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48
148
사마소는 고민했다.
죄인 취급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권주는 마다하고 벌주만 좋아하는 자도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주한극에게 잡혀있다고 해서 망치를 들었다는 건 제대로 된 설명이 아니다.
보검을 만들지 않았어야 한다. 그런데 만지고 있다. 만들고 있다.
다시 말하면 주한극이 해과월을 움직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운벽슬이 해과월을 움직였다. 그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손에 쥐었다.
‘내가 모르는 게 있어!’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다.
청천맹 비망의 눈은 천하를 뒤덮고 있다. 온 천하를 오시하고 있다. 개방이나 하오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캐내고 있다.
그런데 해과월에게 일어난 일을 알지 못했다.
“흐음!”
사마소는 신음을 흘렸다.
무엇인가가 해과월의 발목을 움켜쥐고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것이 있었군. 하긴…… 지난날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동안 놈에게 너무 무신경했어.’
자신이 해과월을 보지 못한 기간…… 그 기간은 지난 일 년간이다. 청천맹이 손아귀에 들어온 줄 알고, 외총을 확장시켜 나가는 데 온 신경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 당시, 해과월이란 존재는 발톱에 낀 때만도 못했다.
지난 일 년 간, 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 한은 놈을 빼내올 수 없다. 그리고 놈을 빼내지 못한다는 것은 맹주를 기망한 꼴이 된다.
맹주는 보검 몇 자루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다. 해과월이 주한극에게 계속 보검을 만들어 준다면 보나마나 엄청 대노할 것이다.
그때는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사마소가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듣고 있나.”
“네!”
음침한 기둥 뒤에서 소름끼치는 죽음의 음성이 들려왔다.
“해과월이 걸어온 길을 낱낱이 파악해라.”
“어디까지 파악합니까?”
“샅샅이. 놈의 밑바닥까지.”
“알겠습니다.”
“하나도 빼지 말고, 숨소리조차 놓치지 말고…… 놈이 흘린 모든 것을 살펴라.”
“넷!”
대답 소리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비망이 해과월에 대한 소식을 물어올 것이다. 무엇이 해과월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 알아올 것이다. 운벽술이 쥐고 있는 패를 읽게 되리라.
사마소는 해과월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렸다.
비망이 소식을 물어올 때까지는 아무런 수단이 없다. 그러니 그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이럴 때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게 낫다.
그는 단철장으로 갔다.
단철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사곡에서 돌아온 단철도감 수교군과 만수 해달막의 세 아들이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수교군이 머리 숙여 인사했다.
‘풀이 죽었군.’
사마소는 수교군을 힐끔 쳐다봤다.
수교군은 이문장 사건을 본 후에 많은 충격을 받은 듯하다.
하기는 같은 장인으로써 충격을 받지 않는다면 그게 사람인가? 당연히 충격을 받아야 한다.
또 그 일은 가볍게 흘려서는 안 된다.
수교군이 누구인가? 청천맹 단철장의 도감이다. 그런 자가 한낱 무명배의 제련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남들이 뭐라고 하겠나. 당장 손가락질을 하지 않겠나.
수교군을 해과월에게 비교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수교군뿐만이 아니다. 중원 장인들 중에 빼어나다는 자를 모두 떠올려봐도 해과월을 능가할 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당대 제일의 장인이라는 천수장이 손을 들었는데, 누가 상대하겠나.
이게 현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론적으로는 그래서는 안 된다. 단철장이 중원 제일의 대장간이니 단철장의 주인인 도감도 중원 제일이어야 한다.
해과월 정도는 눈 아래 굽어봐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해과월이 명검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단철장에서도 만들어야 한다.
녹영철을 얻기 위해서 사곡을 멸살시켰다.
그랬다면 더더욱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명검을 만들지 못한다면 한심해서 목구멍에 밥인들 들어가겠나.
수교군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
‘후후! 그래도 막다른 궁지에 몰린 것은 아는가. 그래도 비오신장의 자식이라 이건가.’
사마소는 감정 없는 눈길로 수교군을 쳐다봤다.
수교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다. 세상의 고민이란 고민은 모조리 껴안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눈동자는 썩은 동태눈처럼 힘없이 풀려있다.
손가락으로 툭 밀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다.
사마소는 수교군의 내심을 짐작했지만 일부러 모른 척 했다.
