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210
210
문주의 말뜻은 명확하다.
흩어진 놈들은 각개 격파한다. 은밀히 모두 척살해 버린다. 언제까지? 인검이 염사검에게 당할 때까지.
인검이 당하면 재빨리 물러서서 모두 숨고, 인검이 이기면 여세를 몰아 비성검문을 쓸어버린다.
드디어 승부다!
5
“지금 이 순간부터는 솜털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된다. 정신 바짝 차려라.”
팔로상망단에 불똥이 떨어졌다.
단주는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떻게 주한극이 염사검을 획득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그토록 중요한 사실을 팔정로의 추론을 통해서 듣는단 말인가.
아주 잠깐 눈길을 돌렸을 뿐이다.
볼 일을 보기 위해서 뒷간에 들어가는 놈을 봤다. 그리고 일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렇게 아주 잠깐 동안만 시선을 돌렸다. 고개만 다시 돌리면 즉각 알아차렸을 사건이다.
고개도 바로 돌렸다. 뒷간에 들어간 놈이 뒷간에서 평생을 살겠는가. 놈은 바로 나왔고, 시선이 다시 이어졌다.
시선을 돌린 시간, 그 기간이 이틀이었다.
그런데 주한극을 바로 보지 못한 이 이틀이 세상을 뒤집을 만한 변수가 되었다.
그동안 놈은 염사검을 얻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변수를 만들어 냈다. 비성검문의 잠적이라는 천지개벽할 사건을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자칫했으면 음살문의 영원한 죄인으로 전락할 뻔하지 않았나.
문주 앞에서 굴욕적인 무능함을 보였다.
하지만 이것이 수하들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팔로상문단이 지닌 어쩔 수 없는 빈틈일 뿐이다. 아니, 팔로상문단뿐만이 아니라 정보를 취급하는 집단이라면 어느 곳 할 것 없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빈틈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그런 빈틈조차도 놓쳐서는 안 된다.
“흩어진 비성검문을 찾아라! 찾는 즉시 십이성에게 연결해라! 한 명을 찾으면 한 명을 연결하고, 두 명을 찾으면 두 명을 연결해라. 촌각도 지체치 마라!”
스스스슥!
그의 말은 고스란히 전서에 옮겨졌다.
“두 번째, 주한극에게 집중하라! 주한극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보고하라. 뒷간에서 싼 똥이 굵은지 가는 지까지 모두 보고하란 말이야!”
이즈음, 팔로상망단은 주한극이 염사검을 취했다는 사실을 파악해냈다.
소문주의 호위무인들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 한 명도 살지 못했다. 수교군도 죽었다. 머리가 잘려서 죽었다. 그리고 죽은 그의 손에는 염사검이 들려있지 않았다.
주한극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아직 모른다.
눈에 불을 켜고 있지만 주한극의 종적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고 있다.
스스스스슥!
그들은 단주의 명을 전서에 적었다.
“자, 자, 자! 어서 서둘러! 어서 전서를 띄워라! 지금부터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실수하는 놈은 죽는 거야! 알았어!”
수하들은 대답이 없다.
그들은 대답하는 시간도 아껴서 전서를 띄웠다.
푸드드드득!
날아오른 전서구가 푸른 하늘을 가득 메웠다. 너무 엄청난 새떼가 하늘을 가리고 있어서 세상에 종말이라도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두 사람은 열린 창문을 통해서 하늘을 가득 메운 채 힘차게 날아가는 비둘기 무리를 봤다.
“아름다워.”
수교빈이 중얼거렸다.
“그것뿐이야?”
소문주가 물었다.
“모두 몇 마리나 돼? 엄청나게 많은데.”
“자세한 건 단주가 알겠지. 저건 초구(初鳩)라고 하는데, 대략 천 마리 정도 될 거야.”
“초구?”
“본문에서 띄운 첫 번째 비둘기.”
“두 번째 비둘기도 있어?”
“저걸 받은 곳에서 비둘기를 또 띄우지. 한 마리를 받아서 두 마리를 날리는 곳도 있고, 열 마리를 날리는 곳도 있고. 후후후! 중원 전역에 고루 퍼져나가는데 열흘이면 충분해.”
그들은 편안한 신색으로 가벼운 잡담을 주고받았다.
비둘기가 전 중원으로 날아간다. 허나 왜 날아가는지 이유는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들의 모든 신경은 인검에 모아져 있다. 다른 데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비둘기가 간직한 사연 중에는 수교빈의 친혈육에 대한 슬픈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음살문을 발칵 뒤집어 버린 사건도 있다. 인검이 부러트려야 할 검에 대한 말도 적혀 있다.
