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04
104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처음에는 귀찮아서 내쳤지만, 두고 보니 쓸 만한 재목이다. 그래서 담소나 나누자며 말을 건네 온다.
이런 뜻과 다르지 않다.
헌데 자신은 정 반대로 생각했다.
애초에 자신이 필요해서 이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이라면 녹영철을 쓰지 않고도 혈황검을 상대할 수 있는 명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노인의 판단과 자신의 판단은 처음 만나는 순간에도 일치하지 않았고, 지금도 일치하지 않는다.
처음 판단은 노파의 오판이었고, 나중 판단은 자신의 오판이다.
이곳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자신이라는 사람을 알아봤고,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할 정도라면 이곳은 결코 범상한 곳이 아니다.
노파가 휘적휘적 걸으면서 말했다.
“따라와라.”
또르륵!
어둠 속에서 차 한 잔이 건네졌다.
마을에서 불을 밝힌 곳은 딱 두 곳이다.
쇠를 녹이느라 화로를 켜놓은 곳, 또 자정 점심을 짓느라 아궁이에 불을 지핀 부엌.
그 외에 곳은 오로지 달과 별이 밝혀주는 빛으로 사물을 식별해야 한다.
노파는 이런 생활에 익숙한지 어둠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비오신장에게서 육양삼성을 제대로 배운 모양이구나.”
“육양삼성을 아십니까?”
“그 끝이 여기다.”
“……”
해과월은 침묵했다.
사부는 육양삼성의 끝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자신도 하지 못한다. 육양삼성을 사부보다도 더 깊이 수련해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히 그 끝이 어디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육양삼성은 끝이 없다. 삶이 지속되는 한, 육양삼성도 끝나지 않고 계속 된다. 먼 후일, 죽음에 이르러서야 종착점, 마지막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노파는 정말로 육양삼성의 끝이 있다고 보는가?
후루륵!
그는 뜨거운 차를 뜨거운 줄도 모르고 단숨에 들이켰다.
“믿을 수 없지?”
“그렇습니다.”
“비오신장도 그랬어. 믿을 수 없었지. 겨우 코끼리 꼬리 정도 만진 주제에 육양삼성을 다 안다는 듯이 설치고 다녔어. 그래서 사기꾼이라고 하는 게야. 크크크!”
“전 여기서 끝을 보지 못했습니다. 볼 수 있겠습니까?”
“쯧! 젊은 놈이 인내심하고는…… 기다려라. 떠나는 널 불러 세웠을 때는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설마 차나 마시자고 불렀겠냐? 크크크!”
해과월은 침묵한 채 차를 마셨다.
그의 기다림은 한두 시진으로 끝나지 않았다. 장장 나흘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는 노파를 재촉하지 않았다.
노파 말대로 떠나는 사람을 불러세웠을 때는 그만한 목적이 있지 않겠나.
아쉬운 쪽은 자신이 아닌 것 같다.
그는 혹시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나 싶어서 망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탕탕! 탕탕! 탕탕탕!
몹시 활기차고 건장한 소리가 들려온다.
판단은 틀리지 않다.
망치질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쇠를 아주 잘 다루는 장인들이다. 하지만 저들 중에 미쳐있는 사람은 없다.
만수 해달막, 본인을 만나고 싶다.
무엇 때문에 이리 시간이 지체되는지 모르겠는데, 노파가 다신을 불러낼 때는 만수와 직접 대면하는 자리가 될 게다.
노파는 떠나는 해과월을 붙잡은 이후부터 한 잠도 자지 못했다.
밤이 가고 아침이 와도 뜬 눈으로 밝은 태영을 맞이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취침을 하는 한 낮을 뜬 눈으로 밝혔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시죠.”
“됐다.”
“건강 상하십니다. 잠시라도 눈을 붙이세요.”
“나는 됐다. 그보다 소식은?”
“아직……”
“쯧! 무슨 소식이 이리 늦는지……”
노파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마늘을 깠다.
매운 마늘 냄새가 알싸하게 번져갔다.
“그놈은? 아무 말 없고?”
“네. 사흘 내내 밖에 나오지도 않고 눈만 감고 앉아있습니다.”
“불평불만도 없고?”
“네.”
“흥! 육양삼성을 제대로 깨우친 건 맞군. 사기꾼 놈이 아이는 제대로 키웠어.”
노파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하지만 깊은 산속은 쥐죽은 듯 적막하기만 하다.
그날 저녁, 노파의 손에 한 통의 밀지가 쥐어졌다.