수교군은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이게 그 말 많은 녹영철인가?”
사마소가 물었다.
단철장 한 가운데, 깨끗한 철마루 위에 녹색 기운이 운무처럼 피어나는 쇳덩이가 놓여 있다.
얼핏 봐도 심상치 않은 쇳덩이다.
“네. 그렇습니다.”
수교군이 힘 빠진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럼 이제 명검만 만들면 되겠군. 자네와…… 당신들 세 사람이면 만들 수 있겠지?”
“그럼요! 만들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대답을 잃은 수교군 대신 해망이 음성 높여 말했다.
해망은 눈가에 경련까지 일으키고 있다.
수교군과는 전혀 다른 눈빛이다. 수교군이 풀 죽어 있다면, 그는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눈길이 녹영철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사마소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에는 잠시 그를 쳐다봤지만, 곧 다시 녹영철에 시선을 꽂았다.
해망의 온 몸이 불덩이에 휘감긴 듯 하다. 천고의 보검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쇠가 눈앞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쇠가 존재하고, 그 쇠가 손에 들어왔다.
무엇을 더 망설이는가. 무엇을 더 생각하는가.
해망이 내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검이 나오려면 얼마나 걸릴까?”
해과월은 하루 만에 만들었다. 어떤 대답을 해도 해과월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열흘은 잡아야 합니다.”
해망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자신 있게 말했다.
순간, 사마소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눈빛이 아니다. 화린(火燐)처럼 몸에 찰싹 달라붙어서 아무리 끄려도 해도 꺼지지 않는 뜨거운 광망이다.
파아아앗!
이글거리는 눈빛이 해망의 전신에 꽂혔다.
해망은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눈길은 녹영철에 붙박여 있었다. 하지만 강렬하게 쏘아져 오는 살기를 느끼는 순간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고, 눈길을 돌린 곳에서 살기를 봤다.
– 죽고 싶으냐! 이 자리의 주인이 누구냐!
사마소의 눈길에는 분명한 뜻이 담겨 있었다.
“헉! 죄, 죄송합니다!”
그는 급히 허리를 숙였다.
사마소는 여전히 살기어린 눈빛으로 해망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검이 나오는데 얼마나 걸릴까?”
방금 전에 물었던 말이다.
“보름…… 아니, 한 달은 걸립니다.”
수교군이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예전 같으면 사마소의 응원이 참으로 고마웠겠지만, 지금은 아무런 감흥도 치밀지 않는다. 그저 그렇다.
“무슨 일이 있었나?”
“네? 일이라뇨? 무슨……?”
“힘이 너무 없어보여서 말이야.”
“아, 네…… 머리가 조금 아파서. 아마 노독이 풀리지 않았나 봅니다.”
“노독? 후후후! 재미있는 말이군. 노독이라.”
사마소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말한 대로 맹주님께 보고하지. 한 달이면 좋은 검을 볼 수 있으실 거라고. 부담 갖지 말고 편히 만들게. 이번에는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녹영철이야 또 구하면 되니까.”
녹영철은 없다! 녹영철은 또 구할 수 없다!
시험 삼아 편히 만들라고? 그럴 수 없다. 이번에 명검을 만들지 못하면 평생 만들지 못한다. 녹영철도 없을 뿐더러, 설혹 있다고 해도 자신에게 주지 않는다.
이번에 보검을 만들지 못하면 평생 보검을 만들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목숨이…… 걸렸다……’
그는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명확히 알았다.
다른 때 같으면 즉각 온 몸으로 반응했을 것이다. 무섭게 긴장했을 것이고, 살기 위해서 바동거렸을 게다.
지금은 이런 느낌에 어느 정도 숙달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죽음의 공포가 무덤덤하게 다가온다. 죽음을 너무 많이 의식해서 무감각해져버렸다.
이런 느낌은 사곡에서부터 받았다.
진룡대 부대주…… 그는 사곡 사람들을 몰살 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녹영철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극렬하게 저항한 것도 아니다.
굳이 죽일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죽였다. 한 명 남김없이 모두 죽였다.
그때 그는 미친 것 같았다. 살인에 미친 살귀(殺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룡대 부대주가 아니라 지옥에서 막 뛰쳐나온 살인귀를 보는 듯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미치게 했나?