음살문이 어떻고, 비성검문이 어떻고, 무림 돌아가는 사정이 어떻고……
그들에게는 강 건너 불구경이나 마찬가지다. 그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이다. 모두 남의 이야기다. 귀담아 들을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정말로 그들과는 손톱만큼도 상관없다.
그래서 그들은 평온하다.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해?”
“급한 거라도 있어?”
“그 놈한테 가야지.”
“해과월? 하하하! 이거 은근히 질투 나는데.”
“호호호! 죽이러 가는 건데, 그런 것도 질투나?”
“내 여자 머릿속에 다른 놈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좋을 리 있나. 흠! 안 되겠어. 이곳에서 나가면 제일 먼저 그놈부터 처리해야겠어. 하하하!”
소문주가 기분 좋게 웃었다.
사실, 두 사람은 기분이 좋지 못했다. 한가하게 잡담이나 늘어놓고 있을 기분은 더더욱 아니었다.
‘불안해!’
심장이 큰 북처럼 둥둥 울어댄다.
이런 느낌은 음살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낯선 사람들을 보는 순간, 심장의 고동소리가 급박하게 울려댔다. 마치 적진 속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수교빈만 그런 게 아니다. 음살문을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 음살문에 들어서면 가장 마음이 편안해야 할 소문주도 가슴의 고동소리를 들었다.
“왜 이러지?”
소문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말이다.
그들은 혼천음양마공을 수련했다. 세상이 내뿜는 기운을 읽고, 그 속에서 해가 될 것과 이익이 될 것을 찾아낸다. 적이 될 것과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을 본능적으로 분류해낸다.
가슴의 고동소리는 위협이다.
두 사람이 가장 편안해야 할 장소에서 가장 위협적인 소리를 듣고 있다.
더욱 느낌이 좋지 않은 것은…… 위협이 있기는 한데, 그 근원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무엇 때문에 위협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수교빈도 느끼고 소문주도 느낀다.
음살문 사람들이 적대감을 가진 것도 아닌데, 괜히 그런 느낌이 든다.
그래도 크게 당황하지는 않는다.
몇 번을 말하지만 그들은 인검이다. 이 세상에서 인검을 위협할 만한 존재는 많지 않다.
음살문은 강하다. 음살문이 작정을 하면 인검 정도는 쉽게 없앨 수 있다. 하지만 음살문이 왜 그런 짓을 하겠나. 소문주를 이유 없이 해하는 법도 있던가?
설혹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
맞서 싸우면 그만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도주해야 하는데, 최소한 몸 하나 뺄 자신은 있다.
그들은 사지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둥! 둥! 둥!
가슴의 고동소리가 크게 울린다.
‘불안해.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날 거야.’
사박! 사박! 사박!
비단 끌리는 소리가 울리면서 화사한 금복(錦服)을 입은 중년 부인이 들어섰다.
“아! 육(六) 사부(師父)님!”
소문주가 반색하며 일어섰다.
“쯧! 천하무적으로 키워놨더니 무인도 아닌 놈에게 패해?”
중년부인이 곱게 눈을 흘겼다.
‘고수!’
수교빈의 눈가에 이채가 일렁거렸다.
중년부인은 인검이 긴장할 만한 절정고수다.
혼천음양마공을 수련한 후, 어느 누구를 만나도 승패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헌데 중년 부인을 대하는 순간에는 자신도 모르게 승산을 떠올린다.
‘첫 수에 꺾을 수는 없고…… 승부를 나누자면 십여 초는 지나야 할 거야.’
인검이 십여 초를 생각한다면 상당한 고수다.
더군다나 그 승부란 것이 필승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자신이 질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포함되어 있다.
수교빈은 마출성을 퍼뜩 떠올랐다.
그렇다. 중년부인은 마출성에 못지않은 고수다. 인검의 느낌으로 감지한 것이니 거의 틀림없을 게다.
‘음살문이 이렇게 강했나?’
그녀는 음살문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소문주의 배후 세력이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다. 다만 자신의 무공이 이곳 무공이고, 이곳에 오면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하니 온 것뿐이다.
무공만 더욱 강하게 증진 시킨 후, 떠난다.
이곳에 남아서 이곳 사람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 속박은 단연 거부한다.
마침 중년부인과 수교빈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요마상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매혹적이네. 반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겠어.”
