠다는 거냐.”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캘로그 가문의 돈은 내 돈이 아니잖아. 어쩌다 보니 베넷 시까지 따라가게 되었는데, 나도 생활비는 좀 벌어야지.”
카이루스가 일레나 덕분에 살아난 건 사실이다. 지금 당장만 하더라도 카이루스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던 긴장이 탁 풀려서 급격한 피로가 몰려오는 중이니까.
“알았어. 섭섭지 않게 챙겨줄 테니 걱정하지 마.”
“좋았어. 일단, 너는 내가 이 상황 처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지원을 요청한 거고, 너는 거기에 응한 거야. 이해했지?”
일레나는 카이루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른다.
사실, 카이루스가 황립박물관을 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렇게 협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게 갑자기 다 무슨 난리야? 갑자기 병사들이 돌아다니고 통금 신호음이 울려퍼지길래 간이 떨어질 뻔했다.”
카이루스의 질문에 일레나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누군가 레잔틴 황립박물관에 침입했어.”
“저런. 기사단장이 지키는 박물관을 노렸다는 거야? 단단히 미친놈이군.”
“내 말이.”
일레나는 그 미친놈과 자신이 대화 중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카이루스도 진실을 말해줄 이유가 없다.
“큰일이었군.”
“내가 먼저 널 발견하지 못했다면 용의선상에 놓였을걸.”
일레나는 말을 마치고 슥 카이루스의 검을 살폈다.
“그 배틀기어는 뭐야?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카이루스는 허리춤에 걸린 검을 태연하게 뽑아 보여주며 말했다.
“원래 베넷 시에서는 이 검을 사용했었어. 이번 일은 꽤 중요한 작업이었으니까, 베넷에서 공수해왔지.”
“아, 그래?”
일레나가 볼 때에도 이전까지 카이루스가 사용하던 색유리보다 지금 사용하는 모자이크 칼날의 명멸이 더 뛰어난 배틀기어 같았다.
고민하던 일레나가 슬쩍 제안을 하나 한다.
“그럼 있지. 네가 이전까지 쓰던 배틀기어를 내가 좀 써도 될까?”
카이루스는 일레나의 제안에 잠깐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명멸을 사용한다면….’
색유리는 훌륭한 출력을 자랑하지만, 애초에 명멸도 그 정도의 출력은 어렵지 않게 뽑아내는 데다가 고유한 능력까지 있는 걸작이다.
카이루스는 협주가 불가능하니, 배틀기어를 여러 개 가지고 있어봤자 의미가 없다.
일레나도 그걸 알고 있으니 이런 청을 하는 거다.
“그러지 뭐. 일 다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면 넘겨주마.”
일레나에게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고, 한동안 유용하게 사용했지만 색유리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으니까.
그녀의 배틀기어도 나쁜 편은 아니지만, 색유리와 기교하면 다소의 흠결이 있는 배틀기어다.
카이루스는 자신에게 검술을 배우겠다는 사람에게 필요한 장비 정도는 충분히 베풀어 줄 아량이 있다.
“고마워.”
게다가, 당근을 줘야 일레나도 카이루스에게 더더욱 적극적으로 협조해 줄 테니까.
카이루스 입장에서는 일레나가 먼저 이런 요청을 한 게 반가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난 뭘 도와주면 되는 건데?”
일레나가 슥 분수광장을 훑은 다음 말했다.
“순찰. 병사들에게는 따로 지시를 해둘게.”
말을 마친 다음, 일레나가 자신의 주머니를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 카이루스에게 넘겨주었다.
“이건?”
“임시 통행허가증. 적엽기사단의 엠블럼과 캘로그의 인장이 찍혀있어.”
허가증에는 통행 목적 또한 적혀있다. 적엽기사단 임무수행지원이라고 적혀있다.
이걸 보여주면 카이루스를 의심하거나 방해하는 군인들은 없을 거다.
‘운 한번 더럽게 좋았군.’
카이루스는 그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을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즉시 주둔지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지금부터는 군의 순찰에 협조하며 시간을 보내다, 적당히 눈치 봐서 빠져야 한다.
“으잉? 넌 뭔데 여기에서 싸돌아다니고 있냐. 지금 통금이야.”
화장실을 나와 30분 정도 순찰을 이어가던 카이루스는 등 뒤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로 인해 제자리에서 펄쩍 뛸 뻔했다.
카이루스는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누가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제복을 갖춰입은 다나 왓슨이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카이루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적엽기사단장님. 일레나의 요청을 받아 미약한 힘이나마 도움이 돼보려고 왔습니다.”
카이루스의 말에 다나 왓슨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래?”
카이루스가 임시허가증을 꺼내들자 곧바로 다나 왓슨이 손을 휙휙 저었다.
“그딴 거 볼 필요 없어. 동작 멈추고 양팔 벌려.”
“네?”
카이루스의 몸이 순간적으로 긴장한다.
“네? 네는 무슨 씨발놈의 네야. 부하의 지인이니 한 번은 봐준다. 대가리 터지기 싫으면 양팔 벌리고 움직이지 마.”
척척 카이루스에게 다가온 다나 왓슨이 양팔을 벌린 카이루스의 몸수색을 실시한다.
“배틀기어가 수상할 정도로 좋구나.”
다나 왓슨의 손이 카이루스의 허리춤에 걸린 명멸로 향했다.
“연이 닿아서 구한 물건입니다.”
“그렇겠지. 원래 주인 무덤은 만들어 줬냐?”
다나 왓슨은 카이루스의 말에 짤막하게 대꾸한 다음 몸수색을 계속한다.
카이루스 입장에서는 굶주린 사자가 얼굴을 혀로 핥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수장품 목록 책자는 따로 빼두었으니까.’
안전이 확보되면 그 즉시 해야 하는 일이 바로 빼돌린 물건을 숨기는 일이다. 이 기본적인 법칙을 카이루스가 어겼을 리 없다.
몸수색을 당해도 수상한 점이 발견되지는 않을 거라 카이루스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