노파는 밀지를 단숨에 펼쳐 읽었다.
“이게…… 사실이더냐?”
“네.”
“저놈이 천살검을 만들어? 혈황검을 잘라?”
“확실합니다.”
“음!”
노파는 침음했다.
산속 마을은 무림 동향에 대해서 무지하다. 전혀 알지 못한다. 무림이 뒤집어지든 엎어지든 관심도 없다. 허나 관심을 가져야 할 자가 나타났다. 그래서 무림 동향을 조사해봤다. 헌데 이건 뭔가? 저 놈은 무림을 뒤집은 중요 변수가 아닌가!
무림 동향만 조사한 것이 아니다.
“비오신장이…… 죽었군.”
“그 아들이 청천맹 단철도감으로 가있습니다.”
“흥!”
노파는 코웃음을 쳤다.
비오신장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판이다. 그 아들이 단철도감을 한다고 해도, 무림 제일의 장인이라고 해도 노파만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파는 해과월의 약력을 알았다.
그가 비오신장의 품에서 벗어나 산 속 깊이 숨겨진 이 마을을 찾아오기까지의 전 역정을 알았다.
“확실하군. 확실해.”
노파가 밀지를 움켜잡고 부르르 떨었다.
해가 저문다.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 활동할 시간이다.
세면을 하고, 그들의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칠 쯤이면 해가 완전히 기울어진다.
밤이 찾아온다.
그들은 캄캄한 밤길을 더듬어 일터로 간다.
나무를 가져오는 자, 쇠를 가져오는 자, 철광석을 짊어지고 오는 자…… 각기 맡은 일을 충실히 한다.
그런데…… 오늘만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해과월은 경건하게 들어서는 네 사람을 무심히 쳐다봤다.
그들이 나무로 만든 목간통을 들고 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십여 명쯤 되는 사람들이 물지게를 짊어지고 와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뜨거운 물을 쏟아 부었다.
“목욕을 하시죠.”
“……”
“만수님을 만나러 가셔야 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목욕을 해주십시오.”
얼굴에 굵은 주름이 팬 중년인, 얼핏 봐도 쉰은 됨직한 중년인이 최대한 공경스럽게 말했다.
촤악! 촤아악!
해과월은 저들이 요구한 대로 목욕을 했다.
저들은 오늘 하루 일과를 완전히 접었다. 뿐만 아니라 횃불까지 살라서 마을 전체를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무엇이라도 딱히 집어서 말할 수는 없는데, 마치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목욕을 했다. 중년인이 경건한 마음으로 목욕을 해달라고 주문했지만, 그 말을 하지 않았어도 그런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때를 씻어냈다.
한 마을 전체가 의식을 치른다.
자신과 만수가 만나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일손을 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자신을 기다린다.
이것이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일일 게다.
목욕을 한 후에는 정성스럽게 만든 옷을 입었다.
자신이 조그만 움막에서 기다리는 사흘 동안 마을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이 옷을 지었을 게다.
옷에서는 새로운 옷감 냄새가 풀풀 풍긴다.
바늘땀도 금방 기어서인지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옷을 입고 앉아서 기다렸다.
“아침을 올리겠습니다.”
목욕을 권했던 중년인이 작은 다반을 가져왔다.
찻잔이나 올려놓으면 딱 맞을 다반에는 잣죽 한 그릇이 덜렁 놓여 있었다.
“죽입니까?”
“속이 든든하면서도 편한 게 좋겠죠. 죽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만수 어르신을 만나는데 절차가 까다롭군요.”
“이곳을 어찌 알았는지, 몇몇 장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소협의 사부이신 비오신장도 찾아오셨고, 장인 수백 명을 거느리고 있는 천수장도 찾아오셨죠.”
“아!”
“그 분들 중 어느 분도 만수님을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까.”
해과월은 할 말을 잃었다.
사부가 만수 해달막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허나 놀랍지는 않다. 만수가 사부의 사형이라면 한 번이 아니라 몇 십 번이라도 방문했을 법 하다.
천수장이 방문한 것도 놀랍지 않다.
만수 해달막은 일대(一代) 도장(刀匠)이다.
쇠를 만지는 사람으로서 궁극의 정점을 밟아본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성격이 괴팍하여 극을 이루자마자 은둔해 버렸지만…… 그러지만 않았다면 천수장이나 비오신장 못지않게 만수라는 별호가 중원을 떨쳐 울렸을 게다.