중년부인이 방긋 웃었다.
수교빈은 살짝 웃어서 답례했다.
쿵! 쿵! 쿵! 쿵!
가슴이 더욱 급박하게 뛴다.
중년부인은 아무런 적의도 보이지 않는다. 환하게 웃으면서, 다정하게 말한다. 소문주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사부이기도 한 모양이다. 그런데도 괜히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았다. 허나 중년부인을 쳐다보는 눈길이 편안할 리 없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그럼 넌 죽어.’
중년부인이 수교빈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안색이 다소 딱딱하게 경직되면서 눈길을 돌렸다.
“둘이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지?”
소문주에게 물은 말이다.
“네.”
소문주가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호호호! 재미가 아주 좋았나 보네? 얼굴이 확 폈어.”
“사부님!”
“호호호! 잘 됐네. 잘 됐어. 벌써 그렇게 됐다면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겠어.”
중년 부인이 품에서 얇디얇은 비급 한 권을 꺼냈다.
– 혼천음양공(混天陰陽功) 비파편(非把篇)
중년부인이 꺼낸 비급은 그녀가 봤던 혼천음양마공처럼 누군가가 급히 엮어놓은 책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비급으로 책 표지가 누렇게 바랬고, 글씨도 잘 보이지 않았다.
‘혼천음양공.’
혼천음양마공이 아니다. 혼천음양공이다. 그리고 난생 처음 들어보는 비파편이다.
비파…… 손에 잡지 않는다?
이것이 무엇인가? 어떤 내용인가? 혼천음양공은 몇 권으로 이루어졌는가?
궁금증이 확 밀려왔다.
중년부인이 말했다.
“오늘부터 한 달 간, 이곳을 폐쇄할 거야. 개미 한 마리 들락거리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할 테니까 그리 알고…… 꼭 대성을 이뤄. 이걸 수련하고 나면…… 무림사에서 아무도 이루지 못한 절대 무신이 될 거야.”
중년부인의 눈길이 수교빈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글을 잘 모른다. 글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글 한 줄 읽느니 술 한 잔 마시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혼천음양마공은 다르다. 그것은 그녀가 수련한 무공이다. 힘들게 힘들게 수련했고, 절정을 이뤘다. 혼천음양마공에 대한 것이라면 아무리 현묘한 무리일지라도 단번에 이해된다.
“헉!”
그녀는 깜짝 놀랐다.
“음!”
소문주도 탄식을 터트렸다.
비파란 말은 상징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현실적으로 무엇을 쥐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놓아버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음양의 상생과 상극을 버린다.
두 남녀가 만나서 이뤄낸 태극 또한 버린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 태초의 상태, 혼돈의 상태로 몰입해 들어간다.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무극 속에 온 몸을 맡긴다. 무극이 된다.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힘은 태초의 힘이다.
“이게…… 가능해?”
어찌나 흥분했는지 말까지 더듬거려진다.
“가능해. 우리가 지금까지 수련한 것은 음양마공이었어. 이제 혼천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되는 거지.”
“혼천……”
“내가 가진 것을 네게 전부 줄 거야. 티끌까지도 전부. 그러니 다 받아. 다 받아서 혼천을 이뤄.”
소문주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다. 혼천음양공은 두 사람이 대성할 수 없다. 오직 한 사람, 그것도 여인만이 수련할 수 있다. 사내가 이룬 것을 모두 내놓을 때, 여인에게 모두 줄 때…… 그때, 혼천이 이루어진다.
음살문에서 사내란 여인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사내가 수련한 모든 무공은 여인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 이게 뭐야! 다 줘? 다 주면…… 너는 죽어!”
“후후!”
소문주가 쓴 웃음을 흘렸다.
“이곳에 오자고 할 때…… 알겠니? 그때부터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있었어.”
‘그래서 불안했구나. 가슴이 이토록 불안했어.’
수교빈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정든 사내가 죽는다.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짝이 사라진다. 미면영검 탁좌량만큼이나 영준한 사람인데…… 하지만 자신이 대성을 이루기 위해 죽어야 한다면…… 뭐 어찌하겠나. 이것이 운명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그녀의 격동은 이내 가라앉았다.
“정말 괜찮아? 내게 전부 내주고…… 죽을 수 있어?”
“나, 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이 좋아했다.”
“알아.”
“그럼 우리 시작하기 전에……”
소문주가 다가섰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를 강인한 두 팔로 와락 껴안았다.