그와 진룡대 무인들을 데리고 사곡에 간 것은 사곡 사람들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공격해올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때는 그들 모두를 몰살시키는 한이 있어도 녹영철만은 빼앗아올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가 우려했던 기상천외한 방법 같은 것은 없었다.
사곡이라고 해서 굉장히 우려했는데, 기껏 해야 험산에 의존한 미치광이 연금술사들뿐이었다.
한낱 촌민들이 진룡대 부대주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죽일 필요가 없었다. 죽이지 않았어도 된다. 고문 같은 것을 행할 필요도 없었다.
진룡대 부대주는 왜 그런 짓을 했나? 자신이 녹영철을 찾는 동안 기다려줄 수는 없었나?
그때는 무심히 지나쳤는데, 오면서 생각하니 의심이 가는 구석이 있다.
일단 자신만 해도 정상이 아니다.
녹영철의 강렬함을 보는 순간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저 쇠를 만질 수 없다. 저 쇠를 다듬을 자신이 없다.
쇠를 보고 이런 느낌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쇠의 기운에 짓눌려 버렸다.
해망은 자신과는 정반대의 느낌을 받은 것 같다.
해망, 해정월, 해단문이 자신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눈길로 재촉한다.
‘빨리 제련하자!’
그들의 눈은 뜨거운 열기로 활활 타오른다.
당장이라도 세상에서 가장 수순하다는 쇠를 만져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는 듯하다.
자신이나 저들이나 모두 비정상이다.
현재 단철장에 있는 장인들 중에서 사곡의 녹영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 녹영철이라고 말하지 않고 ‘사곡의 녹영철’이라고 말했다.
녹영철은 녹영철인데 왠지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버지 비오신장이 추출했던 녹영철과 사곡의 녹영철은 흡사한데……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미세하게 다른 것 같다.
아직 심리적으로 쇠를 제압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자신은 녹영철의 기운에 짓눌렸다. 그렇기에 만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만수의 세 아들은 사기(邪氣)에 현혹되었다. 그래서 빨리 만지고 싶어서 안달이다.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쇠를 어떤 심정에서 만져야 하는지는 안다.
무시하지 마라. 그래도 비오신장의 아들이다.
쇠는 오시하는 눈으로 만져야 한다.
하늘이 땅을 오시하듯이, 높은 산봉이 골짜기를 쳐다보듯이, 쇠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주무를 수 있어야 한다.
겁내지 말아야 하고, 흠집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찢어발기는 것을 능사로 해야 한다.
녹영철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넘실거린다.
이런 녹영철을 탄생시킨 사곡에는 아주 강렬한 마기(魔氣)가 형성되었던 듯하다. 그리니 부대주가 그리 미쳐서 날뛰었던 게다. 마기에 휘둘렸다고 본다.
확실하게 단정하지는 못하지만 꼭 그런 것 같다.
수교군은 한 발 뒤로 물러선 후,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들…… 나보다 경험도 많고, 치열하게 살아온 것도 알겠는데…… 날 쳐다보지 마. 내가 저놈을 제압할 때까지 기다려. 사흘이건, 열흘이건…… 저놈을 제압하기 전에는 만지지 못해.”
4
비망이 해과월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하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사마소는 조반을 마치고 입가심으로 차를 마셨다.
등 뒤…… 음침한 기둥 뒤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가 조반을 먹을 때부터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사마소는 그 자를 쳐다보지 않았다.
사내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조사가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알아낼 것을 모두 알아냈다. 그러니 서둘 필요가 무엇인가. 그는 찻잔을 들어서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목부터 축였다.
배도 부르고, 입가심도 했고…… 마음은 평온하고, 머리는 상쾌하다. 이제 말을 들을 준비가 됐다.
그가 말했다.
“말해.”
“홍화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내는 사마소의 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대답했다.
사마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홍화문이라는 말이 다소 낯설지만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사건 같은 것은 내포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차분하게 듣는다.
“홍화문주가…… 귀사령주의 동생입니다.”
순간, 차를 마시던 손길이 뚝 멎었다.
‘귀사령주에게 동생이? 그것도 홍화문주? 귀사령주 같은 자에게 홍화문주 같은 동생?’
사마소는 그제야 놀란 눈으로 사내를 쳐다봤다.
“홍화문주가 귀사령주의 동생? 친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