중년인이 다반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더 거쳐야 할 예식 같은 것도 없고, 까다로운 절차도 없습니다. 다만 어르신을 만나기 전에 경건한 마음만 가지면 좋겠다는 게 저희 바람입니다. 편한 마음으로 식사하십시오. 식사만 마치시면 바로 모시겠습니다. 그럼.”
중년인이 일어섰다.
그는 차분한 마음으로 죽 한 그릇을 모두 비웠다.
사부도 만나지 못했고, 천수장도 만나지 못한 분을 만나 뵈려 간다. 대단한 영광이다. 하지만 어쩐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마을 전체가 정형화되어 있다.
낮과 밤을 거꾸로 살아간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어느 대장간이나 다를 바 없다.
평범한 철로 천고의 절검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들이 보여준 손길은 자신이 깨우친 바에도 훨씬 못 미친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같은 길을 걸었던 선인(先人)을 만난다는 심정으로 담소나 나눌 생각이다.
‘사부님을 사기꾼이라도 몰아붙이는 분이니 대화가 상당히 껄끄럽겠군. 후후! 사부님…… 귀가 간지러워서 어쩌시나. 구천에는 귀를 후벼줄 사람도 없을 텐데.’
5
칠흑같이 어두웠던 마을이 대낮처럼 환하다.
마을 사람들은 제각각 횃불 하나씩을 들고 어깨가 닿을 정도로 밀착되어 있다.
횃불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마치 불의 통로를 걷는 느낌이 든다.
통로 한 가운데는 에의 그 노파가 서있었다. 손에 죽장을 집고, 다른 손은 허리에 얹은 채 구부정한 모습으로 불의 통로 한 복판에 서있었다.
“헐! 말끔해졌구나.”
노파가 단정한 차림새로 나서는 해과월을 보고 만족한 듯 웃었다.
“오늘은 꽤 밝군요.”
해과월은 과일 열매가 맺힌 것처럼 주렁주렁 늘어서 있는 횃불을 보면서 말했다.
“어둠에도 빛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았느냐?”
“……?”
일종의 선문답인가? 어둠은 어둠일 뿐이다. 그곳에 어떤 빛이 남아 있겠나. 빛이 스며드는 순간, 어둠은 존재를 잃는다. 이 세상은 어둠이냐 빛이냐 하는 두 가지만 있을 뿐, 두 가지가 같이 혼재하는 상황은 없다.
물론 어둠도 보고 빛도 볼 수는 있다.
지금처럼 횃불을 밝히면 빛이 닿는 곳은 밝음이요, 닿지 않는 곳은 어둠이 된다.
이 공간이 무척 좁아서 시야로도 식별이 가능하다.
단지 그 차이 뿐이다.
횃불은 빛을 뿌리는 영역이 좁아서 어둠을 볼 수 있다. 낮은 태양의 세계다. 태양이 뿌리는 빛이 너무 밝아서 어둠이 보이지 않는다. 어둠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어둠은 원래 있는데, 빛이 짓눌러 버린 것이다.
이들이 사물의 본성은 어둠에 있다고 보는 측면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은 말이라면…… 글쎄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어둠 속에도 빛이 있다.
해과월이 노파의 말을 되씹어 보고 있을 때, 노파가 말했다.
“우리 같은 무지렁이야 어둠이 밝히는 빛을 어떻게 보겠나. 오직 그 분만이 보셨지. 키키키! 사실 그 분이 봤는지 못 봤는지도 알 수 없어. 봤다고 하니까 그래 봤구나 하는 거지, 누가 본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
해과월은 멍청해졌다.
노파가 하는 말은…… 이게 뭔가? 이건 선문답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오묘한 선의 세계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말 그대로 어둠이 밝히는 빛을 봤냐는 것이다.
이런 엉뚱한 말이 어디 있나.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은 십 년, 백 년이 지나도 어둠일 뿐이다. 그곳에서 산다고 해서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다. 어둠을 볼 수 있는 눈은 퇴화하고, 다른 감각기관이 활성화되어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것은 어둠이 빛을 발산한다는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노파는 말 그대로의 어둠과 빛을 말하고 있다.
이런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 어둠이 발산하는 빛을 본 적이 없으니, 앞으로도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떠한 말도 입에 담을 수 없다.
어느 한 분야에 몰입하다보면 간혹 미치는 경우도 있다.
일에 미친다는 좋은 의미가 아니라 완전히 정신이 빠져나가버린 광인(狂人)을 말하는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